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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원의 비행기 긴빠이 대작전: TWA 85
하이재킹, 비행기나 자동차같은 탈것을 운전 중에 납치하는 행동을 의미하는 단어다. 지금은 9/11사태로 인해 항공보안법이 대폭 강화되어 항공기 납치같은 사건이 잘 일어나지 않지만, 1960년대까지만 해도 하이재킹은 매우 흔한 일이었다. AP통신 피셜 1969년에만 54번의 납치 사건이 일어났는데, 거진 6일에 한 번은 비행기가 납치당했다는 것이다. 이는 1960년대 공항의 구조 때문이었다. 당시 공항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보안검색대도, 탐지견도, 복잡한 수화물 규정도 없었다. 승객들은 표를 구입한 이후 항공기까지 걸어서 탑승했다. 비행기에 M2 중기관총을 가지고 탑승하는게 아니라면 그 누구도 총기를 휴대하고 비행기에 오르는 것을 막지 않았다. 당연히 이는 개나소나 항공기 납치를 시도하는 원인이 된다. 모든 범죄가 그렇듯이, 항공기 납치의 동기는 정말 다양했다. 감옥에 갇힌 동지들을 구하기 위해, 미제 제국주의 타도를 위해, 한탕할 목적으로, 별거하는 아내가 보고 싶어서.... 이런 혼란스러운 배경 속에 한 청소년이 있다. 라파엘 미니첼로는 나폴리에서 동쪽으로 69km 떨어진 이탈리아 남부의 작은 마을, 멜리토 아르피노의 가난한 집안에서 1949년에 태어났다. 1962년, 이탈리아 남부를 강타한 지진이 일어나자 모든것을 잃은 그의 가족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다. 시애틀에 정착한 라파엘의 꿈은 비행기 조종사였다. 멋진 제복을 입고 거대한 비행기를 능숙하게 조종하는 기장은 그에게 있어서 우상과도 같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종종 꿈으로 도망치고 싶을 만큼 잔혹하다. 그는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고, 특유의 이탈리아 억양 때문에 학교 친구들에게 극심한 따돌림을 당했다. 이를 견디지 못한 라파엘은 조종사의 꿈을 접고 다니던 학교를 중퇴해야만 했다. 1967년 5월, 당시 17세였던 그는 해병대에 입대하기 위해 샌디에이고로 갔고, 캘리포니아주 팬들턴에 주둔하고 있던 미 해병대 5사단에 배치되었다. 1967년 12월 15일에 베트남에 도착한 라파엘은 이 지옥같은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처절한 사투를 시작한다. 훈련소에서부터 유능하기로 소문났던 그는 미국 사회에서 명예와 존경을 얻고자 최선을 다해 싸웠고, 1969년 4월에 팬들턴으로 복귀한 그의 가슴팍에는 주로 작전중 전사하거나 부상당한 군인에게 수여되는 퍼플하트 훈장이 자랑스럽게 매달려 있었다. 그는 죽지도, 베트콩들의 AK-47에 맞지도 않았지만, 훈장의 재고가 남아돌아서 생긴 일이었다. 그러면 뭐 어떤가, 그는 자랑스러운 아들이었고, 훌륭한 군인이었다. 오티스 터너는 라파엘과 거의 같은 시기에 베트남에 도착했고, 같은 해병소대에서 복무했다. 그는 라파엘이 "용맹한 전사"같았다고 증언했지만, PTSD 증세를 앓고 있었던것 같다고 말한다. "라파엘은 훌륭한 해병이었고, 훈장까지 받은 해병이었습니다. 그는 항상 앞장서서 행동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일에 자원했고, 우리들의 생명을 수없이 많이 구했습니다..." "아픈 사람들이 많았고,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라파엘)은 좀 이상한 상태였고요. 베트남을 떠날 때 우리 모두 혼란스러웠어요." 17세의 청소년에게 베트남은 지나치게 가혹한 전장이었다. 터너의 증언대로, 그의 인생은 그닥 잘 풀리지 않았다. 파병기간의 봉급을 정산하던 라파엘은 누군가가 그의 월급을 200달러나 횡령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현재 200달러는 고작 30만원 남짓한 돈이지만, 1960년대의 200달러는 250만원 상당의 큰돈이었다. 