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연관 갤러리
남자 연예인 갤러리 타 갤러리(0)
이 갤러리가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0/0
타 갤러리 남자 연예인 갤러리(0)
이 갤러리를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0/0
개념글 리스트
1/3
- 돈빌리는 사람 특징.jpg ㅇㅇ
- [카최대] 출산률 정책을 펼치는 만화 카라멜된장찌계
- 韓 여행 와서 11살 딸 죽일듯이 폭행한 대만인 불구속 송치 난징대파티
- 싱글벙글 일본의 뚱녀메이드 카페 ㅇㅇ
- 캄보디아 韓대학생 ㅅㅁ 사건…중국인 3명 검거 RESETKOREA
- 2주에 4천만원? 강남엄마들도 깜짝ㄷㄷ ㅇㅇ
- 와.. 환승연애 이 남자 대체 왜 욕먹는거냐.. ㅇㅇ
- 갸루 아줌마한테 밥 얻어먹는.Manhwa 자몽다
- 美법원, 삼성전자에 “특허 침해, 6300억 배상하라” ㅇㅇ
- 싱글벙글 외국인들이 이해하기 힘들다는 한국인의 특징 수인갤러리
- 미국 증시, 하루 만에 1조 5천억 달러 넘는 가치 증발 ㅇㅇ(NEWS)
- '한국 사람들 맞아?' 캠핑족 논란 ㅁㅇㄹ
- 뭉치한테 축구공 날리는 코난 니얀다
- 일본 좀비열차 이거 진짜임? 재커리에드워드
- 혐주의) 훌쩍훌쩍 펫박람회에서 간식사왔는데 구더기있음 ㅇㅇ
패러디는 어떻게 예술이 되었나. The Looker
https://youtu.be/AbzbdDRzfso GDC, 비디오게임 패러디의 미학 by 브래들리 로벨 작년 6월, 저는 〈The Looker〉라는 게임을 출시했습니다.이 게임은 2016년에 나온 〈The Witness〉의 직접적인 패러디작이었죠.원작처럼 이 게임 역시 수수께끼로 가득한 신비로운 섬에서 1인칭 시점으로 퍼즐을 푸는 게임이지만,다른 점이 있다면 〈The Looker〉는 기발한 퍼즐, 노골적인 상호텍스트적 참조,그리고 절묘하게 배치된 남성기 농담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게임을 출시하면서 저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왜 비디오게임 패러디는 이렇게 드문 걸까?”그때는 몰랐습니다. 이 모든 일은 이미 딱 한 번 일어났었다는 걸.1996년, Parroty Interactive라는 개발사가당시 유명했던 명상적 퍼즐 게임 〈Myst〉를 패러디한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게임을 발표했습니다.그 게임의 제목은 바로 〈Pyst〉였습니다.〈Pyst〉는 진짜 정식 패러디 게임이었고,꽤 큰 예산과 모든 최신 기술적 요소들, 그리고 FMV까지 사용했습니다.혹시 기억나실랑가 모르겠네요? 그 유명했던 풀 모션 비디오 시대 말입니다.개발 스튜디오는 경험 많은 작가와 배우진,그리고 그래미상 후보에 오른 패러디 코미디언 피터 버그먼의 참여를 자랑했습니다.하지만 패러디란 미끄러운 경사면 같은 것입니다.수많은 뛰어난 이들이 그 위에서 미끄러져 파멸로 떨어지곤 하죠.네, 잘못본거 아닙니다. 저 사람은 바로 배우 *존 굿맨(John Goodman)이죠...(*클로버필드 10번지, 바톤 핑크, 위대한 레보스키, 인사이드 르윈 등등에 출연한 뚱띠 배우)당연히, 〈Pyst〉의 평가는 아주 엇갈렸습니다어떤 평론은 부정적이었고,다른 평론은... 파괴적이었죠.PC Gamer는 이렇게 평했습니다.“이 게임은 마치 철사로 만든 파이프 클리너를 요도에 쑤셔 넣는 것만큼 웃기다.”이처럼 유망해 보였던 프로젝트가 어떻게 그렇게 참담한 유산만 남겼을까요?〈Pyst〉와 다른 많은 코미디 게임들이 실패한 이유는사실 아주 공통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에 있습니다.그래서 저는 지금부터,제가 코미디에 대해 배운 것들을 여러분께 말씀드리려 합니다.