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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순라길과 익선동 근황
뒤에 북한산이 있으니 확실히 멋지다백누나도 딱 이 각도로 사진 찍더라서울돈화문국악당골목 안쪽으로 소박한 풍경을 볼 수 있다사람 꽤 많더라 ㄷㄷ뭐동네 특성상 적재차량이 많은건 이해한다만..인도 위 주정차를 마냥 방치할 순 없다고 본다 세월의 풍파가 느껴지는 건물사대문 안은 이래서 좋음. 제각각 건물들이 무질서하게 배치하여 다양한 풍경을 연출시키는 게..익선동은 늘 같다. 아쉬운 점은 (비단 익선동뿐만 아니라 한옥마을, 전통거리로 유명한 곳) 간판이나 입면부에 영어 등의 외국어들이 너무 남발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수주의자는 아니지만 명색이 한국의 건축문화가 컨셉인 동네인데 인사동처럼 순 한글로 이루어지면 더 매력있는 골목이 되지않을까 생각함 익선동 초입 고기골목은 늘 인산인해를 이룬다 종로3가도 계속 문제점 언급되니 나름대로 관리하긴 하더라.아까보니 중앙선에 봉 같은거 설치하던데사대문 안에서 특히 3~4가가 많이 흥하고 있는데저 상권들을 한방에 연계해줄 축이 조성된다면 참 좋을 듯마지막은 종로3가에서 바라본 공평지구
작성자 : 도미갤러고정닉
청소년 시절에 게임에 중독되어 인생이 바뀐 사람..JPG
1992년, 벨기에 브헨느 지방에서 영국 이민자 부부 사이에서 윌리엄 스틸(이하 윌 스틸) 이라는 한 남자아이가 태어남.이 아이는 커가면서 대다수 유럽의 남자아이들이 그렇듯거주 지역 내 축구 유소년팀, 국내에선 후전드가 있던 팀으로 유명한 신트트라위던 유소년팀에 입단했었음.하지만 또래의 재능이 있는 친구들은 월반해서 점차 프로 축구 선수의 꿈을 키워 갔지만윌 스틸은 뛰어난 운동 신경, 피지컬, 개인기, 센스, 판단력과 거리가 먼평범한 소년 그 자체였기에 프로 축구와는 거리가 멀었음.그리고 학교 성적도 우수한 모범생과도 거리가 있었으며,영국 이민자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기에 당시 벨기에에서 사용하는 프랑스어/네덜란드어 실력도 주변 친구들과 원할한 소통이 힘들정도라 자연스럽게 교우 관계도 당연히 좋지 못했다고 함.이렇듯, 공부나 운동에 재능도 없고 주변에 친구도 없었던윌 스틸의 인생은 암울한 10대 시절에 접한 게임으로 완벽하게 바뀌게 됨.윌 스틸은 어느날 동네 비디오 게임 가게에서 인기가 없어 헐 값에 팔리고 있던,EA의 'FA 프리미어리그 풋볼 매니저 01'이라는 게임을 말 그대로 우연히 구매하게 되었다고 함.이 게임은 EA가 만들었던 초창기 축구 감독 시뮬레이션 게임 중 하나였음.대다수의 또래 아이들은 피파나 위닝에 관심을 가질 때에이러한 시뮬레이션 게임에 생각 이상의 재미를 느낀 그는 이 게임의 아쉬운 점 중 하나를 느끼게 되었는데이 아쉬운 점이라면 단순하게본인이 사는 벨기에 지역의 팀이 없다는 것이었음.그렇기에 윌 스틸은 초창기 검색 엔진과 동네 비디오 게임 직원들을 통해비슷한 대체 게임을 하나 찾게 되는데그것은 스포츠 인터랙티브라는 영국 회사에서 제작한챔피언십 매니저라는 게임이었음.후대에 풋볼 매니저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해진 이 게임은단순 벨기에 지역의 팀만 추가로 있는 것이 아닌팀 관리, 매니저먼트 차원에서 이전에 접했던 게임과 비교도 안될 정도로 세부적이었고 현실적이었기에그는 이 게임에 순식간에 중독이 되었음.