무엇보다도 그 돈은 자신의 목숨값이었다. 라파엘은 상관에게 이 문제를 제기했으나, 미국 해병대는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도 않고 쉬쉬하며 덮기 급급했다. 그는 자신이 목숨바쳐 지킨 조국에 큰 회의감을 느꼈다. 라파엘이 마지막으로 군대에 요구한 사항은 말기암으로 죽어가던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이탈리아에 자기를 파병시켜 달라는 것이었지만, 그의 상관은 이것마저 거부해버린다. '난 내 일을 할거야' 1969년 5월의 어느 날 밤, 조국에 크게 실망한 라파엘은 맥주 8병을 마시고 기지 내 PX에 침입하여 라디오를 훔쳤다. 그가 국가로부터 돌려받지 못한 200달러어치의 물건이었다. 술에 취해 PX에서 그대로 잠들어버린 그는 다음 날 아침 헌병에게 체포되어 10일간 영창에 갇힌다. 베트남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라지만... 라파엘은 아직 19살짜리 청소년일 뿐이었고, 자신의 행동을 온전히 책임지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다. 1969년 10월 29일에 그는 자신이 저지른 범죄로 인해 군법회의에 회부될 예정이었지만, 감옥에 갇힐까봐 두려웠던 라파엘은 자신이 베트남에서 사용하던 M14 소총과 7.62mm 소총탄 250발을 가지고 캠프 팬들턴에서 빠져나왔다. 그의 손에는 15.50달러짜리 TWA 비행기 티켓이 들려 있었다. 1969년 10월 31일, 캔자스시티 국제공항 TWA 소속 B-707 1기가 이륙을 준비하고 있다. 콜사인은 TWA 85편, 볼티모어에서 세인트루이스, 캔자스시티, 로스엔젤레스를 거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는 노선이다. 기장, 도널드 쿡, 31세, 1965년에 TWA에 입사했다. TWA에서 가장 어린 나이에 기장을 단 능력있는 인물이다. 웬젤 윌리엄스가 부기장으로, 로이드 홀라가 항법사로 탑승한다. 모두 TWA에 입사한지 얼마안된 신참들이다. 젊은 조종사들과 젊은 스튜어디스들이 비행기를 이끈다. 스튜어디스 대부분은 근무 경력이 몇 달밖에 되지 않았다. 승무원중 최선임은 23세의 샤를린 델모니코로, TWA에서 3년간 근무했다. 비행기는 새벽 1시가 되어서야 로스앤젤레스에 착륙했다. 몇몇 승객들이 내리고, 다른 승객들은 잠이 덜 깬 채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1시간 30분의 야간 비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은 승객은 40명 남짓, 모두 각자 자리에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는 중이다. 1시간 30분 뒤면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 있으리라 기내에 남아 있던 승객들이 계속 잠을 잘 수 있도록 조명은 어두웠고, 새벽녘의 잔잔한 분위기가 기내를 가득 채웠다. 승무원들은 승객들이 탑승할 때 티켓을 확인했지만, 델모니코는 새로 도착한 승객 중 한 명, 특히 그의 가방에 유심히 주의를 기울였다. 올리브색 얼굴에 위장복을 입고 곱슬거리는 갈색 머리를 납작하게 넘긴 한 젊은이는 잔뜩 긴장한 채로 B-707에 탑승했다. 그의 가방에는 길쭉한 무언가가 튀어나와 있었다. 델모니코는 동료 타냐 노바코프와 로베르타 존슨이 승객들을 좌석으로 안내하고 있는 일등석으로 향한다. "젊은이의 가방에서 튀어나온 건 뭐였죠?" 델모니코가 물었다. "아마 낚싯대가 아닐까요?" 로베르타가 대답한다. 새벽 1시 반에 낚싯대 하나만 가지고 비행기에 타는 승객만큼 수상한 사람이 있을까,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낚싯대를 든 남자 하나를 신경쓸 만큼 승무원은 한가한 직업이 아니다. 델모니코의 두려움은 금방 가라앉았다. 85편에는 1960년대 중반 비틀즈풍 노래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선샤인 팝 그룹, 하퍼스 비자르의 멤버 다섯 명도 타고 있었다. 