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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레 "주한미군 절반 줄이자"

ㅇㅇ(61.79) 2025.01.14 13:10:53
조회 92 추천 1 댓글 1



한걸레 칼럼


천문학적 액수 퍼주면서 주한미군을 붙잡아야 할까?



밸런스 게임. ‘미국에 방위비 분담금 5배 정도 올려주기 VS 주한미군 대폭 감축 수용하기.’ 이 게임은 더 이상 재미의 영역도 상상의 영역도 아니다. 2기 트럼프 행정부 시기에 한국이 피하기 힘든 딜레마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물론 선택지가 이 두 가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미 협상력을 발휘해 방위비 분담금 인상폭을 최대한 낮출 수도 있고, 방위비 대폭 인상의 반대급부로 미국으로부터 자체 핵무장을 용인받거나 주한미군의 대안으로 자체 핵무장을 선호할 수도 있다.

한국의 딜레마가 심해지고 있는 까닭은 한국을 둘러싼 지정학적 환경이 크게 바뀌고 있는 데에도 있다. 중국의 부상과 미중 전략 경쟁의 격화, 그리고 북러 동맹의 재결성은 그 핵심에 해당된다. 이 와중에 조선의 김정은 정권은 ‘불가역적 핵보유국’ 추구와 ‘적대적 두 국가론’을 들고 나와 남북관계에 관한 기존 문법을 완전히 뒤집어 놓고 있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바이든 행정부 시기 한미동맹 강화 및 한미일 군사협력 추구의 핵심적인 동인으로 작용했었다. 그런데 트럼프는 ‘한미동맹 브레이커’로 불릴 법한 인물이다.

주한미군과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의 선택지는 길게 펼쳐져 있다. 대선 유세 때 한국을 “머니 머신”이라고 부르면서 “내가 백악관에 있으면 그들은 (주한미군 주둔비로) 연간 100억 달러를 지출할 것”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터무니없는 청구서를 내밀 수 있다. “언젠가는 미군을 데려오고 싶다”고 말했던 것처럼, 주한미군의 대폭 감축을 추진할 수도 있다. 주한미군을 포함한 한미동맹의 역할을 대북 억제에서 중국 봉쇄로 이동하자고 압박할 수도 있다. ‘안보의 경제성’을 주창한 아이젠하워 행정부처럼, 주한미군을 감축하는 대신에 핵무기를 한국에 전진 배치하려고 할 수도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의 선택지는 매우 좁다. 대규모의 주한미군의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기본값’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기본값을 바꾸지 않으면, 미국의 부당하고 위험한 요구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의 선택지를 넓히려면 기본값도 바꿀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 절실하다. 이와 관련해 싱가로프 외교부 상임장관을 지낸 빌라하리 카우시칸은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즈’ 1·2월호 기고문을 통해 “미국의 동맹국과 파트너들은 지나간 시대의 상상 속의 공통 가치들을 갈망하기보다는, 2기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 정책을 미국의 자연스러운 위치로의 회귀로 간주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충고한다. 소련이라는 실존적 위협이 사라진 지 사반세기가 지났는데도 냉전 시대와 같은 미국의 개입주의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것이다.

일단 트럼프는 주한미군 감축을 압박 카드로 삼아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인상 받는 것을 1차적인 목표로 삼는 것 같다. 10배 정도로 불러놓고 5배 안팎의 인상을 목표로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가당치 않다. 미국이 부담하는 주한미군 주둔비의 상당 부분은 인건비이다. 약 70%에 달하는 이 비용은 미군이 어디에 있던 들어가는 돈이라는 뜻이다. 또 한국이 주는 방위비 분담금도 남아돌아 불용액이 쌓여 있다. 미국이 방위비 분담금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막무가내이다. 주한미군을 용병 취급한다는 비판이 나와도 “한국이 돈을 많이 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미국 헌법과 관련 법률에 따르면, 미군 인건비는 미국 의회가 승인한 국방 예산에서만 지출할 수 있고, 외국 정부나 단체로부터 미군 인력에 대한 직접적인 보수를 받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또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의 적용 범위는 한국인 노동자 인건비, 군사건설비, 군수 지원비로 한정되어 있다. 이는 트럼프가 원하는 대로 ‘한국이 분담금을 대폭 올려주면 어디에 쓰는 것이냐’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인건비를 제외한 ‘비인적비용(Non-Personal Cost)’을 한국이 전적으로 부담하는 것이다. 2020년 기준으로 이 비용은 약 24.3억 달러였고 한국이 39%를 부담했다. 또 하나는 한미연합훈련비와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 비용을 한국이 부담하는 것이다. 연합훈련비와 관련해 지금까지는 한국은 한국군과 관련된 비용을, 미국은 미군 관련 비용을 부담해왔다. 전략 자산 전개 비용은 미국이 대부분 부담해왔다. 이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는 SMA 개정을 통해 관련 항목을 신설해 한국에 비용 전가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미국 선박업의 퇴조로 해군 함정의 유지·보수가 난항을 겪고 있는 만큼, 미국의 전략자산에 해당하는 항공모함 등 대형 함정 및 잠수함의 유지·보수를 한국에 떠넘길 가능성이 제기된다.

비인적비용, 연합훈련비, 미국 전략자산 전개 및 유지·보수 비용을 합쳐 대략 50억 달러라고 가정해보자. 또 한국이 이들 비용의 전체를 부담한다고 가정하면, 현재보다 방위비 분담금은 5배 가까이 늘어난다. 대선 유세 때 10배를 부른 트럼프의 요구에 비하면 선방하는 것일까? 이렇게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주한미군을 붙잡아두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일까? 만약 트럼프의 요구를 거부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쉽게 답을 내놓을 수 없지만, 방위비 분담금이라는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주한미군 존재 자체에 대한 공론화는 필요하다. ‘창조적 파괴’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는 뜻이다.

