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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중학생이 된 나는 초등학생 5학년 시절 전학 갔을때처럼 쉽게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고 , 여기선 멍청한 실수로 친구들을 잃는 일 따윈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내 마음 깊은 곳엔 여성으로써의 날 추구하는 내가 있는 한편 , 남성으로써의 내가 되살아나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완전히 지울수가 없었다. '더러운 거짓말쟁이' 로써의 나를 , 그리고 그런 내가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선택했던 구멍인 '오타쿠' 로써의 나를
나는 중학교에서도 만화를 읽고 그림을 그렸고 , 친구들은 그런 내 모습을 싫어했다.
나는 수업 시간에 공부하기 싫어 잠을 자는 척을 했다.
친구들은 내게 자는 척을 하지 말라고 이상한 컨셉이라 비난했지만 , 자존심이 강하고 지기 싫어하는 성격의 나는 오히려 더 많이 , 자주 자는 척을 했고 그럴때마다 친구들은 나에게 약한 장난을 치거나 때렸다. 그럼에도 나는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
친구들은 점점 더 짓궂은 장난을 치고 , 점점 다 강하게 잠든 척하는 내 몸을 쳤다. 그러는 도중 점점 친구들은 날 밑잡아보기 시작했다.
이 또한 내 자업자득이었던걸까.
2학년이 될때 쯤 내겐 친한 친구가 단 한명도 없었다. 막상 어울려 다닐때는 배척하려 하지 않았지만 , 왠지 모르게 친구들과 내 사이에 세워진 보이지 않는 벽은 쉽게 뚫을 수 없었다.
중학교 2학년 시점 , 나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다. 이미 내 마음 속에서 학교는 부담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던걸까. 그래서 무의식중에 등교를 거부했던걸까. 정확히는 알 수 없다.
난 아무 이유없이 학교를 결석했고 , 집에서 날 여자로 봐주는 인터넷에서 평소대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다. 그날 저녁 어머니는 크게 화를 내셨다.
다음 날도 나는 학교에 결석했고 , 같은 일상이 반복된다. 어머니는 내게 이유를 물으셨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 했다.
그 다음 날도 학교에 결석하자 어머니는 다시 크게 화를 내셨다. 어머니도 힘든 상황에 , 나까지 이런 태도를 보여야겠느냐고.
그리고 그렇게 몇일이 지나자 나도 무서워졌다. 이대로 학교를 나가지 않아도 되는걸까.
등하교를 하는 것이 인생의 유일한 규칙이었던 나는 내 규칙이 단결되자 모종의 불안함을 느껴 결국 내 자아로 학교에 등교했다.
하지만 등교를 해도 평소와 달라진건 없었다. 친구들이 내게 왜 그동안 학교를 나오지 않았냐며 이유를 물었지만 이유 같은걸 당시의 내가 알 방법이 있을리가 없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그냥 , 혹은 늦잠을 자서 못 나왔다 둘러댔고 , 친구들은 흥미가 떨어졌다는듯 "그렇구나." 라는 한마디와 함께 다시 그들끼리 어울려 놀았다.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그래야 할 터인데 , 어째서인지 불안하고 마음 한 구석이 뚫린 기분이 들었다.
익숙한 친구들의 얼굴이 보이는 복도를 걷지만 내 친구는 한명도 없었다. 친구들이 대화하고 있는 복도 한켠에 나도 끼어들어 이야기를 들었지만 내가 발언 할 기회는 없었다. 나는 마치 없는 사람 취급이었고 공허함과 허무함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나는 다시 학교를 나가지 않기 시작했다. 언제는 할머니가 오셨고 , 할머니는 날 걱정하셨다. 하지만 내게 이미 학교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는 장소였다.
가족들은 끊임없이 내게 말을 걸었지만 나는 대답 할 단어를 고르는 것 조차 할 수 없었다.
할머니가 우리 집에 오는 주기는 점점 짧아졌다. 나중에는 잠깐이지만 우리 집에서 출퇴근을 하며 지내셨다.
어느 날은 어머니가 날 나무 회초리로 때리셨다. 나는 내 일상과 인생과 자아와 주체성이 혼란스러웠고 남자인 내가 내 인생을 깨트린거 같아 원망스러웠다. 어머니에게 감정적으로 "이럴거면 차라리 죽여" 라고 소리쳤고 , 어머니는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시며 나무 회초리를 미친듯이 내게 후려치셨다.
