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이 쿨릭 주한 러시아 대사 “한국과 러시아 국익 충돌 없어…”
인터뷰 김범수·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사진·정리 고성혁 미래한국 기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입장은 분명하면서도 난처하다.
보편적 자유에 기반한 국제질서와 한미동맹에 입각해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것이 정부의 공식 입장이지만 한국-러시아 양국의 경제문화 교류협력과 한반도 평화 문제 등 또 다른 차원의 국익 문제가 연결돼 있어 한-러 협력 관계의 지속 발전의 필요성은 자명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러시아의 시각과 한국 및 한반도 문제에 대한 생각을 안드레이 쿨릭 주한 러시아대사를 <미래한국>이 만나 들어봤다.
전쟁이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전면적 하이브리드 침공에 대한 반격”이며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반러시아적 나라로 만드는 것을 바로 잡는 것”이라는 주장은 동의되기 어렵지만 러시아의 입장을 엿볼 수 있었다.
이에 쿨릭 대사의 말을 최대한 가감 없이 전달한다. 자유평화통일을 위해 최대한 한-러 양국의 공통점을 찾고 러시아-북한의 밀착을 막는 것도 우리의 과제가 될 것이다.
- 많은 한국인들은 여전히 러시아 문화와 사람들에 대해 호기심과 호감이 있습니다. 동양도 서양도 아닌 제3의 문화, 슬라브라는 정체성을 대사님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그리고 한국의 문화와도 공통점을 느끼시는지요?
한국인들이 러시아 문화와 러시아 사람들에 대해 많은 관심이 있다는 말씀에 동감합니다. 동북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특히 한국이 러시아에 대해 가장 높은 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러시아와 슬라브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제가 전문적으로 연구한 부분이 아니라 개인적인 생각을 말씀 드릴 수밖에 없다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러시아는 서양과 동양의 중간에 있습니다.
러시아는 서양으로부터 문화적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동양으로부터도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독자적인 문화를 넘어 독자적인 문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양도 서양도 아닌 제3의 문화, 생활방식, 사고방식이 있습니다.
러시아 문화와 문명의 특징에 대해서는 3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러시아는 인류적인 문제에 대해 좀 더 높은 차원의 관심이 있습니다. 이것은 단적으로 러시아 문학 작품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러시아 문학작품은 한국을 비롯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타문화의 장점을 흡수하는 데 매우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러시아는 다른 나라, 다른 문화권 도서를 많이 번역하고 읽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러시아 문학, 음악, 예술 분야 등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다른 문화에 대해 매우 우호적이고 긍정적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최근 들어 서양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를 핑계로 러시아 문화예술을 차단하려 하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에서는 다른 나라 문화를 인위적으로 차단이나 금지하는 것을 상상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물론 과거 소련시대에는 이념적인 것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탈린 소련 시절에는 서구의 중요한 문학 작품들이 러시아어로 번역되어 출간되었습니다.
러시아의 이해에 꼭 강조하고 싶은 점은 러시아는 다양한 요소로 이뤄진 복합적이고 다문화적인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역사적 광활한 러시아 영토 내에서 수십 개에 이르는 다양한 민족들이 평화롭게 공존해왔습니다.
러시아 문화를 이해할 때 꼭 명심해야 할 것은 순수한 러시아 민족만이 아니라 수십 개 민족들이 정서적, 그리고 문화적 활동을 통해 만들어졌다는 점입니다.
개인적 생각이지만 제가 언급한 러시아의 정체성 특징은 한국도 함께 하는 것 같습니다. 인류가 고민하는 근본적인 것에 러시아나 한국이 모두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러시아 문학 작품들이 한국에서도 널리 읽히고 있는 것이겠지요.
“러시아는 수십개 민족들이 어우러진 다문화 공동체”
-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인 미어샤이머 교수의 주장처럼 나토의 팽창주의가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불러왔다는 관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토는 왜 현상 유지를 넘어 팽창전략에 집착한다고 보시는지요?
미어샤이머 교수의 주장에 동감하는 편입니다. 나토의 팽창주의와 동진이 우크라이나 사태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전부는 아닙니다.
쉽게 설명하면 냉전시대에서 탈냉전으로 변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이 냉전 종식을 냉전 종식으로만 그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완전한 승리로 인식했다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미국은 냉전 종식 승리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하려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소련의 해체를 미국의 승리로 받아들였고 더 나아가 현대적인 러시아까지 완전하게 패배시키려 했다는 것입니다. 그 완전한 승리를 얻기 위한 도구가 바로 ‘나토의 동진’인 것입니다.
