[IT동아 남시현 기자] 전 세계적인 반도체 학술 행사, 2025 국제고체회로학회(International Solid-State Circuits Conference, 2025 IEEE ISSCC)가 오는 2025년 2월 16일에서 20일 사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다. IEEE ISSCC는 매년 약 3000여 명의 학자 및 업계 관계자들이 연구 성과 및 정보를 교환하는 자리로, 반도체 업계의 올림픽이라고도 불린다. 본 행사를 두 달 앞둔 11월 28일, 국내 반도체 업계 석학 및 기업 관계자들이 판교 경기스타트업캠퍼스에서 ISSCC 2025 채택 논문 및 학계 동향 등을 소개하는 기자간담회를 진행했다.
김동균 SK하이닉스 펠로우가 2025 ISSCC에서 발표될 메모리 분과 관련 발표를 진행 중이다 / 출처=IT동아
최재혁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겸 ISSCC 기술 프로그램 위원회 아시아 지역위원장은 “인공지능(이하 AI)은 산업에서 가장 가장 뜨거운 주제다. 실제로 AI 구현에는 반도체 칩이 필수적이고, 2025 ISSCC 역시 산업혁명을 이끄는 것을 주제로 프로그램이 구성된다”라면서, “반도체 기술 측면에서 하락 곡점이 우려되는 상황임에도 전 세계에서 팔린 반도체는 1조 개에 달하며, 1인당 100개 이상의 칩을 사용하는 게 현 상황이다. 올해는 반도체 손익을 극복하고, 내년에는 반도체 산업의 규모가 약 1000조 원으로 커질 것”이라며 글로벌 추세를 언급했다.
“연도별 논문 채택, 작년과 올해 크게 늘어”
2025 ISSCC의 화두는 논문 채택 숫자가 크게 늘어난 점이다. 최재혁 교수는 “2019년부터 2023년까지의 논문 제출 개수는 600여 개를 유지했다. 그런데 작년에 873개의 논문이 제출됐고, 올해는 914개가 제출됐다”라고 말했다. 논문 수가 급증한 이유로는 미국의 반도체 제재로 인한 중국의 반도체 기술 자립이 성과를 내고 있고, 중국 정부의 막강한 지원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최재혁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겸 ISSCC 기술 프로그램 위원회 아시아 지역위원장 / 출처=IT동아
이어서 “북경대는 전통적으로 문과 중심의 학교로, 작년에 제출한 논문은 4개였다. 그러다 1년 새 교수 영입과 자금 지원에 힘입어 15편의 논문을 발표하며 제출 수 1위로 올라섰다. 2015년까지만 해도 중국 제출 논문 중 채택 건수는 10~30건 이내였다. 그러다 반도체 제재 이후부터 그 수가 크게 늘었고 2025년에 92개를 달성했다. 2020년 이후 중국 정부가 반도체 내재화를 투자하고, 학교에서 만드는 반도체 회로를 정부가 무상 제작할 정도로 열을 올린다. 앞으로도 중국의 제출 논문 수는 계속 증가할 것”이라 진단했다.
우리나라는 총 12개 기업 및 기관에서 논문을 제출했으며, 이중 44개가 채택됐다. 삼성전자는 전 세계 기업 중 가장 많은 11개의 논문을 발표한다. 다만 분과별 비중에는 차이가 있다. 논문 채택 현황을 살펴보면 이미저, 메디컬, 디스플레이로 묶이는 IMD 분과 비중이 44%, 메모리 분과가 39.1%로 집중되고, 데이터 컨버터(DC)와 테크니컬 디렉션(TD) 분야 논문 채택 수는 0%다.
연도별 논문 제출 현황, 2023년까지 600여 개를 유지하다가, 24년 25년에 900여 개로 늘었다 / 출처=IT동아
이와 관련해 권경하 한국과학기술원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는 “TD 분과는 융합 연구 중심이다. 재료나 바이오 분야도 포함돼 네이처, 사이언스 등은 물론 메디컬 관련으로도 분산 제출되는 특징이 있어 ISSCC상에서는 숫자가 적은 점을 감안해 달라”고 말했고, 이일민 광주과학기술원 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 교수도 “데이터 컨버터 분야에서 한국은 작년에 세 건 논문을 발표했고, 올해만 유독 발표가 없었다. 방향성이나 성과 등은 계속 꾸준히 나오므로 우려할 부분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한국이 여전히 메모리 시장 주도··· GDDR7, LPDDR5 등 소개”
메모리 분과를 맡은 김동균 SK하이닉스 펠로우는 “메모리 분과는 총 84편의 논문이 제출됐고, 컴퓨트 인 메모리가 41편, D램이 19편, S램이 12편, 낸드 3편, 엔지니어링 메모리 3편, 기타 6편이 제출됐다. 우리나라는 총 9.5개의 논문을 발표해 제출 수 1위를 차지했다”라고 설명을 시작했다.
컴퓨트 인 메모리 세션에서는 TSMC가 대만 국립 칭화대가 공동 개발한 STT M램과 휘발성 기반 CIM 발표, 메모리 인터페이스 세션에서는 SK하이닉스와 서울대가 GDDR7에 적용되는 42Gbps 속도의 PAM3 신호 기술, 한양대 및 고려대에서 미래 메모리 인터페이스 후보인 50Gbps PAM 4 기술 등을 발표한다.
