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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이 너무나도 비싸진 일본 근황
쌀 가격이 너무나도 비싸다보니 예산이 부족해짐 > 2학기부터 쌀밥급식 주3회에서 2회로 감소하고 빵식으로 대체한다함 - dc official App- 크레이지 일본 쌀값 근황 ㄷㄷ...쌀값이 하도 올라서 한국쌀이나 사려는데 한국쌀값도 정신 나감 - 쌀부족 일본에 상륙한 한국 해남쌀 새청무, 5ch반응txt72BZ/5Rn0넷우익한테 억지로 한국쌀을 먹이고 싶다MWyFAKKl0맛있겠다!일본쌀과 달리 세슘이나 카드뮴이 들어있지 않네!tvE2O3do0미국쌀처럼 사기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호감이 간다fPOvb94U0일본에 한국쌀이 들어온다는 건 상대적으로 한국내 쌀값도 오르게 되려나, 잽이 어디까지 폐를 끼치는건지.....9KAx3sd50가난한 넷우익이 불매해봤자 매상은 점점 늘어나는 것이 현실gQXc4wa10역시 형님이 최고다, 잽은 죽어라!넷우익 아사해라!Ur7u16po0한국에서 10kg에 3만원=2982엔짜리 쌀이니까 일본에서 10kg에 8000엔+배송비 800엔도 꽤 노력한거라고 생각해관세, 부가세, 배송비, 검사비용, 일본내 판매를 위한 제반비용이 드니까 앞으로 잘 팔리면 가격이 더 떨어질 수도 있어일본쌀과 비슷한 가격이면 한국 쌀을 사먹도록 하자rGEgxyzb0쌀부족에 울고 있는 동생에게 동정심을 보여주시는건가?형.... 역시 우린 가족이었구나?JB5/VCgP0덕분에 앞으로 쌀 먹을 수 있겠네aHZKO+D80넷우익 정신 붕괴중 www9KCZeU3bd한국쌀도 자포니카쌀이야rBhTDW8h0쌀이 주식인 한국 형님들 쌀이 더 맛있어애초부터 형님이 섬나라 원숭이에게 쌀을 전해준 역사가 있으니까wNody+st0고마워요. 고마워요XQlamriy0근데 너무 비싸요, 형Lki+E5m10고마워요, 고마워요형님의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2FecSAGS0한국은 일본과 비슷한 식문화니까별 위화감 없이 먹을 수 있을 것 같아xJ04ZmDU0너희는 닥치고 먹기나 해, 패전 국민 주제에9aHZcLzCd한국인 관광객이 일본쌀을 먹어치웠기 때문에 이제 쌀을 가지고 오면 된다pCPP29m20형, 조금만 깎아줄 수 없어?
작성자 : ㅇㅇ고정닉
LA에서 로마까지: TWA 85편의 기나긴 여행
[시리즈] 하이재킹 · 해병대원의 비행기 긴빠이 대작전: TWA 85 덴버에서 뉴욕까지 가는 3시간의 여정은 평화롭게 지나갔다. 일등석에서 총을 옆에 두고 쭉 뻗은 라파엘은 캐나디언 클럽 위스키와 진, 두 개의 작은 병으로 만든 특이한 칵테일을 따라 마셨다. TWA 85편에는 이제 다섯 명만 남았다. 쿡 기장, 부기장 웬젤 윌리엄스, 항공 기관사 로이드 홀라, 승무원 트레이시 콜먼, 그리고 라파엘 85편은 오전 늦게 뉴욕의 존 F. 케네디 공항에 착륙하여 터미널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에 주기되었다. 덴버에서처럼 조종석에서는 최대한 적은 인원만이 비행기에 접근하도록 지시했지만..... FBI는 덴버에서와는 다르게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고, 납치범이 다른 대륙으로 도망가기 전에 그를 막아야만 했다. 100명에 가까운 FBI 특수요원들이 85편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중 다수는 정비사로 변장하여 비행기에 몰래 탑승하려고 시도했다. 착륙 후 몇 분 만에, 재급유가 시작되려는 순간, FBI 요원들이 비행기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쿡은 조종석 창문을 통해 한 요원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요원은 라파엘에게 창문 가까이 다가와 FBI와 이야기를 나누라고 지시했다. 라파엘을 단순한 19살짜리 애송이로 바라본 FBI의 실수였다. 그는 베트남에서 2년간 싸우며 살아남은 남자였다. 미국에서는 퍼플하트를, 남베트남 정부로부터는 십자무공훈장까지 받았다. 