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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은행에 대하여.jpg
1878년, 일본의 제일은행을 비롯한 일본계 금융기관들이 조선에 진출하면서 본격적인 경제적 장악이 시작되었다. 이로 인해 조선 내에서는 일본 자본의 확장과 그에 따른 자국 경제의 종속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이에 따라 조선의 상공업자들과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자주적인 금융기관의 설립을 통해 민족 자본을 육성하고외세로부터 국내 경제를 보호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1894년 조선은행, 제국은행, 한흥은행 등의 근대적 은행들이 설립되었다. 이들 은행은 민족 자본을 바탕으로 조선인의 금융 자율성과 상공업 진흥을 도모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출범하였으나경영 기반의 취약함과 자본력 부족, 일본 금융세력의 압박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설립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모두 단명하게 되었다.오늘 알아볼 은행은 조흥은행으로, 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설립되어 아직까지 살아있는 은행중 가장 오랜 기간 운영된 은행이라평가받는 조흥은행에 대해단순히 금융기관의 역할을 넘어근대 금융의 기틀을 마련하고 민족 경제를 육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은행에 대해 알아보겠다조흥은행의 전신은 1906년 설립된 ‘한성은행’이다. 이는 당시 대한제국 정부가 민족 자본에 기반한 은행을 육성하고자 설립한 국내 최초의 민족계 상업은행으로, 주로 상업 금융과 외환 업무를 담당했다.
1909년, 한성은행은 이름을 조선상업은행으로 변경했으며1911년 일제에 의해 ‘조선식산은행’과의 기능 분리 후 다시 명칭을 조정이후 1945년 광복 전까지 일본의 금융 식민지 정책 하에서 조선은행(현 한국은행의 전신)조선식산은행 등과 함께 통제된 역할을 수행했다.한성은행은 조선 최초의 주식회사이기도하다.(아직까지도 형태를 보존하고있는 한성은행 부산지점)https://www.visitbusan.net/index.do?menuCd=DOM_000000201001001000&uc_seq=268&lang_cd=ko&pagingParms=4ca15f3a76a21f554a6e515f5344f50c4f734814d27260977c0eb574b1e0019a33f5a8e2dd587a9efb82cc91cf112987488312a3bc08c3054da8c190c930f6592e7894a7ed3cf42438e40b16135015920aa608ee54ad79feb8b43e0becf2aedf306446a26175f37928b2e64d297ab48f8acfae3743ce2794ef15d99eb793341329c53a76d24a81ef72a11ca917970aac34400ec0365d93e364d7a859d58178e212648c28901350cb20330ec09b4e8c7ee5e2b8287a2a6536a889e832bf7d31f847bff6a467836ed9d75537b39410af399cbcba9ee6702cb39537bf709fc893f16242d2505ff463a634757c4ad1fb5316c17e3c6c881b1202936a9591f574a9b458fe7ada378c8e24a939d38009efceb2f1d2f3d9fb0a84335999d70d74a175a02229fcd269f25ecae09cba47d7fa5b4ca79471889a1020e6226a199377b97ead69d777bcce27c101be7225c1ffeb0036367494277c22e6ec9cff0114e7cadf3a2d867367262d1b5f6a717ace24b4cae0734d3410c3de7cbbe8e8e2de4a08c9f7f2d71419b760deedc85bfd092d20cf83296e62049d974032c50fee7f8aa0e20719104acb04653baae653f6241ef307d9e996ca01c0f8bd82276525403ef8fbcf31d4983f32b1f9177a3efeb477fea6497dae5a33a304e09aaa71e04f0eb3f5d4c28002d6d0e6f2e344b096c13571485e713162dc5a9af3b561377692e22316b61b1ee1170df4e01c4f1d1a0495e864cc323e5570524f4f388deac0573d370a31e245c82131817bfc280919ef34d987bc76bc5524758342f66ad0806eaf0d7ef56640d59a044de449fb7b5435323a73b6d18a05069ba9c39946fff7103292e562fb03c6b34b72feab 명소 | 부산에가면 | Visit Busan 釜山広域市 명소 | 부산에가면 | Visit Busan 釜山広域市www.visitbusan.net한성은행의 설립과 운영설립일: 1897년 2월 28일설립 주체: 조선 정부의 인가를 받아 민간 상인들과 지식인들이 중심이 되어 설립위치: 한성(현재의 서울)자본금: 약 10만 원(당시 기준 상당한 규모)
한성은행은 근대적인 은행 업무를 수행하며어음 할인, 예금 수취, 대출, 송금 업무 등을 본격적으로 도입하였다. 특히 당시 상인들과 중소 자본가들이 외국계 금융기관에 의존하지 않고 자금을 융통할 수 있게 해주어, 민족 경제의 자립 기반을 마련하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광복 이후, 조선상업은행은 1950년 ‘조흥은행’으로 이름을 바꾸고대한민국 정부 아래에서 본격적으로 국내 금융 시장에서 상업은행으로 재출발하게 된다.
