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공학과 학생인 남형기는 의외로 최신 정보에 밝지 못했다. 정확히는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에만 정통하달까? 연말까지 무슨 게임이 출시될지는 줄줄이 꿰고 있어도 최근에 어떤 옷이 유행하는지는 전혀 모르는 쪽이 남형기란 인간이었다.
그러나 간만에 집밖을 나선 남형기는 놀란 나머지 딱딱하게 얼어붙어 버렸다. 그로써도 이 정도까지 유행에 뒤쳐졌을 줄은 예상외였기 때문이다.
(……이건 뭐지? 여기가 아키하바라인가? 왜 사람들이 메이드복을 입고 다니는 거야?)
형기는 놀란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쌀밥에 박힌 강낭콩처럼 드문드문 특이한 복색들이 보였다.
바로 메이드복이었다. 적잖은 사람들이 대로 한복판에서 메이드복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메이드복 차림의 행인들은 남녀를 가리지 않았다. 그리고 꼭 감정이 없는 것처럼 무표정하며 걸음걸이는 당당했다.
정녕 이것이 21세기 유행이란 말인가? 형기는 그 이질적인 모습에 눈을 빼앗긴 채로 낙담하고 있는데 정작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다니는 모습이 별세계에 떨어진 듯 기이했다.
(어! 저놈은!)
형기는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상황을 타개할 실마리를 발견했다. 그는 분명 형기가 아는 사람이었다. 메이드복을 입은 남자였다.
퍽!
“이정우! 너 이게 대체 무슨 꼴이야!”
형기는 그의 어깨를 세게 치며 말했다. 그러자 어깨에 달린 하얀 프릴이 풀썩였다.
“……야, 말좀 해 봐. 대체 뭔데, 여자들은 그렇다 쳐도 사내새끼들이 무슨…….”
메이드복의 정우는 길을 멈추고 형기를 돌아봤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형기는 키가 소년처럼 작은 편이었으므로 상대의 시선은 아래를 향했고 얼굴에는 음영이 졌다. 옷차림에 안 어울리게 건장한 사내가 메이드복을 입고 여전히 무감정한 눈빛을 내리쬐고 있는 무시무시한 모습이었다. 형기는 흠칫 놀라 떨었다.
(이 새끼 설마, 비밀스런 여장 취미를 들켰다고 날 어떻게 하려는 건 아니겠지?)
이 커다란 녀석이 힘을 쓴다면 자신은…… 그런 뻘생각마저 스쳐갈 때쯤, 드디어 메이드복 정우가 입을 열었다.
“주인님의 지인이십니까? 저는 이정우 주인님의 메이드 키티입니다. 메이드 키티에 대해 모르십니까?”
“어? 어, 어어? 메이드 키티? 그게 뭔데?”
역시나 상상하지 못했던 대답에 형기가 어물쩍거렸다. 여전히 무감정했고 말투에도 고저가 희미했지만 목소리까지도 자신이 알던 대학 친구, 이정우와 같았다.
“좋습니다. 저를 주목해주십시오. 5, 4, 3, 2, 1…….”
이게 뭐를 하려는 거지, 그런 의문이 비집고 나오기도 전이었다. 발을 두드려가며 카운트다운을 세는 모습에 형기는 자연스레 정우를 주목했다.
척. 탁 탁 타닥탁!
-메이드 키티♪ 메이드 키티♫ 우리들의 친근한 렌탈 메이드♪
“뭣, 뭐야 이건!?”
순식간에 해맑은 미소를 띄운 정우가 노래를 부르며 아이돌같은 춤을 췄다. 뿐만아니라 어디서인지 몰라도 흥겨운 BGM까지 더해졌다.
-힘든 일 귀찮은 일 키티에게 맡겨 주세요♬ 메이드 키티♪ 지금이라면 단돈 월 3만 9천 9백원……
(씨발!!)
형기는 속으로 크게 욕했다. 여자랑 통화할 때면 목소리를 낮게 깔던 이정우가 간드러지는 음색으로 노래하며 낯부끄러운 춤을 춰 댔으니 말이다. 심지어 메이드복을 입고…… 형기는 한달 전에 먹은 감자칩이 도로 나올 듯했다.
게다가 이곳은 번화가 한복판이었다. 부끄러운 짓을 하고 있는 쪽은 메이드복의 정우였지만 형기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큭큭 저기 봐. 키티가 또 춤춘다.”
“저래서 광고제거를 깔아야 해. 저렇게 아무데서나 춤춰대니까 추가로 구독하지 않고 배길 수가 없잖아. 진짜 악마적인 비즈니스라니까.”
“키티 앞에 친구는 반응이 신선하네. 집밖에 한달 만에 나왔나?”
주변 사람들도 몇몇 갈길을 잠시 멈추고 쑥덕였다. 형기는 수치심에 부들대다가도 이내 깨달았다.
(키티? 그러니까 이 자식은 이정우가 아니라 메이드 키티라는 건가? 그게 뭔지는 몰라도……)
형기는 떠오른 생각 그대로 정우, 아니 정우 모습의 키티에게 물었다. 키티는 광고를 끝마치고 바로 대답해주었다.
“예 맞습니다. 키티는 생체 메이드 로봇으로 이정우 주인님이 아닙니다. 렌탈 서비스를 통해 대중들에게도 부담없는 가격으로 사랑받고 있는 모두의 메이드 로봇입니다.”
“하아, 그래……. 키틴지 뭔지 몰라도 이딴 짓을 인간이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그런데 꼭 그놈 얼굴에 그딴 옷을 입어야 했던 거야? 그게 최선이냐고.”
“규정상 불가피한 조치입니다. 키티의 메이드 의상은 나노로봇으로 조직되어 상하거나 더럽혀지지 않습니다. 메이드 의상과 얼굴의 식별번호가 메이드 키티와 인간님들을 구분할 수 있는 특징이기도 합니다.”
“푸흐, 참…… 예의바른 이정우로구나. 너가 원본보다 낫다.”
키티와 대화하며 형기는 모든 진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자 여러 억하심정도 모두 휘발되고 메이드복의 이정우만 남아 우습기도 했다.
형기는 팔을 높게 뻗어 키티의 머리를 쓰다듬어도 보고 볼을 툭툭 치기도 했다. 진짜 이정우라면 하지 못할 일들이었기에 재미있었다. 다만 감촉이 사람과 완전히 같은 것은 내심 놀라웠다.
“죄송합니다만 저는 이정우 주인님께서 요청하신 장보기를 수행해야 합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어 그래. 잘하고. 잠깐, 가기 전에 한마디, 나는 병신입니다…… 해봐.”
형기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기특한 키티는 떠나려다가도 멈춰서 명령을 수행하려 했다.
“저는…… 죄송합니다. 규정상 비속어의 사용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대신 키티의 애교를 감상하십시오!”
키티는 두손을 말아쥐고 윙크해 보였다. 하얀 프릴이 달린 머리띠에는 고양이 귀가 달려있었다.
(우웩.)
어찌됐든 형기는 인상깊은 외출이라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온 형기는 곧바로 메이드 키티를 검색해보곤 주문했다.
한달이 넘는 배송 준비기간 동안 형기는 잠자리에 들때마다 메이드복을 입은 자신을 상상해보게 되었다. 다만 광고제거 옵션은 일찍이 구독해 두었음은 이상할 것도 없었다.
* * *
여까지 썼는데 좀 어떰?
막상 야한거 생각하고 써도 삼천포로 빠지는건 어쩔수 없나
아무튼 재밌는 소재같아서 간만에 글쓰기가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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