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1년에 단 하루, 기후현 히다 후루카와의 '산테라마이리' 방문기

톨레도와함께춤을춰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9.20 09:20:02
조회 8773 추천 40 댓글 33

202212월 홋카이도 여행에서 마주한 생경한 풍경은 남부지방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새로운 환상이었다. 세상 모두에 켜켜이 쌓아 올려진 하얀 눈과 그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눈이란 겨울 중 찾아오는 질척하고 귀찮은 이벤트에 불과했던 나에게 일본의 설국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기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7fed8275b58369f451ee82e141837c73e0276dfdf283ca6ee560e55e8c81a0


그 후 1년여가 지나 다시 일본을 여행하게 되었을 때, 나는 당연하게도 또다시 눈으로 덮인 세상을 보고 싶었고 910일간의 여행 동안 나고야에서 렌트카로 출발해 시라카와고-다카야마-스와-후지를 거쳐 도쿄로 향하는 일정을 계획했다. 일정에 대한 여러 정보를 수집하던 중, 다카야마에서 차로 30분여가 걸리는 시골 마을 히다현 후루카와에서 1년에 단 한번, 매년 115일 밤에 개최되는 산테라마이리라는 독특한 연래행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밤중 동행한 친구 넷과 히다 후루카와 역 주차장에 도착했다.


a04424ad2c06782ab47e5a67ee91766dc28ff1ecdaacc4c0bf10dac65ad3de21912b0367aea24d0ac8a5918e1fb445


그런데 사람과 차가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만 제설이 된 주차장에서 겨우 빠져나와 큰 거리로 향해보니, 축제 분위기는커녕 오가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잘못된 정보를 보고 내 고집으로 친구들을 데려온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함이 엄습했고 각종 짜증과 비난이 시작되었다그 와중 일본 촌 동네의 칼바람은 계속해서 패딩을 찢고 들어왔고, 오전엔 시라카와고, 오후엔 다카야마를 관광한 피로는 아스팔트 빙판길을 감당하지 못했다.


0490f719bd816bf520b5c6b236ef203e42d2866a46fde06340

각종 비난이 인신공격으로 바뀌어 갈 때쯤 다행히 너의 이름은 성지순례로도 유명한 히다 후루카와 역의 모습이 보였고, 역사 앞에 장식돼 있던 두 거대한 촛불의 모습은 그래도 뭔가가 이곳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0490f719bd816df020b5c6b236ef203e5e3850cdda8da993b3

어딘가로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점점 보이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이내 인파로 변했으며 길 중간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불꽃을 태우는 거대한 눈 촛불의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0490f719bd816bf020b5c6b236ef203ea9bc69506874fee279

0490f719bd816bf120b5c6b236ef203ecd18a8822baddab386

산테라마이리는 2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후루카와의 연래 행사로, 그 본질은 마을에 위치한 3개의 영험한 절을 하룻밤 만에 모두 참배하는 것이다. 역에서 가장 가까운 첫 번째 절 엔코우지부터 본격적으로 행사장이 조성되어 있었으며, 우리 또한 엔코우지를 방문하는 것으로 행사를 본격적으로 즐기기 시작했다

몹시 추운 날씨와 칼바람에도 불구하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자신의 기도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고, 마을 전체의 뜨거운 축제 분위기는 어릴떄의 명절 분위기를 떠올리게 해주었다.

0490f719bd816cf520b5c6b236ef203e8eabe4e84495407ab4

곳곳에서 나무로 불을 피우며 손을 녹일 수 있는 공간이 있었는데그 옆에서 마을 사람들이 직접 만든 모주와 찹쌀떡을 매우 싼 가격에 판매하고 계셔 복을 나눠 받기 위해 얼릉 사먹었다한잔에 100엔 정도의 원가만 받는 가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분명 마을 청년회 같은 곳에서 부스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모두가 하나같이 웃고 있는 모습이 참 정겨웠다.

