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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인이었던 내가 대영제국의 체스 챔피언?!
[시리즈] 체스사 시리즈 · 체스 유럽 전파 초기의 무서운 이야기 · 1000년 전의 이슬람 체스 퍼즐, 만수바(مَنصوبة) · 15세기의 체스 대격변 패치, "여왕의 체스" · 대수기보법과 오스만제국 출신 체스마스터 이야기 · 1824년, 런던 - 에든버러 클럽 서신체스 매치 · 에반스 갬빗에 대한 재미있는 사실. · 인디언 오프닝과 어느 시골 브라만의 이야기 · 19세기의 체스계 슈퍼스타, 하워드 스턴튼 上 - 영웅편 - · 19세기의 체스계 슈퍼스타, 하워드 스턴튼 下 - 악귀편 - · 윌리엄 슈타이니츠 : 세계 체스 챔피언의 탄생 · 엠마누엘 라스커와 지크베르트 타라쉬, 두 독일 유대인 체스마스터의 삶 · 체스 선수는 기보 저작권의 꿈을 꾸는가? · 미국체스협회 레이팅 2위를 달성한 살인범의 이야기 · 체스 역사 속의 TMI들 1904년부터 1세기 넘게 매년 개최되고 있는 전통 있는 대회, 영국 체스 챔피언십(British Chess Championship).영국의 체스 챔피언을 선정하는 이 대회의 우승자 목록을 살펴보면, 평범한 서양 인명들 사이에 유독 이상한 이름이 하나 눈에 띈다.미르 술탄 칸(Mir Sultan Khan)이라는, 도무지 영국인스럽지 않은 이름.1929년, 1932년, 1933년, 세 번에 걸쳐 영국 챔피언이 된 이 체스선수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술탄 칸(Sultan Khan)은 1903년 대영제국의 지배를 받던 인도 펀자브 주(現 파키스탄 펀자브 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아버지는 마을의 종교 지도자 겸 소(小)지주로, 좀 사는 집안이었다는 모양.좀 사는 집안답게 아버지는 취미로 자식들에게 어릴적부터 체스를 가르쳤다는데, 이때의 체스는 서양의 체스는 아니고, 당대 유행하고 있던 인도식 체스 변형이다.18~19세기경 인도는 이슬람의 영향과 유럽의 영향을 동시에 받아, 이슬람식 샤트란지와 유럽식 여왕의 체스가 혼합되고 자체 변형까지 들어간 기묘한 체스를 하고 있었다는 모양.비숍과 퀸의 움직임은 서양식인데, 폰은 한 칸씩만 전진하고, 캐슬링 대신 King's leap만 있고, 룩폰은 룩으로, 나이트폰은 나이트로, 비숍폰은 비숍으로 승급하는 등의 규칙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술탄 칸은 이 인도식 체스로 펀자브에서 가장 강력한 플레이어라고 소문이 났는데, 사실 그래봐야, 인도 변방에서 체스 좀 둔다는 평범한 있는 집 자식으로 끝날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펀자브 지방의 대부호, 우마르 하야트 칸의 눈에 들지 않았더라면.우마르 하야트 칸 티와나(Umar Hayat Khan Tiwana).영국의 인도 정복에 협력하여 크게 가세를 불린 티와나 가문의 가주였던 그는, 그 역시 인도 제국군 출신이기도 했으며, 펀자브 주에서 제일 가는 토지 소유자 중 하나였다.동서고금의 부자들이 흔히 그렇듯, 그는 여러 예술가들의 후원가 역할을 자처해 자신의 명예를 드높이곤 했는데, 술탄 칸도 그의 트로피 중 하나였다.술탄 칸에게는 다른 트로피보다는 좀 더 특별한 역할이 부여될 예정이기는 했지만.1926년, 스무 살 갓 넘긴 술탄 칸은 우마르의 후원을 받고 본격적인 체스선수로 활동하기 시작한다.줄곧 인도식 체스만 두었던 그에게 우마르 경은 강사를 붙여 서양 체스를 가르쳤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28년, all-india championship에서 술탄 칸은 8승 1무라는 성적으로 압도적인 우승을 차지하였다.