조흥은행은 전후 복구 자금 조달, 기업 금융 지원외환 업무 등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며특히 기업금융 및 외환 부문에서 강한 경쟁력을 가진 은행으로 성장했다.박정희 정부(1961~1979)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군사정부는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면서 금융을 철저히 통제했다.조흥은행을 포함한 주요 은행들은 국유화되거나 공공 통제 하에 놓였고이를 통해 군사정부는 금융을 산업정책의 도구로 활용하였다.조흥은행은 정부 주도의 대기업 육성과 수출 확대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대규모 기업 대출을 담당했다.이 시기 조흥은행은 실질적으로 정부의 산업 자금 공급 창구로 사용되면서 자율성과 독립성은 크게 제한되었다.전두환 정부(1980~1988)전두환 정권 또한 금융에 대한 통제를 유지했으며조흥은행은 여전히 정부 정책에 종속된 공적 금융기관으로 남아 있었다.하지만 이 시기를 거치면서 민영화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이는 세계적인 자유화 흐름과도 연관이 있다.조흥은행은 국내 최초로 365일 자동화기기(ATM)를 도입한 선도적인 은행으로특히 명동지점에서 그 혁신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기술 도입은 당시 은행업계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고객 편의성 증대와 금융 서비스의 혁신을 상징하는 사례로 평가받는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조흥은행은 한국 금융시장에서 굳건한 입지를 유지하며, 젊은 세대도 그 명성과 영향력을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대중적인 인지도를 갖추고 있었다. 이 시기는 조흥은행이 활발한 영업과 다양한 혁신을 통해 금융시장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하던 시기로 기억된다.1997년 발생한 IMF 외환위기는 조흥은행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급격한 경제 위기로 인해 자산 부실이 확대되고 재무건전성이 크게 악화됨에 따라김대중 정부는 구조조정 정책의 일환으로 조흥은행에 공적자금을 지원하였다. 조흥은행은 철저한 재무구조 개선 노력으로 2000년대 초반에 흑자 전환에 성공하였으며공적자금을 100% 회수한 유일한 금융기관으로 기록되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2002년 10월 당시 정부 주도의 금융시장 재편 과정에서 조흥은행은 독자 생존 가능성이 충분히 점쳐졌음에도 불구하고 신한은행에 매각시켰다. 이는 금융지주회사 체제 구축과 금융시장의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한 결정이었다. 특히 매각 시점에 조흥은행은 500억 원대 흑자를 기록하며 안정적인 경영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으나정부와 금융 당국의 정책 방향에 따라 합병이 이루어졌다.
이와 같은 조흥은행의 매각 및 신한은행과의 합병은 한국 금융 산업의 구조조정 역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한편, 일부에서는 당시 매각 결정이 조흥은행의 독자 생존 및 경쟁력 강화 가능성을 저해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이 합병은 한국 금융산업의 체질 개선과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으며신한은행은 이를 바탕으로 디지털 혁신과 글로벌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김규정씨의 할아버지는 일본에서 막노동으로 번 돈을 100억 원 규모로 조흥은행에 예치했으나조흥은행이 2002년 신한은행에 매각되면서 해당 자산을 상속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김 씨는 법적 절차를 통해 자산 반환을 요구했으나, 법원은 신한은행의 손을 들어주었다이 사건은 금융기관의 합병과 관련된 상속 분쟁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조흥은행은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 금융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활발한 영업활동을 펼쳤고이후 신한은행과의 합병을 통해 그 역사를 이어갔다. 2006년 합병 완료 후 신한은행은 단순한 금융 서비스 제공을 넘어 다양한 문화 및 스포츠 마케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했다.
