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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국가별 가장 강력했던 시기
1. 영국: 19c 초~20c 초 대영제국 시기 대영제국이 통치했었던 모든 식민지를 나타낸 이미지. 미국만 제외하면 20세기 초 대영제국의 영토와 거의 일치한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해군을 바탕으로 전 지구의 4분의 1에 달하는 영토와 인구를 지배하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다. 산업혁명을 통해 쌓은 경제력과 기술력을 통해 나폴레옹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유럽을 넘어 세계 질서의 중심에 서며 독보적 지위를 유지. 강력한 해상 패권으로 국제 무역과 자원 확보를 장악했고 군사력과 식민지 확장을 통해 대영제국은 역사상 유례없는 초강대국이 됐다. 2. 프랑스: 19c 초 나폴레옹 시기 유럽 대륙 전체를 뒤흔들었던 군사적, 정치적 강대국. 당대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자랑하며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을 굴복시켰다. 오스트리아와 러시아 연합군을 상대로 압도적으로 승리한 아우스터리츠 전투가 상징적. 전례 없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폴레옹의 프랑스를 저지하기 위해 유럽의 전통적인 강대국들은 대규모 연합군을 결성해야 했다. 3. 독일: 2차 세계 대전 시기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은 군사 기술 및 전략을 기반으로 전 유럽을 공포에 몰아넣었다. 전격전이라 불리는 새로운 전술을 통해 적군의 방어선을 순식간에 붕괴시켰으며 1939년 폴란드 침공을 시작으로 1940년 프랑스를 단 6주 만에 함락, 동부에서는 1941년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소련을 침공하며 유럽 대륙의 대부분을 점령했다. 4. 러시아: 냉전 시기1975년의 모습 군사적, 이념적, 정치적으로 미국과 맞서며 세계 패권을 양분했던 초강대국으로서 전 세계적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시기.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육군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군사 기술과 과학 기술에서 강력한 모습을 보여줬다. 바르샤바 조약 기구로 동유럽 국가들을 군사적 위성국으로 삼아 집단 방어 체계를 구축해 나토와 대립하기도 했다. 5. 스페인: 16c 후~17c 초 스페인 제국 시기 유럽과 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에 걸친 광대한 영토를 지배하며 확보한 막대한 금은과 무적함대를 통해 유럽 경제와 해상 패권을 장악했다. 테르시오로 알려진 보병으로 유럽에서 압도적인 군사력을 발휘했고 레판토 해전에서는 오스만 제국을 제압하고 지중해의 패권을 확보했다. 유럽 정치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했으며 전 세계에 가톨릭을 퍼뜨리기도 했다. 6. 포르투갈: 15c 후~16c 초 포르투갈 제국 시기 대항해시대의 선두주자로서 강력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 해양 패권을 장악하며 강대국으로 군림한 시기.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 항로 개척 이후 인도양에서 오스만 제국과 아랍 세력을 격파하며 향신료 무역의 독점권을 확보했으며 호르무즈와 말라카 등 인도양과 아시아 해역에서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군사 거점을 구축했다. 7. 