당연히 전투중에 창문으로 다가가는게 얼마나 바보같은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라파엘은 그들(FBI)가 비행기에 몰래 타려는게 아닌지 확인하려고 통로를 왔다 갔다 했습니다." 웬젤 윌리엄스는 50년 후 BBC에 이렇게 말했다. "창가로 가면 총에 맞을 것 같았죠." 기장은 라파엘을 잘 모르지만, FBI가 바보같은 짓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요원들에게 비행기에서 떨어지라고 경고했지만, FBI는 장갑차를 앞세워 비행기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라파엘은 M14 소총을 FBI에게 난사한다. 20발들이 탄창이 순식간에 비워지고, 7.62mm 소총탄 탄피가 바닥에 우수수 떨어진다. 총알 1발이 707기의 천장을 뚫고 비상용 산소통 옆에 박힌다. 만약 동체에 구멍이 뚫리거나 산소통이 폭발했다면 라파엘의 기나긴 여정은 여기서 끝났겠지만, 7.62×51mm 소총탄은 조종석 구석에 얌전히 쳐박혔다. 쿡은 나중에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FBI의 계획은 승무원 전원을 죽이는 것과 다름없었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 소년과 여섯 시간 동안 함께 앉아 있었고, 그가 사실상 미친 놈에서 유머 감각이 있는 꽤 자만심이 강하고 지적인 젊은이로 변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바보들은... 아무런 정보도 없이 무책임하게 그 소년을 어떻게 다룰지 스스로 결정했고, 우리가 거의 여섯 시간 동안 쌓아온 신뢰는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총격은 분명히 우발적이었지만, 승무원들은 다시한번 목숨이 위태롭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 뒤에 서있는 용감하고 무모한 사나이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하지만 쿡 기장은 라파엘을 도우려고 시도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과 라파엘 모두를 구하려고 했다. 소총이 고의로 발사되었다고 확신했던 쿡 기장은 창문 너머로 요원들을 향해 고함을 지르며 재급유 없이 바로 이륙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그는 국제선을 비행할 수 없다. 만약 이대로 출발해 로마에 도착한다면 기장 자신도 감옥에 갇히거나 TWA에서 쫒겨날 것이다. TWA 측에서는 라파엘과 쿡을 위해 조종사 두 명, 빌리 윌리엄스와 리처드 헤이스팅스를 JFK로 보낸다. 둘다 TWA에 입사한지 24년이 넘은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납치범을 달랠 기분이 전혀 아니었던(그들은 모두 비번이었다) 두 명의 노련한 조종사들이 비행기를 조종하기 시작했다. 흥분한 라파엘은 모든 사람에게 머리에 손을 얹고 조종석 안에 머물라고 명령했다. 비행기는 빠르게 이륙했고, FBI 요원들은 자신들이 어떤 바보짓을 했는지 그제서야 깨달았지만, 그들이 할수있는 것이라고는 유유히 하늘로 날아오르는 B-707을 바라보는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JFK에서 급유를 받지 못했기에 목적지인 로마에 도착할 만큼 충분한 연료는 없었다. 또 어딘가에 기착해 연료를 보급받아야만 했다. 비행기가 천장에 1발의 소총탄이 박힌 채로 JFK 국제공항을 떠난 지 20분이 지나자, 기내의 긴장은 다소 누그러졌다. 이는 쿡 기장이 라파엘에게 85편을 조종하고 있는 승무원들은 케네디 공항의 멍청한 FBI 요원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끈질기게 설득한 덕분이었다. 연료를 다시 급유받아야했던 TWA 85편은 뉴욕에서 이륙한지 1시간만에 미국 북동부 메인주에 위치한 뱅거 국제공항에 착륙하여 대서양을 횡단할 연료를 보충했다. 