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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판 나토가 없는 이유는 이미 다 망해서임.
아시아판 나토(ASIA NATO)중국의 부상으로 인한 안보위협 때문에 2020년대 부터 자주 거론되는 가상의 국제기구이기도 하다.주로 아시아의 친미국가인 한국, 일본, 대만, 호주와 뉴잘랜드, 필리핀와 인도, 베트남등의 반중국가, 태국등의 동남아국가들을 끌어들여, 유럽처럼 하나의 안보체제를 만들자는 소리다.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점. 아시아판 나토는 소련-미국 냉전(1947-1991)기간에 왜 창설되지 못했나?확실히 냉전의 중심지는 유럽이었지만, 냉전기간 군사적인 충돌, 대리전은 아시아에서 대부분 일어났는데 말이다.냉전 미국은 2020년대 미국마냥 고립주의국가도 아니고, 반공만한다면 마약과 자동화기, 지원금, 첩보력을 동원해 지원하던 국가. 안만드는게 이상하다. 실제로 냉전 기간내내 중요 전쟁인 국공내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중월전쟁, 우수리강 국경분쟁, 중동전쟁, 이란-이라크 전쟁,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까지 전부 아시아에서 일어난일인데도 말이다.과연 맥아더 장군 말대로 미국정부는, 아시아에 아는게 아무것도 없는 바보들로 가득차서 그런것일까?답은 간단하다. 아시아판 나토가 지금 없는 이유는 다망했기 때문이다.아시아판 나토가 될 조직 이 등장하면, 그때마다 다양한 이유로 와해되고, 그대로 무관심 속에 해산되었다.지금부터 아시아판 나토나 나토가 되려던 조직의 몰락에 대해서 설명하겠다.1. 동북아조약기구 ( NEATO )아시아판 나토의 첫번째 시도는, 미국의 52대 국무장관이자 초기냉전을 상징하는 인물인 존 포스터 덜레스가 생각해냈다.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이사람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조인한 미국측 대표라는 사실을 기억할것이다.덜레스의 구상에서, 동북아시아에도 나토와 비슷한 조약-방위기구가 필요하다고 봤다.구상대로라면, 한국, 미국, 일본, 대만이 참여할 에정이었다.그러나 두가지 이유에서 좌초되는데,한국은 이 구상이 나올 시점에서, 일본에서 독립한지 10년도 안지난 상황이고, 일본하고 국교정상화도 아직 안했고(1965), 평화선을 넘어 불법 조업하는 일본 어부들을 열심히 억류하고 있었다. 당연히 한국입장에서는 일본하고 동맹 맺을 생각이 없었다.또한 한국독립이 10년도 안지났다는 건, 일본도 전쟁이 끝난지 10년이 안지났다는 것이다. 당시 일본은 반전주의가 강했고, 미국과 조약문제로 1960년대와 1970년대 두차례에 걸쳐 안보투쟁이라는 전국적인 시위가 일어났는데, 막 평화헌법 만든 상태에서 다시 전쟁나가 죽을 준비를 하라고? 당연히 한일 양국의 강력한 반발로 무산되었다. 그래서 덜레스의 구상은 동남아시아와 서아시아에서만 이뤄지게 된다.2. 동남아시아 조약기구 ( SEATO )흔히 아시아판 나토가 과거에도 있었다면 이 조직을 말하는게 9할이다.참여국가도 미국, 영국, 파키스탄, 프랑스, 태국, 필리핀, 뉴질랜드, 호주라는 준수한 라인업이었다.이들의 목표는 아직 공산화가 되기전인 캄보디아 왕국, 라오스 왕국, 베트남 공화국을 지키는것이었다.실제로 이들은 베트남전쟁에 일부 국가가 참여하고, 세아토 연구소에서 경구수액을 만드는 등의 성과도 있던 조직이었다. 그러나 이들도 결국 사라지는데, 베트남과 동남아시아 분쟁에서 영국은 슬슬 빠지자는 입장이었다.