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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우구라 역사에 대해 개소리하는 군첩우뽕 필독모바일에서 작성

ㅇㅇ(39.7) 2023.01.04 19:12:07
조회 1246 추천 65 댓글 19



출판사 서평
필자가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지금으로부터 18년 전인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 버클리 대학(UC Berkeley) 박사과정생으로 학위 논문을 준비하던 필자는 러시아 현지 문서보관소 자료 조사를 위해 남부 러시아 크라스노다르(Krasnodar)주 지역을 방문했었다. 제정 러시아 시기에는 “쿠반(Kuban’)”이라는 지명으로 불렸던 크라스노다르 지방은 우크라이나어를 모국어로 구사하는 우크라이나계 러시아인들이 상당수 존재하는 “러시아 연방 내의 작은 우크라이나”라고 할 수 있는 지역이었다. 이때 필자는 크라스노다르주 국립 문서보관소 열람실에서 만나 친해진 한 향토사학자의 초대로 크라스노다르시 서쪽에 자리한 옛 협동 농장 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다. 대략 20, 30가구 정도의 주민이 살던 이 마을은 과거 후토르(Khutor: 카자크의 농장)가 모여있던 곳으로 주민 전원이 우크라이나계였다. 물론 이 주민들이 말하던 우크라이나어는 현대의 표준 우크라이나어와는 많이 달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마을 주민들이 구사하던 우크라이나어는 어법과 단어에서 러시아어가 많이 섞인 “수르지크(Surzhik: 우크라이나어의 방언)”였기 때문이다.


현대 우크라이나에서 (그리고 현대 러시아에서도 물론) 수르지크는 표준어가 아니라 일종의 방언으로 취급되고 있지만, 필자를 초대한 향토사학자의 말은 달랐다. “우리가 쓰는 우크라이나어 입말, ‘발라치카(Balachka: 쿠반 카자크가 사용하는 수르지크)’가 진짜배기 우크라이나말이요.” 카자크를 직계 조상으로 둔 이 향토사학자가 덧붙인 말도 기억난다. “젊은이, 사실 진짜 우크라이나인은 우리 카자크뿐이라오.” 자신의 선조인 카자크 조상에 대한 자부심이 남달랐던 노년의 이 카자크 향토사학자는 또한 확고한 러시아 애국자였다. 우크라이나 카자크의 피가 흐르는 이 전직 엔지니어 연금생활자에게 우크라이나 정체성과 러시아 애국주의는 상호 충돌하는 가치가 전혀 아니었다. 그에게는 러시아인이 우크라이나인이고 우크라이나인이 곧 러시아인이었는데, 이 카자크의 후예에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묶는 공통의 정체성은 바로 러시아/우크라이나가 공유하는 유산인 “카자크”로서의 역사적 자의식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바로 이 자의식이야말로,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Dnepropetrovsk)에서 엔지니어로 젊은 시절을 보낸 이 노인이 은퇴 후 고향으로 돌아와 카자크 역사를 탐색하는 향토사학자가 된 이유였다.