동년배의 다른 형제들은 피파로 같이 놀고 있을 때에윌 스틸과 그의 형제는 챔피언십 매니저로 같이 엄청난 시간을 보냈다고 하며윌 스틸은 해당 게임에 심각하게 중독되어 14~15살 무렵에는 10시까지만 겜 해야지 해놓고 새벽4시까지 게임을 하는 일이 매우 빈번했다고 함.결국 부모님이 윌 스틸에게 게임 금지령을 내리는 일까지 발생하였으나전세계 동년배 남자아이들이 그렇듯,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몰컴으로 꾸준히 플레이해왔다고 함.축구 전략, 관리 시뮬레이션 게임에 빠져버린 그는 자신의 재능과 적성이 이쪽 분야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됨.진로를 게임으로 어느정도 정해버린 윌 스틸은17살 당시에 벨기에 4부 리그, 세미 프로 팀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곧바로 선수 생활 은퇴를 발표하였고영국으로 넘어가 관련 학위를 공부하기 시작함.그는 영국에서 비디오 분석 및 축구 훈련 과정과 관련해서 전공을 시작하였는데해당 공부의 실습 느낌으로 '프레스턴 노스 엔드'라는 근본 있는 클럽에서 유소년 팀을 이끄는 경험을 해봄.영국에서 긴 공부를 마친 그는 다른 졸업생들과 달리 프로팀이나 기존 코칭 스탭들과의 어떠한 연줄도 없었기에 영국에서 일자리를 구하거나 코치 연수를 진행하지 못하고곧바로 고향인 벨기에로 돌아오게 됨.자신이 과거에 유소년 팀에 소속되어 있었다는 것 제외하면 진짜 말 그대로 아무런 연줄이 없던 신트트라위던 구단에서 존버를 타던 윌 스틸 앞에당시 감독이었던 야닉 페레라가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던 그에게 작은 관심을 보였음.윌 스틸은 초면인 그에게 "챔피언십 매니저가 어쩌구.. 풋볼 매니저가 어쩌구.."진짜 정상인이라면 바로 손절칠만한 말을 초면부터 씨부렸지만야닉 페레라는 그가 비록 게임 속 이야기이고 가상의 경기긴 했지만많은 데이터를 봤을 것이라는 생각에 자신의 훈련과 실제 경기 영상을 촬영해서 편집을 해달라는 간단한 파트타임 업무를 제안했음.당시 아무런 직업도, 연줄도 없던 윌 스틸은 본인이 게임 플레이 당시에 하던 것 처럼 영상을 촬영한 다음에 중요, 핵심 장면, 피드백이 필요한 장면으로 나눠서 편집을 진행했고페레라가 부탁하지도 않았던 분석 데이터까지 제공했음.(훗날 밝히길, 이러한 분석 내용도 풋볼 매니저 경험으로 쌓아온 것이라고 함.)아무런 근본도, 배경도 없던 이대남의 분석 데이터치고는 매우 뛰어난 양질의 데이터였기에야닉 페레라는 윌 스틸의 비범한 재능을 알아보고 그를 곧바로 자신의 분석가 역할로 고용함.야닉 페레라는 그 뒤로 꽤나 오랫동안 윌 스틸과 동행했는데2016년에 야닉 페레라가 경질되면서 서로 다른 팀으로 갈라지게 됨.윌 스틸은 2017년에는 2부 리그의 리어스라는 팀으로 가게 되었는데그가 해당 팀에 가고 나서 얼마 안지나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고팀 내에서 제일 뛰어난 분석력을 가졌던 그에게 구단은 임시 감독, 최종적으로는 감독 역할까지 맡게 됨. 당시 그의 나이는 고작 24살이었음.하지만 리르서라는 팀은 2018년에 파산하면서 해체되면서그가 가진 감독의 꿈은 순식간에 끝나버림.그래도 그가 가진 분석력과 재능은 슬슬 축구계에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2018년에 베이르스훗이라는 팀에서 다시 코치로 시작해서2021년에 28살이라는 나이에 감독 자리에 오르게 되었고이는 벨기에 1부리그 역대 최연소 감독이라는 기록으로 남게 됨.