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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1주일 배낭여행 후기 : 1편 시안편 2일차(2)
- 관련게시물 : 중국 1주일 배낭여행 후기 : 1편 시안편 2일차(2)돌아오는 길에 미쉐를 발견했다.중국애들이 이거 좋다고 꼭 마시라고 몇번이나 얘기했던 기억이나서 자스민 밀크티를 주문해봤다.가격은 단 6위안(1200원).가격이 가격인지라 약간 연하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따뜻한 것만으로도 좋았다.아이스크림으로도 유명한 브랜드인데 겨울이라 먹어보지 못한것이 아쉽다.밤시간을 그냥보낼수없어 회민거리로 나갔다.실크로드 당시 회족(무슬림)이 정착해서 섞여살며 거리가 되었다 한다.(다만 밑에 동영상에도 나오듯이 대부분 다 한족이었던 느낌이 들었다.)거리를 쭉 둘러보는데, 희한하게 한 양꼬치가게에 사람이 몰려있었다.유명한 맛집인가?얼마나 불티나게 팔렸는지 사장말고도 옆에 꼬치를 꿰는 사람이 두명이나 있었다나도 보고있을수만은 없어 줄을 서봤다.가격은 1개 10위안(2000원)먹어본바로는 맛은 그냥 한국에서먹었던 양꼬치집과 크게 차이가 없는느낌이었다.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고루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이때가 일요일 밤 10시쯤이었는데, 명소라 그런가 무언가 화보같은것을 촬영하는 사람이나 커플 등 사람이 많았다.내일 시안을 떠날 마음을 먹었으므로,마지막으로 유명한 러우지아모를 먹어보고 싶었다.그런데 여기서 갑자기 또 알.리페이 위챗페이가 먹통이 되었다.몇번해도 안되어서, 사장님께 현금으로 가능한지 물었더니 가능하다고 하셨다.이유가 뭔가하니 농협카드사에서 해외결제가 자꾸 빠져나가니 부정사용을 우려, 시스템상으로 자동으로 차단해버린것이다.국제전화로 어떻게든 카드사 연결을 시도하는데 국제전화라 그런가 이유를 모르게 계속 끊기고 말았다.몇번 시도끝에 정지해제를 요청하는데 성공.음식얘기로 돌아와서'모'라고 부르는 빵사이에 양고기를 넣고 햄버거처럼 만든 음식이다.양꼬치 제외 양고기를 거의 먹어보지않아서특유의 양고기 냄새가 무엇인지 한입 먹어보고 알았다.먹성좋은 내가 익숙하지 않아 반쯤 남기게 되었다.양고기는 양꼬치가 제일 나은걸로..그 옆에 음식이 잘나간다길래 같이 시켜봤는데우리나라 요리로 따지면 약밥이랑 가장 비슷했다.대추범벅 밑에 따끈한 밥이 있는.나는 대추도, 약밥도 별로 선호하지 않지만이게 의외로 맛있어서 다먹어치웠다.두개 21위안(4200원)3일차.오후 4시에 고속철도로 청두로 갈 마음을 먹고, 그전까지 나머지 곳을 방문하기로 했다.징위호텔 바로앞에 있던 시안성벽.입장료는 50위안(10000원)시안은 진시황의 진나라 및 한,당나라의 도읍이었던 만큼 성벽 그 자체가 관광거리가 되었다.지금있는것은 명나라 때 성벽이라고 한다.성벽을 오르니 역시 대륙은 대륙이라 끝도없이 길었다.여기서 외적의 침입을 막았던거구나.느긋하게 걸으니 북문에서 서문까지 1시간 반이 걸렸다.완주를 해볼까하다가도 시간에 쫒겨 왔던길을 돌아갔다.이럴줄 알았으면 자전거를 빌려타볼걸.이 성벽 안쪽이 중심가라고 하는데 내려가보지는 못하고 구경만 하였다.안쪽에는 오래된 저층건물이 많았고, 바깥쪽은 최근에 지어진 고층건물이 많았다.시안의 마지막 여행지 대자은사와 대안탑에 도착했다.시안 중심지로부터 지하철으로 대략 30분.무작정 떠난 자유여행이다보니, 무엇이 유명한지 모르고 일단 와봤지만알고보니 우리에게도 유명한 삼장(현장)법사와 관련된 곳이었다.법사가 인도를 여행하며 가져온 불상이나 경전을 모아둔곳이 대안탑이라고 한다.