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특별시와 서울경제진흥원이 아이디어 발굴부터 기술개발, 사업화, 지식재산권 창출 및 보호까지 중소기업의 기술 경쟁력 강화를 돕는 ‘서울형 R&D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에 IT동아가 [서울형 R&D] 시리즈를 통해 ‘2022년 서울형 R&D 기술사업화 지원사업’에 선정된 기업을 만나, 도약을 꿈꾸는 그들의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IT동아 권명관 기자] 외식업계는 지금 전쟁터다. 지난 몇 년 동안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 시행으로 손님을 받을 수 없어 생존에 대한 직격탄을 맞이했고, 팬데믹 종료 이후 손님이 다시 찾기 시작했지만 일할 직원을 찾기가 어렵다. 타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업무 강도는 높고, 급여 수준은 낮은 외식업계의 노동 공급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유연한 근무를 희망하는 MZ 세대의 일에 대한 가치관 변화로 직장으로서의 외식업체 매력도는 떨어지고 있다.
특히, 외식업은 음식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과정을 사람이 담당하면서, 고객과 대면하며 서비스해야 하는 일이 필수적인 업종이다. 하지만, 일할 사람이 없어 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심각한 인력난에 봉착해 있다. 통계청 직종별 사업체 노동력 조사를 살펴보면, 2022년 상반기 외식업계의 부족 인원은 7만 4361명으로 전년 동기(2만 6911명) 대비 176.3% 증가했다. 필요 인력 대비 부족률(%)도 2022년 상반기 6.6%로 전년 동기(2.6%) 대비 4.0% 증가했다.
지속적으로 상승한 인건비도 부담이다. 근로자에 대한 임금의 최저 수준 보장, 근로자의 생활 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 등을 목적으로 2015년부터 최저임금은 꾸준하게 상승했다. 올해 최저임금은 9620원으로 2022년 대비 5% 상승, 주 40시간 근무 기준 기본급은 201만 580원이다. 치솟는 물가와 임금 등으로 외식업계는 부담을 호소한다.
이에 외식업계는 키오스트, 서빙 로봇, 온라인/예약 주문 시스템 등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디지털 전환에 기반한 무인화 서비스를 도입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음식을 만드는 주방으로도 로봇이 확장하고 있다. 로봇이 치킨을 튀기고, 햄버거를 만든다. 이에 IT동아가 햄버거 패티 조리 로봇을 개발한 에니아이의 황건필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에니아이 사무실에서 만난 황건필 에니아이 대표 / 출처=IT동아
인공지능 햄버거 패티 조리 로봇을 만들고 있습니다
IT동아: 만나서 반갑다. 먼저 에니아이에 대한 소개를 듣고 싶다.
황건필 대표(이하 황 대표): 에니아이는 햄버거 패티를 굽는 인공지능(이하 AI) 조리 로봇 ‘알파 그릴(Alpha Grill)’을 개발하고 상용화에 성공한 제조 스타트업이다. 햄버거 패티 조리 로봇 상용화 이후 햄버거 패티 이외에도 다양한 음식을 만들 수 있는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에니아이가 추구하는 것은 외식업계의 고질적인 문제 ‘인력난’, ‘열악한 근무 환경’, ‘낮은 이익률’을 개선하는 데 있다. 외식업계는 근무 시간이 길고 노동집약적 일이 많아 직원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때문에 주방에서 사람의 일을 덜어 줄 자동화 시스템에 대한 수요와 필요성도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만약 주방에 자동 로봇을 사용하면 어떨까? 로봇을 이용하면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음식을 쉽고 균일하게 조리할 수 있다. 사람처럼 지치는 일도 없다. 필요하다면 24시간 계속 조리할 수 있다. 공장의 자동 생산 라인처럼 말이다.
치킨 패티와 소고기 패티를 조리하는 에니아이 ‘알파 그릴’ / 출처=에니아이
IT동아: 그러니까… 로봇이 음식을 만든다는 말인가. 지금은 햄버거 패티를 굽는 로봇 개발을 성공해 판매하고 있고?
황 대표: 맞다. 햄버거를 조리하는 식당, 프랜차이즈, 대형급식 업체 등에 구독형 서비스(Robot-as-a-Service) 방식으로 알파 그릴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 2022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햄버거 조리 로봇을 도입한 수제 버거 프랜차이즈 '크라이 치즈 버거'를 비롯해 현재 총 6개 햄버거 매장에서 에니아이의 알파 그릴을 사용하고 있다.
