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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유럽 기독교 역사를 뒤흔들 유물 발견
En Allemagne, la plus vieille amulette chrétienne jamais déterrée bouleverse l'histoire des religions en Europe독일, 유럽 종교 역사를 뒤엎을 최고의 (最古) 기독교 아뮬렛의 발굴됨!https://youtu.be/GCN1s9g9MfoLa ville de Francfort a dévoilé l’existence d’un artefact chrétien datant du Ier siècle, trouvé sur son sol. Après analyse, celui-ci a révélé des inscriptions latines qui remettent en doute une partie de la théologie européenne.프랑크푸르트 시에서 기원 후 1 세기까지 올라가는 기독교 유물을 발굴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유물에 대한 자세한 분석이 끝났는데요, 이 아뮬렛에는 유럽 신학의 몇몇 부분에 의심을 품게할 라틴어 비문이 적혀져 있었습니다.Un si petit objet et de si grands secrets. Des scientifiques allemands ont découvert des pans inconnus de l’histoire du christianisme européen dans une amulette de 3,5 cm de long, rapporte la ville de Francfort, sur sa chaîne YouTube. Cet objet avait été trouvé en 2018 lors d’une excavation dans la ville de l’ouest de l’Allemagne, à un endroit qui était, il y a des milliers d’années, un campement romain nommé Nida.일개 작달만한 물건도, 커다란 비밀을 간직할 수 있는 법이죠. 독일의 과학자들은 3,5 cm 길이의 작은 아뮬렛에서 유럽 기독교 역사의 숨겨진 일면을 발견했다고, 프랑크푸르트 시 당국의 유튜브를 통해 발표 했습니다. 이 유물은 2018년, 독일 서부에 위치한 프랑크푸르트 발굴현장에서 발견되었는데요, 해당 장소는 2천년 전 Nida 라는 이름을 가진 로마인이 야영을 했던 곳이라고 합니다.Ce 11 décembre, la commune a annoncé l’étendue de la découverte dans un communiqué de presse, sur son site Internet. On y apprend que l’amulette aurait été façonnée entre 230 et 270. Elle est surmontée de deux cercles, qui supposent qu’elle était portée sur une chaîne et autour d’un cou. Surtout, elle renferme un parchemin d’argent extrêmement fin et très fragile. Les scientifiques ont trouvé un moyen de le décrypter sans l’abîmer.12월 11일, 프랑크푸르트 시에서는 이 발견을 온라인 보도자료를 통해 발표했습니다. 아뮬렛은 230-270 년 사이에 제작되었으며, 두 개의 고리가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목에 걸 수 있게끔 사슬을 갖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특히 아뮬렛 안에는 아주 얇고, 아주 약한 은 조각이 들어있었는데요, 과학자들은 이 은 조각을 망가뜨리지 않고 해독할 방법을 찾아 냈습니다.Une inscription monothéiste en latin : un choc pour les chercheurs라틴어로 세겨진 유일신교 비문 : 학자들이 충격에 빠지다Pour lire ce qu’il y avait écrit sur le parchemin, les scientifiques allemands l’ont mis dans un scanner. Le même genre que celui dans lequel nous entrons pour des raisons médicales. Les images, en 3D et en HD, ont révélé 18 lignes de texte écrites en latin. On y lit : "(Au nom ?) de Saint Tite. Sacré, sacré, sacré ! Au nom de Jésus-Christ, Fils de Dieu ! Le maître du monde s'oppose de [toutes ses forces ?] toutes les crises (?)