딜레마는 줄이면서 한국의 선택지를 넓힐 수 있는 기회는 북미관계에 있다. 트럼프는 한국을 상대로는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을, 조선을 상대로는 5년 넘게 단절된 북미대화 재개에 방점을 찍을 공산이 크다. 하지만 이는 어울리는 짝이 아니다.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은 한미(일) 연합훈련과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를 포함한 한미동맹 강화와 궤를 같이 한다. 그런데 이렇게 될 경우 조선이 미국의 대화 제의에 응할 가능성은 더욱 낮아진다. 이에 따라 트럼프의 야심이 방위비 분담금 인상보다 더 근본적인 방향을 향할 개연성도 있다. 그것은 바로 조선과 적당한 타협을 이루고 주한미군의 감축을 추진하는 것이다.

여기서 적당한 타협이란 비핵화는 사실상 내려놓고 북핵 동결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제한을 비롯한 군비통제에 초점을 맞추면서 북미관계 개선과 남북관계 중재를 통한 한반도 긴장완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할 경우 트럼프로서는 ‘조선의 ICBM 위협으로부터 미국은 안전해졌다’고 주장할 수 있다. 주한미군의 감축, 한미연합훈련 및 미국 전략자산 전개 축소나 중단으로 ‘미국 예산을 대폭 아낄 수 있게 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조선-중국-러시아-이란의 반미 연대를 약화시키고 미국의 힘을 중국과의 경쟁에 집중하게 된다’고도 할 것이다. ‘긴장완화를 통해 한반도 전쟁을 예방할 수 있게 되었다’며 노벨상에 한걸음 다가설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아울러 조선의 ICBM 제한으로 미국의 확장억제의 신뢰성이 높아졌다며 한국을 설득하려고도 할 것이다.

트럼프가 이렇게 접근해올 경우 김정은이 호응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그리고 국내에선 진보와 보수를 초월해 ‘최악의 시나리오’가 다가오고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질 것이다. 그런데 이게 한국에게 최악의 시나리오인지는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비핵화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절대적인 목표’이고 주한미군은 한국 안보를 지키는 ‘절대적인 존재’라는 시각에 머문다면, 그렇게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이 도그마에 빠져있을수록 진짜 최악의 시나리오를 자초할 수도, ‘패싱’당할 수도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진짜 최악의 시나리오는 방위비 분담금은 대폭 인상되고 북미대화의 결렬로 조선의 핵과 미사일 능력이 지속적으로 강화되면서 전쟁 위기가 일상화되거나 심각한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트럼프가 주한미군의 감축을 추진할 경우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있을까?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올려주는 것은 바람직한 선택이 아니라는 점은 앞서 지적한 바 있다. 1기 트럼프 행정부 때엔 미국 의회가 방패막이 역할을 했었지만, 2기 때엔 어려워졌다. 2025 회계연도 국방수권법엔 주한미군을 2만8천500명으로 유지한다고 하면서도 법적 강제력이 없어져 트럼프의 재량권이 커진 것이다. 또 1기 때엔 “어른들의 축(Axis of Adults)”이 주한미군 철수 논의를 막았지만, 2기엔 트럼프의 ’충성파‘로 채워지고 있다. 그런데도 방법은 있을 수 있다. 주한미군을 포함한 한미동맹의 성격을 대중국용으로 보다 명확히 하는 것이다. 미국의 초당적인 목표이자 2기 트럼프 행정부가 더더욱 의지를 다지고 있는 대중 봉쇄와 견제에 한국이 적극 동참할 테니 주한미군을 감축하지 말아달라고 미국에 요구할 수 있다. 한국이 이런 입장을 표명할수록 트럼프 행정부의 수용성도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이는 ‘가능한 최악’에 해당된다. 기로에 선 한중관계는 파탄을 면치 못하고, 북중·북중러의 결속을 야기할 것이며, 한국이 동아시아 신냉전의 최전선으로 내몰릴 공산이 크다. 무엇보다도 대만 해협 등에서 미중 무력충돌 시 한국이 원하는 않는 전쟁에 휘말릴 위험이 매우 높아진다. 특히 한미·미일동맹과 북중·북러동맹을 고려할 때, 자칫 ‘동맹의 체인’에 엮여 몽유병자처럼 전쟁으로 빠져들어간 1차 세계대전과 유사한 상황이 한반도와 대만을 중심으로 동아시아에서 벌어질 수 있다. 이러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주한미군의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게 현명한 선택일까? 트럼프가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면서 주한미군 감축도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인 만큼, 우리도 ‘한국 우선주의’의 시각에서 미국과 상호 만족할 만한 논의를 해볼 수는 없는 것일까? ‘주한미군이 줄어든 한미동맹’을 설계해볼 수는 없는 것일까?

나는 ‘주한미군 50% 감축과 확장억제 유지’가 한미동맹의 현실적이면서도 바람직한 미래라고 본다. 세계 5위 수준에 도달한 한국의 군사력과 미국의 중장거리 투사 능력을 고려할 때, 이렇게 해도 한미동맹 본연의 임무는 수행할 수 있다. 한국은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해 자주국방 역량을 강화하고 미국은 한국 방어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주한미군을 줄이면 한미 모두 관련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수원 등 군공항을 주한미공군 기지로 이전해 관련 지역의 숙원을 해결할 수도 있다. 조선과의 군비통제 및 군축 협상에 활력을 불어넣어 극심한 군비경쟁과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 ‘상호 만족할 수 있는 합의’란 이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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