햄버거를 판매하는 식당이 원하는, 변하지 않는 조건이 있다. 맛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조리 로봇이 빠르게 음식을 만들어도 맛이 없다면 아무 의미 없다. 때문에 우리 에니아이는 B2B 대상으로 알파 그릴을 판매하지만, 로봇으로 만든 햄버거를 먹는 최종 소비자에게 집중하고 있다. 맛있는 햄버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기본 조건인 셈이다.
크라이치즈버거 상암점에서 사용하고 있는 에니아이 ‘알파 그릴’ / 출처=에니아이
IT동아: 알파 그릴은 업체에게 구독형 서비스로 제공하지만, 알파 그릴로 만든 음식은 일반 소비자가 만족할 수 있도록 관리한다는 의미로 들린다.
황 대표: 그래야 한다. 고객사가 요구하는 조건에만 맞춰 알파 그릴을 개발하지 않는다. 음식을 먹는, 햄버거를 먹는 최종 소비자의 의견도 우리에게 중요한 과제다. 사실 고객사들도 조리한 햄버거 패티의 품질과 맛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자신들이 원하는 맛을 로봇으로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지, 같이 고민하며 수많은 테스트 과정을 진행했다. 정리하자면, 에니아이는 고객사에게 조리 로봇을 판매하는 스타트업이지만, (조리 로봇으로 만드는) 음식의 기준은 최종 소비자의 입이다.
주방 속 조리 과정의 효율화를 고민했습니다
IT동아: …그럼 알파 그릴을 이용해 직접 햄버거를 판매해도 되는 것 아닌가.
황 대표: 하하. 엄연히 다르다. 넷플릭스를 예로 들어 보자. 넷플릭스는 영화,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등 영상 콘텐츠를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기업이다. 그런데 넷플릭스가 영상 콘텐츠를 모두 직접 제작하고 촬영하나? 일부 콘텐츠를 직접 만드는 경우도 있겠지만, 전 세계에 있는 수많은 영상 콘텐츠 제작사와 촬영사와 협력해 확보한다. 최종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편리하게 영상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지 고민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기자님이 질문하신 것처럼 우리가 음식을 직접 만들어 최종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도 있지만, 그건 우리의 영역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영화 제작사가 영화관을 직접 운영하며 영화를 상영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이미 우리 주변에는 맥도날드, 롯데리아, 버거킹 등 햄버거를 제조해 판매하는 식당과 프랜차이즈가 많지 않나. 에니아이는 햄버거를 최종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업체가 더욱 잘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그리고 햄버거의 품질이라고 할 수 있는 ‘맛’은 외식업계의 전문 영역이다. 로봇을 만들고 개발하는 우리는 조리 과정의 효율화를 추구할 뿐이다. 맛을 구현하는 레시피까지 우리가 관여하지는 않는다. 그건 셰프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에니아이 알파 그릴 소개 동영상 중 한 장면 / 출처=에니아이
IT동아: 아… 주방에서 여러 셰프가 조리를 분담하는 것처럼, 로봇이 조리 과정의 일부를 담당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까.
황 대표: 맞다. 유명한 셰프가 운영하는 식당이라고, 1명의 유명 셰프가 모든 요리를 조리하지 않는다. 이미 대형 식당에는 재료를 손질하는 셰프가 있고, 프라이팬을 잡고 굽거나 끊이는 셰프가 있고, 최종적으로 맛을 손보는 셰프도 있다. 단순하다. 이렇게 분업화되어 있는 주방의 조리 과정을 사람이 하는지 로봇이 하는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IT동아: 뭔가… 셰프라고 한다면 직접 요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관여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황 대표: 하하. 물론, 모두 할 수 있다. 다만, 조리 과정까지 완성한 레시피에 1명의 셰프가 항상 관여할 수는 없다.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하다. 우리나라의 유명 셰프가 프랜차이즈 식당을 설립했다고 가정하자. 맛있는 음식으로 인기를 끌면서 프랜차이즈 체인점은 전국으로 퍼졌고, 어느 순간 해외로도 진출했다. 그럼, 그 셰프가 국내 전 지역을 돌아가면서 매번 조리하고, 해외에도 나가서 조리할 수 있나?