그리고 저는 〈The Looker〉의 개발 과정에서 배운 패러디의 구조와 원리,그리고 패러디가 플레이어에게 공감받는 이유, 혹은 완전히 실패로 끝나는 이유를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먼저, '패러디'란 본질적으로 ‘각본이 있는 유머’의 한 형태로서,플레이어가 능동적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제공되는 콘텐츠입니다.즉, 패러디의 유머는 명확한 작가의 의도나 서술자의 목소리에서 비롯되며,자연발생적인 게임플레이로부터 생겨나는 것은 아닙니다.예를 들어 〈QWOP〉 같은 게임은 자연발생적 유머(emergent humor)가 있는 게임입니다.하지만 이런 형태의 유머는 패러디로 기능할 수 없습니다.왜냐하면 ‘누군가의 의도’가 개입되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패러디와 그 사악한 쌍둥이인 풍자(satire)는모두 ‘기대의 전복(subversion of expectations)’을 통해 작동합니다.이 기대를 전복시키는 방식에는 두 가지 주요 방법이 있습니다.바로 '과장(exaggeration)’과 '반전(inversion)'입니다.과장은 원작의 특징적인 요소를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확대하는 것입니다.반면 반전은 그 요소를 정반대의 것으로 뒤집는 것이죠.이 두 방식 중에서 과장은 반전보다 더 비판적으로 보이는 경향이 있습니다.결국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죠어떤 것이 결핍되었을 때 웃기다면 그건 좋은 현상일까요?아니면 논리적 극단까지 밀어붙였을 때 웃기다면, 그건 나쁜 현상일까요?이 관점에서 보면, 패러디가 무엇을 비판하고, 무엇을 찬사하는지를꽤 효과적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심지어 이 틀을 조금 더 확장하면,풍자(satire)란 '반전을 이용하기보단, 과장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특수한 형태의 패러디’로정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하지만 이렇게 깔끔한 구분은 너무 인공적이며, 현실적으로는 불완전합니다.결국 패러디와 풍자의 진짜 차이점은 ‘형식’이 아니라 ‘목적(function)’에 있습니다.그리고 이 목적은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질 수 있기에,정확히 정의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제 생각에,풍자(satire)는 “논평을 하기 위한 유머”이고,패러디(parody)는 "유머를 위한 논평”입니다.〈The Looker〉를 출시했을 때, 가장 놀라웠던 점은사람들이 〈The Looker〉를 즐기는 정도가 〈The Witness〉를 좋아하느냐와는 별개였다는 점이었습니다.저는 이게 꽤 혼란스러웠습니다.〈The Witness〉를 싫어했던 사람들이왜 그 게임에 대한 헌사의 결정체를 즐기러 오는 걸까요?반대로 〈The Witness〉를 아꼈던 사람들은왜 그것을 신랄하게 비틀어버린 풍자를 즐기러 오는 걸까요?그 답은 의외로 단순했습니다.패러디의 핵심적인 매력은,그 원작에 대한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태도 자체가 아니라,플레이어가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구나”라는 확인의 기쁨을 얻는 데 있다는 것이었습니다.즉, 좋든 나쁘든, 누군가가 자신과 같은 것을 보고 있었다는 사실,그 공감이 패러디의 진정한 쾌감입니다.게임 속에서 가장 강렬하게 와닿는 순간들은대부분 원작의 ‘간과되거나, 잘 논의되지 않은 특성들’을 참조하는 부분이었습니다.이런 순간들은 플레이어로 하여금그 경험을 다시 되새기게 하고,그동안 쌓여 있던 긴장을 해소하게 합니다.흥미로운 점은, 이런 순간들이 꼭 크게 웃음을 터뜨리게 만드는 장면은 아니라는 것입니다.오히려 더 과장되고 황당한 농담들이 더 큰 웃음을 유발하죠.