사이먼 & 가펑클의 '59번가 브리지 송(Feelin' Groovy)'을 각색한 이 밴드의 최대 히트곡이 나온 지 2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들은 그날 밤 패서디나에서 열린 기이한 콘서트에 잔뜩 지쳐 있는 상태였다. 가수 겸 기타리스트 딕 스코페톤과 드러머 존 피터슨은 비행기 왼쪽 좌석에 앉아 담배를 피웠고, 다른 멤버들은 긴 잠에 빠져들었다. 1시 30분, TWA 85편이 활주로를 내달리기 시작한다. 4개의 강력한 P&W JT3D 터보팬 엔진이 100톤이 넘는 B-707을 하늘로 날려보낸다. 승객들이 하나둘씩 잠에서 깨어난다. 이륙 시 추력을 높이기 위해 엔진에 의도적으로 물을 분사하는 B-707 엔진의 특성 때문이다. 비행기 내부를 불길하고 깊은 소음이 가득 채운다. 승무원들이 조명을 거의 완전히 꺼버리자 기내는 어둠으로 물든다. 샤를렌 델모니코는 5개월 전 TWA에 입사한 21세의 언어학과 졸업생, 트레이시 콜먼과 함께 기내 뒤쪽 갤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손에 M14를 파지한 라파엘이 갤리 안으로 들어온다. 어떻게 해야 할까, 기내에는 항공보안관도, 권총도 없다. 델모니코는 침착하게 라파엘을 설득하기 시작한다. "손님, 기내에 전투소총을 가져오시면 안 됩니다." 1+1=2 수준의 간단한 사실, 라파엘이 그걸 몰랐을 리가 없다. 그는 자신이 장난감 소총으로 장난치는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7.62mm 소총탄을 승무원에게 건네주며, 자신을 조종석으로 안내하라고 지시한다. 딕 스코페톤은 잠이 들려고 했지만, 통로에서 들려오는 움직임에 잠에서 깨어났다. 승무원을 따라오는 남자가 소총을 겨누고 있다. 이게 도데체 무슨 상황일까, 몇 줄 앞에 앉아 있던 밴드 동료 존 피터슨이 그를 돌아보며 눈을 크게 떴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비행기 뒤쪽에서 승객 중 한 명인 짐 핀들리가 라파엘에게 맞서기 시작한다. 상대는 베트남에서 2년을 보낸 베테랑이다. B-707의 동체 길이는 41~46m, 핀들리의 머리를 M14로 날려버리는건 라파엘에게 있어서 200달러를 돌려받는 것보다 수천배는 쉬운 일이다. 승무원들은 자신들 앞에서 누군가의 후두부가 산산조각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1960년대의 고전적인 하이재킹이 늘 그렇듯이, 납치범의 지시대로만 행동한다면 누구도 다치지 않을 것이다. 델모니코는 핀들리에게 좌석으로 돌아가라고 지시한다. 이제 델모니코와 라파엘은 콕핏으로 들어간다. 비행 전에 FAA의 보안규정 강화로 인해 노크하지 말고 초인종을 누르라는 기장의 지시가 있었으나 라파엘이 그런 세세한 규정을 신경쓸 이유는 없었다. 조종석 출입구를 발로 차버린 그는 콕핏으로 들어가 쿡 기장과 윌리엄스 부기장에게 소총을 겨누었다. 항공기 조종사가 되고싶었던 13살의 어린아이는 6년 뒤 항공기 납치범이 되어 있었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라파엘은 이제 기장을 바라보며 나폴리 억양이 섞인 영어로 말한다. "뉴욕 쪽으로 선회하시오" 6년 전이었다면 파스타 새끼라고 조리돌림당했을 일이지만, 조종석의 그 누구도 그의 억양에 대해 신경쓰지 않았다. 하퍼스 바자르 멤버들은 총격범이 지나가자마자 모두들 서로 비행기 앞에 앉으려고 달려갔다. 그들의 기묘한 저녁은 더욱 기묘해졌다. 멤버들은 그 남자가 어떻게 비행기에 소총을 몰래 싣고 올 수 있었을지 추측하기 시작했다. 도데체 이 비행기는 어디로 가는 걸까? 홍콩인가? 홍콩에 가본 적이 없으니, 재밌을 것 같았다. 겸사겸사 팬미팅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한편, 85편 안에는 8일간 아시아를 순회 비행한 후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오는 길인 TWA 승무원, 주디 프로방스도 타고 있었다. 매년 주디를 포함한 TWA 직원들은 항공기 납치에 대한 대처법을 훈련받았다. 당시 항공기 납치는 매우 흔한 일이었으니 뭐.... 