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둑을 안 두고 대신 게임을 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가장 주된 이유는 바둑은 두고 나면 머리 아프고 진이 빠지기 때문이라는걸 깨달았다

상수하고 둬야 바둑이 는다고 해서 내 치수보다 한 치수 높여서 계속 뒀는데 

늘긴 니미 머리만 깨질 듯이 아프고 결국에는 시발 내가 무슨 자기 가학적 정신병자도 아니고 이 짓을 왜 하고 있는지 자괴감만 늘어갈 뿐이었다

그러다가 결국엔 안 두게 되더라고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단급을 올려야 되는 이유가 없다는걸 알게되었다

바둑 동아리나 동네 기원에 다니면 그런 곳은 단급이 곧 계급이니까 올려야겠다는 동기가 있겠는데

나야 온라인에서만 두고 주위에 바둑 두는 사람 한 명도 없어서 어디서 자랑할 데도 없는데 단급 높아봤자 아무런 효용이 없더라고

무인도에서 혼자 사는데 명품시계 명품 가방 고급 스포츠카 타고 다닐 이유가 있냐?

그렇다면 머리 안 아프고 빠르게 한 판 둘 수 있는 방법이 최고지

7급만 낮추면 새로운 세계가 열리더라고

20초 바둑 전화 받으면서 둘 수도 있더라고

물론 승급 방지용 패작도 필요한데 작위적으로 두지 말고 걍 노타임으로 계속 두면 상대가 어지간한 병신 아닌 한에야 지게 되더라고

머리 아픈거 전혀 없고 하루에 10판 넘게 둬도 안 피곤하고 도파민 최대 분비 보장되고 

무엇보다도 대충 두다가 아무리 형세가 불리해져도 상대 대마 잡고 역전할 수 있으니까 바둑 두면서 편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더라고

대부분의 게임들은 메커니즘이 단순하고 판에 박은 듯해서 시간 좀만 박으면 좀 질리는게 있는데

바둑은 유형도 다양한 븅신들이 무궁무진하게 들어오니까 

매 판 둘 때마다 이번은 어떤 종류의 븅신을 만나게 될까 

어떤 식으로 교묘히 가스라이팅 하면서 괴롭혀서 자기가 결국 병신이라는 자기 자아정체성을 깨닫게 해줄까

어떤 식으로 드라마틱하게 역전을 해서 나는 시발 뭘 해도 결국 안 되는 새끼다라는 결론에 이르러 자살 마렵게 해줄까

이런 생각들로 존나 설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