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에 도전하는 충암고 이학주

18살 유격수, 더 큰 꿈을 품다

충암고 유격수 이학주(18)가 미국프로야구에 진출한다. 이학주는 제62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가 한창이던 3월 중순 시카고 컵스와 계약금 115만 달러(약 11억4,000만 원)에 계약했다.

유격수의 메이저리그 진출은 사상 처음이다. 입단식은 4월 말쯤 예정돼 있다. 컵스는 한국선수의 스카우트에 매우 적극적인 팀으로 꼽힌다. 이미 4명의 한국선수와 입단 계약을 맺었다.

1999년 1루수 최희섭을 시작으로 같은 해 포수 권윤민, 2001년 투수 류제국, 지난해 투수 이대은이 차례로 유니폼을 입었다.

씀씀이도 컸다. 류제국은 계약금 160만 달러, 최희섭과 권윤민은 각각 120만 달러, 이대은은 81만 달러를 받았다. 미국프로야구에 진출한 한국선수 38명 가운데 100만 달러 이상 계약금을 받은 선수는 13명에 불과하다.

고교 정상급 유망주

이학주는 광명 하안북초등학교 5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다. 투수 겸 외야수였던 이학주는 조재호 감독의 권유로 우투우타에서 우투좌타로 바꿨다.

“하루는 감독님이 왼쪽 타석에 들어서라고 하셨다. 그때 바꾼 게 이제와 큰 도움이 됐다. 왼쪽 타석에 서면 빠른 발을 활용할 수 있어서 유리하다.”

서울 양천중학교에 진학한 뒤에는 수비위치를 바꿨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주로 중견수와 투수로 뛰었다. 2학년 어느 날이었을 거다. 유격수 위치에서 친구들과 공을 주고받았는데 우연히 김병효 감독님이 ‘너 유격수로 한번 뛰어봐’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유격수가 된 거다.”

이학주는 이후 뛰어난 기량의 유격수로 성장했다. 자연히 고등학교 감독들의 눈에도 들게 됐다.

“이학주라는 애가 참 괜찮다는 소문이 있었다. 확인해 보니 사실이었다. 중학교 때 이미 키가 180cm가 넘을 정도로 신체조건이 뛰어났고 플레이를 열심히 해 보기 좋았다. 눈여겨보다가 결국 스카우트했다.” 5년째 충암고 사령탑을 지키고 있는 이영복 감독은 이학주의 중학교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이감독의 판단은 정확했다. 이학주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이감독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주전 유격수로 나섰다.

이학주가 3년 동안 고교야구 전국규모 대회에서 거둔 성적은 27경기 출전에 94타수 32안타 9타점 17득점에 타율 3할4푼이다. 충암고는 그 기간 2006년 제4회 미추홀기대회와 지난해 제37회 봉황대기대회에서 우승했다.

3학년이 되자 진로문제는 막연한 꿈이 아닌 현실이 됐다. 올해 LG 신인 이형종은 이학주의 양천중학교 1년 선배다.

이학주가 입단하고 싶어 했던 팀도 LG였다. 두산이 4월 1일 덕수고 에이스 성영훈(18)과 가계약하자 LG 스카우트 팀이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이 때 이미 이학주는 컵스와 계약한 상태였다.

왜 메이저리그를 선택했나

컵스는 이학주에게 한국선수 역대 계약금 10위에 해당하는 115만 달러의 계약금과 한국인 통역과 요리사, 트레이너를 제공하며 입단을 제안했다. 거절하기 어려운 제안이었다.

“LG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큰물에서 놀아보라’고 강력하게 권유하셨다. 중학교 때부터 텔레비전으로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면서 막연하게 미국 진출 꿈을 꾸기는 했다. 2년 전 정영일 선배가 LA 에인절스와 계약하는 걸 보고 ‘나도 노력하면 할 수 있겠구나’ 싶기도 했다.”

사전 준비 작업도 있었다. 이학주의 아버지 이중헌씨는 지난해 류제국(탬파베이 레이스)과 정영일의 에이전트인 이치훈씨와 에이전트 계약을 했다.

이학주가 예상 밖의 거액 계약금을 받은 데는 이씨의 수완이 한몫했다. 이씨는 “이학주는 최저 80만 달러 가치가 있는 선수”라며 10여 개 메이저리그 구단과 협상을 했다.

컵스도 적극적이었다. 폴 웨버 부단장은 이학주를 따로 만나 “컵스가 우승하려면 네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득했다.

이중헌씨는 “아들이 LG에 보내주지 않으면 야구를 하지 않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4월 17일 계약 사실을 공개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메이저리그 스카우트와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학주의 장단점을 잘 파악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장래성을 강조해서 마음에 들었다”고 계약 이유를 설명했다.

이학주의 키는 187cm다. 큰 키는 아버지가 아들을 미국으로 떠나보내는 또 다른 이유다.

“솔직히 한국프로야구에서 190cm에 가까운 큰 유격수가 살아남을 확률이 얼마나 되겠나? 여건상 선수의 적응을 계속 기약 없이 지켜볼 수도 없다. 나중에라도 포지션이 바뀌면 자칫 경쟁에서 밀릴 수도 있는 건데….” 2008년 프로야구 8개 구단 주전 유격수들의 평균 키는 179.4cm다.

장점을 살려라

이학주의 가장 큰 장점은 빠른 발이다. 100m를 11초에 주파한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은 이학주의 매력을 빠른 발에서 찾고 있었다. 에이전트 이치훈 씨는 “메이저리그에서도 1루까지 4초 안에 주파하는 선수는 드물다. 수비시 발동작도 민첩한 편”이라고 말했다.

강한 어깨도 자랑거리다. 올해 황금사자기에서 잠시 투수로 등판해 최고구속 143km를 찍기도 했다. 때로 내야 깊은 타구를 처리해야 하는 유격수로서 강한 어깨는 큰 매력이 된다.

대신 힘은 약한 편. 이학주는 요즘 일부러 힘을 기르지 않고 있다. “에이전트가 과도한 웨이트트레이닝은 오히려 수비를 둔하게 만들 수 있다며 적당히 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저를 데려가는 것도 큰 키와 순발력 때문으로 알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인 메이저리그인 만큼 기량의 장벽도 높다. 휴스턴 애스트로스 2루수 마쓰이 가즈오(33)는 일본프로야구에서 화려한 선수였음에도 불구 메이저리그에서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통산 OPS(장타율+출루율)가 무려 0.847에서 0.713으로 1할 이상 떨어졌다. 원래 포지션인 유격수도 지켜내지 못하고 2루수로 밀렸다. 이학주의 목표는 3년 안에 메이저리그로 올라가는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에게는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유격수라는 기대가 걸려있다. 대만인 후진룽(LA 다저스)이 이미 해낸 일이다.

이학주는 지난 3월 컵스 스카우트 스티브 윌슨과 만났던 때를 기억한다. 그는 “네가 부족한 게 뭐냐”고 물었다. 이학주는 망설이지 않고 “파워”라고 답했다.

그러자 윌슨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넌 컵스에서 1번이나 2번을 치게 된다. 파워보다는 정확하게 공을 맞추고 빨리 달리는 훈련을 하라. 그러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SPORTS2.0 제 101호(발행일 4월 28일) 기사

이호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