네덜란드: 17c 초~ 중 네덜란드 제국 시기 세계 무역과 해상 패권을 지배하며 경제적, 군사적 강대국으로 군림한 시기로 동인도 회사와 서인도 회사를 통해 전 세계에 걸친 무역망을 구축하며 그 강력함을 나타냈다. 대서양과 인도양의 교역로를 통제했으며 강력한 군사력으로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 강대국들과의 전쟁에서 대등하게 맞섰다. 또한 당시 암스테르담은 세계 금융과 무역의 중심지로 번영했다. 8. 스웨덴: 17c 스웨덴 제국 시기 북유럽의 패권을 장악하고 발트해 주요 지역을 지배해 발트 제국이란 별칭을 얻었던 시기. 북방의 사자라 불리는 구스타브 아돌프 치하에서 그의 혁신적인 전술을 통해 연달아 승리를 거두며 유럽에서 손꼽히는 강대국 중 하나로 떠올랐다. 이 시기의 스웨덴 제국은 북유럽뿐만 아니라 유럽 대륙 전반에서 군사적, 정치적, 외교적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9. 폴란드: 16c 후~17c 초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시기 당시 유럽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지닌 강대국으로서 유럽에 정치적, 군사적,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제한적인 왕권 대신 귀족들의 합의로 통치되는 선거 군주제라는 독특한 체제를 통해 다양한 민족을 포용했던 게 특징. 또한 윙드 후사르로 대표되는 강력한 기병대는 연방의 상징이었으며 제2차 빈 포위전과 키르홀름 전투 등에서 막강한 전투력을 발휘했다. 10. 이탈리아: 로마 제국 시기 역사적 중심지와 문화적 유산의 관점에서 볼 때 여기서는 이탈리아가 로마 제국을 대표한다고 간주한다. 고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문명으로서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과 발전을 이루며 지중해 세계를 통합했으며 교역과 행정의 효율성을 극대화한 시스템과 건축 기술과 공공시설 등은 당시 가장 발달된 문명이란 걸 여실히 보여준다. 오늘날 서양뿐 아니라 전 세계에 걸쳐 여러 유산을 남겨 인류사의 중요한 토대를 마련한 제국. 11. 오스트리아: 16c 중~18c 후 합스부르크 가문 시기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왕가 중 하나였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중심지인 오스트리아는 정치적, 군사적, 문화적으로 유럽의 심장이였으며 특히 비엔나는 유럽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로 번영했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는 비엔나 전투 등 유럽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그 유산은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이어졌다. 12. 그리스: B.C. 5c 중~4c 초 고대 그리스 시기 페르시아 전쟁 승리 이후 민주정치가 발전하고 예술과 건축의 황금기를 맞았던, 그리스가 문화적으로 가장 찬란했던 시기. 아테네는 강력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델로스 동맹을 결성해 에게해에서 패권을 장악, 여러 학문에서 위대한 사상가와 예술가들이 활동하여 서양 문명의 토대를 마련했으며 스파르타는 뛰어난 군사력을 바탕으로 펠로폰네소스 동맹을 이끌며 육군 강국으로 부상했다.
작성자 : ㅇㅇ고정닉
경기 중 낙뢰를 맞은 남자, 레이 콜드웰의 이야기
