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하고 좀 된 민간인이다. 포대 군사경찰이었음.

공갤 눈팅하다보면 군경 공부시간 많다, 밤에 어차피 잔다, 위로 받으니 개꿀이다 이런 식으로 군경의 힘듦을 간과하는 게시글이 꽤 많다.

이해한다. 나도 입대학기 전까지 그랬으니까.... 내 인생에서 손꼽히는 실수다.

보통 인간은 경험하지 않은 걸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연예인들이 악플로 받는 고통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음. 돈 많이 버는데 저 정도도 못 버티냐, 그냥 악플 안 보면 되는 거 아니냐 이런 식임.

여기까지만 알면 진짜 하수인 거임.

사람을 힘들게 하는 포인트는 그것만 힘든 게 아니라 그로부터 여러가지 힘듦이 끊임없이 파생되면서 스노우볼이 굴러간다는 걸 알아야 함. 

예를 들어보자. 연예인한테 악플이 언제 달릴까? 무슨 논란이 터졌을 때겠지? 그러면 상식적으로 그런 논란을 터뜨리는데 혈안이 된 애들(가x연, 디x패치) 같은 애들도 있겠지.

이런 애들이 하나하나 녹취 따고 카메라 들고 미행하면서 스트레스를 주는 거임. 거기다 무슨 논란이 터진다? 악플만 먹고 끝이 아니지. 출연하던 방송, 광고 취소 되면서 위약금까지 물어야 됨. 이선균이 논란 터지고 위약금이 100억이 넘어갔다 했음. 거기에 논란 터졌을 때 소속사 분위기 창나고 따로 대표한테 불러가 처신 어떻게 한거냐며 욕도 먹어야 되고 

이런 식으로 문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터지니까 사람이 돌아버리는거다. 

이 스노우볼 원리가 군경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난 사회에서 운동도 꽤나 하다 왔고, 밤낮도 자주 바뀌는 사람이어서 그냥 밤낮 바뀌는 크루근무? 별로 안 힘들거라고 생각했음.

전형적으로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실수를 한 거지....

군경의 크루근무는 어떤 식으로 스노우볼링이 걸리는지 알려줄게. 일단 잠을 제대로 못 자니 사람이 피곤해지겠지? 근데 이게 너만 피곤한 게 아니라 부서원 다 그래. 사람이 예민하면 꼽창으로 변할 가능성이 농후해짐. 나 있던 부대 기준 손꼽히는 꼽창 3명중 2명이 군경이었다. 특히 자기 근무 더 들어가는 거에 발작을 하는 애들이었는데. 하나하나 트집잡고 기 누르려 하고 하는 걸 전역 전까지 봐야했다. 

그리고 여기서 자주 언급되다시피 부대의 모든 일정은 일과제 위주로 돌아간다. 여기서 파생되는 문제가 또 많음. 여기 자주 나오는 얘기인 체련, 전투휴무 보장 안 되는 건 다 알거고. 특히 각종 교육이 쉬는 시간에 이뤄지는게 진짜... 일과제는 근무 도중에 오는거라 아무 문제가 없는데 새벽근무 서고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교육 부르면 그렇게 화가 날 수가 없다

. 상병신체검사? 군경은 새벽 근무 서고 잠 안 자고 가야 됨 ㅋㅋㅋ 일과제 애들은 근무 안하고 간다고 좋아하더라. 갑자기 잡힌 검열은 더 답이 없음. 심지어 난 새벽근무 서고 생활관 와서 한 시간 반 자고 10시인가 갑자기 누가 검열왔다 해서 방탄복 메고 뛰어댕겼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또 일과제 위주의 일정이란게 얘네 상번, 점심, 각종 점검 시간이 다 오전, 오후잖아. 너가 새벽근무를 서고 오전 취침을 하고 있는데 무슨 사이렌 점검이니 뭐니 하면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음. 난 동기 생활관이었는데 점심 시간에 타 특기 애들이 생활관에서 떠들고 있고... 걍 잠을 1년 9개월 내내 제대로 자지를 못했다.

이것도 문제임. 보통 공군이 편하다고 하는 이유가 공군은 간부 위주의 기술군이고 병사는 간부 보조가 주 업무이기에 편하다고 하는거임. 근데 군경은 공군계의 육군답게 직접 몸으로 떼우는 근무를 하잖아. 그래서 검열이나 교육의 빈도, 강도가 타 특기에 비해서 높다는 것도 알아야됨. 상황병 애들 얘기 들어보니 검열오면 장교만 털리고 자기들은 걍 커피타주고 뻘쭘하게 앉아있다고 하더라고. 

우린 그날 거수자 훈련 잘 안 되면 반장이 위에서 개닦이고 우리한테 화 팍팍 풀었음 ㅋㅋㅋㅋㅋ 이것도 스노우볼링이지. 몸으로 떼우는 훈련 하는 것도 힘든데 검열 결과도 다이렉트로 우리 책임이 됨.

생활 패턴이 다르니 또 여기서 얘기 많이 나오는대로 가종 가점 받을 수 있는 사역에서 다 제외됨. 그거 감안하면 위로 솔직히 크지 않다. 난 1년 9개월 내내 자격증 따고 오지 않은 내 자신에 대한 원망 뿐이었고 전역하고 그 어떤 근무나 교육도 없이 잉여롭게 살고 있는 지금이 행복함. 

다시 생각해보면 군대의 순기능이 일상의 감사함을 느끼게 해주는 거 같다.

일단 나 있던 포대 군경 기준으로 작성했지만 비행단 군경, 그 외 근무자 수 안 나오는 크루근무는 부분적으로 다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함.

힘들다는 인식이 괜히 퍼져있는게 아니고, 너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힘들다는 걸 알아야 한다.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입대를 미뤄서라도 자격증 땄을 거다.

나와 같은 실수 하고 싶지 않으면 무조건 자격증 따고 일과제 특기 받아라.

갑자기 새벽에 울컥해서 장문으로 써봤다... 뭐 억울하단 건 아니야 자격증 따온 친구들이 더 좋은 특기 받는게 맞는거지.

그냥 내가 했던 실수를 너네는 반복하지 않았음 하는 거다. 더 많이 볼 수 있게 개추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