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연관 갤러리
윤하 갤러리 타 갤러리(0)
이 갤러리가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0/0
타 갤러리 윤하 갤러리(0)
이 갤러리를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0/0
개념글 리스트
1/3
- 아버지 연명치료 후회한다는 지석진 슈붕이
- 싱글벙글 미국이 없는 유럽.jpg ㅇㅇ
- 싱글벙글 이과생한테 수학 가르쳐서 떼돈 벌었던 문과생 코드치기귀찮아
- 최강빌런인 마녀가 용사에게 반해버렸다.manga 김전돋
- 미용실 만화 26 엄국수
- 엠비션이 말한 울프는 페이커빨... 사실일까? 롤갤러
- 해피일본뉴스 201 더Informer
- '북한 전쟁 나면 도울 것'...푸틴 결단에 전 세계 '긴장' 마스널
- 하하가 공개한 유재석의 역대급 축의금 액수 ㄷㄷㄷㄷ ㅇㅇ
- [출제자 관점] 블테대회 3차 서초2팀 요약 와파고
- 칸예의 AI 사용을 디스한 대니 브라운 이오더매드문
- 전신타이즈실눈근육녀가 깡패 때려잡는 만화 카갤러
- 의외로 유튜브의 탄생에 숨겨진 비밀 ㅇㅇ
- 해방촌 처음 가본 사람 (20장) Py
- 트럼프 장남에게도 놀림받는 젤렌스키 ㅇㅇ
(스압 주의) 제헌국회 총선거 남제주군 선거구 득표결과와 오용국
제작기간: 1948년 5월 현황: 부분적으로 발견 선거결과: 오용국(16,540표, 당선) 강성건(???표, 낙선) 유실사유 - 제주 4.3 사건 오용국(1904년 10월 28일 ~ 1968년 10월 11일) 사인 - 북한에 의한 처형 무덤 위치 알 수 없음. “5・10선거에서 오용국은 강성건과 경쟁했다. 오용국은 서귀면장을 지냈고, 말을 잘해 인기가 있었다. 심금을 울리는 말을 잘했다. 강성건은 방위대장을 했는데 저승차사라 불렸다. 오용국은 얼굴도 미남이고 인품도 좋았다. 일본에서 법학을 전공하였고, 회계를 담당했다. 오용국의 큰아들 오○순은 교장으로 퇴임해 신효동에 살고 있다.” - 신효동 주민의 증언 4.3 유적지 - 제헌국회 입법의원 오용국 추모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신효동 소재 나무위키에 오용국 의원의 사진이 올라가 있지만 북제주군 갑 홍순녕 의원도 같은 사진으로 올려져 있어서 추모비 사진으로 대체 발단 - 제주 삼일절 발포사건과 무장대의 봉기 https://www.youtube.com/watch?v=kyVZLlYgUww 1947년 3월 1일 제주북국민학교에서 3만여명의 군중이 집결하여 삼일절 기념행사를 열었다. 사회주의 계열의 단체 민주주의민족전선 등이 사전에 섭외한 12000여명, 각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참가한 8000여명의 시위대는 기념행사를 마친 후 원정로, 즉 지금의 관덕로를 따라 행진하며 가두시위에 들어갔다. 그러던 중 관덕정에서 북국민학교로 들어가는 골목길에서 어린아이가 경관이 모는 말에 치이고 말았다. 말에 치인 아이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으나 아이를 친 경관이 뒤도 안 돌아보고 지나가는 것에 군중들이 격분해 항의하자 경찰관들은 폭동으로 번질 것을 두려워해 시민들을 향해 발포하였다. 이 사건으로 21살 젊은 엄마와 15살 국민학생을 포함 6명이 죽고 말았는데 이 사건을 '제주 삼일절 발포사건'이라 부른다. ※ 신구범 전 지사는 죽기 전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말에 치인 아이가 자신의 고등학교 동창이었다고 증언했다. 열흘 뒤 이 사건에대해 경찰의 사과와 배상을 바라는 항의성으로 박경훈 초대 제주지사가 지사직을 사임한 것을 시작하여 제주도 직장의 95%가 파업을 하게되었다. 경찰당국은 사과와 배상을 하는 대신 총파업 주동자를 체포하는 것으로 화답했고 수많은 파업참가자에 비해 경찰력이 부족해지자 제주경찰감찰청은 파업에 참가한 66명의 경관들을 해임하고 그 자리를 육지에서 온 응원경찰과 서북청년단으로 채워버린다. 특히 서북청년단은 북한의 토지 무상몰수 무상분배로 인해 월남한 지주출신과 개신교인으로 구성된 단체로 사회주의라면 이를 갈고 탄압하였다. 이 들과 응원경찰들은 조천면에서 중학생 김용철, 대정면에서 27세 양은하 등 3명의 청년을 고문하여 사망케 이르렀다. 