필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정체성이 공존하는 이 카자크의 후예로부터 실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필자가 읽어야 했던 사료는 상당수가 수르지크로 쓰여 있었는데, 문서보관소 열람실에 개근하며 필자가 물어볼 때마다 사료 해석을 도와주던 이 노인의 도움이 없었다면 필자가 그 많은 자료를 어찌 단시간 내에 검토할 수 있었을까? 특히 필자에게 핵심적 사료였던 1919년도 크라스노다르주 지역 의회(쿠반 라다: Kuban’ Rada)의 의사록은 러시아어와 우크라이나어가 중구난방으로 섞여 있고 사전에 없는 단어들도 많아서 해석에 특히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때 수르지크가 모국어였던 향토사학자 “올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의 도움이 없었다면 필자가 당초 6개월로 예정했던 이 지역 사료조사 필드웍을 계획한 시간 내로 마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근대적 정체성과 카자크로서의 전근대적 자의식이 공존하던 “쿠반 카자크” 올렉산드르 할아버지와의 만남은 또한 필자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민족문제” 전공자로 거듭날 수 있는 깨달음의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러시아사, 독일사, 프랑스사 등 국민국가별 경계가 역사연구의 대상을 구획 짓고 있는 한국 역사학계의 현실에서 이 지역 민족문제를 전공하는 필자는 언제나 전통적 의미의 러시아사 연구자로 호명되었지만, 필자는 이 호명을 굳이 거부하거나 부인하려고 하지 않았다. 어차피 필자가 아무리 설명해도 국민국가와 민족주의라는 한국 사회 속 “인식의 감옥”을 깨트리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필자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다음과 같은 의문이 자리잡고 있었다. 근대적 의미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정체성이 존재하지 않던 전근대 시기 인물에게 러시아 또는 우크라이나인으로서의 국적을 부여하려는 민족사 창조 공정을 우리는 과연 역사연구라 부를 수 있는가? 카자크의 지도자였던 보그단 흐멜니츠키(Bogdan Khmel’nitskii: 1595∼1657)나 마제파(Ivan Mazepa: 1639~1709)에게 우크라이나 정체성을 찾는 행위가 흐멜니츠키의 “이메일 주소”나 “페이스북 아이디”를 찾는 것과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 물론 흐멜니츠키에게 이메일 주소는 없었다. 17세기에는 인터넷이 없었기 때문이다. 흐멜니츠키를 현 우크라이나의 선조라고 부를 수는 있을지언정 그는 현대적 의미의 우크라이나인이 결코 아니었다. 그 시절에는 현대적 의미의 “우크라이나”라는 관념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로 비유하면 고려가 비록 Korea란 단어의 어원이 되었을지언정 고려=대한민국이 결코 아닌 것처럼 말이다. 물론 흐멜니츠키는 현대적 의미의 러시아인도 아니었다. 당대의 맥락에서 이 인물의 민족 정체성을 굳이 규정하자면 “카자크 활동 경력이 있는 루시(Rus’)인 지주”에 가장 가까울 것이다.

이 책은 “우크라이나 민족사”라는 인식의 감옥을 벗어나 “우크라이나 문제”의 역사적 진실을 민족문제의 시각에서 접근하고자 하는 시도의 중간 결산이라 할 수 있다. 한때는 “소러시아”라는 이름으로, 지금은 “우크라이나”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지역의 역사는 다양한 문화와 정체성이 중첩된 모순과 역설 및 혼돈의 역사였으니, 18년 전 필자가 만난 “우크라이나어 방언을 모국어로 구사하는 열혈 러시아 애국자” 향토사학자의 존재야말로 이러한 문제적 역사가 남긴 흔적과 자취의 편린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니었을까? 물론 이 우크라이나계 러시아 노인의 사례가 크라스노다르주의 우크라이나계 주민 모두를 대표할 수는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적어도 쿠반의 수르지크 사용자들이 “진짜 우크라이나인”이라던 이 노인의 말은 전혀 틀리지 않았으며, 따지고 보면 상당 부분 역사적 진실을 반영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라는 단어는 원래 카자크가 활동하는 “변경” 지역을 지칭하던 동슬라브어 일반 명사였다(1장 참조). 따라서 당시에는 카자크만이 우크라이나의 구성원이 될 수 있었으며, 우크라이나 사람은 전원이 곧 카자크였다. 더 나중 시기인 17세기로 가도 카자크 현상과 우크라이나는 상호 분리될 수 없는 개념이었다. 현 우크라이나의 모체가 되는 “카자크 헤트만 국가(우크라이나어: Het’manshchina, 러시아어: Getmanshchina)”를 건립한 주역부터가 바로 자포로지예(Zaporozh’e) 카자크였고,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또한 바로 이 카자크 정체성에서 출발하였기 때문이다(3장 참조).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고려할 때 바로 그 “우크라이나”라는 관념을 처음으로 탄생시킨 당사자인 “자포로지예 셰치(Zaporozhskaia Sech)”의 “직계” 후손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나라가, 지금의 우크라이나가 아니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라는 사실이야말로 역사의 가장 큰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이는 셰치의 카자크 절대다수가 18세기 말 예카테리나 여제의 명령에 따라 흑해 연안 쿠반강 연변으로 이주하여, 새롭게 창설된 “쿠반 카자크 보이스코(Kubanskoe kazach’e voisko)”의 주요 구성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친분을 쌓았던 향토사학자를 포함하여 크라스노다르주에서 만난 수많은 우크라이나계 러시아인들은 모두가 이들 우크라이나계(당대의 표현을 빌리자면 “소러시아”계) 쿠반 카자크의 후예였다.

