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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아카때문에 출발한 후쿠오카 여행기 - 2일차
[시리즈] 블루아카때문에 출발한 후쿠오카 여행 · 블루아카때문에 출발한 후쿠오카 여행기 - 1일차 아! 2025년 8월 30일 토요일!오늘은 드디어 캐널시티 하카타에서 본격적으로 블루아카 콜라보 행사에 참여하는 날이다행사 참여를 위해 9시 칼기상어제 사둔 컵라면을 끓여먹었다호화 아라야키(대충 서더리 구이라고 옮길 수 있겠다)다랑어를 썼다고 하는데 그 말대로 생선맛이 상당히 나는 게 포인트확실히 일본은 봉지면보단 컵라면이다동생은 닛신치킨라멘을 먹었다. 한 입 먹어봤는데 이것도 구수하고 맛이 좋았다그렇게 아침을 끝내고 빈둥대다 10시 넘어서 호텔을 나왔다전날 필요한 물품을 미처 사지 못했기에 근처에 있는 문구점에서 물품을 장만하고 캐널시티로 가기로 했다그런데 나오자마자 벌써부터 푹푹 찐다오늘도 쉽지 않은 여행이 될 것 같다그렇게 준쿠도 후쿠오카에 도착. 건물 2층에 위치해 있고, 아래층은 옷가게다여기서 샤프, 샤프심, 지우개, 클립보드를 빠르게 구매했다(3600엔 정도 나옴)그리고 바로 덴진미나미역으로 이동해 1정거장만 지하철을 타고 구시다진쟈마에역에서 내리면오늘의 목적지 캐널시티 하카타가 보인다. 사진은 노스빌문제풀이 키트 구매는 여기서 반대편에 있는 반다이남코 Cross Store까지 가야 한다노스빌에서 걸어가다 보면 문제풀이에 열중하고 있는 센세들이 많이 보인다걸어가면서 찍은 내부 전경사람들이 많아 위쪽으로 찍어서 인터넷에서 이미지를 하나 공유해 왔다이런 느낌행사장 내부에 도착해서 찍은 사진의상이 참 귀여우면서도 에치치하다문제풀이 키트는 초급, 중급, 고급 총 3종류가 있고난 세 개 다 할 거라 하나씩 샀다(각 2200엔, 계 6600엔)매대에 쌓여 있는 키트를 집어서 옆 계산대에서 구매하는 방식인데, 11시쯤 도착해도 수량이 넉넉했다참여할 블붕이는 굳이 오픈런까지는 안 해도 될 듯오늘은 맛보기삼아 초보편 먼저 풀어보기로 했다구매하면 이렇게 엽서도 준다호텔에서 찍은 문제풀이 키트전체 내용물은 문제를 푼 흔적이 있어 찍지 않았다(공식에서도 문제 유출을 삼가해 달라고 하여 문제풀이를 하는 동안의 사진은 없다)구성품은 클리어파일, 안내문, 특정 마크가 표시된 캐널시티 지도, 문제가 프린트된 종이+@클리어 특전으로 에필로그 카드와 스티커를 증정한다만약 포기할 경우는 에필로그 카드만 증정한다초보편은 나와 동생이 머리를 맞대고 2시간 정도 걸려서 다 풀었다진짜 이런 분위기였음중간에 당충전용으로 크레페 먹고1개만 먹었으니까 댇지아님아 캐널시티에 이런 곳도 있더라 울트라맨 좋아하면 가봄직함여담으로 캐널시티는 일정 시간마다 음악과 함께 분수쇼를 보여준다상당한 볼거리니 갈 일 있으면 보는 것 추천풀어본 소감은걸어다니며 직접 문제푸는 레이튼교수하는 느낌일본어에 익숙지 않은 블붕이는 살짝? 어려울 수 있다그리고 여기서 끝이 아니다가 반복되어 살짝 루즈해질 찰나에 긴장감을 잃지 않게 해 준다여하튼 문제도 풀었겠다 블루아카 콜라보 라멘을 먹으러 근처에 위치한 코우짱라멘 하카타 본점으로 향했다걸어서 한 10분정도 걸린 것 같다이동하면서 대충 한장드디어 코우짱라멘 본점 도착2시쯤 도착해서 그런가 웨이팅 없이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먼저 자판기에서 주문 후 식권을 뽑고 제출하는 방식, 바로 옆에는 정수기가 있었는데 물과 얼음이 한번에 같이 나온다나는 콜라보 차슈라멘, 동생은 콜라보 아지타마 라멘을 주문했고 음료로 콜라와 우롱차를 주문했다(콜라보라멘 각 1500엔, 음료 도합 500엔)메뉴 궁금한 블붕이를 위한 사진코스터는 무츠키랑 하루카가 나왔다(콜라보메뉴당 1개 랜덤)음료랑 벽면에 붙은 콜라보 판때기라멘 입갤진짜 저 김에 그림그린거 어케한건지 정말 신기하다면은 보통으로 주문했다(보니까 보통, 꼬들, 매우꼬들 이렇게 주문 가능한듯)국물은 약간 돼지국밥느낌? 돼지맛이 잘 느껴지는 좋은 육수였다면도 부들부들하고 잘 씹혔다차슈는 수육 비슷한 식감? 