입장료는 대자은사 30위안(6천원) / 대안탑 20위안(4천원)거닐다 우연히 풍경소리를 들었는데,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그 어떤 악기보다도.들려주고싶어서 녹음을 해두었으나, 다시 들어보니 전혀 그맛이 살지않아 올리지 않는다.일단은 절이다보니, 기도하는 신자들과 불당에서 실제 수행하는 승려들도 발견할수 있었다.승려라고 하면 나이든 노승을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스님들의 얼굴들은 상당히 젊어보였다.일본여행 당시 우연히 방문한 에이헤이지에서도, 수행을 하는 스님들은 대부분 다 젊었던 느낌이 든다.그들은 어떤 고뇌와 번뇌로 인하여 젊은나이에 불도의 길을 걷게된걸까.대자은사를 마지막으로, 시안을 뒤로했다.험준하기로 소문난 화산을 정말 가고싶었지만, 겨울철이라 위험하다고 판단한것과견적이 1박2일 코스를 잡아야하는것으로 보여(시안 중심가로부터 편도 2시간 이상 소요)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했다.그리고 대당불야성도(여긴 중국친구도 꼭 가라고했던곳인데.)돌이켜보면 시안 여행은 상당히 알차고 만족스러웠다.'장안'이라 불리우며 여러차례 도읍이었던 만큼 많은 역사적 관광지가 있는 곳이다.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정말 추천하고 싶은 곳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작성자 : trip4557고정닉
[월간새보] 홍준표가 원래 가려고 한 민주당은 민주당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의 민주당의 전신이 아니다.왜냐하면 96년의 민주당은 국민의힘의 전신이기 때문이다.노무현이 보이는 것 같지만 노무현이 맞다.국민의힘 전신인데 왜 노무현이 보이냐?라고 하는 물음이 생길 수 있는데, 이는 복잡한 민주당 역사가 얽혀있기 때문이다.문제의 발단은 3당합당에서부터 시작된다.김영삼이 전격적으로 합당을 결성하자,노무현을 비롯한 이기택, 김정길 등이 반발하며 전격 탈당했고민주당을 창당한다. 이 민주당이 바로 꼬마민주당이다.그러나 이 꼬마민주당은 여론조사에서는 선전했으나야권의 분열로 인해 정작 실리를 얻는 것은 불가능했고김대중이 이끄는 신민주연합당과 창당 1년만에전격 합당을 하고야 만다.이 민주당이 바로 민주당(1991)이다.이렇게 합당한 민주당(91)은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대 선전을 하면서 민주당(91)에게 정권교체의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다.그러나!당의 두 축이었던 김대중과 이기택은경기도지사 공천을 놓고 엄청난 갈등을 벌였고이기택이 추천한 장경우 의원이 경선에서 승리했으나민자당 이인제 후보에게 처참하게 발리면서이 갈등은 더욱 극심해졌다. 이 때 불만을 품은김대중은 경기지사 유세에 가지 않는 등 불만을 대놓고 드러낸다.결국 지방선거에서 좋은 성과를 얻은 민주당(91)이지만이 갈등을 수습하지 못했고김대중이 동교동계를 이끌고 탈당하며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한다.그러자 잔류한 민주당(91) 인사들이 시민단체를 끌어와이 글의 주인공인 민주당(95)를 새롭게 창당한다.야심차게 출발한 민주당(95)는이회창 당시 전 국무총리와장태완 전 수경사령관을 영입하려 했으나이회창이 신한국당으로,장태완이 새정치국민회의로 가버리면서이 계획도 무산된다.그렇게 맞이한 15대 총선에서 15석이라는 기대에 못미치는성과를 내며, 당세는 급격이 약해지기 시작했고조순 당시 서울특별시장을 15대 대통령선거 후보로 추대했으나조순이 당시 여당이던 신한국당과 전격 합당을 선언하며민주당(95)는 한나라당으로 다시 탄생한다.