/rebonds (?). Le dieu (?) accorde le bien-être. Entrée. Ce moyen de sauvetage (?) protège l'homme qui s'abandonne à la volonté du Seigneur. Jésus-Christ, Fils de Dieu, puisque, devant Jésus-Christ tous les genoux fléchissent : les célestes, les terrestres et les souterrains, et chaque langue se confesse (à Jésus-Christ)."이 은 조각에 써있는 글씨를 읽기 위해서, 독일 과학자들은 스캐너를 사용했습니다. 의료 현장에서 사용하는 스캐너와 같은 종류의 스캐너인데요, HD 3D 이미지를 통해, 18줄의 라틴어 구문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 성 Tite (의 이름으로?), 신성하도다, 신성하도다, 신성하도다 ! 하느님의 아들 !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계의 주께서는 (전능하심으로?) 모든 위협? 모든 튀어오름 ? 에 맞서시는구나. 하느님께서 안녕을 주시누나. 시작. 구원 ? 의 주님이시여, 주의 뜻을 버린 이들을 보호해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 신의 아들 앞에서, 모든 이들이 무릎을 굽히옵니다 : 천상과 지상, 그리고 모든 지하의 존재들과 모든 이들의 입과 혀가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참회하옵니다.라고 써잇었데!히브리어로 된 신약성경 일부Le fait que ce texte soit écrit en latin interroge. Les plus vieux objets chrétiens retrouvés jusqu’à présent contenaient plutôt des mots en grec ou en hébreu. De plus, ils font en général référence à d’autres dieux, à des symboles païens ou juifs en plus des éléments chrétiens. Le fait que cette amulette ne soit écrite qu’en latin et démontre une dévotion unique au Dieu chrétien a beaucoup étonné les spécialistes.이 라틴어로 적힌 구문은 질문을 자아냅니다. 현재까지, 가장 오래된 기독교 관련 물건들은 대체로 그리스어나 히브리어로 적혀져 있었고, 기독교적 요소 뿐만 아니라 다른 신들이나, 이교, 또는 유대교 상징에 대한 묘사도 동시에 나타났었습니다. 이 아뮬렛의 글귀가 라틴어로 적혀있다는 것과, 기독교의 신만을 위한 신앙심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다른 이교도 신들이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 전문가들은 크게 놀랐다고 합니다.Trois centimètres d’argent qui remettent tout en question3센티미터의 은 조각이 모든 것에 의문을 품게하다게르만 - 노르만 계열 이교 (Pagan) 상징들. Le dernier objet de ce genre découvert par les archéologues remonte à l’an 300. Cela signifie que les historiens viennent de comprendre que l’Europe du Nord a été dévouée au christianisme 30 ou 70 ans plus tôt que ce qu’on pensait jusqu’à présent. "Cela nous montre que la communauté chrétienne n’était pas seulement présente dans la région, mais aussi très expressive sur sa foi, malgré les possibles persécutions. Cela remet en question notre compréhension du paysage religieux dans l’Allemagne romaine", note Pr. Markus Scholz, qui a participé aux recherches.