이 고문치사사건으로 민심이 술렁하자 자신의 입지가 불안해진 남로당은 이것을 기회삼아 1948년 4월 3일 무장봉기를 일으키니 이른바 '제주 4.3 사건'의 시작이었다. 전개 1 - 평화협상과 선거 보이콧 김달삼 - 본명은 이승진. 원래 김달삼이라는 이름은 장인 어른인 강문석이 사회주의 활동을 할때 쓰던 가명으로 김달삼에게 물려준 것이다. 9연대장 김익렬 이때까지만해도 제주도에 주둔하던 국방경비대 9연대는 봉기진압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는 않고 투항하면 김익렬 연대장의 비호아래 살려주겠다는 선무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VoU1pJXFR4 본격적으로 진압에 들어가기 앞서 무장대와 교섭하라는 미국의 명령을 받은 김익렬은 수차례 교섭을 시도한 끝에 4월 28일 무장대 사령관 김달삼과의 평화협상을 가질수 있었다. 평화협상 끝에 김익렬이 내린 결론은 72시간 이내로 양측의 전투행위 중지, 무장대의 무장해제, 범법자의 명단을 작성하여 책임자를 분명히 하되 자수는 무장대의 자율에 맡기고 무장대 수뇌부가 탈출할 수 있게 선박을 제공하고 대신 보증을 위해 자신의 가족들을 무장대의 인질로 보낸다는 것이었다. 김달삼은 깜짝 놀라 연대장의 가족들은 자신이 지정하는 가옥에 머물되 군인들의 출입을 허용한다며 한 발 물러나 평화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으나.... https://www.youtube.com/watch?v=WSyxkoffmkA 제주도의 노동절(May Day in Korea:Cheju-Do) 약 11분 경, 불타는 오라리 노동절이자 평화협상으로부터 72시간이 지나지 않은 5월 1일, 청년단원의 가족이 무장대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며 오라리 연미마을을 불태우는 '오라리 방화사건'이 일어나 무장대측이 격분해 협상을 파토내며 총선거를 보이콧하는 최악의 악수를 두고 말았다. ※ 방화사건의 무대인 연미마을은 사건이 수습된 후 재건되었다. 5월 5일 미군정 장관 딘과 조병옥 경무부장이 제주도를 시찰하는 김에 제주도 군정장관 맨스필드 중령, 유해진 도지사, 김익렬 연대장과 비밀리에 회의를 가졌는데 조병옥 경무부장은 방화사건이 빨갱이들의 소행이며 한시빨리 소탕해야 한다며 주장하고 반대로 김익렬 연대장은 이 사건은 복합적인 이유로 일어났으며 경찰에게도 일정지분의 책임이 있고 무력과 선무작전을 통해 진압해야 한다며 반박했으나 실랑이로 번지고 말았다. 실랑이는 최한 경찰감찰청장에 의해 소강되었으나 김익렬이 김달삼과 일본군 학병 동기였다는 이유로 협상을 파토냈다며 다음 날 연대장 자리에서 해임되고 말았다. 공석인 연대장은 경비대 총사령부 고급부관 박진경으로 교체 되었다. ※ 일본군 학병은 전문학생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장교과정으로 말이 모병제였지 모병과정에서 강제성을 띈 사실상의 징병제였다. 즉, 자원해서 입대한 것이 아니라서 이 둘은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들지 않았다. 한편 선거 보이콧은 대단히 성공적이었으며 남제주군 선거구에서 오용국 후보가 강성건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을 뿐 북제주군 갑, 을 두 선거구에서 과반수 이하의 투표율로 무효처리 되었으며 1년 후 다시 실시된 재선거에서 북제주군 갑에서 홍순녕 후보가, 을선거구에서 양병직 후보가 당선되었다. 이후 홍순녕 의원은 임기중 병사했으며 잔여 임기 1년 미만으로 재보궐선거는 치루지 않았다. ※ 제헌국회 한정으로 임기가 2년이었다. 전개 2 - 연대장의 교체와 계엄령 맨 우측이 박진경 전임인 김익렬과는 달리 박진경은 봉기 진압에 적극적으로 찬동하는 과격파였다. 박진경이 체포했다는 포로만해도 6000여명에 달했고 이로 인해 대령으로 빠르게 승진했다. 박진경이 무고한 제주도민을 탄압하였다고 생각한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는 6월 18일 대령 진급 축하식날 밤 술에 떡이되어 잠이 든 박진경을 사살하였다. ※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는 불명예 전역과 동시에 총살되었다. 