프랑스는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후 북베트남과 평화협정, 그리고 남베트남의 반불감정 때문에 사실상 개입을 포기한 상태였다. 1966년에 나토 통합군에서도 탈퇴한 프랑스인 만큼 동남아 나토에도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파키스탄은 가입했지만, 정작 인도와 국경 분쟁으로 싸울때 회원국들이 개입하지않고, 오히려 인도와 친하게 지내려고하자 배신감을 느낀다. 방글라데시 독립전쟁에서도 지원을 받지 못하자, 그대로 탈퇴한다.또한 버마나 실론, 인도네시아등의 가입을 추친했지만, 비동맹주의의 수장이었던 인도는 가입 반대뿐만 아니라 세아토의 확장도 견제했다.뿐만 아니라 미국의 베트남 전쟁 패배로 미군의 동남아시아 철수. 보호국인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모두 적화되면서 사실상 조직의 존재 의미가 사라졌고, 주요 회원국들도 더이상 크게 관심을 가지지 못해서 1977년 마지막 합동훈련(대민지원)을 기점으로 사실상 해체되게 된다.3. 중앙 조약기구/ 중동 조약기구 ( Central Treaty Organization / Middle East Treaty Organization )흔히 바그다드 조약기구 라고 알려진 조직이다. 애들도 덜레스가 중동의 친미 국가들을 하나로 관리하려고 만들었다. 회원국은 당시 중동 친미국가였던 이라크 왕국, 이란 제국, 튀르키예와 파키스탄, 영국이 회원국이었다. 회원국만 봐도 벌써 싹수가 노랗다.정작 미국은 국제연맹 마냥 지가 만들고도 안들어갔다.이라크가 1958년에 공화정이 설립, 반영 정권이 정권을 잡으면서 이라크는 중앙조약기구가 영국의 내정 간섭기관이라고 1959년에 탈퇴했다.또한 중동전쟁 결과로 중동국가들이 친소정책을 펼치면서 조약기구 확장도 실패.1974년 키프로스 전쟁으로 튀르키예와 영국간의 분쟁고조, 1979년 이란 혁명으로 이란제국 붕괴, 파키스탄의 탈퇴로 사실상 의미 없어진 조직이되었고, 결국 남아있던 영국과 튀르키예가 1979년에 해산시켰다.4. 아시아-태평양 이사회 (Asian and Pacific Council)미국 주도로 창설된 위 조직들과 달리, 이 조직은 대한민국에서 나왔다. 한국이 주도한 몇 안되는 국제기구중 하나다. 원래 한국 내부에서도 "굳이 다른 할일이 많은데, 꼭 힘들여서 만들어야 하냐?"란 말이 나온 조직이지만, 당시 외교장관의 강력한 설득과 추진으로 일본 총리 사토 에이사쿠를 설득하는데 성공하면서 창설되었다.참여한 국가들은 다음과 같다.대한민국, 오스트레일리아, 중화민국, 일본, 말레이시아, 뉴질랜드, 필리핀, 태국, 베트남 공화국 등 9개국을 회원국으로 하고 라오스 왕국, 인도네시아를 옵저버로 두었다. 총 7번의 각료회의가 각국에서 있었고, 이 조직은 잘만하면 대중 견제를 위한, 2020년대에 논의되는 반중을 목적으로 한 아시아판 나토가 될 수 있었다.그러나 대소견제가 중요한 미국은 중국을 키워준다는 선택지를 골랐다.1970년대에 미중 데탕트, 핑퐁외교, 중화인민공화국의 유엔가입과 회원국들의 대중 수교가 이뤄지면서, 미국이 중국과 친하게 지내는 상황에서 한국 혼자 반중을 외칠 수는 없었다.오히려 1980년대에는 아예 미국하고 중국이 같이 소련을 막기 위해 중국 - 대한민국 - 필리핀 - 일본방어선 계획이 진지하게 논의되고, 미국기업이 중국 전차 개량을 시도하는 등의 상황이라, 결국 아스팍은 7차 회의에서 끝나고 만다. 사실 이미 이전부터 회원국들도 반중보다는 한국의 수출시장확대를 위한 국제기구로 보고있었고, 7차 회의에서 한국도 회원국 확대를 위해 반중 보다는 평화적인 경제교류노선을 주장했다. 8차회의가 있더라도 반중 목적의 군사기구 창설은 미중 화해속에 어려웠을것이다.5. Quad탈냉전 시기라 나토 존립도 불안했던 팍스 아메리카 시기를 지나, 신냉전 돌입하면서 다시 논의되는 조직이다. 워낙 유명해서 다들 알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진짜로 인도-태평양 조약기구라고 아시아판 나토로 진지하게 추진되었다.그러나 2025년 세계 무역 전쟁으로 미국에게 관세를 부과받은 일본과 인도의 반발로 점점 와해 될 뿐만 아니라, 쿼드 플러스로 추가 국가 가입도 이뤄지지 않았고, 인도의 친러 노선, 인도와 중국의 관계 개선, 비슷한 대중 견제 일환인 AUKUS의 사실상 무산으로 미래가 어두운 조직이기도 하다.