나토는 분명 경쟁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었습니다. 우리는 수차례에 걸쳐 경고 신호를 보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토는 더 이상 동진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결국 다섯 차례에 걸쳐 동진을 하면서 겉으로는 러시아에 아무런 위협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외교적인 수사라 하더라도 나토가 군대를 러시아 쪽으로 계속 전진 시키면서 러시아에는 아무런 위협이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러시아를 무시한 것입니다. 현재 상황은 바로 나토 동진정책의 결과물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구한말 러시아 공사관(위) 자리에 새로 새워진 러시아 공사관(아래)
러시아에서 보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유
- 국제사회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방관하면 러시아가 주변국들을 연달아 정복할 것이고 또한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수도 있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선 미국 등 서방권에서는 ‘국제사회’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하는데 좀 더 깊이 보면 국제사회라고 하지만 그 면면은 불과 40여개 서방국가들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소위 국제사회라는 용어 자체를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40여개 나라가 전체 국제사회를 대변한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서방권에서는 국제사회라는 말의 왜곡을 자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질문에서 언급되는 ‘침공’이라는 용어도 현실과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러시아야말로 러시아를 향한 침공에 대응하고 있는 겁니다.
다른 말로 하면 나토의 동진에 따른 서쪽에서 다가오는 군사적 침략에 러시아는 대응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서방권이 우크라이나를 반러시아적 나라로 만드는 것을 우리는 올바르게 바로 잡는 것뿐입니다.
현재 상황을 설명하면 서방의 러시아에 대한 전면적인 ‘하이브리드 침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치, 경제, 문화, 이데올로기 등 모든 분야를 포함하는 하이브리드 전쟁인 것입니다.
또한 우크라이나 급진 민족주의자들이 사용하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가 정확히 알아야 하는 점은 러시아가 서방의 팽창주의를 막지 않으면 나중에는 러시아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나라들도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서방세력은 지난 500년간 이어진 우월한 지배력을 계속 이어나가려는 것이지요.
국제무대로 시야를 옮겨보면 유엔에서 많은 나라들이 서방권의 압박을 받으면서도 러시아 쪽에 표를 던지기도 했습니다. 실질적으로 서방권 국가들을 제외하면 반러시아 경제 제재에 동참하는 나라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또 러시아와 경제교류를 완전히 중단한 나라도 사실 거의 없습니다. 미국이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를 시행했을 때 바로 동참한 나라들을 빼고는 추가적으로 경제 제재에 나선 나라도 거의 없습니다. 서방권을 빼고는 다른 나라들과는 정상적 외교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알려드립니다.
9월 16일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에서는 상하이협력기구 정상회담이 개최되었습니다. 상하이협력기구에 동참하겠다는 나라도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서방권에서 말하는 러시아가 세계에서 고립되고 있다는 말은 현실과 맞지 않습니다.
중국과 대만 문제에 대한 질문은 우크라이나 사태와는 별도의 문제이기 때문에 제가 별도로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대만 문제는 우크라이나 사태와는 본질이 다른 사항입니다.
중국의 공식적인 발언과 행동을 보면 대만 문제는 중국 입장에서는 평화로운 조국의 통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방법도 잘 알려져 있는데 바로 ‘일국양제(一國兩制)’입니다. 이미 홍콩과 마카오에 적용이 됐습니다.
물론 이 프로세스는 쉽지 않고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중국이 이와 관련해서 확실히 정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그것은 대만이 독립을 선언하거나 제3국이 개입할 경우 중국이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러시아 수교 30년, 민간 인적 교류 성과 가장 많아
-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인들과 함께 한국인들도 걱정이 많습니다. 전쟁이 속히 끝나고 평화가 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러시아 입장에서 이 전쟁이 종료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입니까?
현재 상태는 갑작스럽게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서방권이 러시아에 행한 침략적인 것의 결과물입니다. 작년 12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하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해봤습니다.
미국 등 서방권에 러시아는 해결 방안을 패키지로 제안한 바도 있습니다. 그러나 서방권은 우리 러시아의 합리적 제안을 일언지하에 무시했습니다. 그 결과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특별군사작전의 마무리 조건은 푸틴 대통령이 군사작전을 펼칠 때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것은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 비나치화 그리고 돈바스 지역의 공화국 독립입니다. 이러한 작전의 목적이 달성되면 특별군사작전은 마무리될 것입니다.