부들부들한 느낌은 아니지만 퍽퍽하지도 않은 그런느낌국물에 마늘을 넣어서 먹어도 맛있다완멘. 바닥에 幸자가 적혀있다매장 내 기둥 각 모서리에는 콜라보 SD아크릴이 놓여있다 커여움식사를 마치고 바로 뒤편에 있는 라쿠스이엔(落水園)으로 잠시 쉴 겸 이동하기로 했다입구를 넘어가면 이런 풍경이 맞이한다관리소에 입장료를 지불하고(어른 100엔, 아이 50엔) 입장할 수 있다연못에 비단잉어가 살고 있다. 잘 먹고 잘 컸는지 덩치가 어마무시하다입구에서 잉어 먹이를 살 수도 있는데 사진 않았다시즈모드 둘기도심 속 정원주변에 차도 거의 안 다니고 사방이 그늘져 있어 시원하고 고요하다잠시 앉아 쉬고 다시 지하철역으로 가 덴진미나미역으로 이동가라오케를 갔다가라오케는 2시간 조지고 이제 저녁먹을 시간원래는 근처에 신장개업한 스시로 지점에 가려고 했으나어 씨!발 보이는건 살벌한 웨이팅줄딱 봐도 1시간 이상 걸릴 것 같아서 그냥 아무데나 들어가기로 했다그렇게 걷고 또 걷고 어느덧 옆 구역인 다이묘까지 넘어와 어느 한정식집에 들어갔다들어가니 한국인 사장님분이 맞이해 주셨다메뉴판을 대충 훑어보고 낙곱새, 공기밥 2개, 새우전을 주문했다먼저 반찬으로 고사리나물이랑 김치가 나왔다고사리가 너무 맛있었다김치도 맛있었다낙곱새입갤부글부글 끓는 것이 벌써부터 침샘을 자극한다바로 입안에 한 숟갈 떠넣고 입김 후후 불면서 씹어먹다 밥이랑 같이 먹으니 여기가 후쿠오카인지 한국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맛이 좋았다열심히 밥 먹다 나온 새우전탱글하고 잘 지져진 새우였다 개꿀맛그렇게 열심히 낙곱새를 먹다 결국 참지 못하고 라면사리까지 주문했다한국처럼 테이블 중앙에 화로를 놓고 실시간으로 끓이는 구조가 아니다 보니 사리를 추가하면 냄비를 가져가 사리를 넣고 조리한 뒤 다시 가져다 준다이건...단순히 낙곱새+라면사리가 아니다낙곱새 볶음면이다돌솥냄비에 눌어붙은 당면, 사리, 양념이 나 한식당이요 자기주장을 확실히 한다이 집이 볶음밥까지 했으면 볶음밥까지 주문했을 것이다 이걸 어케참음바로 그릇까지 싹싹 긁어먹고 반찬도 남김없이 흡입완료했다그리고 하루의 마무리를 위해 전날 갔던 우락실에 다시 갔다오늘은 온게키에 더해 츄니즘이랑 태고까지츄니즘 왤케재밌는지 모르겠다 한국 돌아가면 우락실 가는 빈도가 늘어날 것 같다그렇게 1시간 넘게 동생과 우락을 조지고 호텔로 돌아가며훼미리마트에 들러 내일 아침용 야끼소바빵과 야식용 치킨을 샀다으흐흐내일도 캐널시티에서 문제풀이를 조지고아마 라라포트 후쿠오카에 후쿠뉴건담 보러가지 않을까 싶다웅히히 내일도 열심히 걸어야겠다
작성자 : 우주최강김훈타고정닉
저는 오늘 지구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남자입니다
출처 : https://infieldreport.com/?p=1368 저는 오늘 지구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남자입니다 - Infield Report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처럼 사람이 떠나도 영원히 잊히지 않는 상징이 있다. 스포츠에서 대표적인 상징이라면 유니폼, 그리고 그 뒤에 적힌 ‘등번호’다. 은퇴한 선수를 기리기 위해 해당 등번호를 영원히 다른 선수에게 부여하지 않는 것. 즉, 영구결번은 1935년 NFL의 레이 플레허티를 시작으로 어느덧 1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유구한 영구결번의 역사에 이름을 […]infieldreport.com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처럼 사람이 떠나도 영원히 잊히지 않는 상징이 있다. 스포츠에서 대표적인 상징이라면 유니폼, 그리고 그 뒤에 적힌 ‘등번호’다. 은퇴한 선수를 기리기 위해 해당 등번호를 영원히 다른 선수에게 부여하지 않는 것. 즉, 영구결번은 1935년 NFL의 레이 플레허티를 시작으로 어느덧 1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유구한 영구결번의 역사에 이름을 남긴 첫 야구 선수는 누구일까.