다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찾아 왔는데그가 영국에서 관련해서 전공을 한 것은 맞지만앞서 언급했듯이 지금까지 전문적인 코치 연수를 받은 적이 없었음.지금까지 기록 분석가 - 어시스턴트 코치같은 역할을 이행했던 것도 그 이유.유럽 축구 연맹 규정에 따르면 1부 리그 감독은 프로 라이센스가 필요하며, 이를 어길시에는 꽤나 큰 벌금을 구단이나 당사자가 지불해야함.가난했던 베이르스훗 구단에서는 이를 부담할 이유가 없었으므로 곧바로 그와의 계약을 종료해버림.'무자격자' 이지만FM 실력자 출신으로 업계에 소문이 난 윌 스틸에게는 꽤나 많은 팀들이 관심을 보임.무자격자는 규정 상 아에 감독을 못하게 만드는 몇몇 리그를 제외한 수 많은 팀들이 보였는데이중 프랑스의 스타드 랭스라는 구단이 그에게 진지하게 접근했으며스타드 랭스는 본인들이 무자격과 관련해서 생기는 벌금을 모두 부담하겠다고 밝힘.대신 임시감독으로 먼저 부임하여, 성과를 보여 줄 경우에만 정식 계약을 진행하겠다는 조건을 걸었음.윌 스틸은 임시 감독으로 5경기 무패라는 모습을 보여주어 곧바로 정식 감독이 되었으며이후 강등 직전이던 팀을 11위라는 성적으로 올려놓는 모습으로 수 없이 많은 프로팀의 러브콜을 받게 됨.물론 그는 당시에도 무자격자였음.(참고로 그의 무자격 기간이 존나 길었던 이유는 앞서 언급했듯 평소에 공부하기 싫어하는 성격도 있지만..수강 지역을 벨기에 특정 주로 등록하는 찐빠를 저질러서 이동하기 귀찮다는 이유로 노쇼를 존나게 해서 계속 다음 차수로 넘어갔다고 함..)약물 난쟁이 메구토와의 경기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승승장구하나 싶었지만그의 5대 리그 두번째 시즌 성적은 전보다 부진하였기에그에게 그동안 많은 배려를 해준 팀을 위해 상호 합의하에 작별하기로함.그리고 이전보다 급이 낮은 2부 리그 구단들만이 그에게 관심을 보이며 그동안 보여준 기적이 꺽이나 싶었으나오히려 최근에 좋은 성적을 내고 있던프랑스의 RC 랑스라는 구단이 그에게 3년 계약을 제안,프랑스 리그에서 부진을 씻어 증명하고자 그는 이 제안을 수락함.현재 그가 이끄는 팀은 시즌 초반이긴 하지만 4위에 위치하고 있으며많은 유럽의 축구 팬들은 FM 패인이 또다시 돌풍을 일으킨다는 평가가 주..아무튼 암울한 10대 시절에공부와 운동에 재능이 없었지면게임 덕분에 숨겨진 재능을 찾게 되었으니 ㄹㅇㄹㅇ... 쿠키)해당 인물의 이러한 이력 때문인지FM 시리즈에서 윌 스틸의 좋아하는 인물 관계 창을 보면그의 재능을 처음 알아보고 고용을 해준 야닉 페레라는 '친구(보통 진짜 친구 or 은혜가 있는 관계를 FM에서 이리 표현함)'로 설정되어 있음.그러나..인간 관계는 차가운 것인지야닉 페레라의 관계창에서 윌 스틸은 단순하게 본인의 스탭진 출신일뿐 친구는 아니라는 선을 확 그은 그런 모습을 보여줌........................................쿠키 2)혹시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라면 윌 스틸이 자신의 형, 에드워드와 어린 시절 해당 게임을 같이 즐겼다는 구절을 보고형은 무엇을 하고 있을지 궁금할텐데놀랍게도윌 스틸의 형, 에드워드 스틸도동생과 마찬가지로 FM 시리즈로 동생과 꾸준히 스파링을 하면서 본인도 분석 및 코칭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여비슷한 시기에 기록 분석가 역할을 시작으로동생과 독자적으로 코치의 길을 걷게 됨.