0490f719bd816cf020b5c6b236ef203ec11e454e8c6c60006c

0490f719bc8469f220b5c6b236ef203ec007997fb2b8f2c6e1

따뜻한 모주는 마치 뜨거운 막걸리 찌꺼기와 술빵의 맛이 났는데날씨가 너무 추워 따뜻한 게 목구멍으로 들어오니 그저 맛이 좋았다찹쌀떡 또한 평범한 맛이었으나나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장소에서 소망을 이어가고나누기 위해 힘쓰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다는 기분이 정말 신비로웠다.

0490f719bd816bff20b5c6b236ef203eebc499cd3d0ea8bc35

마을 중간을 가로지르는 개울에서는 산테라마이리의 상징이자 하이라이트라고 하는 풍경이 펼쳐졌다. 수많은 사진사가 모여 기모노를 입은 기도하는 여인 무리를 촬영하고 있었는데, 원체 유명한 광경이라 마을에서 고용한 일종의 모델들이라는 말을 들었다.

0490f719bc8a60f220b5c6b236ef203ec1d4e0182878437224

작은 개울을 따라 저마다의 소망을 담고 따뜻하게 눈을 비추고 있는 붉은 촛불들의 모습은 인간에게 바람과 믿음이 어떤 의미인지를 조금이나마 가늠케 해주었다.

0490f719bd816df120b5c6b236ef203e4ec7164d1a163f4edb

0490f719bc8469f020b5c6b236ef203eca7131fb94d90d7fd1

0490f719bd816dff20b5c6b236ef203e3ca41989f4544af8ba

촛불을 따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걸어가다 보니 다른 두절혼코우지와 신슈우지에 자연스럽게 도착했고 막바지에 이른 행사의 열기가 서서히 사그라드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0490f719bd816ef620b5c6b236ef203eefc50c7ced6135596e

0490f719bd816ff720b5c6b236ef203e77c930941ae215b490

불앞에 모여 추운 날씨를 이겨내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은 왁자지껄 하기보단 마냥 따뜻했다.

0490f719bc8a60f420b5c6b236ef203eec756262f3b000637e

0490f719bd816ff020b5c6b236ef203e89e3296aff5488a922

어쨌든 우리는 행사를 그저 관광하러 온 이방인이었고, 날씨도 너무 추웠기에 현지인들과 함께 줄을 서서 참배하지는 않았으나, 남녀노소 모두가 이 추운 날 속에서 무언가를 기도하고, 즐거움을 나누고 있는 모습은 이 전통이 오랜 시간 동안 마을에서 지켜져 온 이유를 가늠하게 해주었다.

0490f719bc8a6fff20b5c6b236ef203e09b90427703a38570a

그렇게 행사 구경을 모두 마치고 다시 추운 빙판길을 걸어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동안, 아까 촛불을 발견하기 전까지 마냥 춥고 쓸쓸하게만 보였던 겨울밤 후루카와 마을의 풍경이 새롭게 보였다. 이렇게 집과 상점의 불이 모두 꺼져있는 이유는 아마도 마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두 모이는 큰 행사가 열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고, 그곳에서 사람들은 누구보다 즐겁게 새로운 한 해의 다짐과 소망을 쌓아 올리고 있을 것이다.

0490f719bc846af320b5c6b236ef203e295f803404e5693632

0490f719bc8a6ff020b5c6b236ef203e7332db40973c12a658

또 언제 이렇게 아름다운 눈보라 속의 일본 마을 풍경을 볼 수 있을까 싶어 가져간 오래된 필름 카메라로도 사진을 많이 찍었다.

0490f719bd8160f120b5c6b236ef203eef334770675e02261e

여행 기간, 일정 속 우연히 그 시간이 겹쳐 방문한 한 시골 마을의 아름다운 행사 덕분에 새로운 한해에 대한 다짐과 소망을 작게나마 마음속에 간직하고 한 해를 시작할 수 있었다.

