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환상의 중간 지점.
꿈과 이성의 사이.
바다와 노을이 만나는 지평선.
어느 곳도 아닌 모호한 공간.
나는 그곳에서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그저 사경을 헤메이는 무언가인채 누군가와 대면하고 있었다.
“그저 환상향에 가고 싶었을 뿐입니다.”
“자기 자신을 살해하는 것은 씻을 수 없는 중죄. 세상은 흑과 백으로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없지만 스스로 소중한 것을 없애고자 함은 [도덕 윤리 법치 사상 가치관 교육 환경 사회 부모]의 영향과는 관계없이 가장 높은 수준의 처벌을 이룬다.”
그냥 그것 뿐이었다.
20층 높이의 아파트에서 떨어진 것은.
“자네의 의지를 높히 평가하네. 강인하며 올곧고 정의로워. 예우해주는 것이 옳은 선인임에도 스스로를 죽이는 것은 히틀러가 유대인을 몰살한 것 보다 더한 죄임을 깨달아야 하네.”
우주의 엔트로피는 지엄하기에 필멸을 살아가는 하위 문명의 지성체들은 아무리 발악해도 지옥에 갈 수 없었다.
단 하나의 예외.
모든 경우에서 단 하나의 예외.
스스로를 살해할 경우.
그 이유가 어찌되었건.
모든 사태의 원인이 어디에 있건.
의지를 잃고, 생명체로서 살아갈 의지를 스스로 꺾는 것은 그야말로 생명에 대한 불경. 우주의 법칙에 대한 도전. 삼라만상을 지배하는 우주적 군주들에 대한 모독이었다.
어찌하여 모든 것이 불확실한 세계 속에서 단 하나의 결말로만 치닿는 길을 택하는가.
죽음이 자신의 선택일 경우 우리는 이를 고결하다 부르지만.
스스로 생명을 태우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우리는 이렇게 매듭 짓는다.
“흑.”
검은 영혼.
이들을 볼 때면 나의 눈에선 작은 빗줄기가 흘러내린다.
고귀하고 고결하고 순수한.
그렇기에 자신이 죽는 것이 진정한 친환경이자 친인류이자 친우주라는 것을 깨달은 현자들의 방식임에도.
자살이란 결코 용납되지 않는 위법행위이다.
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낫다라는 말은.
스스로 죽음을 택함은 지옥에 간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결정권은 존재하지 않으며, 우주의 질서에서 어긋나게 되면 그 누구도 용서받을 수 없다.
시비곡직청의 염라인 그녀는 생각한다.
환상에 속하길 바라는 자들은 모두 그녀에게로 온다.
스스로를 환상이라 규정하는 모든 이들은 그녀에게로 온다.
그렇기에 환상향의 최고 재판장인 것이고.
인격을 가졌음에도 최고신조차 깔볼 위계를 갖게 된 것이다.
말한다.
판결.
“그대, 나의 친우이자 사랑이었던 그대. 용감하고 자랑스러우며 아버지이자 형제였고 아들인 당신. 마지막 소원을 이루어드리겠습니다. 모든 윤회의 마지막. 모쪼록 평안한 여행이 되시길.”
스스로 삶은 끊음이란, 무한히 반복되는 순환에서 탈출하길 원함이라.
그보다 더 나은 삶은 없겠지만 그래도 위안거리 삼아 자그마한 소원을 들어준다.
또 다른 생.
또 다른 삶.
자신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죽음.
그리고 선택으로 이루어진 탄생.
그 이후엔 아무런 미련도 없이 사라지리라.
부디 좋은 추억을 남기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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