메모리 분과는 한국이 여전히 강한 분야다. 삼성전자는 새로운 24GB GDDR7 및 15GB LPDDR5를 소개할 예정이다 / 출처=IT동아
또 S램은 TSMC와 인텔이 2나노미터 CMOS 나노 시트 및 18A(옹스트롬) 공정 리본 핀펫 기반 S램을 발표 예정이고, 비휘발성 메모리 분야에서는 400단 이상 구성의 삼성전자 1TB 3B셀, 하이닉스 321단 2TB 4B셀, 키옥시아 및 WD 322단 1TB 3B/셀 3D 낸드 기술 등이 발표된다. 삼성전자는 최대 42.5Gbps로 동작하는 24GB GDDR7 모듈, 12.7Gbps 급 16GB 용량의 LPDDR5 메모리 주요 정보를 소개할 예정이다.
마이크로 프로세서, AI 가속기 등도 핵심 의제
디지털 아키텍처 및 시스템 분과는 산업용 프로세서들이 공개된다. 프로세서 세션에서는 총 10편의 논문이 발표되며, 산업용 및 도메인 특화 프로세서가 주를 잇는다. AMD는 라이젠 9000 시리즈 및 라이젠 AI 300 시리즈에 적용된 젠5 아키텍처를 공개하며, 인텔도 인텔 4 공정 기반의 코드명 그래나이트 래피즈-D, 제품명 6세대 제온을 소개한다. IBM도 데이터 프로세싱 유닛을 탑재한 텔럼 II, 칭화대에서 엣지 디바이스용 차세대 3D 렌더링 응용을 위한 가우스 스플래팅 프로세서를 공개한다.
박준석 삼성전자 LSI 사업부 선행AP개발팀 수석이 디지털 아키텍처 및 시스템 분과 내용을 발표 중이다 / 출처=IT동아
AI 가속기 역시 총 10편의 논문이 공개되는데, 이중 멀티모달 디퓨전 모델 가속기, 모바일 소셜 에이전트용 SoC, 대형 언어모델 프로세서, 텍스트 모션 전환 프로세서까지 네 개가 한국 논문이다. 가속기는 미디어텍의 3nm 공정 기반 엣지 장치용 가속기, 인텔 16nm 기반 트랜스포머 가속기, MIT의 생성형 AI용 이종(Heterogeneous) NPU, 칭화대의 LLM 가속기 등이다. 또한 산업군 초청을 통해 브로드컴, 삼바노바, 퓨리오사AI, 삼성전자가 각각 초청된다.
브로드컴은 초당 51.2TB 전송 속도의 AI 및 기계학습용 네트워킹 스위치 칩, ‘토마호크5’, 삼바노바는 5nm 2.5차원 데이터 흐름 가속기 삼바노바 SN40L를 공개한다. 우리나라 기업인 퓨리오사AI는 대형 언어모델 처리를 위한 고효율 추론용 5nm 텐서 축약 프로세서, RNGD(코드명 레니게이드)를 소개하며, 삼성전자는 온디바이스 AI로 구현되는 스마트폰용 4nm SoC NPU를 공개한다.
퓨리오사AI의 2세대 NPU, RNGD(레니게이드) / 출처=퓨리오사AI
이외에도 IDM 분과에서 총 11건의 한국 논문이 채택돼 높은 기술 경쟁력을 보여줬고, 전력 관리 분야에서도 전체 30편 중 6편을 발표해 중국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다만 고전력 응용 분야에 대한 연구 속도가 느려 산학 협력 강화를 통한 기술 선도 및 보완이 필요한 상황이다. 와이어라인 분과에서도 데이터센터, 칩투칩 등 초고속 저전력 인터페이스 관련 기술들이 공개되며, 무선 분과 역시 5G 및 6G 관련 동향이 공유된다. 라디오 주파수 분야도 무선 전송을 위한 고출력 증폭기를 비롯해 저전력, 저노이즈 조건에 맞는 기술 등이 공유된다.
“중국 논문 품질 인정··· 고부가가치 제품 집중해야”
올해에 이어 내년 ISSCC 제출 및 채택 논문에서 중국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한국 내 학회 및 기업들 역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민병욱 연세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과거에는 미국에 있던 스타 교수가 중국으로 가서 쓴 논문 등이 많았지만, 이제는 정말 누군지 모르는 중국 교수들의 논문이 많아졌고 그 수준도 높다”라고 말했다. 또 최재혁 교수도 “심사는 더블 블라인드 룰로 진행돼 소속, 국적을 알 수 없이 진행한다. 그럼에도 채택률을 보면 중국이 많아 높아졌고, 실제로 수준도 높다. 기술적으로 무시할 상황이 전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제민규 한국과학기술원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는 “ISSCC가 미국에서 개최되다 보니, 정작 중국 교수들이 못 오는 경우도 많다. 트럼프 대통령 이후에는 더 심화될 것이다. 중국이 첨단 공정을 쓸 수 없는 탓에 다각도로 시도를 하게 되고, 그러면서 전력관리 같은 분야에서 더 경쟁력을 얻게 될 것이다. 중국의 반도체 내재화가 성공한다면 업계에서도 상당한 변혁이 생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재혁 교수는 산업 현장에서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고, 우리나라 역시 마땅한 지원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 출처=IT동아
김동균 SK하이닉스 펠로우도 “메모리 부문은 중국의 추격에 시간이 걸리겠지만, DDR4만 해도 우려가 될 정도다. 앞으로 미국 공장 투자, 보조금 등에 대한 변수가 많아 예측은 어렵지만, 한국의 기업과 반도체 기술들이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경쟁해야 할 것”이라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최재혁 교수는 “논문도 논문이지만, 산업 현장에서도 밀리는 상황이다. 대만 TSMC나 미국 엔비디아 등의 선진 기업은 밤낮없이 돌아가고, 중국도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의 산업 현장과 학계에서도 이들 못지않게 경쟁력 있고, 끊임없이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의 근로 환경을 테두리 안에 가두기만 할 것이 아니라 성과에 대해 보상하고, 마땅한 지원책이 마련되길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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