하지만 사람을 웃게 만드는 것이 패러디의 유일한 목적은 아닙니다.코미디언 놈 맥도널드(Norm Macdonald)가 말했듯이,“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것과, 사람들을 미소 짓게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The Looker〉를 자세히 보면,그 안의 유머 대부분은 특정한 형태의 기대 전복에서 비롯됩니다.즉, 고상하고 진지한 것과 저속하고 세속적인 것의 갑작스러운 병치 말입니다.그리고 그 고상하고 심오한 것들이 평범하고 아무 의미 없는 것들과 갑자기 병치되는 순간,그것이 바로 〈The Witness〉가 패러디 소재로서 그렇게 탁월했던 이유입니다.〈The Witness〉는 매우 절제되고 사색적인 게임입니다.플레이어가 퍼즐을 풀거나 게임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조금씩 깨달을 때마다,게임은 그를 끝없이 미해결된 사유의 상태로 끌어들이며,그 테마와 디자인이 내포한 의미를 더 깊이 성찰하도록 유도합니다.이 게임에 대한 대부분의 담론 역시 비슷한 진지한 어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그 덕분에 게임을 둘러싼 긴장은 오히려 더 고조되었죠.인기 있는 온라인 비평 영상들의 제목만 봐도 그렇습니다.예컨대, *“A Great Game That You Shouldn’t Play” 같은 제목들 말입니다.(*유명한 조셉 앤더슨의 더 위트니스 혹평 리뷰 제목)저에게 〈The Witness〉와 그것을 둘러싼 담론은롤러코스터의 첫 번째 오르막 구간처럼 느껴졌습니다.〈The Witness(증인)〉라는 제목조차 여러 해석이 가능하며,각각의 해석이 게임의 더 깊은 의미의 한 조각을 암시합니다.반면 〈The Looker(보는놈)〉라는 제목은 해석의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그 의미가 너무나 노골적이고 외설적으로 직접적이어서,그저 두려움과 경외 속에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죠.이 진지함과 우스꽝스러움의 간극이 바로〈The Looker〉 전반에 걸친 유머의 핵심 동력입니다.그리고 이 구조는 〈The Witness〉가 그만큼 독특한 성격을 가진 게임이었기에 가능했습니다.사람들이 〈The Witness〉를 좋아하는 이유는그 게임이 그들을 매우 고양된 사유의 정점으로 이끌기 때문이고,사람들이 〈The Looker〉를 좋아하는 이유는그 게임이 그들을 아무 의미 없는 깊은 바닥으로 떨어뜨리기 때문입니다.다음 인용문을 잠시 생각해보시죠.“여정은 목적지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목적지가 없으면 여정 또한 존재할 수 없다.”이 말은 수백 년 전 셰익스피어가 한 말인데요하지만 저는 패러디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느꼈습니다.패러디를 만들 때,‘유머 자체를 목표로 삼는 것’은 치명적인 독입니다.이는 수많은 패러디를 실패로 이끄는 가장 큰 오해이기도 합니다.유머는 목표가 아닙니다.목표는 원작을 매개로 관객과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며,유머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부산물입니다.이 오해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에서의“is-a vs has-a” 개념 혼동과 비슷합니다.많은 개발자들은 패러디가 ‘원작을 참조하는 유머의 한 형태’라고 착각하지만,사실은 그 반대입니다.패러디는 ‘유머를 포함한 원작의 창의적 해석’입니다.예를 들어, 이런 생각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합니다.“좋은 농담을 하나 생각해냈다. 여기에 원작 게임의 요소를 어떻게 끼워 넣을까?”