황건필 에니아이 대표와 알파 그릴 / 출처=에니아이
알파 그릴은 햄버거 패티를 맛있게 굽는 자동 조리 로봇일 뿐이다. 기존에 사람이 굽던 일을 효율적으로 바꾼 것이다. 그럼 셰프는 이렇게 남는 시간을 활용해 더 맛있는 레시피를 개발하고, 기존 요리의 맛을 높일 수 있는 것을 연구할 수 있다.
IT동아: 알파 그릴에 대한 설명을 조금 더 자세하게 듣고 싶다.
황 대표: 햄버거 맛의 핵심은 레시피 대로 잘 구운 패티에 있다. 매장에서 제일 경험 많고 숙련된 직원이 그릴 파트를 담당하는 이유다. 적정 조리 온도를 준수하면서 하루에 수백 개의 패티를 일관된 맛과 품질로 만들어야 한다. 단순하지만, 숙련도가 필요한 일이다.
알파 그릴을 이용하면 햄버거 패티 양면을 굽는데 1분 내외면 충분하다. 사람이 하는 조리 시간보다 절반 정도 줄였다. 당연히 생산 속도는 빨라진다. 근무 강도가 높은 주방의 일을 더 쉽고, 빠르고, 안전하게 로봇이 대신할 수 있도록 개발했다. 알파 그릴을 이용해 조리할 수 있는 햄버거 패티는 시간당 200개 정도다. 주문이 몰리는 가장 바쁜 시간대의 주문량도 수월하게 만들 수 있다.
위아래 양면 그릴을 사용해 패티를 굽는 알파 그릴 / 출처=에니아이
참고로 로봇이라고 하면 대부분 사람과 비슷한 팔과 달린 형태를 상상하는데, 알파 그릴은 카메라와 센서를 이용해 패티의 모양, 굽기 정도를 확인하며 패티를 굽는 대형 그릴 형태다. 로봇 팔을 이용하는 기존 조리 로봇과 달리 모듈 디자인으로 설계해 불필요한 동작 없이 로봇의 각 파트가 동시에 다른 동작을 수행한다. 칼과 도마에 자동 기능을 더한 느낌이다(웃음).
햄버거 패티를 굽는 일은 생각 외로 고되다. 뜨거운 기름이 튀고, 간혹 그릴에 손이나 팔이 데이기도 한다. 열기로 인해 발생하는 유증기와 가스에도 노출되는 환경이다. 힘도 들지만, 건강에도 좋지 않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일하는 셰프의 조리를 알파 그릴이 대신할 수 있도록 고안했다.
알파 그릴 사용 모습 / 출처=에니아이
IT동아: 햄버거 패티만 조리할 수 있나.
황 대표: 그릴로 굽는 요리에 활용할 수 있도록 점차 확대하고 있다. 지금은 치킨과 스테이크를 굽는 것에 도전하고 있다. 그릴에 굽는 시간과 온도를 제어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연동하고 있다. 그릴을 바탕으로 하나씩 확장하고자 한다.
햄버거 패티 조리뿐만 아니라 햄버거 자체를 만들 수 있는 로봇 키친 시스템 ‘알파 키친 (Alpha Kitchen)' 프로토 타입도 개발했다. 햄버거 위아래의 빵을 굽고, 야채를 올리고, 소스를 뿌리며, 패티를 구워 넣는… 완성된 햄버거를 조리하는 로봇 키친 시스템이다. 2024년에는 상용화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다양한 레시피를 입력할 수 있는 알파 그릴 / 출처=에니아이
에니아이의 원격 관제 시스템 ‘알파 클라우드’ / 출처=에니아이
로봇,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경험했습니다
IT동아: 에니아이는 언제 설립했는지.
황 대표: 지난 2020년 7월 30일 설립했다. 설립해에 도전! K-스타트업 2020 예비창업리그 대상(국무총리상)을 수상했고, 2021년에 미국 달라웨어에 ‘Aniai, Inc.’ 본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 인큐베이터 프로그램(Microsoft for Startups) 선정, 국내 최대 햄버거 프랜차이즈 업체와 공동연구하며 경험을 쌓았다.