메이저리그 최초의 영구결번이자 영원한 뉴욕 양키스의 NO. 4 ‘철마’ 루 게릭의 이야기를 시작한다.컬럼비아 대학교 시절 게릭, 의외로 그는 타격보다는 투수로 주목도가 높았던 유망주였다독일인 이민자의 아들, 양키스의 1루수가 되다1903년 6월 19일, 독일계 이민자인 아버지 하인리히 게릭과 어머니 크리스티나 게릭의 아들로 태어난 하인리히 루트비히 게릭은 가난한 집안 사정에도 불구 뛰어난 학업과 운동 능력을 바탕으로 컬럼비아 대학교에 입학한 모범생이었다. 공학 전공생이었던 게릭은 미식축 구 장학생이었으나 야구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다. 대표적으로 1923년 4월 18일 윌리엄스 대학을 상대로 투수로 등판해 17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던 것. 뿐만 아니라, 좌타 거포로서 엄청난 비거리의 홈런을 몰아치던 그의 재능에 뉴욕 양키스의 스카우터였던 폴 크리첼은 즉시 영입을 추천했다. 그렇게 게릭은 동월 30일 뉴욕 양키스와 입단 계약에 합의, 프로 커리어를 시작했다.지금은 전설로 추앙받는 게릭이지만, 그 역시 루키 시절은 어려움으로 가득했다. 입단 전부터 90승 이상을 기록하며 월드 시리즈를 노크하던 양키스 전력에는 큰 틈이 없었고, 따라서 첫 2년은 단 23경기 출전에 그쳐야 했다. 하지만 1925년 주전 1루수였던 윌리 핍이 부상으로 이탈하자 본격적으로 주전 라인업에 합류. 곧바로 500타석 가까이 출전하며 20개의 홈런을 기록해 주전 자리를 꿰차게 된다. 그렇게 게릭의 전성기가 시작됐다.1926년 데뷔 첫 100타점 시즌을 보낸 게릭에게 슬럼프란 없었다. 이듬해인 1927년 타율 0.373, OPS 1.240, 47홈런 173타점을 기록하며 리그 MVP를 수상한 것. 당시 베이브 루스의 171타점을 넘긴 타점 신기록이자 현재까지도 손꼽히는 청정 타자의 단일 시즌 기록 중 하나다. 더불어 60홈런을 때려내며 홈런의 신기원을 열어낸 루스, 명예의 전당 헌액자인 토니 라제리, 얼 콤스와 살인 타선을 구축해 커리어 첫 월드 시리즈 우승을 일궈냈다.당대를 지배한 레전드이자 사상 최고의 듀오인 루 게릭-베이스 루스, 두 선수가 양키스에서 기록한 홈런 수만 1,152개다화려한 전성기를 보낸 양키스의 철마,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변수를 맞이하다리그 최정상급 타자가 된 게릭에게 거칠 것은 없었다. 팀의 4번 타자로서 달게 된 4번의 등번호는 같은 이유로 3번을 달았던 루스와 함께 상대 팀 투수들에게 공포 그 자체였으며 압도적인 홈런-타점 행진을 이어갔다. 1931년 아메리칸 리그 타점 신기록인 185타점과 한 경기 4홈런, 1934년 타격 트리플 크라운을 비롯한 타격 5관왕 달성 등 엄청난 기록을 쏟아내며 팀의 우승과 본인의 명성을 쌓아갔다. 그리고 1936년 홈런-출루-장타 3관왕으로 두 번째 시즌 MVP 수상까지. 루스가 양키스를 떠난 후에도 위기 없이 팀을 이끌었다. 하지만 타격에서 여러 수상 실적을 쌓아 올린 게릭에게 가장 영광스러운 기록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2,130경기 연속 출장이었다. 1925년 6월 1일 대타 출장으로 시작된 그의 연속 경기 출장 기록은 첫 MVP 시즌을 지나 30년대에도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타격 성적만큼이나 빛났던 게릭의 투철한 프로 정신, 2,130경기 연속 출장이라는 대기록을 만들어내다1933년 투구에 맞아 쓰러지거나 1934년 심각한 허리 통증으로 첫 타석 소화 후 곧바로 교체되는 등 기록 달성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으나 게릭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훗날 그의 X-레이 사진에서 열 손가락 모두 골절 후 스스로 아문 흔적이 있을 정도였으나, 그의 출장은 계속됐고 무려 만 13년의 세월 동안 전 경기 출장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하였다. 