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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증리)라이저우 증류소
라이저우 증류소는 2021년 중국 쓰촨성 청두시 충라이(邛崍)에 설립된 신생 증류소로, 이 지역은 예로부터 바이주 생산지로서 긴 증류 역사를 자랑합니다.중국 내 위스키 신생 증류소 중에서도 관심을 두고 지켜보던 곳이었는데, 지인의 도움 덕분에 드물게 견학할 기회를 얻어 다녀왔습니다.라이저우는 약 15만 m²(약 45,375평) 부지에 위치해 있으며, 연간 약 6,500만 리터의 순수 알코올(LPA)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이는 스코틀랜드 싱글몰트 증류소 중 최대 생산량을 자랑하는 글렌피딕(약 2,100만 LPA)의 약 3배 수준이며, 지금까지 제가 방문한 모든 증류소를 통틀어 가장 규모가 컸습니다.증류소 축소 모형그간 대부분의 증류소에서는 생산량과 품질이 반비례하는 경험을 자주 했습니다. 현실적으로 생산량이 많을수록 품질 관리에 집중하기 어려워지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 견학은 그러한 선입견을 깨는 계기가 되었습니다.생산 공정을 미디어아트를 통해 소개하는 방식은 마치 위스키 테마파크에 온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대형 위스키 브랜드들이 대중 소비자와의 접점을 만들기 위해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도입하는 경우가 있는데 (예: 에든버러 조니 워커 하우스, 맥캘란 에스테이트), 라이저우는 그중에서도 감각적으로 가장 잘 구성된 투어였습니다.캐스크 내부에 묻어있는 와인 결정을 확대한 전시, 분홍빛이 와인캐스크가 주는 풍미와 시각적으로 어울린다.투어 초반에는 생산 공정에 대한 전시가 이어지고, 중간에는 브랜드 철학을 전하는 연극이 있었습니다. 증류소에서 연극을 본 건 조니 워커 하우스 이후 처음인데, 전 세계 위스키의 역사를 간략히 소개하며 ‘중국에서 위스키를 만든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화두에서 시작해 그 해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부분은 시음기에서 다시 다루겠습니다.킬트 저렇게 입는거 아닌데.. 부들부들..과거 아드벡에서 일할 당시, 업계 동료로 증류소를 방문하면 특별히 더 많은 걸 보여주려는 관행이 있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이번 견학에서도 일반 투어에서는 보기 힘든 생산 설비들을 자세히 볼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일반 견학으로는 들어올 수 없는 생산현장. 님들두 증류소 하셈 두번 하셈라이저우는 일반적인 증류소라기보다는 ‘증류 도시’에 가까운 인상을 주었습니다. 모든 것이 압도적으로 큽니다. 예를 들어 800톤 규모의 발효조(아드벡은 10톤)는 어지간한 아파트보다도 클 정도였습니다. 시작한 지 4년 만에 120만 개의 오크통을 채웠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이제 막 100개를 넘긴 저희 작은 증류소가 떠올랐습니다.건물 외벽을 뚫고 나온 800리터 발효조특이하게도 설비 발주를 단일 업체가 아닌, 두 업체에 나눠서 진행했습니다. 서로 다른 업체에서 제작한 두 개의 매시튠을 통해 맑은 워트와 탁한 워트를 각각 생산하고, 증류기 10기의 형태를 전부 다르게 설계해 다양한 스타일의 스피릿을 얻는 방식은 마치 일본 야마자키의 방식을 한 단계 진화시킨 느낌이었습니다.증류기의 모양이 전부 다르다생산 외적인 부분에서도 기존 증류소들의 장점을 연구하고 개선한 흔적들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스펜트 그레인을 바이오연료로 활용하는 방식(글렌피딕 사례), 바이오매스를 활용한 스팀 생산(맥캘란 방식), 발효 시 발생한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RTD 음료의 탄산가스로 재사용하는 등 최신 친환경 기술이 폭넓게 적용되어 있었습니다.