물론, 환경이 환경이다보니 아직 경기 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사실, 술탄 칸을 후원한 우마르 경의 목적은 정치적인 데에 있었다.당시 영국령 인도는 독립운동으로 정치적 혼란기를 맞이하고 있었고, (간디의 소금행진이 1930년.)특히 이 과정에서 점차 커져가는 힌두계의 목소리에 무슬림들은 긴장하고 있었다.우마르 경은 펀자브 무슬림의 대표이자 인도 출신 군인의 대표자로서, 런던에서의 외교 활동에 뛰어들 생각이었으며,런던의 정치판과 사교계에서 활용할 자신의 브로치로서, 술탄 칸을 키워냈던 것이었다.1929년, 이렇게 술탄 칸은 인도부 장관(Secretary of State for India)의 자문위원회에 임명된 우마르 경을 따라 런던 체스계에 진출하게 된다.유럽에 처음 왔을 당시, 술탄 칸은 기보도 못 읽고 영어도 거의 못했으며, 일류 선수들과의 경쟁은 어려운 실력이었지만,프레드 예이츠(Fred Yates), 윌리엄 윈터(William Winter) 등 영국에서 제일 가는 선수들이 코치로 붙어 그를 가르쳐주었다. (물론 우마르 경의 머니파워였다.)예이츠 왈, 술탄 칸은 서양 체스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여 오프닝이 매우 처참하였으나, 미들게임과 엔드게임에서 이미 뛰어난 재능을 보이고 있었다고 한다.그리고 술탄 칸은 빠르게 성장하여....얼마 뒤 1929년 British Championship에서 곧바로 우승, 영국 챔피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ㅅㅂ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그렇지 이게 말이 됨?" 싶은 급전개지만, 당시 Carlsbad International Tournament라는 훨씬 격 높은 국제대회가 영국 챔피언십과 동시에 개최되어, 일류 선수들은 그쪽으로 빠져나간 것이 한 가지 원인이었고,또, 사실 당시 영국의 체스선수 라인업이 국력에 비해 유독 부실하기도 했다.당시 영국 최고 선수들로는 프레드 예이츠, 윌리엄 윈터, 조지 앨런 토마스 정도가 언급되곤 했는데,이 영국의 일류 선수들도 저 국제대회에 출전해서는 전체 22명 중 17위(예이츠), 21위(토마스)로 꼬라박았을 정도였으니, 영국의 체스선수 풀이 얼마나 쳐박았는지 알만하다.물론 어쨌거나 주요 선수가 없었다고 한들 엄연히 우승은 우승이었고, 우마르 경은 매우 흡족해하며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 승리를 한껏 이용하였다.그러나 술탄 칸의 본격적인 커리어는 이때부터 시작이었다.술탄 칸은 더 많은 훈련을 받았고, 점점 더 그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커리어 끝까지 오프닝은 개못했지만.)scarborough 국제 토너먼트에서는 4위를 차지했는데, 이는 앞서 언급한 영국 선수들 예이츠, 윈터, 토마스보다 훨씬 더 앞선 성적이었고,Liège Masters’ tournament에서는 사비엘리 타르타코워에 이어 2위,헤이스팅스에서는 막스 에우베(5년 뒤 세계챔피언), 카파블랑카(전 세계챔피언)에 이어 3위를 차지하였다.타르타코워와의 12판 매치에서는 4승 5무 3패로 승리하기까지 하며, 자신의 영국 챔피언 타이틀이 결코 물로켓이 아니었음을 거듭 증명하였다.그러나 그는 어디까지나 유색인종에 식민지 출신.모진 핍박과 인종차별을 겪으며, 영국 사회의 어둠 속에서 체스 하나를 무기로 헤쳐나가는 수밖에 없었는데....... 같은 이야기는 딱히 없고, 단숨에 영국의 스타 선수로 등극하였다.워낙 영국의 체스선수 풀이 개박살이라, 술탄 칸은 영국 국기를 달고 세계무대에서 선전하는 유일한 선수가 되었고,체스 올림피아드(국가대항전)에서도 영국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1번 보드를 세 차례나 맡았다.헤이스팅스 대회에서 카파블랑카 상대로 승리를 따냈을 때는 아예 영국 신문들 헤드라인에 걸렸을 정도였다.