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아버지가 병사하셨다
투병의 기간 동안 이미 흘린 눈물이 너무 많아서였을까
조용한 장례식이었다


장례식장에 들어서자 신발이 두서없이 늘어져 있었는데, 위에는 철 지난 형광등이 필라멘트의 수명이 다한 듯 불길한 소리를 냈다
그것은 매미의 소리와 비슷하였으나 색색대는 병자의 비음처럼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친구는 내 얼굴을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생활고에 살기 급급해 임종조차 지키지 못했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이미 유년기에 유명을 달리하였다
부모 없이 세상에 홀로 던져진 친구는 종잡을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는데
기미가 번진 조명이 친구의 눈에 그린 깊은 그늘이 보였다


삶이 쉴 새 없이 던져준 공포와 허덕임이 아로새긴 낙인으로
비극은 이윽고 그의 얼굴에 형태로 자리잡고 말았다


나는 맛대가리 없는 소주와 식어빠진 안주를 몇개 입에 털어놓고 입을 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어떠한 말이 상처를 더할까 염려되어 많이 말하진 못했다
위로를 주섬주섬 기워 건넸으나 친구는 식탁에 놓여진 숟가락만 무던히 쳐다보았다
어설픈 말들은 금새 온도를 잃기 때문이었다


나는 친구의 팔을 붙잡고 잠시 바깥으로 나왔다
간밤에 떨어진 빗물을 잔뜩 먹어 촘촘해진 수국이 풍경 사이에서 고개를 불쑥 내밀었는데
친구는 그걸 보고 잠깐동안 흐느꼈다

그가 정착한 불행의 궤도에서 나는 철저히 이방인이었다


집에 돌아가는 중 차창 밖을 보며 떨쳐낼 수 없는 생각들을 했다
그러나 결국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그 수국 뿐이었다
몹쓸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