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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초병일기

adasd(124.48) 2024.08.25 15:54:45
조회 327 추천 1 댓글 0
														

고등학생시절 한국지리에 대해서 배울때 나리분지가 울릉도에서 유일한 평야라고 했었다.

울릉도에 처음 오면 평탄한 지형이 없어서 신기하다고 느끼면서도 나리분지에 가면 진짜 평야란 이런거구나 하고 확 깨닫는다. 

나리분지가려면 처음에는 산을 타고 올라가다가 그다음에 살짝 내려가는데 그때 눈에 탁 트이는 평야지대가 들어온다.

그러면 아 저기가 나리분지구나.. 하고 누구나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그곳에 우리 부대가 있었다.


여름에 초병하면 울창한 주변 경치를 바라보며 아주 잠깐이나마 편안함을 느끼다가 더위때문에 또 짜증이 나서 

금방 초소 안에 들어가서 휴머니스트하고 그랬다.

그맘때쯤 새벽에 근무서면 어릴때 시골에서 놀며 마셨던 그 공기냄새가 났다. 

보통은 그냥 자다가 오지만 어떤 날은 밤에 별들을 바라보며 주변에 밝게 빛나는 가로등 밑에서 서성이면서

공기 들어마시며 옛날 생각하면서 아쉬웠던 순간들도 떠올려 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도 하고..

그러나 아무리 새로운 다짐을 해봐도 그런 것들은 하루 지나면 다 사라져 버린다.. 

이곳을 거쳐간 이름 모를 다른 전역자들도 이런 감정을 느꼈을까? 


여름은 대한민국에서 초병이라면 누구나 힘든 계절이다. 

그나마 울릉도는 여름에 비가 일주일에 한 두세번은 오니까 시원함을 조금이나마 자주 느낄 수 있어서 괜찮았다고 해야하려나? 

영어단어장 하나 끼고 애써 하루에 40개정도만 외우자 하면서도 막상 제대로 안하고 노가리나 까거나 근무표 휴가표만 바라보면서 멍때리다 시간 다 날리고

저기 멀리서 상번자 오는 거 보이면 설렘에 초소 문앞에 나와서 마중나가고..

더웠지만 화창할때 느꼈던 그 기분 좋은 달콤함은 놀고 싶게 만든다.

그냥 잠깐이나마 마치 여행온 것 같다. 


어느날은 일병때 새벽에 안개가 짙게 껴서 이게 뭔가 싶다가 선임이 해무라고 말해줬다.

그러다 새벽 6시쯤에 자다가 나 혼자 일어나서 잠깐 선임 안깨게 조용히 초소문을 열고 나가면

주변에 갈매기 소리가 계속 들리는데 시야에서는 해무때문에 희미하게 보였다 안보였다하고 신기하게 비는 또 안내린다.

정말 몽환적이면서도 싫지 않았다.


한번은 화생방 훈련을 하는데 가스가 매워서 눈물이 났다. 제대로 안썼나 보다. 당황하니까 방독면 정화통도 옆에 같이 들어간 총무가 갈아줬다.

밖에 나와서 눈물 식히며 바람을 쐬는데 훈련소때 화생방 훈련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는 방독면때문인지 가스를 많이 태웠는지 너무 힘들어서 죽을 것 같았다. 살면서 죽을 것 같다고 느꼈던 유일한 경험이었다.

방방 뛰다가 결국 견뎌내고 밖에 나가서 공기를 쐬는데 콧물 눈물 다 난 거 따갑다고 닦지도 마란다. 추한 모습으로 그냥 멍때리며 앉았었다.

근데 돌이켜보면 또 추억으로 남는구나. 내 정화통 대신 갈아주던 이제는 이름도 모르는 우리 같은호실 친구도 어렴풋이 얼굴만 기억나고..


난 원래 사격에 소질이 없었다. 

영점조절도 뭐가뭔지 잘 굴러가지도 않고 훈련소때 사격 과락맞은 건 울릉도 오는데 한몫했다.  

사격 과락맞고 다시 쐈는데 또 과락맞아서 나중에 다시 사격하러 사격장까지 또 걸어갔다.. 

앞에총하고 어디서 사격장까지 걸어가는데 진짜 힘들다. 

야간에도 쐈었는데 그때는 성적 안 본다고 그냥 갈겼다.

그런데 자대 오니까 사격 과락맞으면 감점한다고 해서 긴장한 채로 쐈는데 또 과락 나와서 몰래 볼펜으로 구멍 뚫어서 냈었다.

근데 알고보니 나중에 아무도 감점 안하더라 ..


체단시간에는 헌병도 운동하라고들 하고 한번씩 생활관 올라와서 단속도 하지만 귀찮다.

그냥 사지방에 좀 있다가 주임원사에게 재수없이 걸리면 얼버무리다가 운나쁘면 감점도 받고..

그거 체단시간 얼마나 된다고 왜 운동안했을까.

무기력함때문인가? 

내가 의지가 부족한가 보다. 그러니까 문제지 가져와놓고 공부도 똑바로 안했겠지


작전지역에는 삭도기 타고 올라간다.

난 탈 일이 없어서 한 3번 타본 거 같다.

날씨때문에 삭도기 운행안할때는 작전지역에 상번 안하는 사람들이 생활관 올라와서 오전에 자주 독서실에서 대기하는데 일병일때는 좀 불편했다

걔네들 다 군복입고 있고 어쩌다 간부도 좀 있고 나 혼자 그냥 대충 입고 공부하려고 독서실 가면 뻘쭘한 느낌이 좀 들었다.

그나마 칸막이가 되어있어서 다행이긴 한데 싫었다. 


겨울에는 근무할 때 여름보다 편하다.

문 열일이 거의 없으니까. 겨울에 초소에 앉아서 난로 피우고 앉아 있으면 수면제가 따로없다.

처음 맞이했던 겨울에는 설렘때문에 눈사람도 만들고 별 짓 다했다. 

나중에는 눈이 너무 많아서 질려버렸다. 그때 같이 근무하던 선임이 쓸데없이 성실해서 제설하자고 꼬드겨서 제설도 했다.

그런데 어차피 30분 후면 원래대로 돌아가는데 제설을 왜할까?  

두번째 겨울을 맞이했을때는 내가 선임이었다. 

나는 제설 안했지만 다른 근무자들은 했겠지. 한 흔적이 좀 있어서 미안했지만 그때는 모든 게 무기력했다.

말년휴가 세고 있을 그즈음에 마지막 해무를 봤던 거 같다. 갈매기 소리가 들려서 반가웠다.


오후에 교육시간이라고 잠깐 헌병반 내려가면 반장님이 한번씩 제설하러 가자고 한다.

오전 기타조놈들은 근무자라고 헌병반 대기하고 우리는 떠밀려서 간다. 부럽다.

정문에서 눈바람 맞으며 한 30분 제설하면서 낄낄대고 오히려 즐거웠던 순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부대전체적으로 다 나와서 제설하던 때가 있었다.

나처럼 무기력한 병사들 몇명은 구석에 숨어서 관사쪽으로 들어가서 제설 하면서 최대한 눈에 안띈채 사렸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고 작전반장님이 오히려 병사들보다 더 불평하면서 사진을 계속 찍어댔다


눈 내리는 걸 보다보면 여기가 한국이 아닌 것 같다.

마치 외국에 있는 것처럼 이국적이다. 

새벽에 초소감성은 잊기가 어렵다.

전부 심하게 비현실적이다.

전역하고 나니 더 그렇다.

슬프고 우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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