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군사력이나 뛰어난 외교 뭐 여러 이유를 열거하지만 모두 진정한 이유는 못 됨. 일단 스위스의 중립 기원부터 알아 봐야 그게 이해가 가능할거임.
1. 스위스 중립의 기원
[ 스위스의 팽창 ]
스위스 연방은 1200년대 합스부르크로부터 독립한 이래 지금 우리 인식과는 다르게 팽창주의적 대외정책을 펼친 나라임.
이유는 간단한데 초기 스위스는 지금의 스위스보다 더 작았기에 너무나 작은 체급상 안주하면 사실상 생존을 보장받을수 없었고,
[ 유럽연합 공동 프로젝트인
코페르니쿠스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토지 비옥도 : 빨강색 똥땅으로 가득한 스위스 지역 vs 녹색 꿀땅을 많이 보유한 프랑스,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
험준하고 척박한 산악지역에 자리잡아서 인구부양력에도 한계가 있었기에 어떻게든 확장을 해야만 했음.
그러나 스위스가 이런 수백년간의 팽창주의 정책에서 중립외교노선으로 전환하게 되는 사건이 1515년도에 일어남.
마리냐노 전투인데 당시 프랑스는 이탈리아 전쟁을 통해 이탈리아를 집어삼킬려고 하고 있었고,
부유한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은 가난하지만 용맹하기로 유명한 스위스 용병들을 고용함.
[ 서유럽 중기병의 전형: 프랑스 장다르메 ]
이 때 스위스는 역대급 규모의 용병을 보냈는데 상대는 서유럽 최대급 기병전력과 포병전력을 운용하던 프랑스였고,
포병대가 스위스 용병의 방진을 포탄으로 두드리고 기병으로 차지하는식으로 당시 스위스 용병 2만명중 1만명 이상이 전사하고 그외는 포로로 잡히는 참패를 당함.
당시 스위스 인구가 80만명에 젊은 성인 남성 인구는 고작 15-20만 정도란걸 생각하면 스위스 젊은 남성 5% 이상이 이 전투 한방으로 증발한거임.
그리고 이 이후 스위스는 사실상 프랑스의 반쯤 속국 노릇을 하다가,
파비아 전투때 이번엔 프랑스의 라이벌인 합스부르크에게 대판 깨지고 용병 산업 대신
[
네덜란드, 영국, 독일, 스위스등으로 대거 이주한 프랑스 위그노들 ]
위그노 내전과 낭트 칙령 폐지 이후 흘러들어온 프랑스 기술자들을 통해서 시계 산업등을 육성. 이게 스위스 명품 시계들이 종종 프랑스어인 이유.
이렇게 서서히 우리가 아는 스위스의 모양새를 갖추어 나가고, 어차피 크게 이익도 안되는 땅이라 유럽의 크고 작은 전쟁을 피해나갔음. 그 사건이 일어나기전까지.
2. 나폴레옹 전쟁과 빈 조약
[
프랑스 혁명 초기 러시아보다 인구 90만이 더 많았던 프랑스 ]
프랑스 대혁명이 터지며 스위스의 무장중립은 다시 한번 프랑스에게 대규모 침공으로 위협받음.
그리고 아무리 무장중립이니 뭐니해도 당시 러시아보다 많은 인구에 징병제로 230만 대육군을 쏟아내는 프랑스와 전체 인구가 160만에 불과한 스위스의 싸움은
[
프랑스의 스위스 침공로 ]
결과가 자명했고 스위스는 프랑스의 속국인 헬베티아 공화국으로 전환.
그리고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을 실패로 끝내고, 돌아오며 빈체제가 되면서 소위 영국, 프랑스,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란 5강대국들에 의해 중립을 보장받았고.
[
프랑스를 몰락시키기 위해 에워싼 반 프랑스 동맹 ]
여기까지가 통상적으로 알려진 내용인데 딱 한가지 추가적 사실을 빼놓고 있음. 바로 나폴레옹이 완전히 끝나기전까지 스위스는 중립을 허가받지 못했다는것.
무슨말이냐고? 말 그대로 영국,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등 강대국들이 프랑스가 완전히 패배하기전까지, 스위스 영토를 마음대로 통과해도 되게끔 강제했음.
그래도 스위스는 그 후로 중립이 지켜졌음. 대전쟁이 오기전까지는.
