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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채널 점령한 07년생 김은지 - 중앙일보 기사

프록메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12.05 08:46:49
조회 236 추천 13 댓글 1

https://news.koreadaily.com/2024/12/03/sports/nomalsports/20241203070230771.html

 

바둑 전문 TV채널은 두 개가 있다. 프로기사와 아마기사는 수백, 수천 명이지만 신진서, 최정, 김은지까지 세 명의 9단이 두 채 널의 실질적인 주인공 역할을 맡고 있다.


이전엔 최정과 신진서가 번갈아 채널을 점령했는데 요즘엔 김은지가 주목 받는 분위기다. 어떤 때는 김은지가 두 개 채널을 동시에 점령할 때도 있다. 채널 운영자에게 문의했더니 "시청률 차이가 크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2007년생 김은지는 17세 소녀지만 이미 신인 티를 벗고 질주 중이다. 신진서는 '최근 유망한 신예 기사가 누구인가'를 묻는 질문에 여러 남자기사를 제쳐 놓고 첫 손에 김은지를 꼽았다. 여자랭킹 1위 최정(26)에 이어 2위를 달리는 김은지는 한때 1위에 오른 적도 있다. 신진서가 독주하는 남자부와 달리 여자 쪽은 세대 간의 대결이 박진감 있게 전개되고 있다.


중국의 독무대로 끝난 2024 삼성화재배에서도 최정과 김은지는 나란히 본선에 합류했다. 치열한 통합 예선에서 남자들은 중국에 대패했지만 여자는 2장의 본선 카드를 모두 차지했다. 본선 첫 판에서도 최정은 구쯔하오를, 김은지는 셰얼하오를 각각 꺾었다. 중국이 몰고 온 먹구름 속에서 한줄기 빛을 보여줬다. 구쯔하오는 세계대회서 2번 우승한 강자다. 셰얼하오는 지난해 삼성화재배에서 신진서를 꺾고 올라가 준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만만찮은 강자들을 제압하는 두 여자기사를 보며 바둑의 새시대가 가까이 왔음을 직감했다.


바둑엔 남녀 간의 벽이 존재한다. 예전엔 도전 불가능한 철벽으로 여겨졌지만, 루이나이웨이를 거쳐 최정이 그 벽을 허물었다. 2년전 삼성화재배에서 준우승을 거둔 것이다. 최정의 활약을 보며 김은지도 자신감과 희망을 갖게 됐다. 그저 벽을 허무는 정도에서 멈추지 않고 남자 바둑을 정복하겠다는 야심을 품었다. 김은지는 "내 바둑 인생의 목표는 세계대회 우승"이라고 당당히 말한다.


김은지는 삼성화재배 직후 중국 푸저우에서 열린 오청원배 여자세계대회서 4강까지 진출했으나 중국의 신예 탕자원에게 패배했다. 유리하던 바둑이 순식간에 뒤집혔다. TV로 함께 관전하던 김은지의 스승 장수영 9단은 “(은지가) 전투력은 강한데 안정감이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전투는 남자에게도 뒤지지 않지만, 차분히 장기전을 펼치는 상대에겐 허점을 보인다는 의미다. 장 9단은 그래도 끊임없이 전투를 펼치는 김은지의 대국 방식을 지지한다. 전투력은 때가 있어 지금 아니면 키울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은지에겐 휴대폰이 없다. 카페에도 가본 적이 없다. 하루하루를 대국과 공부로 보낸다. 지난해엔 무려 160판(109승51패)을 두어 프로기사 중 대국 수 1위였다. 올해는 현재 106전 80승 26패. 그중 남자기사를 상대로 29승 17패를 기록했다. 바둑을 지면 어머니 옆에 가서 운다. 강한 승부근성 탓인지 몇 번을 울어도 또 운다.


한국 바둑의 원톱 신진서 9단이 유망 신예로 김은지를 꼽은 건 매우 이례적이다. 여자가 한국 바둑의 대통을 잇는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지만, 김은지를 지목한 신진서의 심정만큼은 충분히 공감이 간다.


세계 바둑은 중국의 대군이 산하를 뒤덮는 형세이고 일본도 살아나고 있다. (응씨배에 이어 이번 오청원배도 일본의 우에노 아사미가 우승했다) 한국의 신예는 아직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랭킹 10위 안에 신진서보다 어린 기사가 없다. 10위 밖에 16위 문민종(21), 23위 한우진(19)이 보이는 정도다. 17세 김은지는 33위다. 하나 김은지 말고는 쑥 머리를 내미는 신예가 없다. 한국바둑의 가장 큰 고민 또한 여기 있다. 중국은 왕싱하오(20)가 이미 5위에 올랐고 셀 수 없이 많은 신예들이 뒤를 잇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은지는 어디까지 자랄 수 있을까. 남자 신예들에겐 이미 뼈아픈 각성제로 자리매김한 그가 한국 바둑의 희망으로까지 자랄 수 있을지 궁금하다.


박치문 바둑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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