형 에드워드 스틸도 2021년에 1부리그 팀의 감독을 맡으면서 나름 젊은 감독에 속하고벨기에 올해의 감독 2위에 선정되는 등 형도 어느정도 이상의 재능은 있어 보이는 인물이지만문제는 동생인 윌 스틸이 보다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두각을 보여주다 보니 상대적으로 형의 기록은 묻히는 편..쿠키 3)구글에 윌 스틸의 사진을 검색하다 보면윌 스틸 곁에 그와 비슷한 두상을 가진 코치가 옆에 딱 붙어있는 사진을 쉽게 찾을 수 있는데이 사람의 이름은 니콜라스 스틸.이름을 보면 알겠지만니콜라스 스틸은 윌 스틸의 동생이며본인의 형들이 어린 시절 FM을 하는 것을 뒤에서 곁눈질로 보면서 두 형이 게임을 안할 때 게임을 하는 식으로 몰래 게임을 즐기다가본인의 적성과 매우 어울리고 재능이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윌 스틸, 에드워드 스틸과 독자적으로 1부 리그에서 코칭 스탭의 길을 걸어오다스타드 랭스 시절부턴 형인 윌 스틸의 부름을 받아 같이 일하고 있음..스포츠계에 가족들이 유명 선수인 경우는 흔하다지만형제가 전부 게임을 통해 감독, 코치를 하게 되었다는 것은 매우 매우 매우 흔치 않은 이색 기록이기에 사실 이 가족에게 무슨 피가 흐르는 것은 아니었을지...
작성자 : 한지은고정닉
좋아하는 장르의 게임을 하고 싶어 회사를 설립한 사람.JPG
2015년하버드 대학의 학내 신문을 통해 동양 언어, 동양 문명, 동아시아 관련해서 전공을 하는 두 학생이 2학년 학기 중에 결혼했다는 이야기가 뒤늦게 올라오게 됨.이야기의 주인공은 티모시 프랭크 벤더, 스노우 쉐 루이.두 학생은 1학년 때 같은 강의를 들으면서 말 그대로 우연히 알게 된 사이였지만관심사나 취미가 놀라울 수준으로 똑같았기에 엄청나게 빠르게 친해지면서 연인 사이로 발전하고 1년이 지난 2학년 학기 도중에 결혼을 했다는 것.알게된 지 1년도 안되서 결혼을 했기에 많은 학부생들이 궁금해하는 이야기들을 주로 질문을 하게 되었는데가장 기억에 남는 데이트가 뭐냐는 질문에사실 우리는 데이트를 해본 기억이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중국 고대 시를 알려준 기억이라던가무술을 가르쳐주고 시범을 보이기 위해 도와줬다는 진짜 말 그대로 인싸 문화, 컨텐츠를 모르는 모습을 보여줘 많은 동문들에게 충격을 줬으며바로 다음 질답도 커플로서 본인들을 설명하는 세 단어를 말해보라는 질문에본인들은 이러한 부분에 매우 약하다면서 매우 뜬금없이 본인들이 같이 자주 플레이했던 게임의 이름을 대신 말하겠다면서 발더스 게이트, 엘더스크롤 : 모로윈드, 엑스컴 : 에너미 위딘을 언급한 것...이런 엉뚱한 답변 와중에도본인들은 15분 뒤에도, 15년 뒤에도 똑같이 지내고 있을 것이라는 대답을 한 부분은 꽤나 인상적이었다는 반응이 있긴 했음.아무튼 당시에 이런 역사, 동양 문명, 언어를 공부하면서게임이나 하는 한 커플의 결혼 이야기는 만난지 1년 만에 결혼했다는 점을 제외하면인터뷰 자체도 대다수 일반인 관점에서 큰 재미는 없다보니 잠깐 이슈만 되고대다수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갔음.참고로 티모시 벤더는 하버드 입학 이전에 스탠포드 로스쿨에서 법학을 전공했었기에여러 회사를 상대로 법적으로 자문, 컨설턴트를 하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고스노우 루이는 졸업 이후로 예일 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면서 여러 회사를 상대로 경영 자문, 인수 합병 관여, 재정 관리와 관련된 직업을 가지게 됨.이렇듯 두 사람은 전형적인 미국 엘리트의 삶을 살아가는 듯 했음.그러나..하버드 졸업 이후로 티모시 벤더에게는 색다른 취미가 하나 생기게 됨.