이것으로 아시아판 나토 였었던 조직들의 흥망을 알아보앗다.이외에도 세계 반공 연맹이니, 아시아민족반공연맹이니, 세계 자유 민주연맹이니 하는 조직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탈냉전과 대중 수교가 이뤄지면서 반공 정치인들이 가서 떠드는 조직으로 바뀌어버린다.아시아판 나토가 멸망한 이유는 여러 개 있겠지만, 결국 크게 3가지다.1. 미국의 외교-정치변화로 인한 무관심.2. 주요 회원국의 불화와 분쟁.3. 대소련과 위성국 견제가 주목적이었던 것과 달리, 대소 견제인지, 대중 견제인지, 아니면 그냥 회원국의 평화적 교류인지 애매한 목적.쿼드도 위 3가지에 따라 슬슬 유명무실 해져가고, 아시아판 나토구상에 적극적이었던 일본의 이시바 총리도 물러나면서 아시아판 나토의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참고자료US, Japan, India, Australia ... is Quad the first step to an Asian Nato?https://www.scmp.com/week-asia/opinion/article/2121474/us-japan-india-australia-quad-first-step-asian-nato한국이 주도했던 ‘아시아판 나토’ 결말의 교훈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49006.html냉전기 한국의 지역주의 외교: 아스팍(ASPAC) 설립의 역사적 분석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232942헐거워진 中봉쇄망…"고관세 압박 美와 日·印 균열, 쿼드 흔들"https://www.yna.co.kr/amp/view/AKR20250813071900009https://en.wikipedia.org/wiki/Central_Treaty_Organizationhttps://en.wikipedia.org/wiki/Southeast_Asia_Treaty_Organizationhttps://en.wikipedia.org/wiki/Northeast_Asia_Treaty_Organization
작성자 : 초마록마고정닉
2019년 러시아 여행기 번외 (블라디보스토크)
러시아다녀오고나서 한 두달 쯤 있다가 친한 형이 같이 여행가자해서 후보지를 보다가 좀 색다른 곳 다녀오자해서 다녀왔었음이땐 블라디보스토크 여행지 한창 뜨고 있었는데 러우 전쟁때문에 완전 맛이 가버렸겟네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까운 유럽이여서 중국이나 일본, 대만같이 뭔가 비슷한 느낌이나 익숙한 느낌이 아니여서 형이 원했었음나도 러시아 여행이 재밌었기때문에 다녀왔었음번외로 돌린건 가장 인상깊던 것들은 사진으로 하나도 남기지 않았기에 볼 맛이 떨어져서 뺐음형은 사진으로 있을텐데 까먹고 달라고도 안했네우리나라에서 한 2~3시간정도 걸렸던거같고 도착후에 공항에서 오는 길에 수많은 LG 깃발들을 봤는데 아마 우리나라에서 러시아에 대한 투자 및 개발을 많이 했었던 것 같다모스크바나 다른 러시아 도시에서도 도시락이라던지 초코파이라던지 이미 우리나라 물건들이 많이 러시아에서 침투해 있었고삼성이나 엘지같은 건 이미 많이 쓰고 있었었음다 알다시피 도시락은 우리나라보다 러시아에서 대흥해서 마트에선 아예 도시락 컵라면으로만 한쪽 코너가 세팅되어있을정도맛들도 엄청나게 다양해서 도시락을 좋아했으면 사갔을텐데 싶었음러우전쟁때 그래서 저 기업들 다 손해 무쳤겟네라고 생각했었음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장 많이 가던 거리날씨가 초봄이여서 그랬는지 거리가 훨씬 깨끗하고 유럽느낌이 가득했음걷다가 아침으로 우흐뚜블린이라는 크레페 맛집에 갔었는데 개인적으론 연어와 딜들어간 식사용 크레페보단 디저트 