2022년에 햄버거 패티 조리 로봇 알파 그릴을 출시했다. 이후 ‘SKT ESG Korea 2022 프로그램’ 협력 파트너사 선정되었으며, 국내 햄버거 브랜드 매장에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올해에는 뉴욕 브루클린에서 테스트베드 사업을 실증하고 있으며, 세계 최대 외식 박람회 ‘NRA 쇼’에서 ‘키친 이노베이션 어워즈’ 혁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앞서 언급했지만, 국내의 총 6개 햄버거 매장에서 로봇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 최대 외식 박람회 NRA 쇼에서 발표하는 황건필 에니아이 대표 / 출처=에니아이
IT동아: 로봇을 개발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황 대표: 카이스트에서 전기 및 전자공학을 전공하며 박사(세부 전공: 인공지능, 반도체, 인지 시스템)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대학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로봇 관련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연구개발했다. 당시 초음파를 활용해 주변 공간을 인식하는 인공지능 로봇용 센서를 개발했었다.
IT동아: 센서를 통해 공간을 인식한다는 말을 들으니 레이저를 이용해 주변을 인식하는 라이다(LiDAR) 센서와 영상 정보를 분석해 주변 정보를 분석하는 비전 인식 등이 떠오른다. 자율주행 자동차에서 활용하는 센서와 기술 아닌가.
황 대표: 하하, 맞다. 라이다는 빛, 비전 인식은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을 분석하는 방식인데, 당시 우리가 집중하고 있던 것은 초음파를 이용한 센서였다. 박쥐를 떠올리면 된다. 어두운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박쥐가 초음파를 이용해 주변 정보를 인식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초음파를 이용하면 연기가 많은 곳에서도 주변 정보를 인식할 수 있어, 라이다 센서나 비전 인식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 레이저와 빛으로 주변을 인식할 수 없는 환경에서 사용할 수 있는 센서인 셈이다. 즉, 악조건에 투입되는 로봇에 주변 환경을 인식할 수 있는 센서다. 극심한 연기가 발생하는 화재 현장이이나 사건/사고 현장 등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경험을 쌓았다.
에니아이 팀 사진 / 출처=에니아이
IT동아: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되지만… 시장 규모가 그렇게 크지는 않을 것 같다. 특수한 상황, 특정 조건에서만 필요한 기술 아닌가.
황 대표: 동의한다. 분명 필요하고 좋은 기술이지만, 기술을 상용화하더라도 시장성 측면에서 봤을 때 결코 낙관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창업은 자금이 꼭 필요한 영역 아닌가. 회사는 숨만 쉬어도 자금이 필요한 기업이다.
이에 지금 보유하고 있는 경험과 기술, 지식으로 도전할 수 있는 영역은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다. 로봇에 필요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인공지능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찾았다. 그때 떠올린 것이 외식업계였다. 시장성뿐만 아니라 성장성도 높다고 판단했다.
이후 알파 그릴의 초기 버전, 아이디어를 가지고 시장조사를 시작했다. 우리가 생각한 것이 정말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것인지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다행스럽게 당시 국내 대형 햄버거 프랜차이즈 중 한곳과 만날 수 있었고, 우리가 제시한 아이디어가 충분히 유용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SBA 서울형 R&D 기술사업화 지원사업 우수사례로 발표하고 있는 송성민 에니아이 이사 / 출처=에니아이
IT동아: 우리라고 한다면, 공동설립자를 말하는 것인가.
황 대표: 에니아이는 총 5명이 공동설립했다. 현재 모두 남아 있고, 지금 인원은 30명으로 늘었다. 하드웨어 개발자는 20명,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5명이다.
많은 사람의 삶을 편리하게 바꾸겠다는 다짐
IT동아: 근본적인 궁금함이다. 왜 에니아이라는 스타트업을 설립한 것인지 궁금하다. 카이스트 대학원 연구원에서 스타트업 대표로 바뀐 셈인데.
황건필 에니아이 대표 / 출처=IT동아
황 대표: 창업을 하고 싶었다(웃음). 카이스트에 진학한 뒤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연구원으로 일했던 것도, 창업을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
사실 고등학교를 졸업 후 대학교 진학을 준비하며 재수 과정을 거쳤다. 제수 생활을 하면서 ‘앞으로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인생의 가치관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한 순간이다. 노트에 적었다. ‘지금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내가 미래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서였다.