이 글은 과거 다른 커뮤에서 쓴 글을 살짝 손 본 글입니다.기본적으로 야구에 관심 없는 사람들을 위해 쓴 글이기도 합니다.//////야구는 정말 오랜 역사를 가진 프로 스포츠다. 1869년에 관객들에게 돈을 받고 경기를 뛴다는 '프로 야구단'이 처음 탄생했고, 척화비가 세워지던 1871년에 최초의 프로리그가 출범했다. 이렇게 150년의 역사를 자랑하다 보니 경기 중 믿기 힘든 일도 종종 일어났는데, 랜디 존슨이 던진 공에 비둘기가 날아와 맞아 죽은 사건이 그 중 하나다. 그리고 비둘기가 공에 맞기 90년 전 쯤, 여기 경기 중 번개에 맞은 선수가 있다.그의 이름은 레이 콜드웰(Ray Caldwell). 그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투수로, 투구 뿐만 아니라 타격에도 상당한 재능을 가진 양키스의 에이스였다. 그가 26살의 나이에 18승에 1점대 자책점을 기록했을 때, 한 저명한 기자는 그의 재능을 예찬하며 "콜드웰은 넥스트 월터 존슨이 될 것이다" 라고 얘기했다.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월터 존슨이 아니라 도밍고 헤르만이 되었다.지금도 가끔 있지만, 초창기 스포츠에서는 자기 관리가 안되고 알코올 중독에 빠지는 선수가 종종 있었다. 콜드웰도 그런 부류였는데, 술 문제 때문에 항상 구단주와 감독과 마찰을 빚었고 연봉의 상당 부분이 벌금으로 나갔다. 결국 술을 마시고 숙취로 결근하는 일마저 생겼고, 그로 인해 출장 정지를 받기도 했다. 또 당시 메이저리거는 지금처럼 어마장장한 돈을 버는 직업이 아니었는데, 안그래도 술을 매일같이 퍼마시는데 출장 정지로 돈까지 벌지 못하니 생활고에 빠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반지를 훔친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고, 7살 난 아들의 양육비를 지급하라고 아내에게 고소를 당했다. 출장 정지기간동안 파나마에서 야구를 했다는 썰도 있다.반성하고 성실하게 야구를 하는가 싶다가도, 다시 술을 마시고 이탈하는 일이 반복되자 기어코 감독은 사설탐정을 고용해서 콜드웰을 감시하기까지 했다. 그렇다. 사설탐정 고용해서 선수 뒷조사하는 양키스의 전통은 스타인브레너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그러다가 그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입대를 피할 목적으로 조선회사에 입사했는데, 이 일로 구단주의 분노를 사 9년간 몸담았던 양키스에서 쫓겨나 보스턴으로 트레이드 되었고, 보스턴에서도 얼마 안가 방출 당하고 만다.강속구를 뽐내던 차세대 월터 존슨은 어디가고, 이제는 무릎 부상으로 신음하는 31살의 노장만이 남았을 뿐이다. 이대로 은퇴하나 싶었지만, 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그에게 손을 내미면서 은퇴는 미뤄지게 된다. 당시 클리블랜드는 시즌 도중에 감독을 교체하면서 우승을 노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때 계약서가 상당히 골때린다.콜드웰: 저 감독님... 계약서에 오타가 있는데요? 계약 조항이 "경기가 끝나고 술을 마시지 말 것" 인데 not이 빠져서 "술을 마실것" 으로 되어 있어요.트리스 스피커(감독): 아냐, 오타 없어. 술을 마실것이 맞아.콜드웰: 네? 술을 마시라고요?스피커: 술은 죽어야 끊는거야. 어차피 술 못 끊을거면 차라리 경기 끝나고 마시고, 다음날 자고, 그 다음날 훈련해. 그게 차라리 나아.스피커: 홀리이 기괴한 계약 조항과 함께 인디언스에 입단한 콜드웰은, 자신을 인정하고 배려해준 스피커에 대한 감사 때문일까,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압박감 때문이었을까.그는 클리블랜드에서의 첫 경기에서 의문의 회춘과 함께 자신의 인생투를 보여준다.1919년 8월 24일, 필라델피아 원정에 선발투수로 등판한 그는 9회 2사까지 1실점으로 막으면서 팀의 2대 1 리드를 지켜낸다. 자신의 데뷔전을 완투승으로 장식하기 위해 그는 마지막 타자를 상대하기 위해 발판을 닦고 있었다. 그때였다. 우르르 쾅!순간 세상이 새하얘지고, 우레가 경기장을 뒤덮으면서 낙뢰가 콜드웰을 강타했다. 증언에 따르면, 기자석에 있는 기자들까지 충격파를 느꼈고, 유격수 레이 채프먼은 콜드웰의 상태를 확인하려 뛰어가다가 다리에 찌릿함을 느끼고 주저 앉았을 뻔 했다고 한다.당시 콜드웰은 의식을 잃은 채 양팔을 벌리고 누워있었다고 한다. 가슴에는 연기가 모락모락 나고, 모두가 콜드웰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경기장에 의사도 없었고 심폐소생술도 없을 때라, 소생 가능성은 현저히 낮았다.