대신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원작 게임이나 장르에서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다른 사람들도 아마 느꼈을 것이다.그걸 어떻게 하면 웃기게 표현할 수 있을까?”패러디를 만들 때 개발자들이 흔히 빠지는 또 다른 함정은,이전 패러디들이 사용했던 피상적인 양식을 흉내 내는 것입니다.이 점은 〈Pyst〉의 결말에서 가장 잘 드러납니다.〈Pyst〉는 마지막에 “I’m Pyst(=I'm pissed...)”라는 대규모 뮤지컬 넘버로 끝납니다.가사에는 〈Myst〉에 대한 피상적인 언급이 몇 가지 들어 있지만,대부분은 존 굿맨이자신이 “빡친(pissed)” 이유를 나열하는 내용입니다.예를 들어,“막다른 직장, 소비주의, 여자친구가 내 조명 깨뜨림…”뭐 이딴 식이죠.〈Pyst〉의 제작자 피터 버그먼은본래 연극 코미디 분야 출신으로,물론 패러디에 대한 개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그러나 그 결과, 이 게임은 게임이라기보다 공연에 가까운 분위기를 띠게 되었고,플레이어들에게는 전혀 공감되지 않았습니다.이 점은 실제 비평에서도 지적되었습니다.PC Gamer지에서는 이렇게 썼습니다.“이건 사실상 게임이 아니다.그저 렌더링된 슬라이드쇼가 순서대로 이어질 뿐이다.”감독 쿠엔틴 타란티노는익숙한 소재나 장르를 새롭게 비틀려 할 때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원작이나 장르 팬들이 즐기고 기대하는 ‘핵심 요소들’을여전히 충족시켜줘야 한다.”제가 이 말을 누나에게 했을 때,“뉴욕의 모든 영화학도들은 그 얘기 수천 번은 들었어.”라며 시큰둥해했죠ㅋ하지만 뭐 저는 그 말을 게임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따라서 〈The Looker〉 역시 단순히웃긴 코미디 게임으로서만이 아니라,흥미로운 퍼즐 게임으로서도 성공해야 했습니다.개발 과정에서 저는 끊임없이 생각했습니다.〈The Witness〉의 디자인 제약 안에서정말로 흥미로운 게임플레이 아이디어는 무엇일까?〈The Witness〉의 핵심 매력 중 하나가퍼즐 메커닉의 창의적 재구성이었다면,〈The Looker〉 역시 그 메커닉을 가능한 한 다양한 방식으로 재구성해야 했습니다.즉, 농담은 반드시 ‘게임플레이 자체’를 통해 전달되어야 했습니다.애니메이션, 컷신, 멀티미디어 장치 등 외적 수단에 의존해서는 안 됐습니다.앞서 언급했듯이,패러디의 주요 도구는 기대의 전복(subversion of expectations)입니다.한 번은 쉽게 할 수 있지만,이를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성공시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농담이 통하려면,항상 ‘대비(contrast)’의 감각이 존재해야 합니다.플레이어는 농담의 결말이 멀리서도 보이면 안 됩니다.이상적으로는, 결말이 있을 거라고조차 예상하지 못해야 합니다.플레이어가 ‘곧 웃길 것 같다’고 확신하게 되면, 실제로 웃길 때 그 효과는 훨씬 떨어지죠.그래서 예측 불가능성을 유지하고, 흐름을 끊어주며, 플레이어의 기대치를 다시 기본선(baseline) 으로 되돌려야 합니다.최근 코미디 게임들은 이런 부분에서 실패하고 있습니다.너무 단순한 전제들에 의존하기 때문이죠.한편으로는, 많은 포럼 게시물과 숙련된 개발자들은 이런 조언을 하곤 하죠“코미디 게임은 엉뚱해야 한다! 그래픽은 괴상해야 하고, 게임플레이는 유쾌하고 가벼워야 한다!”다른 한편에는, 일부러 조악하거나 부조화스러운 요소를 써서 ‘병맛(post)’ 감성을 노리는 문화가 있습니다.하지만 ‘의도적으로 저퀄리티’인 콘텐츠도 대비(contrast) 가 있어야 웃길 수 있습니다.<The Looker>가 ‘병맛 게임(post game)’으로 불리곤 하지만, 이 게임이 그런 요소들을 써도 통할 수 있었던 건그걸 구조적으로 지탱해줄 대비 요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예를 들어 <The Witness>는 우아하고 직관적인 퍼즐 인터페이스를 가지고 있습니다.