이러한 게릭의 열정에 사람들은 그를 철마(The Iron Horse)라고 부를 정도였다. 그리고 특유의 부드러운 성격과 투철한 프로 정신으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렇듯 13시즌 동안 리그를 지배했던 선수에게 에이징 커브는 너무나 급작스럽고 예상치 못하게 찾아왔다. ‘루게릭병’이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한 질병, 근위축성측삭경화증이었다.불길한 징조의 시작은 1938년이었다. 누구보다 몸 상태를 중요시하던 게릭이 유난히 원인 모를 피로감을 자주 호소했으며 OPS 1.100을 가볍게 넘기던 지난해와 달리 OPS가 0.932로 급락한 것이다. 피로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으며 이듬해 들어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시범경기에서 단 하나의 홈런도 기록하지 못했음은 물론 시즌 개막 후 단 하나의 장타도 때려내지 못하는 최악의 부진에 빠진 것. 주루 도중 쓰러질 정도로 게릭의 몸 상태는 최악이었으며 수비 역시 정상적인 소화가 불가능해졌다.1920-30년대 양키스의 7번의 월드 시리즈 우승을 이끈 조 맥카시 감독, 게릭과의 화목한 한 컷그러던 4월 30일 1루 수비 중 자신에게 오는 평범한 땅볼 타구를 겨우겨우 처리한 게릭, 공수교대로 더그아웃에 들어가는데 팀 동료에게 “나이스 커버”라는 격려를 듣게 된다. 간단히 수비조차 동료들에게는 위태롭게 보여진 것. 큰 충격을 받은 게릭은 다음 경기 전 조 맥카시 감독을 찾아가 본인이 팀 전력에 방해가 된다는 말을 덧붙이며 연속 경기 출장을 멈춰달라고 건의했고 그렇게 게릭의 연속 출장은 2,130경기에서 멈추게 된다. 그리고 1939년 4월 30일의 경기는 그의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게릭의 컨디션은 하루 이틀의 휴식으로 나아질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 동년 6월 그는 부인의 권유로 6일간 정밀 검사를 받았고, 자신의 36번째 생일인 6월 19일 근위축성측삭경화증 진단을 받게 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팬들을 만났음에도, 운동 신경의 문제로 근육이 퇴화하는 병세로 인해 이미 게릭은 누군가의 부축이 아니면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였다. 곧바로 그의 불치병이 세상에 공개되었고 이틀 뒤 양키스는 게릭의 은퇴를 발표했다. 통산 타율 0.340, OPS 1.080, 2721안타, 그리고 500홈런-2000타점에 단 7홈런-5타점만을 남겨둔 상황이었다.최초의 영구결번, 양키스의 영원한 4번으로 남다언론과 팬들은 게릭을 그냥 떠나보낼 생각이 없었다. 그에 대한 감사와 영광을 기념하고자 양키스는 7월 4일 ‘루 게릭 감사일’을 가졌다. 당시 뉴욕시장이었던 피오렐로 라과디아, 팀 동료였던 베이브 루스를 비롯해 만원 관중이 양키 스타디움을 찾았으며 라과디아 시장은 그에게 ‘훌륭한 스포츠맨과 시민의 전형’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조 맥카시 감독은 연속 경기 출장이 멈춘 그 날을 떠올리면서 게릭에게 “너는 결코 팀에게 방해가 된 적이 없었다.”며 눈물로 작별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그리고 이때 남긴 게릭의 답변은 영원히 야구사에 남게 됐다.팬 여러분, 지난 2주 동안 제게 찾아온 불행에 대해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럼에도 오늘 저는 제 자신이 지구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남자(Luckiest Man on the Face of the Earth)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17년 동안 야구장에 있으며 여러분들로부터 호의와 격려만을 받아 왔습니다.