팀전이나 인맥으로 좌우되는 스포츠들이라면야 모를까,순수 개인전인 체스에서 실력 있는 사람을 억까를 할래야 할 방법도 없고...우마르 경이라는 어마어마한 뒷배도 달고 있었으니.....1932년에는 우마르 경이 인도에서 '미스 파티마'라는 여성 체스 플레이어를 한 명 더 데려왔는데,오픈 부문에서는 술탄 칸, 여성 부문에서는 미스 파티마가 우승하며 인도 출신이 챔피언 자리를 다 뜯어가버리기도 했다. (이때 파티마의 전적은 충격적인 12전 11승 1무.)이렇게 유럽 체스계에 혜성같이 등장한 술탄 칸이었지만, 사라지는 것도 혜성처럼 순식간이었는데,1933년, 후원자였던 우마르 경의 자문위원회 임기가 끝나, 술탄 칸도 함께 인도로 돌아가야만 했기 때문이다.술탄 칸은 눈물을 머금고, 지금까지 쌓아온 자신의 체스 커리어를 모두 내려놓은 채, 무거운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는데....... 같은 이야기는 딱히 없고, 술탄 칸은 집에 돌아가는 것을 엄청나게 기뻐했다고 한다.주변인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술탄 칸은 심각한 향수병에 시달리고 있었고, 엿같은 런던 기후에 적응하지 못해 각종 호흡기 질환을 내내 달고 살았다고 한다.기후가 도저히 적응이 안 돼서 영국에 더 있으면 오래 못 살 것 같다는 소리를 하기도 했다고.사실 집 떠나와 이역만리에서 말도 잘 안 통하는 외국인들 사이에서 몇년째 체스만 두고 사는데 행복하면 그게 오히려 정신에 문제가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술탄 칸은 매우 짧았던 커리어, 언어 장벽 등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고 수준에서 경쟁하며, chessmetrics상 세계 6위라는 미친 퍼포먼스를 보여준 뒤 곧바로 체스계에서 영영 사라져버렸다.그는 고향 펀자브로 돌아가 평범하게 가진 땅으로 농사나 짓고 살았으며,집에서 가끔 취미로 체스를 두긴 했지만 토너먼트 초대는 모조리 거절했고,체스를 진지하게 가르쳐달라는 아들의 부탁에는, "그럴 시간에 공부처럼 더 생산적인 일이나 해라"라고 답했다고 한다.2024년, FIDE는 술탄 칸을 명예 그랜드마스터로 지정, 늦게나마 그의 업적을 기렸다고 한다.
작성자 : 김첨G고정닉
홋카이도 여행2 - 일본인 가족들과 고급 이자카야 탐방
[시리즈] 홋카이도 여행기 · [스압] 홋카이도 여행1 - 너무 좋았던 오비히로 · 오비히로 비정기 노선 1호 도착 한국인 도촬당한 후기 · 여행자 보험으로 우니동 8만원 플렉스 후기 ----짧았던 오비히로 일정을 마치고 삿포로로 이동이번엔 스스키노에 숙소를 잡았다.지난 번에는 침대가 2개인 트윈 양실이었는데 이번엔 일본식. 트윈 뿐인지 혼자지만 트윈을 주더라 항상아파 호텔 삿포로 스스키노 에키니시アパホテル〈札幌すすきの駅西〉- 한 번 묵은 적이 있는 곳인데 가격이 엄청 왔다갔다 하는데 이 때는 1박에 4만원 정도로 저렴했다.- 좀 낡았지만 넓어서 좋긴한데 주로 흡연방이 많은 듯. 미닫이로 된 독특한 구조다다미에 이부자리가 2개따로 분리된 공간.흡연룸.이 날 골때렸던게 여기가 방음이 잘 안되는데 옆방에서 일본인 커플의 애정행각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렸다.근데 인사하고 나가는 뽄새가 뭔가 출장? 그런거 부른 느낌이었음.흠.. 여긴 불법이 아닌가?아무튼 좀 쉬다가 비행기 옆자리에서 만난 일본인 친구의 가족들과 저녁을 먹으로 이동함이제는 거의 친척 같은 느낌.Manzaraねぎま別邸- 개별 룸 형태로 나누어진 약간 고급진 이자카야?- 평점은 별로 안높은 것 같은데 비싸고 음식은 맛있음.재밌었던건 이런 가족들 식사인데도 이자카야를 가서 엄빠, 동생, 친구와 친구여친 나 이렇게 6명에서 전부 노미호다이로 주문하고 마시고 먹음.메뉴판. 어차피 보지도 않음 친구보고 알아서 시켜달라함.엄니 아버지도 대부분 다 나마로 스타트.정갈하게 나온 오토시. 