좋아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에 이유를 달았다. 그렇게 쭈욱 적으면서 내린 결론은, 대부분의 사람은 소비적인 것을 좋아한다는 점이었다. 자신의 시간과 비용을 쓰면서 게임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소비하는 일이) 미래에 계속할 만한 일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소비가 아닌 생산적인 일을 해야 지속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정리하는 과정에서 남은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뭔가를 만들어 사람의 삶을 편하게 해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사람의 삶을 편하게 해주는 일은 소수의 몇몇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10의 n승)에게 인정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10의 n승 사람의 삶을 편하게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창업이었다.
IT동아: ……그러니까 대학교 진학에 한번 실패해서 재수하며 떠올린 생각이었다는 얘기다.
황 대표: 우리나라 창업가들의 스토리를 찾았고, 카이스트에서 창업한 성공 사례가 많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때 다짐했다. 카이스트에서 창업과 기술을 배우면 좋겠다고. 이후 부모님 앞에서 스스로 정리한 내용을 발표(PT)했다. 재수하며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카이스트에 진학하고 난 뒤, 학부생 신분으로 창업하기에는 경험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아무리 번뜩이는 아이디어라도 사회 경험은 없고, 기술에 대한 깊이도 부족한 학생이 창업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대학원에 진학했고, 교수님과 함께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스타트업을 설립하고 난 뒤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경험을 쌓았다. 돌이켜보면 약 11년 동안 기술을 연구개발하고, 창업을 배웠으며, 이를 통해 지금의 에니아이를 설립한 셈이다.
에니아이 알파 그릴로 구운 햄버거 패티 / 출차=에니아이
IT동아: 솔직하게 말하자면, 부모님 앞에서 자신의 미래를 발표하고, 스스로 내린 결론을 향해 도전하며 카이스트에 진학하고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는 것만으로도 평범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황 대표: 하하. 아니다. 스스로 세운 계획에 맞춰 도전한 결과일 뿐이다. 그렇게 에니아이를 설립하고, 이제 설립 3년 차를 맞이했다. 내년 1월부터 알파 그릴을 양산할 수 있을 것 같다. 인천시 부평에 600평 규모의 생산 공장을 마련했다. 수제 버거 프랜차이즈에 알파 그릴을 공급하고 있고, CJ프레시웨이와 협력해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세브란스병원 푸드코트 ‘버거 스테이션’에도 알파 그릴을 공급했다. 공급 계약은 계속 확장 중이다.
세브란스병원점 푸드코트 햄버거 매장 ‘버거 스테이션’에서 알파 그릴을 사용하는 모습 / 출처=에니아이
IT동아: 올해 초 300만 달러(약 40억 원) 규모의 시드 투자도 유치했는데.
황 대표: 제품 생산 설비 확충을 위해서였다. 캡스톤파트너스, 롯데벤처스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다. 아직 완전 자동화 생산 시설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정밀한 동작을 요하는 조리 로봇 특성상 사람이 정밀하게 부품을 맞춰서 조립하고 테스트해야 한다. 이를 위한 효율화도 준비하고 있다. 시드 투자 유치에 이어 프리-시리즈A 투자 유치도 어느 정도 마무리한 상황이다.
IT동아: 마지막 질문이다. SBA의 서울형 R&D 기술사업화 지원사업을 어떻게 알게 됐고, 참여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황 대표: 우리 에니아이처럼 새로운 제품, 새로운 서비스, 새로운 솔루션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은 언제나 인재와 자금이 필요하다.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단계면 문제없지만, 초기 스타트업에게 그러한 여력은 거의 없지 않나. 이에 정부나 지자체가 지원하는 사업이나 프로그램을 찾을 수밖에 없다.
황건필 에니아이 대표 / 출처=에니아이
적극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결과가 서울형 R&D 기술사업화 지원사업이었다. 사실 로봇 개발 관련해 지원받을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았다. 로봇 R&D 영역에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사업은 거의 유일했다. 이후 지원사업에 신청하고 열심히 준비했다. 우리가 추구하는 로봇 R&D를 SBA에서 많이 공감해 주셨고, 보다 전문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자금 지원과 더불어 투자 연계 네트워크, 홍보/마케팅에 필요한 교육 및 연계 등도 받을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
앞으로도 에니아이는 알파 그릴을 바탕으로 알파 키친 시스템을 통해 주방의 시스템을 자동화하고자 한다.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 등 해외에서도 실증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앞으로도 우리 에니아이에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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