박진경에게 탄압받은 사람들은 이 둘을 의사로 추앙하고 있다고. 박진경의 후임으로 폴란드군 장교 출신이었던 김상겸 대령을 임명했으나 밍기적거리며 봉기 진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고 8일 만에 경질되었고 그의 부하였던 송요찬을 새 연대장으로 임명한다. 이후 8월 15일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제일 먼저 제주도에 계엄령을 시행한다. ※ 군은 한라산 일대에 잠복하여 천인공노할 만행을 감행하는 매국 극렬분자를 소통하기 위하여 10월 20일 이후 군 행동 종료기간 중 전도(全島) 해안선 5km 이외의 지점 및 산악 지대의 무허가 통행금지를 포고함. 만일 차 포고에 위반하는 자에 대하여서는 그 이유여하를 불구하고 폭도배로 인정하여 총살에 처할 것임. 단, 특수한 용무로 산악지대 통행을 필요로 하는 자는 그 청원에 의하여 군 발행 특별통행증을 교부하여 그 안전을 보증함. 해안선 5km 이내를 제외한 모든 지역을 봉쇄하고 이를 위반할 시 이유불문하고 사살한다. 즉 '초토화 작전'이었다. 계엄령으로 한라산에 발이 묶이고 설상가상으로 인민대회에 참여한답시고 해주로 간후 돌아오지 않는 김달삼, 무능한 2대 사령관 이덕구로 인해 구심점을 잃어버려 폭주하기 시작한 무장대와 빨갱이 소탕한답시고 해안가에서 움직이지 않고 오히려 해안가로 이주하지 않았다고 마을을 불태우고 무고한 양민들을 학살하는 토벌대, 이 도저히 답이 없는 양측의 무의미한 분쟁으로 인해 합계 추산 약 3만여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이 답이 없는 초토화 작전으로 제주도 전체가 혼돈의 도가니에 빠진 와중에 모종의 이유로 인해 남제주군 선거구의 득표결과가 사라지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북제주군 선거구는 초토화 작전이 차츰 소강되고 나서 재선거를 치뤘기에 득표결과가 현재까지 남아있다. ※ 현재 약 1만 9천여명의 희생자가 제주도의 노력으로 신원이 확인되었다. 이후에 6.25전쟁이 발발하고나서 예비검속이라는 명분으로 약 3천여명이 행방불명 되었으나 여기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자신의 8촌 이내로 4.3 희생자가 있다면 제주시 제주한라병원, 서귀포 열린병원에서 제주시: 평일 오후 1시 ~ 5시에 서귀포시: 평일 오전 9시 ~ 오후 5시까지 유족 채혈을 받고 있으니 협조 바란다. 결말 - 선거 이후 오용국 의원의 생애 오용국 의원은 당선 후 4.3사건이 일어난 자신의 고향 제주도에 위문품을 전달할 것을 정부에 요청하였으나 묵살당하고 말았다. 임기가 끝난후 제2대 총선에 출마했으나 무소속 강경옥 후보에 밀려 낙선되었다. 낙선된 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서울에 남아있다가 6.25전쟁이 발발하고 서울이 함락되자 인민군에 의해 반동분자로 몰려 체포되어 납북되었다. 납북 직후 도자기 공장에 배치되었으나 생활총화에서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무식한 놈들이라고 비난하여 평북 철산의 탄광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그 수용소의 노동반장은 유독 그에게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다고 욕을 하였고 설상가상으로 식량 배급이 700g에서 100g로 줄자 앙심을 품고 노동반장을 구타하여 살해하였다. 곧 내무서원에게 연행된 그는 63세 생일을 17일 앞둔 1968년 10월 11일, 간수들과 수감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처형되었다. 그의 시신은 소각되어진 후 인근 야산에 봉분을 만들지 못하고 암매장되어 무덤의 위치를 알 수 없게 되었다. - dc official App
작성자 : 샤이니_셰피고정닉
사공 학대 기획1) 후쿠오카 면식
