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전수는 아까전부터 한 가지 굳은 결심을 하고 있었다.
그가 이 전차에서 유일하게 마음에 들어하던 승무원인 전차장은 여기서 내리면 포수와 조종수를 죽여버려야겠다고 쉰번 정도 다짐했을 때 판터2의 포탄에 대가리가 날아가버렸다.
이 얼마나 불공평한 일인가! 누구는 뜨거운 화약구덩이에서 쇳덩어리를 짊어지고 있는데 누구는 편하게 앉아 주포나 돌리고 기어나 바꾸고 있었다.
정치장교가 알기라도 하면 큰일날 일이긴 하지만, 장전수는 이런 불평등한 처우에 소비에트 연방이 외치던 평등한 사회라는 것에 의문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젠장, 자기들 일이나 제대로 하면 또 모를 일이지만, 포수란 놈은 포방패에 철갑탄을 박는 짓이나 하고 있었고, 조종수란 놈은 도탄은 커녕 있는 경사도마저 깎아먹는 짓을 반복하고 있었다. 장전수는 어젯밤 움푹 패인 전면 장갑에 박혀있던 철갑탄 조각을 떠올리며 이따위 놈들이 모는 탱크에 타고도 살아있는 자신을 대견하게, 한편으로는 신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주포의 열에 말라붙은 입술 사이로 외마디 욕이 새어나올때 쯤, 차내 무전기로 포수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포수는 차탄 장전을 재촉하며 길길이 날뛰었다. 장전수는 그에 대꾸할 새도 없이 주변을 둘러보며 포탄을 찾는데 여념이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얼굴을 맞대고 욕이라도 퍼붓고 싶었지만 사실 포수의 말에 흠잡을 만한 곳은 없었다. 지금 맞은편엔 나치놈들의 판터2가 서 있고, 다음 포탄을 장전해 그 놈들을 모조리 죽여버려야 여기서 살아나갈 수도 있다. 포수와 조종수를 패죽이는 것은 나중 문제인 것이다. 바닥에 뒹굴던 철갑탄을 들어올려 주포에 처넣고 포수에게 차탄 장전 완료를 외치려는 순간 판터2의 두 번째 포탄이 전면 장갑을 꿰뚫어버렸다. 단순히 철갑탄에 관통된 충격이 아닌, 엄청난 흔들림이 전차를 덮쳐왔다.
장전수는 얼얼한 광대를 문지르며 무전기를 들어 승무원들의 생사를 확인해보았다. 그러나 무전기에서는 끔찍한 침묵만이 흘러나올 뿐이었다.
장전수는 무전기를 내려놓고 자리에 주저앉아 어쩌면 포수와 조종수를 욕할 일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들 또한 원해서 전쟁에 나온 것은 아니고, 또 원해서 이 전차에 탄 것도 아닌 것이다.
판터2의 세 번째 포탄이 포탑 측면에 나뒹굴던 고폭탄을 유폭시켜 네 동지들을 화장시킬 때까지, 장전수는 그렇다면 전차 곳곳에 포탄을 꽉꽉 쌓아두게 한 지휘관을 원망해야할 지 아니면 탄약적재함을 잘못 설계해 휴행탄수를 모자라게 만든 설계국 직원들을 원망해야할 지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