그 순간.콜드웰: 윽... 으윽...콜드웰이 신음소리를 내며 힘겹게 일어나기 시작했다.스피커(감독겸 중견수): 이봐 콜드웰, 괜찮나? 날 알아 보겠어?콜드웰: 네... 감독님... 스피커: 그래 죽지 않아서 다행이구만. 일단 병원부터 가세. 콜드웰: 네?? 아뇨. 이 게임은 제가 끝낼겁니다. 이건 제 승리에요. 누구한테도 넘겨줄 수 없어요.스피커: 바보같은 사람아! 자네 번개를 맞았다고 번개를! 무슨 위험한 상태일지도 몰라. 빨리 병원부터 가세.콜드웰: 감독님... 감독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MVP? 타이 콥을 누르고 타격왕을 따낼 때? 우승할 때?전... 지금입니다..!레이 채프먼(유격수): 낙뢰로 유격수인 나까지 쓰러질 뻔 했는데... 콜드웰 자네 단단히 미쳤군....감독은 그를 교체하고 병원에 보내려 했으나, 본인이 워낙 완강하게 교체를 거부하기에 어쩔수 없이 경기를 속행했고, 콜드웰은 마지막 타자를 아웃으로 잡아내고 완투승을 거둔다.번개 때문일까? 그의 집념 때문일까? 그는 그 해 클리블랜드에서 6경기 동안 5승 1패를 기록한다. 그 사이 쌓은 bwar은 무려 1.7이며, 5승 중에는 자신을 버린 양키스를 상대로 거둔 노히트 노런도 있었다. 그가 벼락에 맞고 불과 17일 이후의 일이었다.아마 눈썰미 좋은 클리블랜드 팬이라면, 이 글을 읽으면서 이미 이 글의 결말을 짐작했을 것이다.1919년 클리블랜드는 스피커의 지휘와 콜드웰의 벼락투혼으로 돌풍을 일으키며 우승에 도전했지만, 아쉽게도 시카고 화이트삭스에게 밀려 리그 2위에 그치고 만다. 다음해인 1920년, 클리블랜드는 절치부심해서 다시 한번 우승을 노린다. 콜드웰은 팀을 무단 이탈하는 일 없이 3선발로서 팀을 지탱하며, 생에 최초로 20승을 거둔다.이 과정에서 팀의 유격수 레이 채프먼이 공을 머리에 맞고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한다. 클리블랜드 선수들은 1920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거두고 채프먼의 영전에 바치는데, 이는 클리블랜드 최초의 우승이다.콜드웰은 1921년까지 뛰고 더는 메이저리그에서 뛰지 못한다. 대신 그는 끝까지 야구를 포기하지 않고 12년간 마이너리그에서 뛰다가 은퇴한다. 젊은시절에는 팀을 무단이탈하며 물의를 일으켰지만, 마이너리그에서 12년간 뛰었던걸 보면 야구에 대한 열정은 진심이었던 것 같다. 야구기자 월터 트럼블은 콜드웰이 젊은 시절 이러한 평가를 남겼다. "콜드웰은 야구를 정말 좋아하는 소년입니다. 그가 제 컨디션일 때, 그는 리그 최고의 투수로 군림합니다............타이 콥(Ty Cobb)과 존 맥그로(John Mcgrow) 같은 선수들은 절대 패배를 용납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단순히 동전 던지기에도 온 신경을 쏟습니다. 만약 콜드웰이 그들과 같은 불꽃을 가지고 더 큰 야망을 품는다면, 그는 야구사에 길이남을 선수가 될 것입니다."비록 그의 커리어는 월터 트럼블의 기대보다는 덜 훌륭하게 끝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야구에 대한 열정만은 진심이었던것 같다. 현재까지 클리블랜드의 우승은 두번밖에 없다.레이 채프먼이 사망하고, 중견수 트리스 스피커와 함께 우승을 거머쥐었던 1920년의 우승.흑인인 래리 도비와 사첼 페이지를 영입하면서, mvp 유격수 겸 감독인 루 보드로의 지휘 아래에 우승을 거머쥔 1948년.현재 가디언스의 기둥은 3루수 호세 라미레즈다.라미레즈 또한 보드로와 스피커와 같이,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하지만 라미레즈가 선대의 두 위대한 캡틴처럼, 클리블랜드에 우승컵을 가져오는 것이 가능할까? 나는 가능하리라 믿는다.클리블랜드는 스피커의 전설, 콜드웰의 투혼, 부드로의 지휘, 도비의 투쟁이 깃든 신성한 mlb의 성지이기 때문이다.
작성자 : ㅇㅇ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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