(실베 방지용)(실베 방지용)(실베 방지용)(실베 방지용)1. 후쿠오카 텐진, 아카노렌, 돈코츠라멘6월에 후쿠오카 면식글 올렸을 때 어느 유동이 아카노렌 멘야타이슨 같은 곳이나 가지 맛없는 곳만 갔다며 일침했던 적이 있었음잘 기억해두고 있다가 입국 당일 저녁에 가봤음기본에 세트로 시키니까 양이 생각보다 적게 나왔음 이후에 2차 생각 있어서 면 추가 더 안 하고 먹기로 함돼지냄새 매우 진한 전형적인 현지인이 더 좋아하는 가게로 6월에 갔던 잇소우 느낌 좀 났음한국인들 대부분은 역함을 느낄 정도로 냄새가 진했음 하지만 간 마늘을 좀 투입한 즉시 맛이 확 변했음 딱 이제서야 맛있어지더라감칠맛 폭발하고 그냥 면이 쭉쭉 넘어갔음 볶음밥하고 교자는 기억 잘 안 나는 거 보니 무난무난했었던 거 같음무기나에같은 타베로그 최상위권 라멘 맛집의 그런 느낌은 아니지만 확실히 잘 만든 돈코츠라멘이었음이번 여행에서는 일부러 웨이팅 긴 집 안 갔는데 (회전율 빠른 듯해서) 거의 유일하게 웨이팅 섰던 집2. 후쿠오카 텐진, 세븐일레븐, 자루소바이걸 넣는 게 맞나 싶었는데 생각보다 맛있어서 그냥 넣음 세금포함 410엔 치고는 놀라운 퀄리티였음맛 자체는 국내에서도 먹을 수 있는 무난한 소바 맛 물론 국내에서는 이 가격에 이 퀄리티 이 양은 안 나옴3. 오이타 유후인, 라멘 텐고쿠, 쇼유라멘관광지에 있지만 현지인이 주로 이용하는 라멘집 무난하다 못해 원초적인 현지인들이 매일 먹는 그 분식에 가까운 디폴트값 라멘이 무엇일지 궁금해서 방문해봄들어가니 오뎅 국물에 어묵 꽂혀 있어서 진짜 분식집 같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음먹어본 결과 국내에서 먹어봤던 쇼유라멘하고는 장르가 많이 다른 음식이었음굳이 추천할 정도의 맛집은 아니나 새로운 경험을 했다는 데 의의를 둘 수 있을 듯4. 기타큐슈 고쿠라, 오코노미야끼 타치바나, 야끼소바도쿄역 지하 라멘스트리트에서 먹었던 그 오코노미야끼에 필적하는 맛이었음국내에서 먹어왔던 것들과는 확실히 달랐음같이 시킨 오코노미야끼도 맛있긴 했는데 야끼소바가 훨씬 더 나았음4. 기타큐슈 고쿠라, 이치란, 돈코츠라멘 호텔 무료 조식 카레가 맛이 별로라 아쉬웠던 차에 이치란 저녁에 먹을까 생각만 하다가 생각지도 못 하게 발견해서 그냥 들어감마침 웨이팅도 없었음무난하게 맛있더라 특별하진 않고 이치란 밀키트하고는 맛이 좀 달랐던 거 같음차슈에서 햄 같은 느낌이 났던 거 같고돈코츠라멘 입문자들은 아카노렌같은 현지 가게에서 보다도 더 잘 먹을 듯라멘 가게들 싹 다 문 닫은 늦은 밤이나 새벽 아니고서야 또 가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임6. 기타큐슈 고쿠라, 멘야, 규코츠라멘여긴 길 찾기가 헬이었음 간신히 찾아감 규코츠(소뼈) 라멘을 국내에서도 파는 곳이 있었는데 이러저러 이유로 못 가본 차에 현지에서 먼저 먹게 됨맛은 단순한 사골라멘 맛이 아니었음 한번도 못 먹어본 맛달짝지근한 사골맛인데 돈코츠 느낌이 나면서도 풍미는 소뼈 특유의 그것이라한국인들 입맛에는 진짜 최적이 아닐까 생각함이거하고 위에 야끼소바 때문에 나중에 기타큐슈 또 오고 싶은 생각이 들었음7. 후쿠오카 하카타, 멘야타이슨, 카라이(매운) 돈코츠라멘여기도 후쿠오카에서 손꼽히는 돈코츠라멘 맛집이라길래 기대 많이 함하지만 결과는 이번에 방문한 라멘 가게들 중에 유일하게 실패함정확히는 "카라이" 돈코츠라멘이라서 실패했던 거 같음나한테는 하나도 안 매운데 그 양념이 돈코츠 풍미를 싹 다 바꿔놓았으니 그런 듯 보임깊고 걸쭉하긴 한데 밍숭맹숭하고 맵지도 않고 뼈해장국의 그 얼큰한 맛도 아니고뭔 맛으로 먹는지 모르겠더라 가격만 더 비싸고그냥 돈코츠로 시켰으면 잘 먹었을 거 같은데 상당히 후회됐음건대 우마이도도 딴 건 다 괜찮아도 카라이 돈코츠라멘만은 맛없었는데 둘이 딱 비슷했음카라이라고 다 맛없는 건 아닌데 카라이 돈코츠는 계속 실패하더라 앞으로 카라이는 이에케 츠케멘 같은 특수한 경우 아니면 안 먹을 거 같음
작성자 : pow고정닉
차단하기
설정을 통해 게시물을 걸러서 볼 수 있습니다.
댓글 영역
획득법
① NFT 발행
작성한 게시물을 NFT로 발행하면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초 1회)
② NFT 구매
다른 이용자의 NFT를 구매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마다 갱신)
사용법
디시콘에서지갑연결시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