깔끔한 미니멀리즘 디자인, 부드럽고 세련된 감각이 있죠.반면 <The Looker>는 그 반대를 택했습니다.투박하고, 조잡하고, 마치 그림판으로 낙서한 듯한 퍼즐 화면.그리고 ‘원본처럼 보이려는’ 추상 퍼즐 대신, 전부 그냥 미로입니다.식당의 어린이용 색칠놀이 종이에나 있을 법한, 옥수수밭 미로 같은 단순함.하지만 이런 조악한 퍼즐 화면은, 상대적으로 높은 퀄리티의 3D 환경 속에 배치되어 있습니다.<The Witness>의 중량감과 분위기를 어렴풋이 떠올리게 하죠.이 대비가 플레이어의 기대를 다시 기본선으로 되돌리고, 웃음을 유지하게 만듭니다.만약 <The Looker>가 이런 고퀄리티 요소 없이 그냥 전부 저퀄리티 농담으로만 채워졌다면,금세 질려버렸을 겁니다.마치 오래 씹은 껌처럼 말이죠그리고 하나 더 중요한 일반 원칙이 있습니다.이건 패러디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지만,패러디를 만들다 보면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원칙입니다.“플레이어의 시간을 존중하라.”항상, 어떤 상황에서도요.그리고 ‘분당 보상률(payoffs per minute)’ 을 일정하게 유지해야 합니다.그 보상이 농담이든, 진지한 도전이든, 혹은 단순한 탐험과 사색이든 상관없이요.이 원칙은 어떤 ‘특정한 분위기’를 내거나 ‘특정한 지점을 강조’하려다 쉽게 어기게 됩니다.예를 들어 <The Witness>에는 여러 개의 ‘레이저 큐브’가 있습니다.이 큐브는 작동할 때, 목표를 향해 천천히 회전하고, 또 천천히 빔을 발사합니다.정말, 터무니없이 느리게요.아무도 그 점을 지적하지 않길래, 저는 <The Looker>에 제 나름의 레이저 큐브를 넣었습니다.거기에 몇 가지 단계를 ‘추가’했죠.물론 <The Looker>의 큐브는 <The Witness>의 느림을 과장한 겁니다.하지만 그게 단지 느리기만 한 건 아닙니다.그 과정 하나하나가 ‘불필요하게 화려한 단계’로 꾸며져 있어서,플레이어는 여전히 무언가를 보고 있고, 웃고 있고, 보상을 받고 있습니다.즉, 겉으론 시간을 낭비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플레이어의 시간을 존중하고 있는 겁니다.플레이어의 동기 부여(motivation)또한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패러디는 기본적으로 스크립트된 콘텐츠입니다.그래서 플레이어가 게임을 좋아한다면, 그들은 절대 아무것도 놓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놓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FOMO)이나 ‘완벽히 다 보려는 강박(completionism)’은엄청난 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게임 디자이너 소렌 존슨(Soren Johnson)은 이렇게 말했습니다.“기회가 주어지면, 플레이어는 스스로 게임에서 재미를 최적화해 없애버린다.”어떤 분들은 “그건 너무 유명한 말이잖누...”라며 눈을 굴릴지도 모르지만,그건 여전히 진리이며, 여전히 자명하지 않습니다.이 말은 ‘모든 콘텐츠를 보고 싶어 하는 게임’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플레이어가 “이 구석에도 뭔가 재밌는 게 있을지도 몰라”라고 믿게 되면,그들은 개발자를 믿는 마음으로 엄청난 시간을 낭비하게 됩니다.그건 플레이어의 잘못이 아닙니다.그렇게 믿게 만든 디자이너의 잘못이죠.패러디에서는 기대를 전복할 수 있는 자유가 아주 큽니다.그러나 그 자유 속에서도 플레이어의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됩니다.그리고 이렇게 되면, 게임의 구조적 완성도를 지탱하는 핵심 기대치마저 전복하고 싶은 유혹이 생깁니다.