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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질어질 역대급 경기였던 오늘자 여자배구 한일전
- 관련게시물 : 방금끝난 여자배구 한일전 판정 논란.. jpg- 한일전 오심, 심판진에 대한 징계 민원 제기했다본인은 평소 법치주의의 수호, 공공질서의 확립, 사회 정의의 실현이라는 주권자의 소명을 실천하고자 헌신해 온 민주시민이다.이러한 소명의식에 따라, 정치권 및 사회 전반에서 발생하는 각종 부정부패 행위에 대해 행정기관과 수사기관에 지속적으로 신고 및 고발해 왔다.금일 열린 ‘2025 코리아인비테이셔널 진주국제여자배구대회’ 4차전 한일전에서 반복된 오심 판정으로 인해 대한민국 선수들의 역사적인 승리가 오점으로 남게 된 데 깊은 분노를 느끼며, 본인은 대한체육회에 심판진 징계를 촉구하는 민원을 제기하였다.< 국민신문고 민원신청 >< 징계 규정 >■ 대한배구협회 심판위원회 규정제23조(심판의 품위)⑤ 심판은 오심 또는 편파 판정 시 협회의 ‘스포츠공정위원회규정’에 따라 징계(문책)를 받을 수 있다.■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 규정제25조(징계 사유 및 대상) ① 위원회는 다음 각 호의 경우에 대하여 징계 심사할 수 있다.4. 승부조작, 편파판정제27조(징계종류) ① 징계의 종류는 그 대상별로 다음 각 호와 같다.3. 심판 : 견책, 감봉(보수 또는 보수에 준하는 수당을 수령하는 심판으로 한정한다), 출전정지, 자격정지, 강등, 해임, 제명https://www.youtube.com/live/Aq9dM4exhhc?feature=shared&t=8196 (2시간 16분 36초~)1. 5세트 후위 공격타구 반칙 오심 (2시간 16분 36초~)5세트 일본 4 : 1 대한민국 상황에서 한국이 공격을 진행하였습니다.이때 일본 선수가 자기 진영에서 정상적으로 공을 처리하여 네트 너머로 리턴하려는 과정에서, 주심은 이를 반칙으로 선언하였습니다.대한배구협회에 게시된 배구 규칙에 따르면, “후위선수가 네트상단보다 완전히 높은 곳에 있는 볼을 전위지역내에서 공격타구를 완료한 경우”를 ‘공격타구 반칙’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서비스와 블록을 제외하고, 상대편 방향으로 볼을 보내는 모든 행위는 공격타구로 간주한다”고 ‘공격타구의 특성’을 명시하고 있습니다.문제의 장면은 후위선수가 전위로 나와 낙하하는 공을 네트 가까이에서 자기 진영으로 토스한 것으로, 이는 규정상 상대방을 향한 ‘공격타구’로 볼 수 없습니다. 설령 이를 공격타구로 간주하더라도, 후위선수 공격타구 반칙의 요건인 “네트 상단보다 완전히 높은 공을 전위 지역에서 공격타구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심은 이를 반칙으로 잘못 선언하여 일본 선수의 정당한 플레이를 부당하게 실점 처리하였고, 이로 인해 일본은 정당한 공격 기회를 박탈당하는 불이익을 받았습니다.당시 중계진 또한 “오버넷 범실”, “오버 맞아요”, “코사 센터가 오른손으로 싱글 패스를 하려고 할 때 네트를 넘어갔어요”, “자, 지금 후위에요”라고 발언하며 심판 판정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곧 리플레이 장면이 화면에 잡히자, 중계진은 별도의 해설이나 설명을 덧붙이지 않고 상황을 넘겼습니다.2. 4세트 라인 아웃 오심 (2시간 05초 44초~)4세트 일본 18 : 20 대한민국 상황에서 일본이 공격을 진행하였습니다. 이때 일본의 서브가 엔드라인을 분명히 살짝 걸쳤음에도 불구하고, 심판은 이를 아웃으로 선언하였습니다.3. 5세트 서브에이스 오심 (2시간 26초 09초~)이어 5세트 일본 10 : 11 대한민국 상황에서 한국이 공격을 진행하였습니다. 이때 대한민국의 서브가 엔드라인을 명백히 넘어섰음에도 심판은 이를 인으로 선언하였습니다.배구 규칙에 따르면, “경기장 바닥과 접촉할 때 볼의 일부가 구획선을 포함하여 코트에 닿은 경우” 볼은 “인”이 되며, “바닥에 접촉한 볼의 모든 부분이 구획선 밖으로 완전히 나간 경우” 볼은 “아웃” 처리됩니다.그럼에도 동일한 상황에서 상반된 판정을 내린 것은 규칙의 기본 원칙을 위배한 것이며, 일관성을 완전히 상실한 중대한 오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4. 추가 오심https://youtu.be/4nvDK16a7cM?feature=shared앞서 지적한 사례들 외에도, 일본의 한 유튜브 채널에서는 5세트에서 두 차례의 오심이 더 있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구체적으로 일본 5 : 2 대한민국 상황에서의 ‘넷 터치’ 판정과, 10 : 10 동점 상황에서의 ‘블로킹 아웃’ 판정이 잘못되었다는 지적이 제기되었으며,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이에 동의하는 반응이 이어졌습니다.< 신고인 입장 >한·일 양국의 150번째 맞대결이자 광복 80주년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 경기에서 발생한 오심 및 편파판정은 단순히 경기 내 문제를 넘어, 국제적 스포츠 행사에서의 공정성 훼손 및 국가 이미지 실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사안이라 할 수 있습니다.이번 사안은 단순한 심판의 오심을 넘어, 선수들의 값진 승리가 공정하지 못한 판정으로 인해 빛을 제대로 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합니다. 오심 논란으로 얼룩진 것은 국민들에게 깊은 실망을 안겨주었을 뿐 아니라, 한국 스포츠의 국제적 신뢰에도 적지 않은 타격을 남겼습니다.스포츠는 승패 이전에 공정성과 투명성이라는 가치를 통해 사회적 의미를 갖습니다. 그러나 이번 경기에서 반복된 오심과 미흡한 중계 대응은 그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며, 스포츠가 지녀야 할 본연의 역할을 흔들리게 만들었습니다.따라서 본 민원인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심판 운영과 중계 체계 전반에 대한 철저한 점검과 제도적 개선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이를 통해 향후 국제 스포츠 행사에서는 다시는 같은 논란이 반복되지 않고, 선수들의 노력과 국민적 열정이 정당하게 존중받는 공정한 경기 문화가 확립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P. S.혹시 다른 오심 장면이 있다면 댓글로 구체적으로 알려주기 바란다.추후 확인 과정을 거쳐 내용을 보완·반영할 예정이다.