납치 사건과 뉴욕에서 벌어진 드라마틱한 총격전은 미국인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히 흥미로웠고, 사진기자들과 방송국 기자들이 뱅거 공항 터미널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경찰은 기자들이 M14 소총에 피격당하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기에 약 80명의 경찰관이 공항에 급파되어 기자들을 비행기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뜨려놨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현장을 보기 위해 공항으로 차를 몰았지만, 터미널에서 800미터(0.8km) 떨어진 곳에 머물러야 했다. 707기 안에서 라파엘은 두 사람이 공항 터미널 꼭대기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것을 발견했다. 그게 FBI 저격수인지 단순한 구경꾼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쿡은 관제탑에 "서둘러야 합니다. 그들(옥상의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그 건물을 향해 총격을 가하겠다고 합니다." 라고 경고했고, 두 남자는 재빨리 그곳을 떠났다. 85편은 급유를 마치고 아일랜드 섀넌을 향해 이륙한다. 비행기가 공역으로 향하면서, 9시간 넘게 동고동락한 사람들 사이에는 연대감이 싹트기 시작했지만, 승무원들은 여전히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새로운 조종사들이 탑승하자, 쿡은 라파엘과 함께 일등석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는 1956년부터 1960년까지 미 공군에서 관제사로 일했다. 쿡 역시나 라파엘처럼 조종사들을 동경했고, 마침내 1965년에 꿈에 그리던 TWA에 입사했다. 꿈을 현실로 가져오는데 성공한 사내와 현실의 부조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엇나가버린 청년 라파엘은 쿡을 부러워했을까, 어쩌면 그를 바라보며 어린 시절의 자신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그의 M14 소총은 일등석 바닥에 떨어져 있었지만, 승무원들은 납치범이 어떻게 반응할지 걱정되어 굳이 소총을 빼앗으려 하지 않았다. 현명한 선택이었다. 미니키엘로는 쿡에게 결혼했는지 거듭 물었고, 그는 독신임에도 불구하고 결혼했다고 답했다. "그게 더 현명한 선택인 것 같았습니다." 쿡은 나중에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총을 든 초조한 사람이 기혼자를 해칠 가능성이 낮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그가 제게 아이가 몇 명 있냐고 물었고, 저는 하나라고 답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른 승무원들은 어떻게 됐냐고 물었고, 저는 '네, 모두 결혼했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사실, 승무원 네 명 중 결혼한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지만, 뭐 어떤가, 라파엘이 만족했으면 그만이었다. 트레이시 콜먼 역시 대서양을 횡단하는 도중에 라파엘과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1950년대에 생산된 비행기 내부에 VOD가 있을ㅇ리 엏었고, 라파엘은 그녀에게 솔리테어를 포함한 카드 게임을 가르쳐 주었다. 콜먼은 라파엘이 "아주 편한 사람" 이었다고 나중에 회상했다. 아마 그의 잘생긴 외모가 꽤나 큰 영향을 줬을 것이다. 