특히 신한은행은 한국 e스포츠의 대표적인 대회인 ‘스타크래프트 스타리그’에후원사로 참여해 큰 관심을 모았다. 이는 당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급성장하던 e스포츠 시장에 금융 브랜드를 알리고친밀감을 형성하기 위한 전략적 마케팅의 일환이었다. 스타리그 후원 외에도 신한은행은 다양한 스포츠 및 문화 행사를 지원하며 대중과의 접점을 넓혔다.
작성자 : 네거티장애고정닉
EN콘 보러 혼자 뉴욕간 여행기 #2일차
[시리즈] EN콘 보러 혼자 뉴욕간 여행기 · EN콘 보러 혼자 뉴욕간 여행기 #1일차 뉴욕에서의 2일차 토요일 아침이 밝았다. 홀로라이브 EN 3rd Concert All for One의 첫날이기도 해서 오후 2시에 팬밋업(팬들끼리 모이는 행사) 전에 뉴욕 온김에 관광좀 하려함 위대한 구글 지도의 힘을 빌려 출발 무슨 행사를 하는지 타임스퀘어 일부 도로를 막고 텐트치고 음식이랑 각종 물건들을 파는데, 구석에서는 짝퉁 명품같은걸 바닥에 늘어놓고 파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아무튼 또 매우 노후된 지하철을 타고 자연사 박물관 쪽으로 이동 가는길에 뉴욕에서 유명한 브런치 중에 하나인 sarabeth's의 에그 베네딕트 중에 연어 베네닉트를 시켰다. 햄버그 베네딕트랑 연어 베네딕트 둘다 에그가 올라가있어서 둘다 에그 베네딕트인데, 잘 모르고 계속 에그 베네딕트는 없냐고 물어봤다가 설명 듣고 알아서 쪽팔렸... 아무튼 아침 잘 먹고 자연사 박물관으로 바로 입장 표는 여러 여행사 사이트에서 파는거 사고 보여주면 입구 통과시켜주고, 안에 데스크가서 표로 교환할 수 있다. 사실 아무것도 모르고 출발해서 입구에서 사이트 찾고 표삼...ㅎㅎ 입구를 지나서 바로 찾은 곳은 조류관!으로 가서 네리사의 먼 친척인 Raven 찾아서 네리사와 한장 그리고 Owl도 한장... 무메이...ㅠㅠ 그리고 해양관으로 가서 Mumei의 고래도 한장... 무메이... 아쉽게도 범고래는 없더라 그러고 여러 관들을 돌아다녔지만, 이번 여행의 목적과는 관계가 없어서 생략 그리고 자연사 박물관 일정 이후 팻밋업 장소로 이동 중에 본, 케이팝 데몬헌터 싱어롱 버스. 체험 버스같은건데 저거 타고 타임스퀘어 근처 돌면서 노래 부르더라 근데 미국 애기들 줄 엄청서있는거 보고 놀람 ㄷㄷ 팻밋업은 팬들끼리 공연전에 모여서 작은 행사같은거 하면서 결속력을 다지는 목적으로 각 팬덤들은 서로 다른 공연에 모여서 행사후 공연장으로 이동함 제일버드, 크로니즈, 로자리안은 공연장에서 20분 거리인 데빗 클린턴 공원에서 본다고 해서 글루감가는길에 네리사 핫피랑 이나 핫피입은 제일버드랑 타코다치 만나서 통성명하면서 갔는데, 입구부터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근처에 개를 위한 공간이 있어서 견주들이 계속 지나갈때마다 바우바우가 간다 하면서 길을 계속 비워주는것도 재미있었음 또 사이사이에 홀로 카드 나눠주는사람. 팬네임이 들어간 비즈 팔찌 나눠주는 사람 등등 서로 뭘 주고 막 인사함. 네리사 USA 밈으로 네리사랑 미국 국기 그려진 깃발 흔드니까, 갑자기 미국 국가를 부르는 양붕이들... 