따라서 다시 돌아와서 보자면이 때의 홍준표가 가려한 민주당은 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국민회의가 아니라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주당(95) 임을 알 수 있다.당시 홍준표 영입과 관련하여가장 먼저 홍준표를 영입하려 한 인물은김대중으로, 오찬에 초대 되었으나김대중과 밥을 먹으면 누구나 김대중의 품에 안긴다는말이 세간에 자자했기에 거절했다고 본인은 주장한다.이후 노무현이 민주당(95) 사람들을 이끌고 밤늦게홍준표를 영입하고자 집으로 찾아왔고아직 입당에 대해 확답을 못내린 홍준표에게불과 몇 시간만에 신한국당의 강삼재 사무총장이홍준표의 집으로 찾아와 홍준표를 낚아 채 갔다.물론 이 당시에 대통령이었던 YS가 직접 홍준표에게전화를 걸어 영입을 추진했다고 한다.그렇게 고장난 시계는 신한국당으로 입당을 결정하고홍산가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dc official App- [월간새보] 별들의 무덤, 2011년 한나라당 전당대회엘리트 보수정당 시절 이라며 올라오는 짤의 주인공2011년 한나라당 전당대회에 대해 알아보자2011년은 MB정부 4년차이자, 차기 총선과 대선을 불과 1년 남짓 남겨둔 시점이었다.따라서 2011년 한나라당 전당대회는 차기 총선의 공천권과, 대선정국이라는 최대의 이벤트를대응해야 하는 새 지도부를 뽑기 위한 싸움이자현재권력인 친이계와 미래권력인 친박계가 서로의 주도권을 놓고영혼의 한타를 벌이는 전장이 되었다.이 전당대회에서 친이계가 승리한다면, 친이계는 다시금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고친박계가 승리한다면 몰락하는 친이계에게 결정타를 날리고, 주도권을 확실히 잡을 수 있는 시기였다.당시 친이계는 새 대표로 김무성 전 원내대표를 밀고자 하였다.김무성은 친박핵심으로 유명하였으나 세종시 수정안 사태 당시 원안을 고집한 박근혜와 달리수정안을 지지하며, 박근혜와 멀어졌고, 이후 친이계의 지지를 업고 원내대표에 당선되며친박계에서 비박계로 갈아타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그러나 김무성을 내세운다는 것은 사실상 친이계가 친박계에게 전면전 선전포고를 하는 것과마찬가지였기에 김무성 카드를 포기했고, 결국 김무성은 차기 전당대회에 불출마 한다.친이계는 나경원과 원희룡 중에 선택해야 했고, 나경원이 출마를 머뭇거리는 사이원희룡이 출마를 결정하면서 원희룡으로 청와대의 의중은 교통정리가 완료된다.나경원은 친이계와 쭉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나, 친이계가 주도권을 잃어가자점차 친이계와의 거리를 두는 모습을 종종 보여줬기에 선택지에서 배제당한다.그러나 나경원은 당시기준 호감(?) 정치인이었기에 민심을 등에 업고전당대회에 출마한다.그렇게 친이계 후보는 원희룡과 나경원으로 결정된다.반면 친박계에서는 유승민 카드를 내세워 사실상 단일후보로 추대하며, 친이계에 대한 복수를 다짐한다.그리고 아직까지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던 한나라당 소장파들은 남경필을 후보로 내세우며한나라당 전당대회는 친이VS친박VS소장파 간의 3파전이 될 것 같아만 보였다.그러나 친이계와 친박계의 혈투 속에서 대세론을 형성하고 있던 것은친이계와 친박계 어디에도 속하지 않던 홍준표였다.유력주자인 원희룡, 나경원, 유승민은 당시 기준으로 상대적으로 뉴비였기에선수가 높고, 경험이 많던 홍준표가 치고나가기 시작한 것이었다.