그는 콜먼에게 가족이 미국으로 이주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며, "미국으로 돌아온 후 군사적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그냥 이탈리아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뱅거에서 아일랜드 서해안에 위치한 섀넌까지 6시간 동안 비행하는 도중에 그녀는 잠깐 잠을 잤다. 85편은 섀넌에서 한밤중에 다시 연료를 보급받았다. 기내에서 잠을 잘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너무 긴장해서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웬젤 윌리엄스는 회상했다. 기내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고는 볼티모어에서 로스앤젤레스로 가는 첫 비행에 남아 있던 컵케이크 몇 개뿐이었다. 윌리엄스는 인터뷰에서 "음식은 큰 문제가 아니었어요....제 등 뒤에 그가 소총을 겨누고 있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다른 문제는 거의 없었습니다." 라고 말했다. 85편이 아일랜드 상공에 도착하면서 시간대가 넘어갔고, 10월 31일이 11월 1일로 바뀌었을 때, 라파엘은 마침내 20살 성인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20살 생일을 축하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일랜드에 착륙한 지 30분 후, 85편은 이륙하여 여행의 막바지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1969년 11월 1일 아침, TWA 85편은 마침내 피우미치노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라파엘은 이때까지 덴버와 뉴욕에서 했던 것처럼 비행기를 터미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주기시키고 비무장한 경찰관을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하이재킹이 캘리포니아 중부 상공에서 시작된지 18시간 30분만에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윌리엄스 부기장의 말에 따르면, 707기가 로마에 착륙하는 몇 분 동안 라파엘은 착륙 후 승무원들을 호텔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승무원들은 정중히 거절했다. 아마 그들은 자기들 머리에 총알구멍을 내려고 했던 예비 살인자이자 PTSD 환자와는 더이상 겸상하기 싫었을 것이다. 라파엘는 또한 기회가 있었을 때 자신의 M14 소총을 승무원들이 훔치지 않은 것에 대해 그들이 처벌받을까 두려워했다. "정말 많은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라파엘이 쿡에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당신에게 개인적인 감정은 전혀 없었습니다." 쿡은 라파엘을 끝까지 위로해준다. 조종사의 꿈을 포기해야만 했던 라파엘이 불쌍해서였을까, 어쩌면 앳된 그의 모습에서 동정심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단순하게 쿡의 머리통을 M14 소총으로 한번에 날려버리지 않아서 고마워했을 수도 있다. 오전 5시가 조금 지난 시점, 공항에서 보낸 알파 로메오 한 대가 TWA 85편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안에는 납치범을 만나겠다고 자원했던 세관원 피에트로 굴리가 타고 있었다. 그는 두 손을 치켜든 채로 비행기 계단을 올라갔고, 라파엘은 그를 친절하게 맞이해 주었다. "안녕, 돈." 납치범은 떠나면서 쿡에게 말했다. "이런 번거로움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라파엘은 나중에 쿡에게 편지를 써서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하려고 캔자스시티에 있는 쿡의 주소를 적어 두었다. 그리고 라파엘과 피에르토는 대기하고 있던 알파로메오를 향해 내려갔다. 부기장 웬젤 윌리엄스의 말에 따르면, 그제서야 비행기에 타고있던 인질 6명은 "완전한 안도감"을 느꼈다고 한다. 