0490f719bc8469f620b5c6b236ef203e22b2d18e355e7c08e0

벌써 3개월밖에 남지 않은 올해를 되돌아보며, 지나간 시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만약 내가 먼 훗날 후루카와의 산테라마이리에 또 방문한다면 그때는 어떤 소망을 비는 사람이 되어 있을까그때의 나는 마을 사람들의 소망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을까.



출처: 일본여행 - 관동이외 갤러리 [원본 보기]

추천 비추천

40

고정닉 14

3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이슈 [디시人터뷰] 라이징 스타로 인정받은 걸그룹, ‘리센느(RESCENE)’ 운영자 24/11/08 - -
설문 축의금 적게 내면 눈치 줄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11/11 - -
279542
썸네일
[기갤] 쾅쾅쾅' 폭발음 속 불기둥…포스코 주변 "전쟁이라도 난 줄".jpg
[239]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10 23043 59
279539
썸네일
[싱갤] 프라모델로 나온 한국군 병기 - 항공장비 3부
[14]
호순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10 12498 22
279537
썸네일
[남갤] 어떤 남자가 할아버지랑 산책 중인 강아지 납치
[326]
ㅇㅇ(106.101) 11.10 28975 209
279536
썸네일
[야갤] 여의도 증권맨이라던 소개팅 앱 남성…코인에 빠진 사기꾼.jpg
[12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10 31484 45
279534
썸네일
[싱갤] 싱글벙글 일본을 처음 보고 경악한 미군들
[726]
코드치기귀찮아서만든계정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10 52322 283
279532
썸네일
[이갤] 아름답고 고귀한 게이 퀴어영화 TOP 15..gif
[172]
이시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10 16835 41
279530
썸네일
[도갤] 부산롯데타워의 역사
[208]
Ndd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10 16120 100
279528
썸네일
[싱갤] 싱글벙글 히말라야 산골마을 결혼식.jpg
[134]
최강한화이글스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10 20195 122
279526
썸네일
[카연] 마왕군 사천왕 예견의 퓨쳐뷰어 2부 19화
[19]
위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10 8743 53
279524
썸네일
[디갤] 올림픽 공원 갔다 온 사진 여러장
[18]
CANON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10 9761 17
279522
썸네일
[야갤] 90년대 중대장 와꾸.JPG
[627]
멸공의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10 45226 254
279518
썸네일
[싱갤] 싱글벙글 유명한 소설 속 명문장 모음
[231]
ㅇㅇ(118.218) 11.10 31289 166
279516
썸네일
[일갤] 도쿄 가볼만한 근교 & 소규모 관광지 정리
[106]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10 13854 57
279514
썸네일
[싱갤] 싱글벙글 가장 많은 돈을 번 작가들 순자산 순위
[154]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10 34336 69
279512
썸네일
[유갤] 인생 첫 캠핑 후기 (11/6 노을캠핑장)
[36]
데이드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10 9130 46
279510
썸네일
[상갤] 다시보는 할리우드 VFX 아티스트들의 감독 협업 썰
[22]
dd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10 10606 10
279508
썸네일
[싱갤] 강대국들이 내걸었던 슬로건.jpg
[261]
ㅇㅇ(1.230) 11.10 35067 63
279507
썸네일
[카연] 프랑켄슈타인 창작: 저도 옷을 입고 싶어요(?)
[44]
만화가좋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10 18228 37
279505
썸네일
[블갤] 도킹! 도킹! 철도가키 댄스 오토마타를 만들어보자
[162]
DBshotgun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10 19346 131
279503
썸네일
[싱갤] 싱글벙글 카페에서 진짜 민폐라는 부류
[442]
ㅇㅇ(61.108) 11.10 68778 422
279502
썸네일
[이갤] 영화 속 여자 악당캐릭터 와꾸 TOP 20..gif
[256]
이시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10 39758 53
279498
썸네일
[포갤] 블랙 팬서를 싫어하는 대니 브라운
[81]
이오더매드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10 27541 102
279497
썸네일
[싱갤] 부글부글 서울대 박사 일가족 월북 사건... jpg
[683]