꽤 굵었던 회초리는 30초도 안되서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부숴졌다. 어머니는 피로감과 감정의 소모 때문인지 숨을 크게 내쉬고 몰아쉬시면서 회초리를 내버리고 방에서 나가셨다.
할머니는 날 부둥켜안고 통곡하셨다. 나는 내 머릿속의 혼란보다 슬프다는 감정이 훨씬 커져 이내 내 온 몸을 지배했다. 나는 무표정하게 통나무처럼 침대에 앉아 할머니와 함께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가 오셔도 나는 학교에 갈 의지가 없었다. 아버지는 내게 욕하며 억지로 교복을 입혔고 날 들쳐메고 차에 태워 학교에 내려놓고 가셨다. 난 학교에서 죽은듯 잠만 잤다. 더 이상 자는 척이 아니었다. 나는 24시간 내리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한계 상태였고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를 듣는 척 하는 것 조차 내게 허락되지 않았다.
어느 날 일이 터졌다. 날 억지로 등교 시키려 하셨던 아버지가 큰 목소리로 호통치며 욕을 하셨고 , 이럴거면 차라리 같이 죽어버리자며 날 창문 밖으로 던져버리려 하셨다.
반 죽어있던 상태인 난 반사적으로 창틀을 잡고 버텼고 , 아버지는 억지로라도 창 밖으로 밀어내려는듯 세게 힘을 주며 내 몸을 창틀 밖으로 몰아냈다. 결국 아버지는 내 몸을 침대에 갖다 던지시더니 다시 욕을 하며 집을 나가셨다.
나는 그렇게 처음으로 죽음을 경험한다. 남자로써의 나는 또래의 아이들에게 버려지고 , 나에게 버려지고 , 마침내는 부모에게까지 버림을 받았다. 나의 영혼은 아무도 구원해주지 않는다. 구원 받을 수 없는 남자로써의 나는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1주일 정도가 흘렀을까. 등교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 아버지가 나에게 찾아왔다. 아버지는 오늘로 끝을 봐야겠다며 크게 소리 치시며 대걸레의 자루로 날 마구 후려치셨다.
고통스러웠던 나는 어떻게든 저항해봤지만 아버지는 여리고 작은 내 몸으로 대항 할 수가 없는 상대였다. 몇번이고 등을 맞았을때 쯤 아버지는 내게 "애비가 뭐 잘못한게 있으면 차라리 지금 날 때려라" 라고 하셨다. 날 창 밖으로 밀어내려 했을때부터 죽이고 싶을듯 증오했던 아버지는 증오와 분노의 대상이자 내 육체를 죽이려 했으며 내 영혼의 하나를 죽인 공포의 대상이었다. 당연히 뭐라 할 수도 , 뭔가를 할 수 있을리도 없었다.
구석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날 보며 아버지는 자기의 분을 못 이기신 나머지 "이렇게 때려보기라도 하라고" 라고 다시 윽박을 치시며 대걸레의 자루를 자기 종아리에 마구 후려치셨다.
스테인레스 재질이던 대걸레 자루가 찌그러지고 부러질때 쯤 아버지는 자루를 던져버리고 집에서 나가셨다. 집을 나가실때 아버지가 내게 뭐라 했던것도 같지만 , 난 공포와 충격에 떨고 있어 그 말을 기억하지 못 한다.
어머니와 할머니는 누나를 통해 내가 아버지한테 맞았다는 사실을 들으셨고 대걸레 자루의 길이만한 피멍이 든 내 몸 구석구석과 등을 보며 다시 눈물을 흘리셨다.
현실에선 폐인이 된 나는 오직 게임과 블로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하는 것만을 목표로 살았다. 내 인생은 이미 현실에 없었다.
그렇게 몇년이 지나자 어머니는 이런 내 모습을 더 이상은 지켜볼수가 없다며 아버지의 집에 보내버렸다. 아버지는 내가 금방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올거라 생각하셨던걸까 , 처음엔 내게 미안한 모습을 보이며 날 부드럽게 대하셨던 아버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날 죽였던 그 무서웠던 아버지로 돌아가셨다. 주거지가 정해진 뒤 아버지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기억은 날 볼때마다 호통을 친 기억밖에 없다.
그렇게 또 해가 지나자 아버지는 날 설득하려 하셨다. 그러나 죽은 내 영혼은 그저 부탁이나 설득 , 설교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여성으로써의 나는 내 몸에 들어오는걸 거부했다. 말 그대로 인터넷 속에서만 의사 표명을 할 수 있는 영혼에 불과했으니까.