주최측에서는 한 30명 올줄알았다는데 훨씬 많이와서 진행이 매끄럽지는 못했지만, 경품 추첨 (노트북 찢어서 닉네임 적게함ㅋㅋ), 네리사 노래에 팬 코러스 녹음 등을 짧게 진행하고 단체 사진 및 영상을 찍었다. 주최측 트위터에서 올린, 데빗 클린턴에 모인 팬덤 단체 영상. (영상에 안찍히고 밖에서 구경하던 팬들도 많았음.) 이렇게 팬덤들이 모인 공원이 5,6개는 더있었다니... 정말 놀라웠다. 특히 타고다치는 다른 집합 장소도 여러군데 있던데, 왜 여기도 많은가... 그리고 4시부터 공연장 입장이라, 걸어서 라디오 시티 뮤직 홀 공연장으로 이동 아까 길막고 노점하는 곳을 핫피 군단이 지나가니까, 일반인들이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더라ㅋㅋ 이타샤 차량들도 3,4대정도 와있었고 앞에서 팬 스티커나 마스코트 가면같은거 나눠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망의 공연장 로비. 앞 보안검색대에서 물까지 다 버리게 하고 안에서 마실거 파는데 생수 패트 샀는데, 팁 버튼이 계산기에 올라올때는 어질어질 했다... 첫날엔 15퍼 눌러버렸지만 2일차날엔 노팁 누름. 공연 1시간전에 착석해서 아직 빈자리가 많아보이지만, 공연 직전에는 거의다 찼다 공연 사진은 못찍기도하고 공연에 풀 집중해서 방송 분에서 캡쳐해서 대체함 사실 이번 현장 콘서트는 이번 EN 3rd 콘서트가 처음인데, 작년 EN 2nd 콘서트때 콜 넣는거 처음 보고 재미있어서 무리하게 현장 콘서트를 오게되었다 그리고 그 기대에 부흥하는 엄청난 현장감과 열기가 가득했다. 신나게 콜넣고 응원봉 흔드는데, ㄹㅇ 엄청 재미있고 감동적이었음... 바로 온게 후회되지않고 내년에도 와야지 하고 마음먹게 되었음 그리고 현장 콘서트의 또 다른 장점은, 전방에 계속 고정된 공연 화면이 있다는 점이었다 앵글 계속 바뀌고 춤이 안보이는 방송 버전이랑 다르게 오시의 몸짓이 하나하나 계속 보이는건 ㄹㅇ 와서 봐야만 알수있는 감동이 있었다 현장의 고정 카메라 덕분에 지지 벨즈 올리의 춤 실력이 엄청 감탄하기도 하고 후와모코 다리털기에 환호했다 그리고 또다른 현장의 장점인 콜 특히 아이리스 다이아몬드 걸프렌드는 콜이 엄청났다. 방송에서는 잘 안들리는데, Hot 할때마다 우레와 같은 콜 ㅋㅋㅋ 가장 호흥이 좋았던 무대 중에 하나였음 그리고 네리사와 라오라의 MC는 ㄹㅇ 무대를 들었다 놨다 했다. 네리사의 퍼포먼스에 다시 대가리가 깨짐 그리고 네리사의 솔로 무대인 In my Feelings... 가장 좋아하는 곡중에 하나인 이 노래로 솔로를 장식해줘서 너무 좋았다 첫날이 여러모로 가장 좋았는데, 어드벤트 단체곡도 나오고 네리사, 리스, 리즈의 앨리스 앤 유... 너무 다 좋았다... 이렇게 2일차이자 EN 3rd concert의 1일차가 끝났는데, 진짜 여운이 엄청났다... 계속 서서 응원봉 흔들고 콜하다가 MC때 앉았다가 일어났다해서 다리도 엄청 아팠지만 그냥 행복한 하루였다..
작성자 : 르포르테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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