한때 망각하고 있던 18년 전의 일화가 필자의 뇌리에 다시 새삼스럽게 떠오른 이유는 바로 현재 진행 중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비극과 이 비극의 한 가운데에 느닷없이 등장한 “쿠반 카자크”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지역을 공부하는 전 세계의 다른 연구자들처럼 필자 또한 브콘탁테와 트위터, 틱톡, 텔레그램 등 SNS에 올라오는 러시아발 또는 우크라이나발 영상과 소식을 틈날 때마다 체크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2022년 9월 어느 날 한 친러 SNS 계정에 포스팅되었다가 잔혹성을 이유로 삭제된 한 동영상이었다. 그 영상은 우크라이나군과 러시아군 간 치열한 공방의 무대가 된 크라스니 리만(Krasnyi Liman) 전투에서 한 친러시아 민병대 군인을 촬영한 것이었는데, 우연히 이 영상을 보던 필자에게는 18년 전 만났던 올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의 기억이 다시금 떠올랐다. “친러”를 상징하는 Z 표식이 선명한 군복을 입은 채 흥분하여 절규하는 러시아 측 병사의 입에서는 바로 우크라이나어, 보다 정확히 말하면 과거 크라스노다르 체류 시 수도 없이 들었던 우크라이나어 수르지크 방언, “발라치카”가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투가 만드는 극도의 긴장 속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분노어린 저주의 욕설을 “우크라이나어”로 내뱉던 이 “우크라이나계 러시아 군인”은 대체 어디에서 온 사람이었던 것일까? 순간 감이 짚이는 것이 있어 즉시 크라스노다르주 지역 언론을 찾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대략 400명의 크라스노다르주 출신 쿠반 카자크가 러시아 측 민병대의 일원으로 크라스니 리만 전투에 참전하고 있었다. 추정하건대 그는 지난봄 러시아 전역에서 자원입대한 6천 5백여 명의 카자크 의용병 가운데 한 명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크라스니 리만 전투는 주지하듯 우크라이나군의 승리로 끝났고 포위된 이들 친러 우크라이나인 민병대원 대다수는 “조국 러시아를 위해” 다름 아닌 그들의 “동포,” 우크라이나군의 총탄에 전사하였다. 현대 우크라이나의 원형이 되는 역사상 최초의 우크라이나 국가를 만든 주역,  자포로지예 카자크는 자신들의 직계 자손이 바로 자신들이 만든 나라의 군대와 전투 중 전사하는 비극적이고 아이러니한 미래를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아이러니는 “우크라이나어를 말하는 러시아군 병사”로 끝나지 않는다. 크라스니 리만에서 우크라이나계 쿠반 카자크 출신 친러 의용군과 사투를 벌이던 우크라이나군의 절대다수는 바로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크라스니 리만 전투에서 승리한 후 의기양양하게 우크라이나 국기를 걸던 한 우크라이나 병사는 러시아에 대한 저주를 매우 유창한 “표준 러시아어”로 퍼붓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부터 대다수 각료와 군지휘관들이 우크라이나어보다 러시아어에 더 능통하거나 아예 러시아어가 모국어인 우크라이나의 현실에서, 러시아어가 “러시아 침략자와 싸우는” 우크라이나군의 실질적인 의사소통 수단이란 사실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우크라이나 군인”과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하는 러시아 군인”이 각각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위해 생사를 걸고 싸우는 크라스니 리만 전투의 모순적 장면은,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역사적 관계가 얼마나 복잡하게 꼬여있으며, 이 전쟁이 왜 비극인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가 아닐까?