- 한국 정부는 한미동맹 차원에서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고 있지만 공산주의를 포기한 강대국 러시아에 대해 여전히 기대와 우호관계를 희망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한국-러시아간 교류 협력이 위축되지 않아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민간 교류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민간 교류는 저도 매우 관심을 갖고 있는 부분입니다. 러시아와 한국이 수교 30년 동안 가장 성공적인 것이 바로 민간 분야의 인적 교류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구체적으로 얘기하려면 시간이 부족할 정도입니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많은 진전이 있었습니다.
많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러시아에 가서 문화적 교류를 하고 교육을 받았습니다. 많은 러시아인들이 한국에 오기도 했습니다. 상호 문화교류 행사가 많았습니다.
한국에 푸시킨 동상과 톨스토이 흉상이 만들어졌습니다. 러시아에서는 한국문화주간이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와 인적 교류는 한국과 러시아가 서로를 향해 다가가는 양방양 프로세스입니다. 현재 러시아에서는 K-POP이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한국 영화들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 한국 문학작품 역시 러시아어로 번역 발간되고 있습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한국의 대문호 박경리 작가의 동상도 있습니다.
인적 교류야말로 한국과 러시아간의 가장 모범적인 분야입니다. 특별군사작전이 개시된 이후에도 제가 한국의 많은 인사들을 만나 봤는데 우크라이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러시아 간의 인적 교류는 계속 되어야 한다는 것에 모두 공감을 표했습니다.
현실은 문화 인적 교류가 침체된 것은 사실이기도 합니다. 과거와 같은 문화 교류가 재개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 러시아가 한국의 방위산업과 우주항공산업에 기여한 바가 큰 것으로 압니다. 향후 한국과 러시아의 협력이 어떤 분야에서 어떻게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1990년대 관계 정상화로 양국은 특히 항공우주 분야에서 매우 큰 협력을 이뤘습니다. 당시 러시아는 약 10억 달러에 이르는 무기까지 수출했습니다.
민군에서 겸용으로 사용하는 헬기 약 70대 정도를 한국에 수출했으며 현재도 한국에서 여러 용도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1990년대 이후 한.러간 군사 교류가 중단되었는데 한미동맹 차원에서 그렇게 된 것으로 이해하는 상황입니다. 물론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인도나 튀르키예도 러시아산 무기를 도입하려 할 때마다 미국이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주 협력도 잘 발전되고 있었습니다. 양국 정부 간 합의도 있었습니다. 한국 최초 우주비행사 이소현 씨도 러시아 우주선에 탑승해서 우주비행을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한국의 위성도 러시아 발사체에 실어 우주로 올려보냈고 한국의 우주발사체 개발에도 러시아는 직접 협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한국산 로켓에는 러시아 기술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우주 협력이 그 당시 최고점을 찍은 이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향후 양국간 항공우주 협력 재개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정치외교와 밀접한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러시아가 보는 국제질서, “다극화 만들어야”
- 러시아가 국제질서를 어떻게 보는지 궁금합니다. 미국이 세계를 주도하는 일극(unipolar) 시대에서 중국이 등장하고 EU가 커지면서 다극화(multipolar) 시대로 전환하고 있다는 관점도 있는데 러시아는 이를 무극화(nonpolar)로 보고 있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러시아는 중국처럼 다자주의를 선호합니까, 아니면 ‘러시아의 길’을 선호하는 것입니까?
역사적으로 지난 500년 동안 서방권이 러시아에 비해 우월한 지위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국제 질서 속에서 새로운 전환점이 생긴 것이 20세기 말, 21세기 초 서방권이 아닌 새로운 ‘극’이 생겨 세계는 다극화 되었습니다.
서방권 중심의 1극 체제가 아닌 다극 체제입니다. 중국과 인도의 등장도 그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 나라들이 연합해서 ‘아세안’처럼 새로운 ‘극’으로 부상할 수도 있습니다. 러시아 역시 그 맥락 속에 새로운 극으로 부상한 것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극’이 부상하기 때문에 세계 질서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물론 서방권은 새로운 ‘극’의 부상을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서방권은 어쩔 수 없는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정책을 수정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러시아의 입장은 세계 질서가 다극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엔헌장과 국제법에 기초를 두면서 부상하는 새로운 ‘극’들과 협력해 새로운 국제 질서를 만들어야 합니다.
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6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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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제한때문에 바로 추가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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