스펜트 그레인으로 만든 쿠키, 화심주조는 지게미로 만든 약과를 준비중이다대형 증류소답게 자체 쿠퍼리지를 갖추고 있었고, 지금까지 본 쿠퍼리지 중 가장 정돈된 느낌이었습니다. 특히 STR 공정을 자동화한 설비를 갖추고 있어 레드 와인 캐스크 활용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한 오크통 거래업자에 따르면 하루 약 700개의 캐스크를 입고한다고 합니다.중국산 참나무로 만든 오크통, 미즈나라와 같은 수종(퀘르쿠스 몽골리카)이다이쯤 되면 독자 분들 중에는 ‘그렇게 규모가 크면 품질은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들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지금까지는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고, 대부분의 대형 증류소가 그랬습니다. 하지만 라이저우는 예외였습니다.일본, 스코틀랜드, 제3국의 다양한 신생 증류소 제품을 경험해왔지만, 단언컨대 최근 경험한 신생 증류소 중에서는 가장 뛰어난 품질을 가진 곳이라고 느꼈습니다. 뉴메이크 스피릿 시음부터 시작했는데, 화려한 에스테르 향과 달콤한 곡물향이 공존하는 두 가지 타입의 스피릿을 적절히 블렌딩하고 있었습니다.남의 증류소에 갔는데 뉴메이크 스피릿을 맛 보여준다는 것은 둘 중 하나다. 모든걸 다 주고 있거나, 정말 자신있거나헤리엇 와트의 위스키 전공 출신이라는 담당자와 금세 친해져, 일반 투어에서는 제공되지 않는 다양한 제품들을 시음해볼 수 있었는데 그중 황주 캐스크에 숙성한 제품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중국 황주는 개인적으로 드라이 셰리와 비슷한 뉘앙스를 느꼈던 술인데, 그 캐스크에 위스키를 숙성하다니 조합이 흥미로웠고 결과는 인상적이었습니다. 안개 낀 산 속 신사(神祠)의 분위기, 오래된 고목 향, 은은한 약재향, 황토흙의 뉘앙스가 섞인 독특한 풍미였습니다. 그야말로 ‘액체로 만든 중국’ 같았습니다.황주캐스크에 대한 설명, 혼자 잘하지 말고 서로 페어플레이 하자고 아ㅋㅋ규모만 큰 것이 아니라, 티베트산 몰트를 사용하는 시도, 중국 와인을 주정강화해 오크통을 시즈닝하는 실험 등 크래프트적인 접근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토록 거대한 증류소가 실험정신까지 갖추고 있다니, 참 비겁하다고 느꼈고, 저도 멈추지 말아야겠다는 동기를 얻었습니다.스코틀랜드 하이랜드가 아닌 중국 하이랜드(티벳)이다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중국을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 저에게도 약간의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경험한 중국은 제 기대 이상으로 위대했습니다. 직원들은 “중국의 위스키는 중국다워야 한다”는 비전을 공유하며,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제품을 다듬고 있었습니다. 단순한 견학을 넘어, 저 개인에게도 의미 있는 배움의 시간이었습니다.후기 중 언급한 황주 캐스크 제품은 소량 샘플을 조금 챙겨왔습니다. 언젠가 위스키 갤러리 분들을 대상으로 두번째 견학을 모시거나, BYOB에 참여할 기회가 생긴다면, 이 귀한 샘플을 함께 나눠보고 싶습니다.
작성자 : 이탄심판관고정닉
(스압) 싱글벙글 GOAT급 밴드 레드제플린에 대해 알아보자
