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hani.co.kr/arti/opinion/because/89552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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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나 미국의 주거지역에는 고층 아파트가 거의 없다. 왜일까? 이들이 아파트를 고층으로 짓지 않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고층 거주가 끼치는 해악의 심각성에 관한 연구 결과도 큰 영향을 주었다.
학술적으로는 1970~80년대에 이미 고층 아파트 거주와 정신병리학적인 증상의 관계성에 대한 연구는 거의 다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코넬대학교 연구팀과 캐나다 브리티시콜롬비아대학교 연구팀은 각각 전세계에서 진행된 고층 아파트가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에 관련된 연구를 망라해 조사했다. 두 기관의 공통적인 결론은 고층 아파트가 개인이나 가족에게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부정적인 효과가 압도적이라는 것이다.
몇몇 연구 결과를 예시로 살펴보자. 아파트의 고층에 거주할수록, 또 고층 단지에 살수록 저층에 사는 사람들보다 정신적 질환이 더 많다. 가족 간의 불화 또한 더 높은 빈도로 발생한다. 가정 폭력이나 부부 간의 갈등도 더 많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고층 아파트 거주의 부정적인 영향이 더 크게 나타난다. 고층 아파트에 사는 어린이들에게는 우울증, 야뇨증, 공포장애 등 심리적 이상증세가 더 많이 관측된다. 또한 남학생들의 경우 집중력이 떨어지고 행동장애가 더 많이 나타난다. 어른들도 예외는 아니다. 고층에 살수록 우울증, 조현병을 비롯한 정신적 질환의 발생률이 더 높다. 5층 이상에 사는 사람이 4층 이하에 사는 사람보다 정신적인 이상 증상이 두배나 더 많다는 연구도 있다. 필자가 우리나라의 영구임대아파트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자료의 한계가 있지만, 높은 층에 거주할수록 저층 거주자보다 자살률이 더 높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처럼 개인이나 가족에게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도 심각하지만 우리는 고층 아파트가 야기하는 사회적 악영향의 심각성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 고층 거주자들은 상대적으로 이웃과의 교류가 더 적다. 또한 고층 아파트 단지에 거주할수록 혹은 살고 있는 층이 높을수록 남을 도와주려는 의지나 빈도가 더 적다. 즉, 고층에 살수록 ‘사회적 지지’(social support)가 줄어든다.
최근에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 <스카이 캐슬>에서 서울대에만 입학한다면 자녀의 인성과 가족관계가 망가져도 좋다는 선택을 한다. 아파트를 무조건 높게 지으려는 욕망도 유사한 면이 있다. 사업성만 높아진다면 나, 우리 가족이 정신질환에 걸리고 사회가 망가져도 좋다는 선택을 지금 우리는 하고 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특정 지역을 제외하고는 고층 아파트를 짓지 않는다. 공동주택을 짓더라도 거의 5층 이하다. 그러나 우리는 무조건 고층으로 아파트를 지으려 한다. 고층 아파트가 분양이 잘되어 사업성이 좋다는 돈이 우선하는 논리다.
아파트 층수를 왜 규제하냐고 외치는 조합원들의 데모가 끊이지 않고 있다. 아파트를 고층으로 짓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재산권의 행사이며 나의 권리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고층 아파트를 짓는 것은 단순히 산이나 강 등의 경관을 특정 계층이 사유화하는 것만의 문제는 아니다. 경관 문제보다도 더 심각한 건 사람들이 고층 아파트 위주의 주거 공간에서 살게 될 때 공동체의 해체가 가속화해 ‘사회 공동선’이 와해된다는 것이다. 외국의 연구에서 보듯이 고층에 사는 주민들은 상대적으로 남을 도와주는 행위가 더 적다. 우리 사회는 위층 소음에 견디다 못해 이웃을 칼로 찔러 죽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문제의 핵심은 콘크리트 바닥 두께가 아니라 ‘공동체의 와해’가 근본적인 문제다. 사회의 공동선이 무너진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이제부터라도 사회적 관계가 잘 일어나도록 아파트를 지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저층 위주로 아파트 단지를 지어야 한다. 같은 면적의 단지에 똑같은 세대 수를 짓더라도 지금처럼 고층으로 띄엄띄엄 짓기보다는 저층 위주로 건물을 서로 붙여서 건폐율이 높게 지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 간의 ‘우연한 마주침’이 더 많이 일어나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커뮤니티의 형성이 시작된다. 그 기반에서 ‘사회의 공동선’이 형성되고, 이웃이나 타인의 어려움에 손을 내밀고 사회문제 해결에 참여하는 ‘사회적 지지’가 증가한다. 이것이 ‘공간적 정의’(spatial justice)이며 ‘사회적 정의’이다.
김영욱, 세종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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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전에 대한 지옥불 같은 욕망 탓에... 항국인은 도대체 무슨 짓을 저릴러 버린 것인가...
안타깝게도 이젠 돌이킬 수 없게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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