3. 대전쟁
[ 1900년 파리 박람회 ]
유럽의 최전성기인 벨에포크에 끝을 가져온 사건인 1차대전이 터지면서 스위스 또한 긴장할수 밖에 없었음.
유럽 열강들이 모두 휘말렸던 100년전의 나폴레옹 전쟁에서 스위스는 강대국이 스위스가 외치는 중립따위 무시하고 속국으로 만든 경험을 했기 때문.
[ 레닌의 행선지 ]
그래서 스위스는 촉각을 곤두세웠는데 하필 전쟁 말기에 사건이 하나 터짐.
그림-호프만 스캔들인데 사회주의적 성향을 지닌 스위스 정치인 로버트 그림과 그를 지지했던 연방 총재 아르투르 호프만이 러시아 사회주의 거두인 레닌을 스위스에서 러시아로 보내는데 협력했기 때문.
[ 러시아 내전 ]
당시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을 이기기 위해선 이중전선을 통한 독일 병력의 분산을 필수불가결로 여겼는데
레닌이 러시아로 가자마자 한일이 뭐임? 러시아 제국 전복이였고, 그로 인해 러시아가 전쟁에서 이탈하자 영국-프랑스는 스위스에 격노했고
[ 아르투르 호프만 ]
바로 " 중립 어쩌고 외치더만 스위스 놈들 독일에 동조하는 협력자네? " 라는 반응이 나왔고, 스위스는 " 우리는 그저 전쟁 종식과 평화를 원했을뿐 " 이라 얘기했지만
영국-프랑스는 " 누구를 위한 평화? " 라고 압력을 넣었고 결국 스위스 정부 내각의 총사퇴로, 스위스의 중립과 자주성을 그나마 지킬수 있었음.
그리고 이런 스위스의 중립이 또다시 위협 받는 사건이 얼마 안가 터짐. 대전쟁의 확장판인 2차 세계대전에서.
4. 2차 세계대전
2차대전에서 나치독일에 대항해 스위스가 길을 폭파하고 저항을 하려해서 독립을 지켰다...
라는건 절반만 옳은 소리임. 프랑스 대혁명기 스위스가 프랑스의 속국이 되었던것 처럼, 근본적으로 국가간의 전쟁에서 체급차는 그야말로 절대적임.
[ 스위스를 포위한 추축국 ]
그리고 독일도 당연히 스위스 같은 작은 나라를 죽일려고 작정했다면 중립 선언이건 스위스의 무장이건 무시하고 망하게 하는게 가능했음.
다만 이걸 안했던 이유는 이미 해상과 금융을 지배하던 영국과 미국등에 사실상 독일의 해외 무역이 봉쇄되다시피 한 상황에서,
자신들이 필요한 물자를 거래할 창구가 필요했고 그게 연합국도 아니고 추축국도 아닌 중립국이였던 스위스.
실제로 스위스도 말이야 세게 했지만, 정말로 독일이 빡치면 자기들이 멸망한다는걸 잘 알았기에 편의를 봐줌.
[ 미국 폭격에 폐허가 된 스위스 민가 ]
그리고 그랬던게 거슬렸기에 영국과 미국의 폭격기들은 스위스에 70번의 폭격으로 민간인을 살상하면서 독일과 더 붙어먹지 말라는 경고를 줌. 특히 미국 고위 장성 사이에선 " 스위스는 독일 동조국 " 이란 의혹이 만연했음.
사실 이때면 이미 대세는 연합국에 기울었기에, 스위스는 연합국의 저런 폭격들이 분명 전쟁 행위로 간주 될 수 있음에도 " 아 그래 오폭이지? 다음부터 잘하자 " 라는 스탠스로 국가의 생존과 중립국 지위를 위해 적당히 넘김.
그리고 2차대전 이후 냉전이란 초강대국간의 경쟁이 있었지만 큰 전쟁 없이 마무리 되었고 스위스의 독립과 중립성은 어느정도 지켜졌음.
5. 우크라이나 전쟁
그러나 이 중립이 최근에 와서 또 깨짐. 스위스 내에서도 말 많은 러시아 제재에 대한 동참이었는데,
아무리 유럽내에서의 전쟁에 반대한다고는 하지만 이건 분명히 서방 진영의 편을 드는 행위기에
[
스위스 무역의 약 60% 가 유럽연합 국가들 ]
엄밀한 의미의 " 중립 " 은 아니기 때문임. 그러나 위에서 말했듯 스위스는 주변 강대국들의 비위를 맞춰서 살아남은거지 그 자신의 역량만으로 생존한게 아님.