이제 그들은 다시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인질들 모두는 라파엘이 부디 나폴리에 입원해 있는 그의 아버지를 볼수있기를 바랬다. 로스앤젤레스, 덴버, 뉴욕, 뱅거, 섀넌, 그리고 로마를 거쳐 이제 남은 목적지는 단 하나뿐이었다. "나폴리로 데려다줘." 라파엘은 피에트로 굴리에게 명령했다. 그는 단지 아버지가 보고싶을 뿐이었다. 경찰차 네 대가 알파 로메오를 따라왔고, 경찰관들의 목소리가 인질의 무전기에서 지직거렸지만, 뒷좌석에 앉은 라파엘은 무전기를 끄고 인질에게 어디로 가야 하는지 친절하게 알려줬다. 로마 중심부에서 약 6마일 떨어진 시골에서, 알파 로메오는 추격하는 경찰차들을 어떻게든 피해 점점 좁아지는 골목길을 달렸다. 마침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자 두 남자는 차에서 내렸다. 남은 선택지가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라파엘은 공황 상태에 빠져 달아나기 시작했다. TWA 85편이 LA에서 이륙한지 23시간이 지나서야 라파엘의 여정은 마침내 막을 내렸다. 로마 근교에서 5시간 넘게 수백 명의 경찰관들이 탐지견과 헬리콥터를 동원하여 납치범을 추적했지만, 결국 그를 발견한건 한 교회의 신부였다. 11월 1일 토요일은 만성절이었고, 성당은 아침 미사를 보는 사람들로 가득찼다. 잘 차려입은 신자들 사이에서 조끼와 속바지를 입은 한 젊은이가 눈에 띄었다. 라파엘은 군복을 벗고 총을 헛간에 숨겨둔 후 성당으로 피신했지만 그의 얼굴은 이제 유명해졌고, 부주임 신부인 돈 파스콸레 실라도 그를 알아보았다. 경찰이 마침내 라파엘을 교회 밖에서 포위했을 때, 라파엘은 그가 사랑하는 이탈리아 동포들이 자신을 구금하려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근데 시발 비행기를 훔쳐놓고 안잡힐거라 생각하는게 말이 되냐 " Paisà, perchè m'arresti? " "파이사(동포)여, 왜 나를 체포하는가?" 그가 경찰에게 체포되며 남긴 말이었다. 여담으로, 라파엘의 아버지인 루이지 미니키엘로는 라파엘이 비행기를 훔쳐 자신을 보러 찾아왔다는 것을 알아차리자 병원에 몰려든 기자들에게 "전쟁이 그의 마음에 큰 충격을 주었을 겁니다." "그 전까지는 항상 제정신이었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다음에 라파엘을 만나면 귀를 잘라버리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선량한 시민보다는 비행기를 훔친 테러리스트에 가까웠지만, 라파엘은 이탈리아에서 만인의 영웅이 되었다. 그는 언론들에 의해 비행기 승객들을 총으로 위협한 범죄자가 아니라, 위대한 이탈리아로 돌아오고 싶었던 씩씩한 이탈리아 소년으로 묘사되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체포된 지 몇 시간 만에 재판을 받았는데, 미국은 길길이 날뛰며 라파엘을 송환하라고 요구했지만 이탈리아는 깔끔하게 미국의 요청을 씹었다. 아마 송환했다면 그에게 사형이 선고되었을 것이다. 재판에서 그의 변호사 주세페 소트기우는 라파엘로를 무의미한 베트남 전쟁의 희생자, 불쌍한 이탈리아 젊은이로 묘사했다. "이탈리아 판사들은 전투기와 폭력으로 이루어진 문명, 이 불쌍한 청년을 범법자로 만든 문명에서 비롯된 행위를 이해하고 용서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는 이탈리아 영공에서 저지른 범죄 혐의로만 기소되어 7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나, 이탈리아 국민들이 그를 위한 팬클럽까지 만들어준 덕분에 항소심에서 형량이 감형되어 사건 1년 6개월만인 1971년 5월 1일에 석방되었다. 갈색 정장을 입은 21세의 그는 바티칸 근처에 위치한 교도소에서 나와 수많은 카메라맨들을 마주했다. 기자가 "당신이 한 짓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십니까?" 라고 묻자, 그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왜 미안해야 합니까?" 