고고학자들이 마지막으로 발견한, 이러한 종류의 유물은 3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말인 즉, 북유럽이 오늘날까지 알려져 있던 것 보다 30년이나 70년 더 이른 시기에 기독교를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이 발견은 기독교 공동체가 해당 지역에 존재했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기독교 신앙에 대한 박해가 존재했었을 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도 신앙을 표현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다는 점도 보여줍니다. 이 발견으로 인해 우리의 로만 도이칠란트의 종교적 배경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다시 의문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라고 연구에 참여한 Pr.Markus Scholz 는 대답했습니다.예수 탄생 100년 후의 유럽 세계 종교 지도.기독교는 레반트의 몇몇 지역과 그리스 일부 지역에서나 믿던 개씹 하꼬 종교였음 (빨간색)L’analyse de cette amulette n’est donc que le début d’une nouvelle aventure pour les théologiens et les archéologues de la région. Ils devront désormais déterminer, avec ces nouvelles informations, comment la religion chrétienne s’est étendue, et finalement imposée, dans le nord de l’Europe, malgré la spiritualité polythéiste de l’Empire romain au début du Ier siècle.그렇기 때문에, 아뮬렛에 대한 분석은 그리스도교에 대한 대한 프랑크푸르트 신학자들과 고고학자들의 새로운 모험에만 그치지는 않을 겁니다. 이들은 이 새로운 정보들을 통해, 어떻게 그리스도 종교가 퍼져나갔는지, 그리고 어떻게 기독교가 1세기 로마 제국의 다신교 신앙 속에서 북유럽으로 전파 됐는지에 관해 연구해야 될 겁니다.-----평소에도 게르만 - 노르만 / 아일리쉬-게일 Paganisme 에 관심 많은데꽤 재밌는 연구+ 후속 연구가 기대되서 번역해서 가져와봤음
작성자 : 도시드워프고정닉
경주에서
근 1년만에 경주를 3박4일로 다시 다녀왔음. 대체로 도보로 이동했기 때문에 이동반경이 그리 넓진 않았고 웬만하면 방문하지 않은 곳을 끼워넣으려다 보니 일반적인 기준에서의 '볼만한' 곳은 그리 많이 가진 않았음. 그럼에도 큰 숙제 몇가지를 해결했기 때문에 나름 만족스러운 방문이었음. 백률사. 마애삼층탑을 볼 것을 기대하고 갔는데 천막법당으로 인해 확인할 수가 없었음. 소금강산의 일몰. 경주에 3시경 도착했기 때문에 소금강산 일대만 간략히 둘러보았음. 동천동 마에삼존불. 이정표가 많이 없지만 감으로 찾아가다 보면 쉽게 갈 수 있음. 굴불사지로 마무리. 둘째날, 삼랑사지 당간지주. 형산강의 일출. 송화산에서. 뜬금없이 송화산을 온 이유는 개인적으로 정말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 있기 때문임. 앞서 몇 개의 글을 통해 신라왕릉에 대한 내 여러 의견들을 개진한 바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의문은 바로 김유신묘에 대한 부분임. 현재의 김유신묘는 그 묘제상으로는 성덕왕릉 이후 신라 하다의 양식임. 현재의 김유신묘는 능 앞에 세워진 비석을 통해 최소 1710년부터는 김유신묘로 추정되어 왔음을 알 수 있으며, 여러 사료를 교차해볼 때 1200년대 보각국사 일연이 삼국유사를 작성할 시점에도 이미 현재의 능을 김유신묘로 간주했음을 알 수 있음. 그렇다면 현재의 김유신묘가 김유신묘가 아닐 경우 900년부터 1200년 사이의 시점 중 김유신묘가 실전 후 다시 지목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1100년대 편찬된 삼국사기에서는 많은 이들이 김유신을 기억하고 묘를 경배한다는 서술이 있음. 따라서 해당 기간 동안 김유신묘가 실전되었다고도 보기 어려움. 그러나 800년대에 김유신이 흥무왕으로 추존되었다고 할지라도 무열왕릉에는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으면서 김유신묘만 꾸민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이 사실임. 그래서 이 부분으로 인해 많은 신라왕릉 연구자들이 혼란을 겪고 있음. 나는 모지사 북쪽 동향주봉에 있다는 김유신묘를 찾아 송화산 북쪽 능선들을 헤집고 다녔지만, 위와 같이 도굴된 고분 몇 기만을 확인했을 뿐임. 그리고 전 김유신묘 앞에서. 충효리고분군 중 공개고분. 도보로 서악서원까지 이동했음. 올때마다 늘 잠겨있어 실제 들어와보는 것은 처음. 