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시 중국군은 북한 인민군의 지휘를 받는 부대였을까? 아닐까? 최소한 초기에는 조선군의 지휘를 받았다고보야한다
그근거는 북한과 미국이 양측의 각연합군을 대표하여 휴전회담을 진행한것으로보아 그렇다
만약 조선인민군이 중국군을 지휘하는 지위에 있지않았다면 휴전협상은 조선 중국 미국의 3자간 협상이어야한다
또 다른 근거로는 당시 중국 언론의 한국전쟁 보도에서도 알수있다
중국언론은 김일성을 '김일성원수'라고 지칭하고있고 '우리군대가 조선인민군을 도와서 첫 전투에서 승리하였다"라는 식으로 보도하고있다
전함의 지휘자를 캡틴이라하고 각전함들의 연합함대를 지휘하는 자를 제독이라하는데 여러 국가 군대들의 연합군을 지휘하는 자는 원수라고 칭한다
김일성원수라는 호칭은 조선과 중국의 연합군을 지휘하는 호칭이라고 볼수있는것이다
마찬가지로 맥아더원수라는 호칭은 미국과 그동맹국들의 연합군을 지휘하는 호칭을 의미한다
언론의 노예화 교육과 세뇌로 이성적인 사고기능까지 파괴되어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실제 전투에서는 어떠하였을까
미군은 추수감사절까지 한반도 전역을 점령한다는 계획하에 1950.10.25부터 이른바 추수감사절 공세를 시작하게된다
당시 전선에는 한국군을 포함하여 42만 병력이 있었는데 그중 후방 산악지대에서 활동하는 인민군을 방어하기위한 병력을 제외하고 총공세를 펼친다
그러나 곧 강력한 반격에 직면하게 된다
1950.11.5 동아일보의 보도를 보면 이렇다
"미국방성 당국이 2일 전하는 바에의하면 북한공산군은 돌연 퇴각선에서 정지하고 산악지대에서 완강한 반격을 개시하고있는데
현재 이러한 저항이 약화될 증후는 전무하다고하며 한국동란의 종식은 먼장래에나 바랄수있을것이라한다
유엔군이 공산군의 저항지대인 북방산악지대를 진격하는데에는 장기간을 필요로할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리고 탱크 야포등을 포함한 공산군 2개부대가 운산 방향으로 남진하고있고 미제 1기갑사단 소속의 한부대가 운산서북지역에서
적에게 포위당했다하며 공산군의 일층 격렬한 반격을 당하고 있다한다
북한공산괴로군의 병력은 미상이나 대체로 북한괴뢰군 제8 제x2 제45 제18등 각 사단과 제105 제17기갑연대
그리고 제25 제26여단으로 인정된다 이들은 전부 북한괴뢰군으로서 그총 병력은 아직 알수없다"
"북한 공산군은 재무장한것이 분명하다 그장비는 만주로부터 보급받고 있는것 같고 전차가 빈번이 나타나고
대포와 로켓포로 맹화를 퍼붓고있다 이리하여 유엔군은 서부전선에서 수세를 취하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또하나 남아있다 그들은 돌연 현전선에대하여 결정적이고 조직적인 저항을 하고서도 왜 더 남방으로 진격하지 않는가 이것이다
전투에 투입된 증원부대들은 우수하게 훈련된 병사들이었고 정교한 지휘를 받고있었다"
11.6 동아일보 보도는 이렇다
"맥아더 사령부 대변인 발표에의하면 아군은 청천강을 따라 새로운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하였다
그러므로 연합군은 13개 사단에 달하는 북한 공산군의 어떠한 공격도 이를 격퇴할수있으며 결국에는 새로운 공세를 취하게 될것이다라한다"
11.3 동아일보 보도는 이렇다
"소련의 야크 전투기 6대는 한국전쟁발발후 최대의 공중전에서 패배하였다
북한측 분사식 비행기가 선천 상공에서 미국 f8제트기와 격렬한 공중전을 벌였다고 한다
한편 전쟁을 끝내기위하여 한만국경을 향하여 진격하는 유엔군을 저지하기위하여 중공군은 북한괴뢰군을 원조하고있다
전선에서 들어온 보고에의하면 공산괴로군은 서부전선및 동부전선에서 반격을 하여왔다고 한다
괘속을 자랑하는 미제04사단은 신의주남방에서 공격을 받았는데 전쟁개시후 최초의 공중전이 전개된곳이 이곳이라고한다
그중 한대는 미기갑부대 고사포에의해 격추되었다한다
또한 제 2차 공중전이 미제 24사단 전선 상공에서 전개되었는데 미공군 f80 13대는 적기 8대를 격추하였다한다"
(참고로 미군전투기 격추는 보도할수없음)
추수감사절 공세가 참패로 돌아간후 맥아더가 동경에서 날아와 직접 지휘하며 미군을 크리스마스전까지 공향으로 돌아가게
하겠다며 이른바 크리스마스공세를 계획한다 그렇지만 미군병사들은 한반도땅에 묻히고 맥아더자신이 별을 떼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중국지원군이 추수감사절공세의 방어전에 참가하고 있었는데 미군이 중국군 포로들을 상당히 잡고서도 상징적인 참전일뿐
독자적인 참전은 없다고 판단한것은 중국지원군이 인민군에 각 편입되어 전투에 참가했기 때문이다
위와같은 전쟁 양상에서 중국군이 과연 독자적인 작전을 할수있을까
중국지원군의 무장수준은 소총과 수류탄 박격포가 고작이었다 현대전을 경험한바도없고 현대전을 교육받은바도 없디
북한군은 일제가 항복하기 이전에 이미 소련으로부터 정식으로 현대전을 학습하고있었고
현대전을 수행할수있는 무장을 갖추고있었다 현대전의 그개념은 잘은 모르나 포병의 선제공격과 탱크의 돌파와 엄호가 있어야할텐데
포병과 탱크가 없는 중국지원군이 어떻게 독자적인 작전을 할수있을까
중국지원군은 조선에 들어오자 즉시 북한 인민군에 각 편성되어 산악지대에 투입된다
현대군사장비의 열세로 정면공격은 피하고 매복과 기동성을 살린 우회공격 그리고 주간에 숨고 야간에 공격하는 전술을 취하였다
즉 주력부대가 될수는 없다는것이다
북한군은 게릴라부대가 아니라 제트기로 미기갑부대를 공격하고 공중전을 벌이고 탱크로 돌파하고 대포와 다연장로켓으로
포화를 퍼붇는 현대적 정규군이다
중국지원군이 소련의 지원을 받아 어느정도 현대적인 군대 모습을 갖추어 나간것은 한국전쟁 후반부에서 부터이다
현대무기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중국지원군이 맹렬한 투지와 희생으로 완강하게 승리를 쟁취하는것을보고 스탈린도 중국군을 높이 평가하여
현대무기들을 지원하기 시작한다
중국군
북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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