그건 본인이 즐겨하던 게임, 마운트 앤 블레이드 바이킹 컨퀘스트의 소스코드가 공개되자 관련해서 모드를 제작해보는 것.그는 프로그래밍에는 큰 지식이 없었지만밸런스와 고증, AI 개선, 각종 리워크 작업은 시간을 투자하면 가능하다는 판단 하에 본인과 비슷한 인사이트, 취향을 가진 유저를 몇명 모집해서 소규모 모드 팀을 창설하게 됨.이 모드 팀의 이름은 'Hooded Horse', 후디드 호스였음.단순한 수치 수정 정도에서 끝날 것 같은 그의 모드 제작 작업은꽤나 오랫동안 진행되었는데여러 딥한 롤플레잉 게임이나 시뮬레이션, 전략 게임을 좋아하는 그의 성향때문인지소소한 수치 하나 하나 작업하고 고증을 따지다보니 당연할 수 밖에 없었음..다만 그가 만든 모드는 다른 대형 모드에 비해 기존 게임과의 엄청 드라마틱한 큰 차이가 없었기에서구권에서 롤플레잉을 신경 쓰는 유저들 정도 제외하면 크게 언급되지 못하고 묻힌 모드에 가까웠음.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모드를 꾸준히 좋아하고디스코드에 와서 소통하고 피드백해주는 팬들에게 큰 고마움을 느끼게 됨. 물론 이 과정에서 마블에 고증을 찾을꺼면 너만의 게임을 만들어라라는 긁는 어그로부터이정도 정성이면 나중에 게임 개발 관련 작업에 참여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라는 응원도 있었는데이러한 반응들은 진짜 아무도 예상 못한,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고이 부부의 인생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꾸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버림.모드 제작에 집중하던 이 시기에 티모시 벤더에게는뜬금없이 한 가지 의문이 생기게 됨.'여러 나라에 다양한 게임 개발사와 배급사가 존재하는데, 왜 같은 장르 내에서 안정적인 시스템과 범주들이 지긋지긋하게 등장하는가."'한 장르 내에서 여러가지 해석이 존재할 수 있는데 왜 비슷한 국밥같은 느낌만 지긋지긋하게 나오는건가.'물론 이러한 문제는 게임 개발사, 배급사 모두 회사이기에 돈과 직결되는 문제임은지나가는 사람들도 알법한 단순한 문제였지만이 근본적인 의문은 '왜 돈과 관련해서 장르나 시스템 관련해서 참신한 시도, 해석 자체가 드물게 발생하는가' 거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음.티모시 벤더는 수소문한 결과 한 가지 원인을 발견하게 됨.그건 바로 배급사와 개발사 사이의 관계에서 개발사가 매우 불리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임.배급사는 보통 게임 개발비, 홍보비, 유통같은 자금적인 부분에서 모든 지원을 하게 되고개발사는 그러한 지원을 받아 게임을 제작, 출시하게 되는 점인데당연히 모든 자금을 배급사가 지원하다 보니 게임 판매 수익은 일단 배급사가 모든 투자 금액을 회수한 다음에 순차적으로 분배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음.이렇기에 해당 게임이 흥행하지 못해서 개발비를 건지지 못할 경우에는 개발사는 돈을 전혀 못벌게 되니 자연스럽게 사라지거나 해체되거나, 인수되거나, 아웃소싱 전문 회사로 노선을 바꾸는 일이 1990~2010년대에는 매우 빈번했음.그렇다보니 개발사들이 '안정적인 느낌'으로만 게임을 만들려는 성향이 강해지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장르적 다양성이나 해석, 창의성이 제일 떨어진 시기였다고 보게된 것.