내가 여성으로써 내 몸에 들어올 수 있었던건 단 한가지 조건이 허용되었을때. 마이크를 사용해 타인과 의사소통을 해야할때 뿐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나는 내가 여자라는걸 증명하는데 힘을 쏟았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목소리를 바꿔 여성스러운 목소리를 들려주고 상대방과 대화하는 것이었다.
몇년이 지나 나는 내 인터넷 지인들에게 게임사에서 주최하는 오프라인 행사에 참여하고자 하는 의사를 밝혔다.
다른 사람들도 참여 의사를 밝혔고 , 나는 그때부터 여장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수도 없이 많은 정보를 찾아봤다. 어떻게 해야 진짜 여자 같은 얼굴을 얻을 수 있을까 , 여성스러운 체형을 연출 할 수 있을까.
여자 같은 몸짓이나 대화 방법 같은건 진작에 내 영혼 속에 새겨진지 오래다. 애초에 내 몸이 남성일 뿐 내 영혼은 여성 그 자체였으니까.
그렇게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 또 흘러갔다.
처음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의 지인을 마주할 것이다.
상대는 날 여자로 알고 있고 ,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여자처럼 꾸몄다.
가벼운 화장을 하고 속옷을 덧대 입어 볼륨감을 준 가슴과 평소부터 밥을 잘 먹지 않아 호리호리했던 내 체형을 둘러봤다.
상처가 잘 아물지 않는 체질이라 군데군데 있는 다리의 흉터는 데니아가 높은 검은 스타킹으로 가렸고 , 미리 배웠던 기술로 남성기도 보이지 않게 처리해 핫팬츠를 입은 고간에 남자로써의 상징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있었다.
가발은 미처 준비하지 못 했기에 남자로썬 길지만 여자로썬 쇼트한 컷으로 잘 다듬었다.
준비가 끝나고 화장실의 거울 앞에 서서 내 모습을 봤다.
헛웃음이 나오지 않을수가 없었다. 나는 너무나도 여성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고 , 내가 봐도 예쁘다고 느낄 정도의 미모를 가진 여인이 서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그토록 바라던 나의 모습을 무려 5년이라는 세월에 걸쳐 '되찾아 냈다는' 기쁨과 쾌감에 12월 한 겨울의 추위가 헐렁한 핫팬츠와 티셔츠를 뚫고 들어오는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 지하철을 타고 , 택시를 갈아타며 겨우 도착한 그 곳엔 평소에 '그저 아름다운 여성' 이 아닌 '장난끼 많고 관심 받는걸 좋아하고 , 그렇지만 사교성 있는 여성' 으로써 날 봐주고 있는 나의 지인이 서있었다.
나는 가볍게 소리치며 달려갔다.
"오빠! 많이 기다렸지! 늦어서 미안해!"
상대도 가볍게 미소 지으며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얼굴을 마주 할 정도로 거리가 가까워지자 상대가 내 모습을 훑어보더니 물었다.
나는 조금 얼어붙었다. 날 남자로 착각하거나 오해 섞인 시선을 보내면 나는 어떻게 감당해야할까. 그런 불안을 알아채기라도 한듯 상대가 입을 열었다.
"근데 너 안 춥냐? 이 날씨에 왜 그런 옷을 입고 나왔어"
상대방의 자연스러운 대화가 너무나 기뻤다. 내가 여장했단 것도 모를 정도로 상대는 날 여자로 받아들이고 있었고 , 날 여성으로써 인식하고 있었으며 평소 개구쟁이 여고생 소녀처럼 대하는 말투 그대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누가 뭐래도 이 순간 귀여운 소녀로 바뀌었다.
울컥하는 마음을 억지로 가라앉히며 나도 평소처럼 상대를 대한다.
"오빠가 예쁘다고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서. 히히."
"으으 슈바바... 근데 그래도 너무 추운걸"
"오빠 목에 두른 목도리 풀어서 나한테 주면 안 잡아먹지~~"
상대는 어이 없다는듯 한숨을 쉬고 후드를 뒤집어 쓴 내 머리를 한번 헤집어놓더니 따라오라 손짓을 하며 타임 스퀘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상대는 두리번두리번 거리더니 곧장 편의점에 들어갔고 , 총총 걸음으로 따라간 내게 따듯한 두유를 건냈다.
보온중이었던 두유를 넘겨받은 내 손은 조금씩 녹아들었다.
나는 화장이 지워지는 것도 의식하지 않고 병을 볼에 가져다댔고 , 그 온기 속에 다른 사람들에겐 보이지 않는 눈물을 흘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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