하지만 그런 기대들은 게임의 ‘하중을 떠받치는(load-bearing)’ 필수 구조물이기 때문에 함부로 건드려선 안 됩니다.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입력과 출력의 문법(input-output grammar) 입니다.플레이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명확히 알고 있어야, 행동 공간(action space)이 뚜렷해지기 때문이죠.<The Looker>를 개발할 때, 저는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세계 곳곳에 있는 물체들 중 일부를 비밀스럽게 클릭하면 상호작용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겁니다.고전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게임들에 대한 오마주로요.이건 “퍼즐 화면만 상호작용 가능하다”는 기본 전제를 뒤집는, 나름 재밌는 농담이 될 수도 있었겠죠.하지만 그렇게 했을 경우 얻는 ‘웃음의 보상’에 비해,게임의 구조 전체가 입을 피해는 너무나 컸습니다.플레이어는 “어디서 또 뭔가 클릭할 수 있을지도 몰라”라고 생각하게 되고,그때부터 게임 속 모든 오브젝트를 샅샅이 클릭하며 뒤지게 됩니다.단지 조그만 보상 하나를 얻기 위해 말이죠.또한, 출력(output) 쪽의 기대 역시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플레이어가 ‘해야 할 행동을 올바르게 수행했을 때’,그 결과로서 무언가가 일어나야 합니다.그것이 그들에게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된다”는 신호가 되죠.그 신호가 없으면 플레이어는 혼란스러워합니다.“뭔가 놓친 게 있나?” 하며 주변을 뒤지다가,결국은 포기하고 불만족스러운 마음으로 떠나버립니다.이제 여러분도 아시겠지만,좋은 패러디란,그냥 웃긴 농담을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게 아니라,원작과의 ‘중심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유머를 다룹니다.‘웃기고 싶은 욕심’으로 시작해서, 나중에 ‘참조’를 끼워 넣는 게 아닙니다.좋은 패러디란, 장르나 작품에 대해 창의적인 비틀기를 시도하되 타란티노의 말처럼,“팬들이 처음부터 기대하고 찾아온 것들(deliver the goods)”을 여전히 제공해야 합니다.좋은 패러디는 예측 불가능함을 유지합니다.그리고 긴장감과 대비감을 다시 세워올린 뒤,그걸 한 방의 농담으로 수확합니다.좋은 패러디는 플레이어의 시간을 존중합니다.흥분해서 장난삼아라도 게임의 입력·출력 문법을 망가뜨리지 않습니다.또, 콘텐츠를 교묘하게 숨겨서플레이어가 의미 없는 탐색에 시간을 낭비하도록 만들지도 않습니다.(유명한 패러디 게임이래)여러분 중 패러디 게임을 만들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마지막으로 한 가지 조언을 드리고 싶습니다.패러디는 ‘당신이 강한 감정을 느끼는 대상’에 대한 것입니다.그러니 당신이 진심으로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드세요.당신 자신을 웃게 만드는 게임을요.유행을 쫓아 대중에게 맞추려 하지 말고,당신만큼 그 원작을 깊이 이해하고 애정하는 누군가에게 호소하세요.그 바보 같은 농담 하나에 10개월을 쏟았더라도,그걸 알아보고 웃어주는 단 한 사람이 있다면 그걸로 충분히 가치가 있습니다.
작성자 : ㅇㅇ고정닉
차단 설정
설정을 통해 게시물을 걸러서 볼 수 있습니다.
[전체 갤러리]
차단 기능을 사용합니다. 차단 등록은 20자 이내, 최대 10개까지 가능합니다.
설정된 갤러리
갤러리 선택
설정할 갤러리를 선택하세요.
[갤러리]
차단 기능을 사용합니다. 전체 설정과는 별개 적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