(실제로 이 시기에 출시된 게임들은 일부 히트작들을 제외하면 전부 유명 게임의 클론 수준이라 현재 스팀, GOG에서 찾지도 못할 수준의 양산게임이 있음..)이렇기에 티모시 벤더는 당시에 업계에 악평이 자자하던 이러한 배급 구조를 조금 비틀어서 배급사가 개발사들에게 조금씩 양보해주면 '게이머로서' 본인이 좋아하는 롤플레잉, 전략, 시뮬레이션 장르에서 보다 다양한 게임을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게 됨.물론 이런 해석에는"그렇게 시도 해보고 싶으면 너 돈이나 써라" "배급사들이 자원 봉사하는 줄 아냐"라는 반응이 자연스럽게 생기기 마련이었고이러한 반응에 티모시 벤더는 "ㅇㅋ 내 돈 쓸게" 하고 회사를 설립함.그 회사의 이름은 본인이 만들었던 모드 팀 이름이었던 '후디드 호스'였음.실제로 벤더는 자신이 회사를 설립한 동기의 절반 이상은무려 본인이 좋아하는 장르 내에서 보다 많은 게임들이 만들어지게 하기 위해서 설립했다는 답변을 했는데해외에서는 다른 의미로 사리사욕을 채우는 CEO, 탐욕한 CEO로 유명해진 편...아무튼 회사를 설립했으니본인들이 유통할 게임이나 개발사를 찾아야 했는데 알다시피 게임을 좋아했을 뿐이지게임 업계와 관련된 능력이나 인맥은 전무했기에 2019년에 회사를 막 설립했지만1년 넘게 딱 한 개의 게임만 출시 계약을 진행하는 초라한 성과를 냈는데 놀랍게도 그가 계약을 맺는데 성공한 게임은본인이 대학 시절에 연인과 같이 즐겼던 인생 게임의 모드이자같은 모드 커뮤니티에서 소통했던 이력이 있는"엑스컴 롱워 모드" 제작진의 첫 게임. 테라 인빅타였음.테라 인빅타는 롱워 모드 제작진의 독립 개발작품이라는 타이틀로킥스타터에서도 엄청난 후원을 받았지만이 회사는 본인들을 게임 출시와 현지화를 도와줄 배급사가 필요했음당시 이들에게 접근한 배급사 대부분이 '롱워 제작진' 타이틀때문에 접근한 것이였는데후디드 호스만이 유일하게 게임 내적으로 어떠한 시뮬레이션 요소가 있는지, 지구 단계와 우주 단계에 어떠한 플레이 차이가 있는지게임의 깊이와 호불호, 4X 매니아들을 충족시킬 요소가 무엇이 있는지 같은 게임성과 관련된 부분에 오히려 더 관심을 보였기에테라 인빅타 개발진은 이들과 계약을 맺기로 결정해버림.2020년,실제로 2019년에 설립된 후디드 호스와 관련해서 벤더는 자신의 모드를 즐긴 사람들을 위해 자신들이 이제 배급사가 된다는 공지를 올리며 모드 제작에는 은퇴한다는 공지를 올리게 됨.그리고 자신들이 배급하게 될 첫 게임은 테라 인빅타라는 빅 뉴스를 당시에 공개함.대다수 게이머들은 "아니 어떻게 모드 제작팀이 저 게임을 배급하게 된거지" 라는 반응이 다수였음.테라 인빅타는 과도한 아스퍼거 요소로 조금 호불호가 있긴 했지만엄청난 흥행을 하면서 후디드 호스에게 큰 도움이 되었고후디드 호스는 본인들의 배급 기준을 설립하게 됨.첫 번째, 후디드 호스는 개발사들을 위해 최소 10만달러 이상의 현지화 및 마케팅 예산을 책정할 것대다수 인디 개발사들이 힘들어하는 영역이 현지화와 마케팅 부분이었기에 이 부분과 개발비를 지원해주고 창의성과 관련해서 우리는 관여하지 않을 것일정 퀄리티 이상의 현지화는 다양한 국가의 게이머들의 유입을 이끌어 낼 것이라는 판단하에 수립된 기준이었음.두 번째, 투자 비용 회수나 손익 같은 부분을 신경쓰지 않고 모든 판매 게임 수익의 65%는 개발사에게 배분할 것.투자자가 투자에 대한 리스크를 지는 것이 당연하고 개발사들과 동반자로서의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수립된 기준이었음.