그들이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침착함을 유지하는 것이었고, 또 다른 사항은 납치범과 사랑에 빠지지 않는 것이었다. 잘생긴 19세의 이탈리아계 납치범과는 더더욱 한편, 승무원에게 제지당했던 짐 핀들리는 이 항공편에 승객으로 탑승했던 TWA 조종사였다. 그는 납치범의 가방을 발견하고 그의 신원을 알아내기 위해, 그리고 더 이상 무기가 기내에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라파엘의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새끼가 만약 권총이라도 찾았으면 상황이 수습불가능할정도로 커졌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도데체 왜 납치범의 가방을 뒤지는 걸까...? 쿡 기장의 목소리가 확성기에서 흘러나왔다. "여기 아주 불안한 젊은이가 있는데, 그가 가고 싶은 곳 어디든 데려갈 겁니다." 당시 항공기 납치의 흔한 대처법이다. '괜히 납치범에게 따지지 마라' 이건 9/11 테러 전까지만 해도 통용되는 말이었다. 비행기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점점 더 멀어지면서 승객들은 자신들이 어디로 향하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아바나(쿠바의 수도)로 향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진다. 쿠바산 시가와 럼주를 맛볼 수 있을까? 콕핏 안의 조종사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꼈지만, 일부 승객들은 이 일이 마치 모험의 일부인 것처럼 느낀다. 잘생긴 탈영병과 함께하는 비행이라... 당시 사회 분위기를 감안한다면 꽤나 낭만적인 여정이었으리라 TWA 85편에 탑승한 사람들이 쿠바로 향하는 줄 알았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쿠바는 오랫동안 납치범들이 선호하는 목적지였기 때문이다. 1960년대 초부터, 조국에 환멸을 느끼고 공산주의 이념에 매료된 많은 미국인들이 피델 카스트로 혁명 이후 쿠바로 도피했다. 미국에서 쿠바로 가는 정기편이 없었기에, 하이재킹은 사람들에게 쿠바로 갈 수 있는 수단을 제공했다. 게다가 카스트로는 미국으로부터 납치범들을 받아들임으로써 CIA나 FBI를 짜증나게 하는 동시에 납치된 비행기를 반환하는 댓가로 돈을 요구할 수 있었다. 1961년 5월 1일, 안툴리오 라미레스 오르티스는 "엘피라타 코프레시"라는 가명으로 마이애미에서 키웨스트로 향하는 내셔널 항공 337편에 탑승하여 기장을 스테이크 나이프로 위협하며 비행기를 장악했다. 그는 쿠바로 갈 것을 요구하며, 쿠바에서 카스트로에게 라파엘 트루히요(도미니카의 독재자)가 꾸며낸 암살 음모에 대해 폭로할 것이라고 큰소리쳤고, 결국 망명에 성공했다. 1975년에 다시 미국으로 건너와 징역 20년을 선고받긴 했지만... 그 후 2개월 동안 2건의 항공기 납치 사건이 더 발생했고, 1972년까지 미국에서는 159기의 민항기가 납치되었다. 쿠바로 향할 목적으로 일어나는 항공기 납치는 매우 흔해서, 한때 미국 항공사는 기장들에게 예상치 못하게 하바나로 향해야 할 경우를 대비해 카리브해 지도와 스페인어 안내 책자를 제공하기도 했다. 플로리다 컨트롤과 쿠바 사이에 직통 전화가 개설되었고, 심지어 납치범들이 쿠바에 도착했다고 착각하게 하기 위해 플로리다에 아바나 공항의 모형을 건설하자는 제안까지 있었다. 정말 그야말로 미친 시대였다. 한편, 콕핏 내부의 조종사들은 라파엘을 설득하기 시작한다. 그는 뉴욕이나 로마로 가고 싶어 했다. 뉴욕까지 갈 수 있을까? B-707의 항속거리는 6,000km이 넘었지만, 85편에는 샌프란시스코까지 가기 위한 연료만이 채워져 있었다. 이대로 뉴욕까지 비행한다면 연료부족으로 추락할 것이다. 중간에 급유를 받아야만 한다. 약간의 협상을 빙자한 조종사들의 호소 끝에, 라파엘은 85편이 덴버에 착륙하여 뉴욕까지 비행할 충분한 연료를 공급받는 것을 허락했다. 