케넨천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10 57569 540
279495
썸네일
[삼갤] 먼곤이형 인터뷰 보다가 나도 울컥했다.jpg
[30]
ㅇㅇ(106.101) 11.10 17975 94
279493
썸네일
[디갤] 티티아티산 75mm f2 작례 및 후기
[18]
영니충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10 8018 10
279492
썸네일
[지갤] 과연 산업화와 이산화탄소로 지구가 망할 것인가
[725]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10 24881 246
279490
썸네일
[싱갤] 싱글벙글 한 카페가 24시간 영업을 그만둔 이유
[451]
최강한화이글스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10 50219 344
279488
썸네일
[강갤] UDU 출신 수영피셜
[170]
강갤러(117.111) 11.09 30999 49
279487
썸네일
[싱갤] 싱글벙글 한국이 좆박았다는 성평등 순위에 대해 알아보자
[306]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9 44778 592
279485
썸네일
[싱갤] 싱글벙글 웹툰에서 표현되는 여고생
[204]
코드치기귀찮아서만든계정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9 55814 357
279482
썸네일
[모갤] 스압) 미니어쳐 또 만들었다.JPG
[24]
ㄹㄹ(211.110) 11.09 9663 27
279480
썸네일
[L갤] 작년징동다큐가 페이커로 해준 오펜하이머 브금연출.txt
[82]
미사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9 25084 95
279478
썸네일
[카연] 친구를 기다리는.manhwa
[46]
사자베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9 17529 58
279477
썸네일
[이갤] 백인들에게 얼굴로 존경받는 동양인 배우 TOP 10..gif
[494]
이시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9 53799 146
279475
썸네일
[싱갤] 싱글벙글 사교육 고봉밥
[259]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9 39470 140
279473
썸네일
[디갤] 창덕궁 후원은 념글 치트기죠. .?
[33]
ㅇ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9 9940 43
279472
썸네일
[피갤] [약혐, 약스압] 파랑 피크민 코스프레 해봤다
[305]
하츠즈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9 18452 137
279470
썸네일
[싱갤] 싱글벙글 일본의 사채 쓰는 여자들
[451]
운지노무스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9 61665 423
279468
썸네일
[기갤] 일리야가 귀화시험에서 딱 하나 틀린 문제
[316]
긷갤러(223.38) 11.09 34178 244
279467
썸네일
[위갤] 뻑가 신상털이를 통해 알아보는 '크리덴셜 스터핑'의 위험성
[599]
위키리크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9 40644 331
279465
썸네일
[야갤] 트럼프 젊은 시절 진짜 광기....
[439]
야갤러(183.96) 11.09 50010 483
279462
썸네일
[싱갤] 싱글벙글 한국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1205]
니지카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9 51905 183
279460
썸네일
[카연] 진호의 순수한 연애몽마들 21화
[76]
pot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9 14433 105
279458
썸네일
[삼갤] 베어스티비) 박석민 타격이론, 두산 온 소감
[81]
민지베어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9 22050 111
279457
썸네일
[싱갤] 싱글벙글 사기로 밝혀진 키크는 주사
[546]
ㅇㅇ(116.84) 11.09 51505 212
279455
썸네일
[나갤] 나무위키와 한국 커뮤니티 차이점
[746]
인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9 42212 478
279453
썸네일
[디갤] 최근 찍은 사진 스트릿..
[35]
ㅁㅂㅎㄹ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9 10674 30
279452
썸네일
[싱갤] 싱글벙글 트럼프가 당선되서 개이득본 나라들 TOP 3
[496]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9 51384 341
279450
썸네일
[야갤] 고전) 우러전쟁 종결시켜버린 트럼프.JPG
[295]
앨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9 30954 501
279448
썸네일
[싱갤] 싱글벙글 은근슬쩍 사상넣으려다 컷된 PC충
[174]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9 57672 404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