아쉬운건 일본에 이런 오토시들은 차갑게 나오는 경우가 많던데 따뜻하면 더 맛있을듯.평범하게 맛있었던 다시마키.오뎅 모듬. 생각보다 깔끔한맛. 무 위에 올라간 토로로콘부와 함께 먹으면 맛있다.고구마 튀김? 감튀 이런거 그닥 좋아하지 않는데 이거 개맛있더라 버터에 소금도 살짝 친거 같은데 짭짤하고 달고 막 미칠거 같은 맛사시미 모리는 대체로 익숙한 생선들이라 큰 감흥은 없었지만 맛있었음.물교자.문어 가라아게.버섯 튀김하고 시라꼬 튀김이었나?복튀김이었나 생선살 튀김.쯔케모노를 시켰는데 의외였던 점이 어머니는 츠케모노를 싫어하신다고 하셨다 ㅋㅋㅋ뭔가 김치를 싫어하는 한국의 엄마의 느낌이라 좀 당황?근데 우측에 저 생선 젓갈 같은건 진짜 빡세긴 하더라 가족들 아무도 안먹음 ㅋㅋ시메하라고 시켜주신 차소바.무슨 닭다리 구이 같은 야키토리 였는데 이미 배가 부른 상태라 그냥저냥 먹은듯.츠쿠네. 이쯤에는 이미 배가 너무 불렀음.사진이 개판인데 대략 요런 느낌의 복도식에 개별 룸이 있는 형태의 가게.계산할때 보니 50만원 정도 나왔는데 나중에 단골 이자카야가서 다른 일본인들한테 물어보니까 보통의 일본 가족들이 외식해도 한 20~30? 정도 쓰는 것 같다고이자카야가서 시원하게 50만원씩 먹는거 보면 오카네모찌가 분명하다고 ㅋㅋ뭐 막 부자 까진 모르겠지만 친구네가 확실히 잘 사는 편이긴 한 것 같다.친구가 선물로 사준 니혼슈들. 비싼건 아니지만 항상 가면 직접 니혼슈 상점에 가서 사다 주곤 한다.너무 배가불러 시간이 얼마 안되었지만 혈당 스파이크로 한숨 때리고 늦은 밤 깼는데돼지라서 약간 출출해져서 찾아간 주먹밥 전문점니기리메시にぎりめし- 24시간 영업이라 아침밥 먹기도 밤에 시매하기도 새벽에 야식에 술먹기도 괜찮은 듯직관적인 가게이름.맥주와 오뎅 모듬과 감자 사라다, 멘타이코 타마고 주먹밥 주문.오뎅은 뭐 그냥 그런 맛.이거는 뭐 그냥 맛있더라 ㅋㅋ 맛없없조금은 소스가 너무 질퍽했던 포테토사라다.쿠로키리시마 한 잔 시켜서 먹다보니 뭔가 부족해서 시킨 간장 고등어 주먹밥. 맛있었다.호텔 가는 길에 사간 호지차. 홋카이도에서 유명하다고 하는데 여기만 파는진 모르겠지만 차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마셔보면 좋을 것 같다.다음날 친구와 점심을 먹기 위해 만남.일하다가 밥먹기 위해 넘어온 고마운 친구.간지나는 친구의 뒷모습 `마 이게 삿포로 직장인의 파숀이다!`뭐 먹으러 갈까 하다 남자들은 돈까스 아니겠음?돈까스 아오키 삿포로 오도리점とんかつ檍(あおき)札幌大通店- 몇개 지점이 있는 돈까스집?- 본점도 가서 먹어봤었는데 가격은 좀 있어도 맛은 있더라.10분정도 대기도 있었음.친구가 못먹으니까 안먹으려 했으나 돈까스에 맥주를 안먹는건 안된다고 혼자 한 잔 하라고 시켜줌.대략 이런 느낌. 중간 사이즈 정도로 시켰나?솔직히 돈까스야 요즘 한국도 맛있음.살짝 핑키한게 부드럽고 좋았음.이건 친구꺼 모듬? 에비후라이가 대빵 컷음.친구는 일하러 가고 나는 뭔가 아쉬워서 좀 돌아다니다가 재밌는 츠케멘집을 발견하여 참을 수가 없어서 방문.츠케멘 하치보세つけ麺 八芒星- 한국인 사장님이 친절하게 반겨줌- 츠케지루도 2가지나! 이 가게 맛있음 리얼.유명한 에비소바 이치겐 바로 앞에 있음. 여기도 한 10~20분 기다렸다 들어감.돈까스를 먹은지 얼마 안되어서 가장 기본 츠케멘으로. 근데 오오모리 시킬껄 하고 후회함.일단 츠케 지루를 1+1으로 하나 더 고를 수 있는데 기본과 새우맛으로 주문.아마도 이게 기본. 약간 익숙한 진한 돼지 육수에 해산물이 가미된 그 맛있는 츠케멘 그 맛.이건 새우 맛이었던 것 같은데 이치겐 뺨침. 츠케멘 맛 이치겐이랄까 맛있었다.면도 맛있었고 친절하고 간만에 한국말 들어서 기분 좋았고 룰루 랄라 하면서 빠칭코 갔다가 4천엔 꼬라박고 호텔가서 휴식.즐거웠던 저녁 식사와 청주 삿포로 12시간 지연 썰은 다음 편에 계속
작성자 : mmn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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