그럼에도 이탈리아 대중들은 여전히 라파엘을 민족의 영웅으로 칭송했고, 소녀들은 그의 뛰어난 미모에 매료되었다. 한 소녀는 그가 줄리아노 젬마보다 잘생겼다고 말했는데... 그건 아닌거같다. 비빌걸 비벼야지 시발 하지만 그 후로도 라파엘의 인생은 잘 풀리지 않았다. 누드 모델 활동은 꿈도 꾸지 못했고, 그를 영화배우로 만들겠다는 영화 제작자의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감옥에서 나온 후, 라파엘은 로마에 정착하여 바텐더로 일했다. 한때 이탈리아의 영웅으로 칭송받던 것에 비하면 초라한 직업이었다. 하지만 그는 행복했다. 바 주인의 딸인 친치아와 결혼하여 아들을 두었고, 장인어른의 가게를 물려받아 '하이재킹'이라는 이름의 피자 가게를 운영하기도 했다. 사건으로부터 10여년이 흐른 1980년 11월 23일, 규모 6.9의 지진이 이탈리아 남부를 강타했다. 진앙지는 1962년에 일어난 지진의 진앙에서 불과 32km(20마일) 떨어져 있었다. 이번 지진은 70년 만에 이탈리아를 강타한 가장 강력한 지진으로, 4,690명이 사망하고 2만 채의 가옥이 파괴되어 이르피니아 지역 전역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많은 이탈리아인들이 이탈리아 남부에 대규모로 모여들어 구호품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그들 중에는 라파엘레 미니키엘로도 있었다. 당시 31세였던 그는 아직 로마에 살고 있었지만, 구호 물품을 전달하기 위해 단 2주 만에 300마일(약 480km)이나 되는 거리를 세 번이나 자동차로 왕복했다. 다행히 이번에는 비행기를 납치하지는 않았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이르피니아의 지진에 대해서는 다 알고 있습니다." "제가 태어난 곳이고, 제 모든 고난이 시작된 곳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해병대 시절부터 형성된 권위에 대한 불신은 이미 그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잡은 상태였다. "저는 기관을 신뢰하지 못해서 개인적으로 도움을 줍니다." 하지만 아직 라파엘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1985년 2월, 라파엘의 아내 친치아는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진통으로 병원에 입원한 후, 그녀와 갓 태어난 아들은 의사의 의료 과실로 인해 사망했다. 분노한 라파엘은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로마 외곽에서 개최되는 유명 의학 학회를 표적으로 선정한 그는 아내와 아들의 목숨을 앗아간 의사들을 총기난사로 죽여버리려고 시도했다. 계획을 세우는 동안 라파엘은 토니라는 한 전도사와 친해진다. 라파엘은 그의 말을 듣고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결심했고, 복수극을 포기한다. 그리고 1999년, 라파엘은 미국으로 향했다. 바로 TWA 85편에 탑승한 사람들을 찾아서 사과하기 위해서였다. 2009년 8월, 85편에서 총을 든 라파엘과 처음 마주쳤던 샤를렌 델모니코는 1장의 초대장을 받았다. 그녀는 2000년에 TWA에서 퇴직했고, 미국의 최대 항공사였던 펜암이 1991년에 파산한데 이어 북미 제 2의 항공사이자 그녀가 수십년간 몸담았던 TWA(트랜스 월드 항공)은 2001년에 파산했다. TWA는 US항공에 인수되었고, 전체 직원들의 27%에 불과한 5,000여명을 제외한 대부분이 해고되었다. 그녀는 운이 좋았다. 라파엘과 그의 옛 소대원들이 초대한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델모니코는 집에서 남쪽으로 약 240km 떨어진 미주리주 브랜슨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85편의 부기장인 웬젤 윌리엄스를 만났는데, 그는 라파엘의 만남을 수락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로이드 홀라 항공기관사, 트레이시 콜먼을 포함한 승무원들, 하퍼스 바자르 멤버들, 그리고 도널드 쿡 기장조차 라파엘의 제안을 거절했다. 