사당 쪽의 기단은 갑석을 갖추어 꽤나 정연하게 제작된 것이 서악서원 이전의 역사를 증명하고 있음. 최소한 고려시대부터 존재한 사당이 아닐까 싶음. 법흥왕, 진흥왕, 진지왕. 신라의 중흥기를 이끈 왕들의 유택을 바라보고 선 삼층석탑. 삼층석탑 뒷편 선도산고분군에도 셀 수 없이 많은 고분들이 산재해 있음. 참고로 4호분은 별도 조사는 더 하지 않고 덮는 모양임. 선도산에 올라. 30분 정도면 오를 줄 알았는데 낙엽으로 길이 미끄러워 50분 가까이 걸린듯. 선도산에서 조망한 서악동과 오릉, 교촌마을, 월성까지. 신라인들이 이 산을 신성시한 이유를 알 수 있음. 자주는 못 찾더라도 경주를 답사한다면 한번쯤은 반드시 와야 할 곳임. 충효동쪽으로 하산하여 버스를 타고 시내로 이동. 식사를 마치고 불국사 방향으로 이동함. 먼저 이거사지를 방문했음. 생각보다 석재들의 상태가 굉장히 멀쩡해서 당장 복원한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듯함. 초층 탑신이 훼손된 것만이 안타까울 따름. 뒤이어 방문한 전 효소왕릉과 성덕왕릉. 신라왕릉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성덕왕릉. 여러 차례에 걸친 증축이 있어 왕릉의 발전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됨. 성덕왕릉 귀부. 경덕왕대에 제작되었음. 성덕왕릉의 귀부에 대해서는 큰 의문점이 있는데, 비좌가 지나치게 넓으며 얕다는 점임. 사진에서 보이듯 비좌의 폭은 60cm가 넘으며, 그 깊이는 몹시 얕음. 비석이 상당히 특이한 형태였을 가능성을 암시함. 동해선이 사라진 철길 터. 예전에는 선로를 넘어다녀야만 접근할 수 있었는데, 이렇게 사라지니 뭔가 허전함. 구정동방형분. 8년만에 들어가려니 아이고 소리가 널로 나온다. 경주박물관에서는 '소소하고 소중한'이라는 주제로 특별전시를 열고 있음. 이번 경주 방문의 큰 목적 중 하나이기도 했던 소현리석실분의 매납십이지가 이번에 특별전시에 나왔기에 상당히 기대를 하고 왔음. 황용사지에서 출토된 청동사자상. 불중박 전시 때도 봤지만 전시 환경은 경박이 훨씬 낫다. 헌덕왕릉 배례석. 향로석으로 추정된다고 함. 미술관은 한시적인 정전 소동이 있었음. 백률사 금동불은 어둠 속에... 성덕대왕신종으로 박물관 구경은 마무리. 셋째날은 남산을 찾았음. 포석곡으로 올라 국사곡으로 하산. 먼저 부엉골 마애여래좌상을 찾음. 사실 윤을곡 마애불을 먼저 방문하려 하였으나 이정표를 지나친 듯. 저 멀리 보이는 늠비봉. 늠비봉 오층석탑. 생각보다 경주분지 방향 뷰는 별로였고, 신부재도 많아 예스러움은 없었지만, 오히려 금오봉 방향 전망이 시원시원하고 좋았음. 국사곡 4사지 삼층석탑. 이쪽도 생각만큼의 뷰는 아님.. 하산 후 서출지에서. 정강왕릉. 헌강왕릉은 아직도 공사중. 웬 소나무 전정만 잔뜩 해서 난장판이다. 장사 벌지지비. 언제적? 효공왕릉. 그러나 신라 중기 고분의 가장 큰 특징인 호석의 노출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어 문무왕비 자의왕후설 등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음. 보문사지. 석물들의 훼손이 정말 심한 편. 근데 왜 여기까지 와서 볼일을 보고 가는 건지 노이해... 설총묘. 진평왕릉 구황동 폐고분지. 예전에 긴 글로 다룬 적이 있으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 전황복사지 보고서에는 34대 효성왕릉일 가능성을 제시했으나 무복 십이지가 38대 원성왕릉과 41대 흥덕왕릉에서 확인되기에 아닐 가능성이 높음. 최신의 연구에서는 41대 흥덕왕의 가릉일 것이라는 추측도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37대 선덕왕릉일 가능성이 높지 않나 생각하고 있음. 황복사지. 발굴은 완료되었으나 여전히 많은 의문만을 남겼음. 만정사지 목탑지. 특이하게도 방형의 사리공과 팔각형 심초석이 어긋나게 만들어졌음. 이는 법주사 쌍사자석등에서도 확인되는 형태인데, 꽤나 세련된 방식이라고 생각함. 미탄사지. 이날 분황사와 황룡사지까지 방문했고, 마지막 날은 무장사지만 다녀왔음. 무장사지와 선도산마애삼존불. 시간 잡아먹는 양대장을 이번 답사로 확인한 점이 이번 답사의 큰 성과이지만 개인적인 의문 몇 가지는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채로 돌아가게 된 답사였음. 지난번에 하루에 3만보 걸었다고 피곤해서 뻗었는데, 이번에는 하루에 4만보를 걸음. 다음에는 자전거를 가져가던가 해야할듯. - dc official App
작성자 : BABO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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