영국의 레전드 록밴드 레드제플린에 대해 알아보자글을 시작하기 앞서 첨부된 곡들은 잠깐이라도 들어주길 바람원래 레드제플린은 야드버즈라는 밴드에서 시작됬음야드버즈는 1963년에 결성된 밴드인데 에릭 클랩튼과 제프 백이라는 빅네임드들이 몸을 담고있던 밴드였음그렇게 잘 나가던 야드버즈는 시간이 흘러 에릭 클랩튼과 제프 백이 탈퇴하고 인기가 시들어짐그렇게 야드버즈는 지미페이지와 창립 맴버인 크리스 드레야만이 남게 되었음지미페이지는 밴드를 이어가기 위해 여러 음악가들을 영입했고 그 과정에서 영입된게 보컬의 로버트 플랜드, 드럼의 존 본햄, 베이스의 존 폴 존스임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미 페이지와 함께하던 크리스 드레야가 탈퇴하게 됨그렇게 결성이 되고 밴드 명을 뉴 야드버즈로 지었는데 드레야가 너무 밋밋하다는 이유로 밴드 명을 바꾸길 요구했고그래서 나온게 레드 제플린임그리고 드디어 1969년 1월 12일 1집인 Led Zeppelin이 발매되었음1집에서 보여준 헤비 블루스 사운드는 미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게됨하지만 현대에 들어서 받는 평가와 다르게 평론가들과 동료 뮤지션들에겐 좋지 못한 평을 받음그래도 미국 리스너들은 레드 제플린을 반겨주며 멤버들이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을 생각하게된 계기가 되었음레드 제플린은 미국에서의 인기에 북미 공연이 지속되었고 결국 1969년 10월 22일 미국에서 2집 Led Zeppelin II가 발매되었음반응은 역시나 인기 폭발이었고 선주문만 무려 40만장을 돌파하게됨하지만 2집은 시기상 별로 좋지 못했는데, 엄청나게 성공한 두 앨범인 사이먼 앤 가펑클의 Bridge Over Troubled Water와 비틀즈의 Abbey Road 사이에 애매하게 끼어있었음그래도 결국 레드 제플린은 비틀즈의 애비로드를 꺾고 빌보드 1위를 차지해 7주간이나 1위를 기록하게됨이렇게 레드 제플린은 세계 최정상의 위치로 향하고 있었음그러던 1970년 4월 8일 최정상의 밴드 비틀즈가 폴 매카트니의 탈퇴로 해체되었고, 롤링 스톤스, 더 후, 핑크 플로이드, 같은 엄청난 네임드들이 주도하는 록의 전성기가 이어지게됨그렇게 1970년 8월부터 레드 제플린의 미국 투어가 시작되었음9월 4일 로스엔젤레스에서 Led Zeppelin III에 수록될 곡들이 연주되었고 팬들의 반응은 대체로 뜨거웠음그렇게 1970년 10월 5일, 미국에서 3집이 발매되었음우리에겐 토르 ost로 알려진 immigrant song으로 시작되어 뒷부분으로 갈수록 브리티시 포크 록 사운드가 나는 앨범에 리스너들은 당황했지만,역시나 반응은 좋았고 평론가들의 평도 좋았음3집은 의외로 상업적으론 실패한 앨범임 1971년 가장 잘팔린 앨범이었지만 1500만장이나 팔린 2집에 비하여 700만장 가량 팔렸음을 감안하면 사실상 상업적 실패였음지미 페이지와 로버트 플랜트는 4집은 헤비 메탈과 하드 록에 가까운 분위기로 구성하기로 하였음둘은 4집 구상을 위하여 웨일스의 브로니어 별장으로 떠났고 Stairway to Heaven과 같은 명곡이 구상되기도 함그렇게 1971년 11월 8일 가칭 Led Zeppelin IV가 발매되었음이 앨범이 가칭인 이유는 정확한 이름이 없기 때문임지미 또한 앨범이 제목이 없는 '무제'임을 강조했음4집은 총3700만장을 팔아치웠고 레드 제플린 커리어에서 가장 성공한 앨범이자 대중음악 역사상 여섯번째로 많이 팔린 앨범이며, 록 장르 음반 중 세 번째로 많이 팔린 앨범이다. 또한 헤비메탈, 포크 록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임1972년 10월 뭄바이를 떠나 싱가포르를 거쳐 일본 투어를 나섰음원래는 싱가포르에서 공연을 할 예정이었지만 당국에서 좋지 않을 영향을 우려하여머리를 다 깎아야만 공연 허가를 해준다는 말에 일본의 부도칸에서 공연을 하게됨당시 멤버들은 여느 록밴드처럼 코카인을 즐겼는데, 레드 제플린의 한 관계자가 일본 투어를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오던 멤버들의 경유지였던홍콩에서 운반책의 실수로 코카인 대신 헤로인이 전달되는 불상사가 벌어졌고 그로인해 지미는 8년간 만성적 헤로인 중독에 시달리게 되었다는 웃픈 이야기가 있음1973년 3월 28일에 발매한 5집인 Houses of the Holy는 전작의 하드 록을 그대로 계승했다함로버트 플랜트의 하이 톤 보컬의 최전성기를 보여주기도했음전작이 대흥행하여 정상급 밴드가 되었기에 미국에서만 1100만장이 팔리는 흥행을 이룰수 있었음빌보드200에서 1위를 차지하고, UK 차트에서도 1위를 차지하였음이로인해 핑크 플로이드의 명반인 The Dark Side of the Moon이 UK차트 1위를 실패하기도 했음1975년 