이는 일등석에서 오랜 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누며 그와 깊은 유대감을 형성했다고 믿었던 라파엘에게는 꽤나 깊은 상처로 다가왔다. 델모니코와 윌리엄스가 떠나기 전에 그는 두 사람에게 신약성경 한 권을 건넸다. 안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당신을 위험에 빠뜨린 행동을 용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인생을 바꾼 이 책을 받아주세요. 라파엘레 미니키엘로,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많은 축복을 주시길 바랍니다. 누가복음 23:34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작성자 : 우희힝고정닉
도쿄 여행 사진 모아보기 및 TMI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digitalpicture&no=1313495 어쩌구저쩌구 사진 TMI 모아보기 링크[시리즈] TMI 정기편성 (1 ~ 10) · 갑자기 심심해져서 쓰는 사진 TMI 모음집 · 갑자기 심심해져서 쓰는 사진 TMI 모음집 2 · 갑자기 심심해져서 쓰는 사진 TMI 모음집 3 · 갑자기 심심해져서 쓰는gall.dcinside.com [시리즈] 도쿄 · 도쿄 여행 사진 - 예고편 (20장) · 도쿄 여행 사진 01 - 소비의 중심 (25장) · 도쿄 여행 사진 02 - 우연의 베이스 캠프 (25장) · 도쿄 여행 사진 03 - 인간의 파도 (25장) · 도쿄 여행 사진 04 - 여행의 목적이 된 곳 (25장) · 도쿄 여행 사진 05 - 다수 공간 일괄 배송 (25장) · 도쿄 여행 사진 06 - 야경과 나머지 (25장) · 도쿄 여행 사진 07 - 기차와 관련된 사진 (25장) 휘발성 가득한 게시판형 사진 감상 플랫폼에서의 최대한의 유저 편의 확보 목적 및 호텔에서 사진 보정하려니 허리가 아파서 쓰는 글이거 찍을 때 현지인 사진가 두 명이 나랑 완전히 같은 구도를 보고 있어서 기다렸다가 찍음찍을 당시에는 인생에 남을 사진 중 한 장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명암 대비가 내가 상상한 거랑 좀 달라서 보정까지 끝내고 보니 그 정도는 아님뭔가 무대의 주인공처럼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저런건 또 잘보이라고 보정하면 되게 올드한 느낌으로 나와서 또 별로임보정은 많은 걸 해주지만 애초에 잘 해야 함찍고 있는데 옆 횡단보도에서 날 지켜보던 서양 아저씨가 '뷰리풀 샷!' 하며 따봉 날린 사진 으로 추정되는 사진횡단보도 사진은 체류 시간을 극도로 짧게 가져가야 한다 오래 서 있으면 차 보행자 그걸 지켜보는 사람 모두에게 안 좋음긴자 유니클로 플래그쉽밑 열 친구들은 빙글빙글 돌고 있는데 딱 45도 정도 보이는 그림이 이뻐서 기다렸다가 찍음지난 도쿄 여행 때는 아키하바라 이번에는 긴자주말에 가면 차 없는 거리를 한다 이걸 대로에서 하다 보니 묘하게 아포칼립스 느낌이 난다여행 마지막 날이었는데 하네다 모노레일이 출발하는 가마마쓰초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려다정말 깜짝 놀랄 정도로 추워져서 (3/29 토, 기억이 맞다면 서울 눈 옴) 이대로 가다간 진짜로 죽을 것 같아서긴자의 GU 매장을 찾아서 1990엔짜리 헤비웨이트(진짜 원단 이름임) 후드재킷 하나를 삼나름 가성비 좋아서 잘 입는데 실리콘케이스 끼운 폰을 주머니에 넣으면 안에서 기모가 빠지더라 너까지 털이 빠지면 어쩌니신기한 게 적절한 보온이 확보가 되니까 사진 생각 아예 안 들던 상태에서 오 여기선 뭐 찍어보지? 하고 바로 전환됨기억이 맞다면 이 사진도 그런 기분으로 찍었을 거임결국 인간은 되는 대로만 하는 존재라는 생각을 더욱 강하게 했다노력도 그에 따른 보상을 보여줄 정도의 재능이 있으니까 하게 되는거야아닌가?