단기적으로 보면 이 비극의 가장 직접적인 책임이 침공을 자행한 러시아의 독재자 블라디미르 푸틴에게 있다는 것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지금도 필자는 묻고 싶다. 이 상황을 굳이 전쟁을 통해 해결했어야만 했을까? 돌이켜 보면 지난 수년간 푸틴 정권의 대(對)우크라이나 정책은 악수의 연속이었다. 2022년 2월의 갑작스러운 침공은 물론이고 2014년의 크림 병합 및 돈바스 내전 개입부터가 문제였다. 이러한 행보로 인해 과거 50/50의 비율로 팽팽히 양분되어 있던 친러와 반러, 동부 우크라이나와 서부 우크라이나 간 균형이 깨지면서 이제는 선거만 하면 “친러 집단이 질 수밖에 없는 구도”를 항구적으로 만든 당사자가 바로 푸틴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점령지를 러시아 연방 영토로 완전히 병합해버린 푸틴의 합병선언은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악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주지하듯 돈바스와 헤르손 지역은 동부 우크라이나에서도 친러시아 성향이 가장 강한 지역이었다. 이 지역을 우크라이나로부터 완전히 이탈시켜 러시아 연방의 한 부분으로 만들어 버리게 되면, 이제 완전히 소수집단이 되어 우크라이나 내부에 숨죽인 채 남아 있는 친러시아 우크라이나인들에게는 과연 장기적으로 어떠한 미래가 닥치게 될 것인가? 이 병합 조치보다 우크라이나의 완전한 “탈러시아화” 및 러시아의 영향력 약화를 초래할 더 최악의 행보를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푸틴의 행보가 안타까운 이유는 또 있다. 푸틴이 침공을 감행하지 않았다면, 즉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지 않았다면 적어도 2022년 2월 24일 전까지는 러시아 측에도, 우크라이나 내의 친러시아 세력에도 충분한 대의명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전쟁으로만 한정하면 현 상황의 근본적인 책임이 푸틴에게 있다는 것은 명백하지만, 시계추를 마이단 사태가 시작된 2013년, 또는 돈바스 내전이 발발하는 2014년으로 돌리게 되면 우크라이나 측도 현 사태의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다. 필자가 보는 우크라이나 측의 가장 큰 문제는 우크라이나의 정체성을 “혈통”과 “언어”로 규정하는 종족 기반의 배타적 민족주의(Ethnic Nationalism)라 할 수 있다. 주지하듯 마이단 사태와 돈바스 내전 발발 이전 러시아어의 지위와 국어/공용어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과 친러시아 진영 간 갈등은 이른바 “우크라이나 사태”를 촉발시키고 격화시킨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설령 우크라이나 민족이 오래전부터 역사적으로 “실재”했다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 및 우크라이나 역사학계의 오랜 가설을 사실로 받아들인다고 할지라도, 우크라이나가 순수한 우크라이나인이나 러시아인뿐만이 아니라 수르지크 사용자와 같이 중첩된 정체성을 가진 여러 집단이 공존해 온 다문화 공동체라는 역사적 배경을 감안하면, 우크라이나 민족주의가 내포한 배타적 속성은 러시아인은 물론이고 배타적 민족주의에 공감하지 않는 친러시아 우크라이나인들과의 갈등을 필연적으로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우크라이나어의 “국어화”는 러시아인은 물론이고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수많은 우크라이나인 및 수르지크 사용자들을 졸지에 동화 또는 교육(또는 배제)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혈통과 언어 기반의 이러한 배타적 민족주의는 우크라이나 정체성의 본질적 취약성과 이에 따른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운동의 절박함이 초래한 결과였다. 대통령 젤렌스키부터가 러시아어가 모국어인 유대인으로 우크라이나어는 따로 공부해야 하는 일종의 외국어였다는 사실, 그리고 여전히 우크라이나어에 서투르다는 사실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이 왜 그리 언어와 민족 및 역사에 집착하는지를 정반대 방향에서 보여주는 역설적인 반증에 불과하다. 사실 “우크라이나인이 아닌 우크라이나인”이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의 대표자가 되어 혈통과 언어 기반의 배타적 민족주의를 주창하는 모순적 사례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운동의 짧고 굵은 역사에서 매우 비일비재한 일이었다. 예컨대 19세기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운동의 시조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볼로디미르 안토노비치(Volodimir Antonovich)는 원래 슐라흐타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우크라이나인이 되기로 “결심”한 폴란드계 러시아 제국 신민이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시기부터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운동에 적극 투신하여 1920년대와 1930년대에는 각각 UVO(Ukrains’ka Viis’kova Orhanizatsiia: 우크라이나 무장전투단)와 OUN(Orhanizatsiia Ukrains’kikh Natsionalistiv: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단)에서 활동했던 할리치나의 저명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알프레드 비잔츠(Alfred Bisanz) 또한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할리치나에서 태어난 오스트리아계 재외동포 독일인(Volksdeutsche)이었다(5장 참조).
더욱 극명한 모순적 사례는 냉전 시기 컬럼비아 대학 슬라브학과 교수를 역임하며 미국의 슬라브 언어학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학계 거물이자, 지금도 미국의 대(對)우크라이나 정책을 이끄는 수많은 제자와 후학을 양성했던 자칭 “언어학의 흐루셰프스키,” 조지 쉐벨로프(George Shevelov)에서 찾을 수 있다. 쉐벨로프는 원래 “슈나이더(Schneider)”라는 독일식 성을 가진 독일계 러시아인이었다. 우크라이나의 역사를 러시아의 역사로부터 분리시킴으로써 일종의 “역사 독립”을 쟁취하고자 했던 흐루셰프스키와 유사하게,  쉐벨로프는 (우크라이나어가 러시아어와 같은 뿌리에서 나온 동슬라브계 언어라는 역사적 사실 자체를 완전히 부인해 버리는) 이른바 “우크라이나어 독자발생론”을 통해 “언어 독립”을 쟁취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운동의 핵심 인물이었는데, 이렇듯 우크라이나 독립운동에 혁혁한 업적(?)을 세운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운동 지도자의 부친이 차르에 열렬히 충성하던 제정 러시아군의 고위장성이자 열혈 러시아 민족주의자였다는 사실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운동의 본질적 모순을 생생히 보여주는 축도에 다름 아니다. 이 “우크라이나어 독립 영웅”의 모순은 이 인물의 부친이 열혈 러시아 애국자였다는 사실로 그치지 않는데, 원래 모국어가 러시아어와 독일어였던 쉐벨로프에게 우크라이나어에 접할 기회를 부여하고 뜬금없이 우크라이나 민족의식에 눈뜨게 만든 계기야말로,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우크라이나어와 우크라이나 문화 교육을 의무로 강제했던 1920년대 소비에트 정권의 이른바 “토착화(Korenizatsiia)”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제정 러시아에 충성하는 독일인 귀족 가정에서 태어나 소비에트 정권이 강제한 우크라이나화 정책을 통해 어쩔 수 없이 우크라이나어를 배운 독일계 러시아인이, 그 누구보다도 반(反)러시아적이고 배타적인 민족 기반 우크라이나 중심주의자이자 민족주의자가 된 쉐벨로프의 사례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운동의 근본적 취약성과 모순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산 증거가 아닐까?