2월 24일 6집인 Physical Graffiti가 발매되었음레드 제플린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의 더블 앨범이기도 함한편 계속된 투어로 로버트 플랜트의 목은 완전히 맛이 가버렸음그리고 6집의 성공과는 반대로 멤버들은 방탕에 찌들어 점차 망가지고 있었음지미는 헤로인에 완전히 중독되었고 존 본햄도 각종 괴상한 마약들에 중독되었음존 폴 존스는 멤버들과 겉돌면서 팀과 어우러지지 못했고 플랜트와 지미는 아랑곳 않고 친목질을 했음이렇게 멤버들은 완전히 맛이 가버리게 됨1976년 3월 31일에 7집인 Presense가 발매되었음이 앨범은 레드 제플린의 하락세를 알리는 앨범이자 전작에 가려져 범작 취급을 받는 불운의 앨범임그래도 레드 제플린의 이름 답게 전체적인 퀄리티도 좋은편임전작의 대성공과 투어로 인해 멤버들은 어마어마한 수익을 벌어들였음당시 영국은 무려 수익의 95%를 세금으로 걷어갔는데, 이 떄문에 멤버들은 유럽을 돌아다니며 세금을 도피하기도 했음이러던 와중 그리스의 로도스 섬에서 로버트 플랜트와 그의 가족이 타고있던 차가 절벽으로 떨어짐지미는 투어 메니저 리처드 콜에게 전화하여 영국 최고의 의료진을 보냈고, 플랜트는 핑크 플로이드의 리더 로저 워터스의 별장으로 옮겨짐이러한 악재로 치료를 위해 영국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스튜디오 사용이 2주일밖에 남지 않았기에 밴드는 엄청난 속도로 제작에 들어감그래서 앨범의 전체 사운드는 5, 6집에 비해 통일성 있는편임이로 인한 스트레스로 멤버들과 관계자들은 마약에 빠지기도 함1979년 8월 15일 8집 In Through the Out Door이 발매되었음이 앨범은 실질적 마지막 앨범인데, 정규 9집 Coda는 밴드 해체 이후 미공개곡들을 모아 낸 앨범이기 때문임멤버들은 전작의 실패가 홍보 부족이라 생각하고 투어를 돌아 미시간주 공연에선 무려 76000여명의 광객을 동원해 자신들의 최다 기록을 깨기도 했음그러나 투어에서 지미는 헤로인 중독으로 기타도 못칠정도로 살이 빠졌고, 플랜트도 다친 다리로 인해 진통제를 복용하고 무대에 오르기도 했음심지어 투어 도중 플랜트의 아들이 사망하기도 하여 투어 종류 후 플랜트는 자택에 무기한 칩거하게 됨1년이 지나 플랜트는 돌아왔지만 존 폴 존스를 제외한 멤버들의 상태는 심각했음그로인해 플랜트가 존스가 함께 주도적으로 곡을 작업하였음당시 지미는 작곡은 물론 기타도 연주하기 힘들어했기 때문에 8집의 수록곡들은 기타의 비중이 적은편임또한 존스와 플랜트가 중심이 되어 All My Love처럼 지미가 작사 작곡에 일절 참여하지 않은 곡들도 있음1980년 9월 25일 존 본햄이 사망하게됨1980년을 맞이한 투어를 리허설 한뒤, 지미의 집에서 파티를 열었음본햄은 늘 그랬듯이 보드카를 폭음하였고 본햄은 자면서 구토를 하여 토사물이 목을 막아 질식하게 된거임당시 흑마법에 빠져있던 지미는 본햄을 살려보겠다고 흑마법 주문을 읽기도 했지만 통할리가 없었고이후 지미는 흑마법에 관심을 끊어버림이후 레드 제플린은 해체되었고 1982년 마지막 정규앨범 Coda를 발표하기도 함그후 제플린은 실망스러운 행보를 걸었고 1995년 1월 12일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음그러던 2005년 자선 공연 라이브8이 열렸고, 여러 뮤지션들이 참가했지만 핑크 플로이드가 가장 주목받게됨무려 55억명이 인터넷으로 바라본 공연에서 열정적으로 공연을 펼쳤음그 공연을 감명깊게 본 플랜트는 레드 제플린의 재결성을 결정하게 됨2007년 12월 10일 재결성 공연이 이루어졌으며 무려 2000만명이 이 공연을 예매시도하기도 했음그 후 12년도까지 재결합 하지 않고 함께 해나갔고 14년도에 재결성은 결렬되었음이후로는 로버트 플랜트, 지미 패이지, 존 폴 존스 모두가 자신의 활동을 이어나가는중임 처음 써보는 장문이라 부족함이 많았음글에 부족한 점이라거나 부가할 내용이 있다면 댓글로 적어주셈그리고 궁금한 밴드나 뮤지션이 있다면 다음 기회에 글로 적어보겠음
작성자 : 바나나너무좋아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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