작성자 : 길호철고정닉
싱글벙글 일본군이였던 조선인 2명의 운명.JPG
홍사익 조선인으로서는 유일한 일본육군사관학교, 육군대학교 출신이후 무려 일본군 중장까지 오름원래 대한제국 육군 생도로 지원했으나 그대로 일본군에 편입 이후 만주에서 중국 팔로군과 조선 의용대를 소탕하며 승적을 올림 이후 2차대전 말기에 필리핀 루손의 포로수용소장으로 발령받았다가포로학대혐의로 전쟁범죄자가 되어 교수형을 당함 사형 판결 당시 "갑종(1급)합격이다!"라고 드립을 쳤다고 함 (교수와 갑종의 발음이 같음) 감옥에서 성경을 접해, 사형 집행 당시 한 일본군 포로에게 성경을 읽어달라고 요청그 포로는 후에 목사가 되었고, 홍사익은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됨 홍사익은 일본군 전범임에도 불구하고 창씨개명을 끝까지 거부함 아들인 홍국선이 조선인에 대한 차별에 대해 분노하자, 조선인임을 숨기지 말고 동등한 국민임을 입증해야 한다고 말함 이는 "조선인으로서 일본에 충성하면, 조선인도 일본인과 대등해질 것"이라는 신념에서 비롯되었다고 함. 그래서 홍사익을 일반적인 친일파로 분류해야 하는가에 대해선 논란이 있음 해방 이후 그의 후손들은 한국으로 돌아왔으나, 이승만 대통령은 그들을 전혀 반기지 않았고아들이 한국은행에서 근무한다는 말을 듣자 강제로 해고까지 시킴 6.25가 끝난 이후엔 친일파 가족이라며 사회의 비난에 시달리자 일본 수상이였던 '요시다 시게루'에게 하소연하는 편지를 보내 100만엔을 지원받아 가족들 모두 미국 LA로 이민, 남은 평생을 한국계 미국인으로 살았음 이후 행적은 알려지지 않음 지청천 한국광복군 총사령관대한제국 생도 당시 홍사익의 동기였으며, 일본군으로 편입되자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가야한다"며 자퇴 거부 졸업 후 일본군 소위가 되어 1차대전에 참전, 독일과 싸우며 다리 부상을 입음 1919년엔 중위로 진급하자 일본군 교범을 들고 탈영을 감행 만주에서 독립군 교관이 되어 청산리 전투를 겪고, 김좌진과 함께 독립 운동을 함 1930년대에는 일본군과 무장전투를 벌였으며 (쌍성보 전투, 대전자령 전투, 동경성 전투) 1940년대엔 김구와 함께 한국광복군을 조직한 후, 총사령관이 되어 해방을 맞이함 해방 이후엔 '대동청년단'이라는 반공우파정당을 설립최고 득표율로 대한민국 1대 국회의원에 당선1949년도에 병역법을 제정해 대한민국 징병제도의 초안을 만듦 이후 이승만을 지지했으나, 이승만은 지청천을 군 요직에 쓰지 않음자신과 다른 만주에서 활동했고, 라이벌인 김구와 친해 등용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이승만에게 국방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수차례 경고했으나 무시당함 이후 6.25 전쟁이 터지자 "이승만 대통령이 내 말을 듣지 않더니만, 결국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고 한탄부산으로 피난을 갔다가 1957년도에 70세로 사망현재 현충원에 안치중지청천의 후손들은 독립운동가, 육군 하사 등등으로 활동4대가 모두 병역을 수행한 '병역 명문가'로 지정증손자는 육군 병장으로 제대했고 오늘 광복절 행사에 초대받음
작성자 : ㅇㅇ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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