스위스 주변을 둘러싼 프랑스 독일 둘다 서방 진영이고 스위스의 최대 무역국들 또한 그런 주변 강대국인 이상
스위스가 아무리 완전 중립을 외치고 싶어도 국가의 안보를 위해서든, 자국의 경제적 번영을 위해서든
전쟁으로 편이 나뉘는 시점에서 자신을 둘러싼 주변 강대국 눈치 안 볼 재간은 없기 때문임.
지금까지 보면 알겠지만 결국 스위스의 중립이 가능한 이유는 주변 강대국들이 그걸 묵인해줘서이기 때문임.
그러나 한반도의 중립을 주변 강대국들이 묵인하기에 중국에게는 일본을 겨눌 칼자루이고
일본에게는 중국의 뒤통수를 후려깔 망치임. 즉 한국이 어떤 수를 동원해도 중국과 일본이 " 그래 한반도 너 안건드릴게 " 할일은 절대 없다는것.
[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모스크바까지 거리: 450km ]
어느 미친 강대국이 자국의 중심부를 건드릴수 있는 지역을 내주겠음? 그걸 허용하는 순간 강대국이 아니라는 증거이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도 근본적으로 그거임.
스위스는 그저 유럽 중간에 자리잡은 산악 국가인데 반해 한반도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태평양 건너 미국에게 아니라 바로 중국이랑 일본에게 너무, 너무 중요하단 소리.
사실 이런 반도 국가가 중립을 얻을수 있는 마지막 변수가 있긴한데 주변 강대국들을 때려 눕히고 자신이 그 지역 패권국이 되는 " 로마제국 엔딩 " 임.
그러나... 대역물에서조차 기껏해야 만주 정도를 확보하는데, 중국과 일본 전역을 확보하는 그런 지역 패권국이 되기에 한국의 체급이 딸린다는건 너도알고 나도 알고 모두가 아는 사실.
[ 동아시아 국가들 인구 ]
프랑스가 독일에게 밀린다며 벌벌 떤 체급차가 1.6배 독일이 소련의 인구수가 너무 많다며 공포에 질린 체급차가 2.1배임.
그에 비해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일본조차 한국의 2.5배에 중국은 28배가 넘음. 28배면 위에서 나온 나폴레옹 전쟁기 스위스-프랑스 제국과의 격차보다 더 심각하고 미국-캐나다 체급차보다도 심각함.
즉 한국 자체 역량으로 지역 패권국 되는건 사실 비현실적 일이고, 중립을 선언해도 중국이나 일본은 한국의 중립을 용인할 생각이 없음.
그래도 달라진점은 이전과 달리 미국이 있으니 원교근공과 함께 레버리지를 확보하는거 정도이나 한국도 급격한 고령화와 인구감소로 분명한 쇠락기에 접어들었으니 이조차 힘들어져가는중.
3줄 요약:
1. 스위스는 초기 팽창주의적 국가였으나, 프랑스에게 깨지고 무장중립으로 전환하고 그 이후 프랑스 혁명기에 군대만 200만이 넘어가던 프랑스 대비 전체 인구가 160만이던 스위스의 중립은 가볍게 무시당하고 침공받아 프랑스 속국으로 전락했음.
2. 빈 체제 이후 영국, 프랑스,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란 5대 강대국에 의해 중립을 보장받았으나 이마저도 프랑스 침공을 위한 동맹국 길을 내주는등 비위를 맞추고 얻은 결과이고 1차대전때는 레닌을 탈출시켜 독일을 도와줬다고 영국-프랑스 외교적 압력에 내각 총사퇴.
3.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스위스의 체급차이로 독일에 협력했으며 미국이 경고성으로 스위스 민가에 폭격을 해도 스위스는 연합국에 거스르지 못해 적당히 넘어갔듯이 스위스의 중립은 결국 강대국의 묵인에 기반하고 스위스는 유럽 중간 산악국가에 불과하나, 한반도는 중국과 일본의 심장부를 겨누는 주변 강대국에게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라 중립을 인정받기 힘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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