콜로라도 상공에서 쿡 기장은 라파엘 몰래 관제소에 비행기가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알렸지만, 덴버에는 FBI도, 경찰관도, 장갑차도 준비되어 있지 않다. 라파얼을 체포할 수 없다. 라파엘은 승객 39명이 덴버에서 내리는 것을 허락했지만, 승무원 중 한 명은 그대로 남아야 한다고 고집하기 시작한다. 그는 가장 예뻤던...델모니코를 선호했고, 쿡 기장은 네 명의 승무원 중 가장 잘 아는 로버타 존슨을 원했다. 그러던 와중, 트레이시 콜먼이 델모니코에게 말한다. "제가 갈게요" 콜먼은 뉴욕에 남자친구가 있어서 만나러 갈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델모니코는 뉴욕이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5개월짜리 신참을 홀로 남겨두고 내리는 것이 옳은 일일까, "뉴욕에 머물지 마세요." 그녀는 콜먼에게 말했다. "그는 거기 있으면 안 돼요. 나가면 체포될 거예요. 다른 곳으로 갈 거예요.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곳으로 갈 거예요." 콜먼은 납치 사건 이후 TWA 스카이라이너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정말 남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뉴욕으로 향한건 아니라고 해명한다. "그냥 같이 가고 싶었던 건 아니었어요."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 했으니까요" 라파엘은 85편이 덴버에 착륙함과 동시에 스테이플턴 국제공항 주기장의 조명을 모두 꺼달라고 요구한다. 그는 노련한 군인이었고, 예상치 못한 상황을 원치 않았다. 문제가 없을 경우에만 승객들을 풀어주겠다고 약속한 라파엘은 조명이 꺼지자 승객들을 하나씩 풀어주기 시작한다. 라파엘과 싸우려고 시도했던 짐 핀들리도, 아시아에서 돌아오는 TWA 승무원 주디 프로방스도, 홍콩 팬미팅을 고대했던 하파스 바자르 멤버들도 모두 비행기에서 내린다. 핀들리가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그는 홍콩에서 딸에게 주려고 구매한 할로윈 의상을 두고 내린 것을 깨닫는다. 핀들리는 그에게 비행기 뒤쪽으로 돌아가 딸에게 줄 할로윈 의상을 가져가도 되냐고 물었고, 라파엘은 정중하게 "물론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꽤나 젠틀한 남자였던 모양이다. 춥고 안개 자욱한 덴버의 날씨 속에서 해가 뜨기까지는 두 시간이나 남은 가운데, 승객들이 비행기에서 내리자 무표정한 FBI 요원들이 그들을 맞이했다. 공항 라운지에는 자다가 급하게 덴버에 도착한 FBI 요원들로 가득 찬 방이 있었는데, 그들은 39명의 승객과 3명의 승무원의 진술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이제 막 비행기에서 내린 하퍼스 비자르 멤버들은 매니저가 예전에 했던 말을 기억한다. 만약 무슨 문제가 생기든, 어떤 일이든, 경찰서나 병원에 가기 전에라도 그들의 매니저에게 먼저 연락하라는 것이었다.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매니저가 사는 곳이 한밤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매니저에게 먼저 연락했다. 연락받은 매니저는 자신의 역할을 아주 잘 수행했다. 모든 일간지의 기자들을 덴버 국제공항으로 끌어모은 것이다. 진술을 마치고 다른 방으로 들어서자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였고, 기자들은 밴드의 이름을 외치며 환호했으며, 미국 전역의 언론사들은 앞다투어 하퍼스 바자르와 인터뷰를 하려고 카메라를 들이댔다. 딕 스코페톤이 BBC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우리가 경험한 최고의 홍보였습니다."라고 말했을 정도니 뭐.... 하루 종일 인터뷰를 한 후, 모든 승무원은 저녁이 되어서야 캔자스시티에 있는 집으로 돌아갔고, 모든 TV 채널에서는 믿기 힘든 납치 사건에 대한 소식이 계속해서 방송되기 시작했다. 다음편에 계속.