이러한 기준은 당시 업계에서 매우 파격적인 기준이었기에롤플레잉, 시뮬레이션, 전략 게임을 개발하려던 인디 제작사들이 후디드 호스와 미팅을 가지게 됨.그리고 이 시기에 재정, 예산 수립 관련해서는 문외한이었던 남편을 위해회사 설립 당시에만 도움을 줬던 아내 스노우 루이가 본인의 직장을 포기하고남편 회사의 재정적으로 도움을 주기 위해 합류하게 됨.이러한 지원군 덕분에후디드 호스는 적은 예산으로도 적재적소에 성공적으로 마케팅하고 현지화해서 출시화 한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가면 갈수록 선순환으로 보다 많은 개발사들이 이들과 협업을 하기 위해 찾아오게 됨.2020년 당시에만 해도 계약 한건만 성공하고2022년 당시에는 단 두개의 게임(테라 인빅타, 올드 월드)만을 출시했던 후디드 호스는2024년 기준으로 20개의 배급을 배급하는데 성공함.특히 짧은 기간에 테라 인빅타, 올드 월드, 카타클리스모, 놀랜드, 매너 로드, 어게인스트 더 스톰 등예상치 못한 흥행작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흥행시키자2023년까지만 하더라도 인디 기대작 한두개 언급되는 배급사에서순식간에 주요 웹진에서도 관련 일화랑 기사를 다룰 정도로 주목받고 있음..이러한 성공에 벤더는 본인들의 성공 신화와 관련된 방식을 몇개 언급했는데직원들 절반이 유명 인플루언서 또는 해당 장르 스트리머였다는 점,자사 기대작들을 베타, 데모 단계에서부터 플레이하는 것을 직접 보여주면서 해당 장르 커뮤니티 유저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입소문, 홍보가 되는 방식을 사용한 것.대표적으로 어게인스트 더 스톰, 매너로드, 카타클리스모가 이러한 방식으로 입소문을 타고 엄청나게 흥행했음.그리고 기존에 주요 개발사, 배급사들이 공략하지 않는 시장을 공략한다는 점전략, 시뮬레이션 장르 개발사들은 기존에 일본 시장을 등한시 해오는 풍조가 있었는데알다시피 동양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티모시는 이러한 분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하여일본 인플루언서들을 통한 홍보 전략에 집중, PC 게임 시장이 상대적으로 약세인 일본에서 5% 이상의 판매량을 이끌어냈다고 함.그리고 마지막으로 창립 배경이기도 했지만, 후디드 호스는 대형 배급사와 달리 배급사도 리스크를 부담한다는 차이점 덕분에 개발사들이 기존 장르에서 시도하지 못한 시도를 보다 과감하게 시도할 수 있다는 것.물론 이러한 방식이 가능했던 배경으로는회사 설립자 부부가 RPG, 시뮬레이션, 전략 게임 분야에서 겜잘알이라 게이머 기준으로 게임을 알아 보는 안목이 있다는 점,그리고 부부가 엘리트 출신 + 돈이 충분하다는 것이라서아무나 따라할 수 없음...
작성자 : 한지은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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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NFT 발행
작성한 게시물을 NFT로 발행하면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초 1회)
② NFT 구매
다른 이용자의 NFT를 구매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마다 갱신)
사용법
디시콘에서지갑연결시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