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수

12시간  · 

[둘다 잘못했어 사과해]

아이들의 사건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툭하고 막히는 때가 있다. 분명히 가해자와 피해자가 존재하는 사건인데.

아무 것도 모르거나. 알고도 모른 척 하는 사람이 나타나 “둘다 잘못했어” 라고 말한 뒤 “일단 덮어놓고 서로 사과해” 라고 말할 때이다.

기계적 중립을 지키는 이들은 갑자기 현명한 척을 하고.

눈앞에서 윽박질러 화해(?) 시켰다 믿지만. 가해자의 폭력은 이때부터 시작이다.

우리나라는 특히 이런 현상이 강하다.

그러다보니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둥글게 살아라” 라는  말이 삶의 지혜처럼 통용되고 있다. 

그런데 또.

학교 교육은 그렇지 않다. 근대화의 세례가 주어지는 학교 교육은. 아이들에게 각자에게 정당한 제 몫을 주는 “정의” 를 가르친다. 부정의한 일을 보면 용감히 나서고. 교정할 것을 가르친다. 

근대와 전근대가 상존하는 줄다리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끼리 왜이래” “일단 인간부터 돼라“ 라고 말하는 전근대의 유산과 “일로 만난 사이” 와 ”가족과 친구“ 를 명확히 나누는 근대적 사고가 사회 전반에서 부딪히고 있다.

전근대적 관계지향문화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근대적 과업지향문화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어 한다. 전자는 후자를 매우 비인간적이고. 싸 가지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원희룡은 우리는 모두 동지라 외치고 다닌다. 누가 봐도 네거티브를 앞장 서 하는 그가 모두 동지라 외치는 것이 어딘가 맞지 않는 느낌이지만.

전근대적 부족주의를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그에게 동지는 ”우리 부족“ 이다. ”우리 부족“ 이 아닌 자들은 동지가 아니고 얼마든지 네거티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우리 부족“ 의 먹사니즘을 강조하는. ”다른 부족“ 으로 부터 약탈하여서라도 ”우리 부족“ 을 먹여 살리겠다는 이재명의 부족주의와 어딘가 닮아 보이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 이다.

보수는 개인주의와 자유주의 그리고 합리주의와 법치주의가 지배하는 근대를 지향한다. 부족주의는 전근대이다. “혼자만 잘살면 되는겨?” 라고 말하는 것은 전형적인 부족주의이다.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진보로도 통용되고. 보수로도 통용되고 있음이 우리 정치의 비극이었다.

근대는 한명 한명의 개인이 주체적 개인으로 우뚝 서서 서로 간에 합리적이고 주체적인 관계를 맺으며. 각자의 자유를 존중하고. 각자의 실력으로 얻은 것을 존중하는 것으로 성립한다. 

우리 민사법은 이런 정신을 기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해야할 일이 있으면 프로페셔널한 사람들끼리 모여 일을 하고 과업을 달성하면. 또 각자 흩어져 살다가 다시 모여서 일을 하는 그런 모습이 결코 인간미 없거나 이기적으로 평가받지 않는다. 

관계보다는 그렇게 모여서 이뤄내는 과업이 더 중요하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과정에서 관계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흩어질때. 배신을 당했다 생각한다는 점이다. 

배신을 당했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 적이 될 수도 있기에. 우리나라에서 성공하려면 관계를 중시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늘 나오는 것이다. 

내가 어릴때는 보수가 관계 중심의 공동체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남이가” 를 앞장 세우며 관계 속 서열과 권위를 늘 내세웠다. 입으로 자유를 부르짖었지만. 장발을 단속하고 미니스커트를 단속하던 시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금지곡도 있었고 방송심의도 있었고 건전가요도 있었다.

이 시절 자유를 찾고 근대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소위 진보진영의 사람들과 함께 했다. 

그러나 이젠 진보진영이 오히려 전근대적 부족주의를 향해 달려간다. 이재명이란 수령을 의심할 수 없고. 충성 경쟁에 빠져 영남 남인의 예의 어쩌구 저쩌구 한다. “우리” 가 되면 먹사니즘을 보장해준다는 것도 과거 권위주의 보수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진보진영에서 자유를 추구하던 사람들이 문재인 정부 이후 대거 보수로 넘어온 것도 바로 이 질식할거 같은 분위기를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왜 진영논리때문에 조국을 비판할 수 없고. 이재명을 비판할 수 없는가? 에 대한 의문을 품었기 때문이다.

나라는 이미 물질적으로 선진국이 됐는데. MZ세대들의  삶은 이미 오래전 근대화가 됐는데. 

아직도 폐세자니. 영남남인이니. 하는 사람들이 양 진영의 기득권에 남아 있다.

진정한 보수 혁명은 근대가 낳은 자유와 정의의 가치를 명목상이 아니라. 실제로 실현해 내는 유능한 보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자유주의는 본래 보수의 가치였기에. 권위주의와 부족주의가 싫어 진보진영에 있던 자유주의자들이 보수진영으로 넘어왔다 하여 굳이 전향선언이나 사상검증을 할 필요는 없다 생각한다.

이승만은 20대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의회였던 중추원 의원이 되었다가. 대통령제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려 했다는 혐의로 국사범이 되어 투옥됐었다.

이승만이라는 인물 자체를 추앙할 것이 아니라. 대한제국 시절부터 이미 근대 법치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꿈꾸던 청년 이승만의 정신을 본받으려 해야 한다.

무엇보다 근대 법치주의와 자유민주주의는 퉁쳐서 “둘다 잘못 했으니 우리 부족을 위해 일단 사과하고 대충 살자” 는 생각을 깨는 것에서 부터 출발했음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