홍준표는 그간 범친이계로 불리고 있었느나 전당대회를 앞두고친박계에 대한 우호적인 스탠스를 취하며, 친박계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또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로는당시 한나라당 전당대회는 1인 2표제 였기 때문이다.친이계는 친박계 후보를 막기 위해, 친박계는 친이계 후보를 막기 위해서전략적으로 2번표를 무계파였던 홍준표에게 몰아줬기 때문이다.그렇게 운명의 날은 밝아왔고,친박계가 밀어준 홍준표와 유승민이 당심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며친박계의 압승으로 끝이 났다.친이계가 지원한 원희룡은 4위라는 처참한 성적을 보여줬고나경원은 당심에서 참패했으나 민심을 등에 업고친이계가 지원한 원희룡을 제치고 3위로 당선되는 기염을 보여준다.또한 소장파의 지지를 받은 남경필이 턱걸이로 당선되며한나라당의 변화를 보여주는 모습으로 평가 받았다.개혁보수인 친박계(진짜임)와 소장파 의원들이 대거 지도부에 합류했고,평소 친서민 정책을 펼치던 홍준표(진짜임)가 대표에 당선되었으며,좌클릭을 주장하던 황우여 원내대표(진짜임)이 이끄는 새 한나라당 지도부는보수정당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 대목이었다.그렇게 변화된 한나라당을 보여주려 했으나오세훈이 핵폭탄을 집어던지고선관의 디도스 테러 사건이 터지며한나라당 홍준표 지도부는 1년도 못 가 붕괴 위기에 처한다.그러자 유승민을 필두로, 당 내 최고위원들이 동반 사퇴하면서홍준표 지도부는 붕괴당한다. (이준석, 한동훈이 당한 그거 맞음)당시 유승민은 당을 박근혜에게 넘기고 박근혜의 얼굴로 총선을 치뤄야지한나라당이 살아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박근혜는 이런 유승민을 극구 말렸다고 한다.왜냐하면 당시 상황을 보면 알겠지만 도저히 이길래야 이길 수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그렇게 야심차게 출발한 한나라당 개혁지도부는 붕괴당하고 만다.그리고 이 전당대회는 보수정당 네임드들이 총출동한 전당대회였으나이들의 끝은 매우 비참했고출마한 모든 이들이 정치적으로 크나큰 몰락을 겪는다.홍준표는 대표직에서 반강제적으로 끌어내려 앉혀졌고, 이후 19대 총선에서 패배했다.유승민은 박근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비대위를 주장하며 지도부를 붕괴시켰고, 이로 인해 박근혜에게 찍혔고당명 개정과 관련하여 박근혜와 맞서면서 완전한 결별을 맞이한다. 그리고 이 결별은 정치인 유승민의고난의 씨앗이 되었다.나경원은 오세훈의 사퇴로 인해 서울시장 보선에 출마했으나 온갖 네거티브 폭탄을 맞고 정치적으로 몰락했으며원희룡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서울시장 경선에 출마했으나 나경원에게 패배하면서 야인이 되었다.남경필은 모두가 알다싶이 아들문제로 정계에서 은퇴했고,당선되지는 않았지만 출마했던 권영세, 박진의 경우두 번 내리 낙선 또는 낙천하면서 정치적으로 암흑기에 접어들었다.그러나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듯이이렇게 몰락한 한나라당 지도부는정계를 은퇴한 남경필을 제외하고는모두 화려하게 복귀하여지금도 보수정당의 핵심세력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성자 : 내란말이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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