(중략)그리고 당신이 배울 수 있도록, 또 커갈 수 있도록 본인의 삶을 쏟아 일하시는 부모님이 계신다는 건 축복 받은 일입니다. 당신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당신이 생각한 그 이상으로 큰 용기를 보여주는 아내가 있다면 그건 제가 아는 가장 멋진 일입니다.이러한 시련을 겪게 됐을지라도, 전 이렇듯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들을 누려왔다는 말씀을 전하며 이만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관중들의 수많은 박수갈채을 받으며 게릭은 눈물을 흘렸고 루스는 그에게 다가와 진한 포옹을 했다. 그리고 양키스는 메이저리그 사상 최초로 그의 등번호 4번을 다른 선수에게 부여하지 않기로 선언했다. 야구 역사상 최초의 영구결번이었다. 그렇게 루 게릭은 뉴욕 양키스 역사의 영원한 NO. 4로 남게됐다.이제는 뜻 깊은 하루로 영원히 기억될 레전드의 명성은퇴 후 그의 여생은 길지 않았다. 동년 12월, 은퇴 후 5년이라는 유예 기간 없이 곧바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며 게릭은 사상 최연소 명예의 전당 헌액자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라과디아 시장의 권유로 가석방 위원직을 맡아 1년간 활동했으나 1941년 들어 그의 몸 상태는 사무직도 맡지 못할 정도로 악화하여 5월에 사임하였다. 그리고 1941년 6월 2일 22시 10분 게릭은 향년 만 3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전국의 메이저리그 구장에는 조기가 게양됐으며 이듬해 그의 일생을 담은 전기 영화가 개봉하기도 했다. 사후에도 루게릭병이라는 별칭으로 꾸준히 언급된 레전드는 80년 뒤인 2021년 MLB 사무국이 그가 세상을 떠난 6월 2일을 루 게릭 데이로 지정하며 다시금 주목받았다.루 게릭의 은퇴와 함께 야구는 영구결번이라는 새로운 전통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 전통은 오늘날까지도 전설을 기리고 존경을 표현하는 최고의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역사의 첫 페이지에 이름을 남긴 루 게릭은 이제 단순한 선수가 아니다. 역경 앞에서도 감사와 겸손을 잃지 않았던 진정한 스포츠맨의 상징으로, 그리고 “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남자입니다”라는 마지막 고백과 함께 수많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영원한 양키스의 NO. 4로 살아 있다.출처 : https://infieldreport.com/?p=1368 저는 오늘 지구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남자입니다 - Infield Report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처럼 사람이 떠나도 영원히 잊히지 않는 상징이 있다. 스포츠에서 대표적인 상징이라면 유니폼, 그리고 그 뒤에 적힌 ‘등번호’다. 은퇴한 선수를 기리기 위해 해당 등번호를 영원히 다른 선수에게 부여하지 않는 것. 즉, 영구결번은 1935년 NFL의 레이 플레허티를 시작으로 어느덧 1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유구한 영구결번의 역사에 이름을 […]infieldreport.com
작성자 : InfieldReport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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