우에노 서양 박물관은 무려 르코르뷔지에가 지었다고 한다그게 누군데 씹덕아 라고 생각했다면 대충 건축브레송이라고 생각하면 됨 성질머리 이상한 프랑스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네브레송이 누군데 씹덕아 라고 생각했다면 넌 나가라구라고 사진GOAT중 한 분임TMI의 TMI로다가 르코르뷔지에 본명 아님이거 촬영 세팅 봐봐 개쩔지않음? 내가 GFX를 쓰는 이유 한 장 요약AI노이즈 제거는 안했는데 그냥노이즈 제거는 좀 함도쿄의 기억을 이미지화한다면 그 중 하나는 존나거대한 횡단보도가 아닐까기차처럼 일본의 샐러리맨도 별도의 주제가 될 뻔 했으나 볼륨 부족으로 인해 기각서울에 거주하고 전 거주지가 무려 을지로 쪽이었던 입장에서 샐러리맨을 신기할 사람은 아닌데일본의 샐러리맨은 보고 있으면 한 학교의 교복을 입은 듯한 느낌을 받아서 그게 신기함도쿄에서 찍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수직 횡단보도 사진인스타 돋보기에서 찍은 사진이 보이는데 그 중 어떤 사람도 장소를 공개하지 않았고고심 끝에 내가 일본 지도를 보며 넓은 횡단보도와 근처 건물의 진입 가능 여부를 일일이 조사함이건 신주쿠역 버스터미널 건물에서 찍음 근데 내가 본건 이거보다 더 수직이었는데검색에 난항이 있었던 게 도쿄 건널목 검색하면 시부야만 와르르나옴아니 거긴 안다고너무 빛이 적절헤서 무수히 찍고 이거 한 장 살림실루엣 이쁘게 나온 거 하나만 남기기로 함 나머지는 포토호더야정작 시부야에선 이거하나찍고 도주함기빨림...신주쿠 오모이데요코초돋보기에서 보이던 퇴근후 술마시는 일본인 직장인 사진은 도대체 어디서 찍은건가 했는데 여기인듯진짜로 카메라든 서양사람 2분에 한번꼴로 만났음 거기 결과물 잘 뒤져보면 내 머리통 나왔을수도 있을듯나도 찍는 입장에서 찍히는 거에 대한 거대한 반감은 없는데카메라 든 입장에서 여긴 뭔가 포켓몬 배틀 같았음이 사진은 1. 가장 이쁘고 2. 가장 사람이 덜 나와서 셀렉됨, 의도 이상의 사람이 찍히면 시선유도가 뜻대로 되질 않아싱가포르 벽사랑괴인의 귀환같은 사진롯폰기는 그런 느낌이었다이 구도 똑같이 시도하는 카메라 든 일본인(추정) 한 명 봤음도쿄란 그런 곳이다도쿄 국립신미술관 근처 공구리 대장님 안도 다다오의 (일본 안에 무수히 많은) 건축물 중 하나인 21_21라멘 관련 전시를 하고 있어서 가 봤다 라멘의 역사 그릇의 역사 흥미로운 컨텐츠가 많았는데 일본어 까막눈이라 그림만 보고 나옴애초에 건물 찍으려고 전시 입장료 내고 들어간 거였음노출공구리는 생각보다 더 디테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냥 만들다 말면 그게 유의미한 창작인 줄 아는 풍토는 좀 씁쓸하다가끔 지나가다가 건설중인 곳 보면 인스타 핫플이라고 농담하는 버릇이 생겼다구분 힘들던대 난다음에 도쿄를 간다면 그 이유는 도쿄 국립신미술관 때문일거야이번 여행 최고의 공간이라고 생각기억이 맞다면 후지필름 본사 근처 건물꽤 커다란 상업 건물이었음디붕이가 점지해준 곳 여기 맞나아십 저기 가로등 안지웠다신미술관 가다가 화요일에 문닫는다고해서 못갔을때 사진인데 이 그림을 봐서 아쉽지 않았음고가에 들이치는 빛 줄무늬라니쿠니타치의 수어 스타벅스 가 보려고 한 사진인데 시간 때우다 근처 대학교에서 찍음도쿄대, 와세다대, 쿠니타치근처그대학교 세 곳의 대학교를 탐방했다관광객이 들어가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대학교 기반 여행을 해도 재밌을지도근데 그생각이면 한국부터 파보는게 맞지않을가?무튼 대학교가 건축측면에서 가치가 꽤크다고느낌아마 유명한 야경스팟일텐데여행기간 내내 먼지가 빡세서 (한국이 더빡세보여서 좀민망했지만) 아예 그걸 최대화하는방향으로 보정나만 이런 거 좋아하나뭔가 미니어쳐같음뭐라는 지 모름맨 앞이 전차니까 지하철에서 뭐 해라 하지마라 일거같긴한데생성형 AI 채우기로 마스크 씌워드림얼굴 가려드리기 이런 선한 목적은 아니고... 원하는 그림 이상의 인식 가능한 존재의 노출은 시선 유도에 큰 방해가 됨엄... 질문받는다
작성자 : doer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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