크레페가 더 맛있었음나와서 서구권 느낌이 살짝 뭍어있는 월미도 스타일의 해변 거리를 구경하고 숙소 근처에 있는 혁명광장으로 갔는데 이 날 토요일이여서 광장에서 주말 벼룩시장과 경주행사를 하고 있었음충격적이였던건 혁명광장에 있는 정교회 성당 앞에서 차 드리프트 대회를 하고 있었음러시아답게 안전 장치는 철제 이동식 바리케이트가 전부였던 것도 기억남그 바로 옆으로 벼룩시장이 있었는데 여기가 진짜 너무 좋았음우린 저녁에 먹으려고 이미 곰새우, 도화새우, 킹크랩 냉동 자숙을 주문해놓은 상태라서 아쉽다 느꼈음블라디보스토크의 가는 의의인 냉동 갑각류들은 싸게 사려면 중국시장을 가야한다해서 그냥 대행업체에 주문했는데주말시장가니 판깔아놓고 팔더라그래서 좀 아쉬워하면서 보고 있었는데 대행업체에선 안팔던 털게가 보이더라심지어 내가 본 털게 중 가장 큰 애들이 있었음그래서 가격을 물어보니까 가장 큰 사이즈가 마리당 5~6천원정도여서 같이 간 형이랑 뇌정지왔음일단 내일도 장이 서겟거니 하고 일단 한마리만 사서 맛보고 맛있으면 다음날 와서 추매하려고 숙소에 놨었음그 외에도 꿀이나 다른 러시아 물건들이 진짜 말도 안되게 저렴했었음숙소에 털게 두고 나와서 갔던 독수리 전망대저 동상은 키릴문자를 만든 러시아 성인이라고 했던 것 같고 여기서 블라디보스토크의 상징인 다리와 항구가 가장 이쁘게 보였었음저기서 쭉 보다가 숙소로 일찍 돌아와서 갑각류 조지기 시작했음여기 숙소들은 갑각류 먹으려고 오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주방과 큰 찜솥을 준비해놓은 곳이 많았고 우리도 그런 숙소를 골라갔음킹크랩도 맛있긴했지만 독도새우라고 불리는 애들 중 하나인 도화새우랑 털게가 미쳤었음킹크랩은 우리나라에서 먹는 맛이랑 크게 차이가 없었는데 가격이 싼 정도?곰새우는 새우랑 딱새우 중간정도 맛과 질감이였던거같은데 알이 맛있더라도화새우는 여기서 먹듯 배부르게 먹어본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진한 갑각류의 감칠맛이 너무 좋았었음도화새우의 알도 맛있었음거기다 우리나라 가격의 거의 5분의 1수준이라 맛이 없을수가 없었음털게는... 미쳤더라자숙냉동이라 내장은 기대안했는데 내장이 너무 맛있었었음형이랑 같이 다음날 털게 풀매수하자하고 자고 다음날 갔는데 일요일은 장을 안서더라개슬펐음블라디보스토크의 관광지들 관광지보단 항구도시에 가까운 느낌이라 볼거리가 많진 않았음여기에 사진 없는 혁명광장과 처음에 말했던 해변 공원정도가 볼거리의 전부인듯?다음날 아침에 루스키 섬도 갔는데 그건 사진이 없네근데 딱히 볼 건 없었던 느낌겨울에 가면 얼어붙은 바다를 볼 수 있을 듯한데 봄에 가니까 성당없는 섭지코지 느낌이 살짝 있는 평범한 섬 같았음루스키 섬에서 돌아와서 갔던 조지아 음식점 수프라다 맛있었고 힌깔리는 모스크바에서의 트라우마로 안먹을라했는데 여기선 너무 맛있게 먹었음모스크바에 있는 가게가 허브를 강하게 쓰는 걸로 생각하기로했었음짭타벅스에 아아 한잔하고 시내 좀 구경하다가러시아 아시안?에 가까운 식당에가서 생물 킹크랩찜을 먹어봤는데생각보다 맛이 자숙이랑 큰 차이가 없더라물론 더 달콤한 게살맛이 더 느껴지긴하는데 가격이 2배를 넘었던거같은데 그 정도 차이까진 없었음나머지 러시아식 중국요리들은 맛있었음그리고 다시 독수리 전망대 올라가서 야경보고 돌아오는 길에 펍에서 맥주 한잔씩하고 돌아왔음이번에 러시아 여행기 쭉 다시 보면서 느끼는게 의외로 블라디보스토크가 가장 유럽틱하고 깨끗한 느낌이 있었음우리가 중국이나 아시아 영향을 많이 받은 곳을 안갔을수도 있지만 메인 거리들에선 그렇게 느꼈음그래서 이렇게 빈약한 관광 재원에도 불구하고 전쟁전에 한창 떠오르지 않았을까다만 정말 볼게 없기때문에 볼거리 좋아하는 사람들한텐 비추, 갑각류를 좋아한다 하면 씹강추였던 러시아의 후쿠오카같은 느낌이였음
작성자 : ㅇㅇㄹㄹㄹㅇㅇ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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