이렇듯 “우크라이나 혈통이 아닌 열혈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의 사례가 보여주듯 우크라이나는 언제나 다민족/다문화 공동체였으며, 특히 많은 폴란드인과 유대인 및 러시아인들에게 우크라이나는 조상 대대로 수백 년간 정착해서 살아온 온 고향이나 다름없었다. 예컨대 적지 않은 수의 폴란드인들이 존재했던 서부 우크라이나의 경우 할리치나주의 주도 리보프(L’vov)는 1945년 5월까지도 인구의 무려 과반이 폴란드인이었는데, 이들은 이주민이 아니라 이 도시에서 수백 년 넘게 살아온 원주민이자 토착민이었다. 우크라이나는 또한 홀로코스트 이전까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유대인이 몰려 살던 대표적인 유대인 거주지역이었다. 예카테리나 여제 시기 동부와 남부 우크라이나 지역은 “노보로씨야(Novo-Rossiia: 새러시아)”라는 이 지역의 역사적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제정 러시아 정부가 새로 개척하여 주민을 식민시킨 곳으로, 러시아인과 러시아화한 우크라이나인이 (유대인과 아르메니아인 및 그리스인과 더불어) 밀집하여 거주하던 지역이었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운동이 “비(非)우크라이나적”인 우크라이나를 신속히 “우크라이나화”함으로써 우크라이나 민족과 국민국가를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해결책에 주목하게 된 것은, 서부에서는 폴란드인이 동부에서는 러시아인이 지배적인 이렇듯 “비(非)우크라이나적”인 우크라이나 내 민족분포에 대한 절박한 상황인식이 초래한 결과였던 것이다.

이 과제에 대해 학살과 추방이라는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한 집단이 바로 이 책의 4장과 5장에서 다루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단(OUN)이다. 사실 (2022년 2월에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아닌) 2013년 11월에 시작된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우크라이나 측의 책임을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의 특성인 배타성과 절박성에서 찾는다면, 이러한 극단적 민족주의의 직접적 기원은 바로 우크라이나 토착의 파시스트 집단이었던 OUN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구라 역사 전문가 구자정 교수 글.

나머지는 여기서 보면 됨. 출판사 서평에 서문올라와 있음.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0555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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