작성자 : 우희힝고정닉
귀 옆에서 손뼉치듯 팡!, 운동장서 쓰러진 일본 학생들.jpg
https://youtu.be/5A-bd5NFaeY?si=I8KHH31NcHIs_iyk [자막뉴스] "귀 옆에서 손뼉 치듯 '팡'"…운동장서 쓰러진 일본 학생들 / KBS 2025.04.11.일본 나라현의 한 중고등학교 운동장입니다.어제 오후 5시 50분쯤, 학생 6명이 갑자기 쓰러졌습니다.운동장으로 떨어진 벼락에 맞은 겁니다.[인근 주민 : "번개가 몇 번 치고, 한 번은 번쩍 빛나자마자 곧바로 소리가 났어요. 귀 바로 옆에서 손뼉을 치는 듯한 ‘팡’하는 마른 소리였...youtu.be벼락맞을 확률은 몇일까 - 日, 비오는 날 무리하게 훈련하다 낙뢰 맞고 중학생 6명 병원 실려가일본에서 낙뢰주의보까지 떴는데도 비오는 날 야외 훈련을 강행하다가 중학생들이 벼락을 맞고 병원으로 실려가는 미친 일이 발생함 사건이 일어난 건 4월 10일 오후 6시 직전, 일본 나라시에 위치한 데즈카야마가쿠엔(중고등학교가 같이 있음) 제2 운동장에 번개가 내려쳤을 때였음 당시 소방서로 낙뢰가 떨어져 운동장에 사람이 쓰러져 있다는 다급한 신고가 접수되었다고 함 당시 부상을 입은 건 총 6명의 남녀 학생 정확히는 축구부 소속의 14세 남중생 5명과 야구부 매니저인 16세 여고생 1명이었음. 사건 직후에는 남학생 1명이 심폐정지, 2명은 의식은 있으나 의사소통은 불가능한 상태, 나머지 2명과 여학생은 손발 등 신체 부위의 이상을 호소하는 상태였음 이후 심정지 였던 1명은 호흡은 돌아왔지만 의식은 없는 상태고, 의식은 있던 2명 중 한 명은 상태가 악화되어 의식을 잃으며 현재는 남중생 2명이 의식불명의 중태상태로 변화됨 비가 많이 오고 있었고 이미 5시 반부터는 번개도 계속 치고 있었지만 운동장에서는 축구부와 야구부 및 테니스부의 연습이 강행되고 있었다고 하는데 사건 당시 운동장에 있던 학생만 114명에 교사 등 성인이 8명이었다고 함 만약 번개가 잘못쳤으면 6명(2명 중태)로 끝나지 않았을 수도 있음 이런 일이 운동장에서 일어날 수도 있었다는 거임 과장이 아닌 게 당시 나라현을 포함한 일본 긴키 지방에는 낙뢰 주의보가 내려진 상태였고 시내 곳곳에 번개가 내려치고 있었음 다들 잘 알다시피 번개는 건물이나 나무 등 뾰족하거나 높게 있는 것에 더 잘 맞게 되는데 운동장이나 골프장, 해변 같이 주변에 사물이 없어 탁 트인 장소의 경우 보통 사람이 가장 번개에 맞기 쉬운 존재가 되기 때문에 비가 오고 낙뢰가 치면 운동장 활동을 중단하고 건물 등으로 피신하는 게 기본중의 기본 수칙임 그런데도 이 멍청한 교사들은 애들에게 강한 정신력 운운하면서 번개치고 비가 쏟아지는 상황에 훈련을 강행시킨 거임 경찰이 대체 왜 이런 정신나간 짓을 했냐고 축구부 고문 등에게 물어보니 빗줄기가 강해져서 연습을 중단할까 검토하고 있던 때에 갑자기 쿵 하는 소리가 나며 벼락이 쳤다 라는 하나마나한 개 같은 변명만 쪽얼거림 벼락 맞고 산 사람들이 언론에 자주 보도 돼서 그렇지 낙뢰라는 게 절대 무시할 만한 게 아님 실험을 위해 인공적으로 재현한 번개도 벽돌무더기 따위는 가볍게 박살냄 게다가 낙뢰가 나무나 주변 사물에 떨어진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수분이 70%인 사람을 더 좋아하기 때문에 옮겨 맞을 수도 있고 지면으로 흐르며 주위까지 감전될 수 있으니 절대 위험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함 그렇지만 일본은 그 특유의 똥군기, 정신론, 근성문화 때문에 이런 안전수칙을 무시하고 훈련을 시키는 경우가 많고 때문에 이번 경우 뿐만 아니라 동아리 활동 중 낙뢰사고로 학생들이 다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음 당장 작년에도 사고가 있었는데 4월 3일에 미야자키의 사립고교인 호우쇼우 고등학교에서 축구 연습경기를 하던 중 낙뢰가 쳐서 고교생 18명이 병원에 실려갔고 그 중 2명이 의식불명이었으며, 한 명은 후에 회복되었지만 나머지 한 명은 계속 의식불명으로 남은 사건임 전문가는 비가 오면 운동장에 나가는 걸 그만두자 라고 생각을 바꾸는 게 좋다며 제발 비 올 때 운동장에서 훈련하지 말라고 당부를 함 일본 넷상 반응도 코치와 학교가 미친 거 아니냐는 반응임 정신력이 약해 빠진DESU~ 근성부족DEATH~ 정신력만 강하면 벼락도 이길수 있으므니다! 2차 대전때도 저런 개소리 하다 핵 쳐맞더니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벼락을 쳐맞네 정신차려 JAP
작성자 : ㅇㅇ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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