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유명한 경제학자 중에 조반니 아리기라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세계의 패권 변화의 역사를 분석하여 패권의 성립-절정-쇠퇴 과정을 하나의 모델로서 그려냈다.
조반니 아리기가 말한 패권의 변천 역사는 스페인(제노바)-네덜란드-영국-미국 순서이다.
우선 패권, 즉 헤게모니란 무엇인가?
특정 집단이나 국가가 다른 집단이나 국가를 상대로 행사하는 정치, 경제, 사상, 문화적 영향력을 말한다. 여기서 영향력이라는고 하는 이유는
헤게모니는 힘, 즉 군사력만으로 성립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무력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무력+@가 있어야 한다. 즉 원탑 국가의 헤게모니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주변 국가들이 원탑 국가의 모델을 따를 수 있도록 하는 체제를 성립시켜야 한다.
그렇다면 헤게모니의 성립-절정-쇠퇴 과정은 어떻게 될까?
어느 한 국가의 헤게모니의 성립과정은 생산 분야에서 발생하고, 또 이전 헤게모니 국가의 모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첫번째 헤게모니 국가인 스페인-제노바 헤게모니는 군사력에서는 스페인, 경제력에서는 제노바라는 이중적 형태를 취한다.
이들은 막강한 상업적 부를 바탕으로 헤게모니를 성립했지만 스페인-제노바라는 이중적 형태가 결국 쇠퇴의 원인으로 된다.
즉 제노바의 경제적 팽창에 필요한 군사력을 스페인에게 의지한 탓에 헤게모니 팽창 및 수호에 들어가는 보호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증가했다.
그나마 스페인의 군사적 패권이 유지될때는 그럭저럭 유지될 수 있었지만 만약 군사적 패권이 무너진다면? 제노바의 경제적 패권도 함께 무너지는 취약한 구조였다.
스페인의 군사적 패권은 무적함대 해전과 네덜란드 독립전쟁으로 무너졌고, 제노바의 경제적 지위 역시 함께 몰락했다.
두번째 헤게모니 국가인 네덜란드는 위와 같은 스페인-제노바 헤게모니의 모순을 극복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네덜란드 헤게모니의 핵심은 보호비용의 내부화였다. 이 대표적인것이 바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였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무력과 자본력을 정부공인회사라는 형태로 결합시켜서 정부를 대신하여 무력활동과 경제활동, 특히 대외팽창 활동에 주력했다.
이는 보호비용을 외부화 했던 제노바에 비해 자본축적에 훨씬 유리한 형태였다. 특히 네덜란드는 아시아 인도양 지역에서 스페인과 포루투칼을 상대로 성공적인 군사작전을 펼쳤다. 그 결과 당시 가장 중요한 해외시장이었던 아시아 시장을 장악했다.
정부를 대신하여 네덜란드의 공인회사들은 대외팽창(군사+경제)를 통해 막대한 부를 수입했다. 아시아 뿐만 아니라 북해지역까지 네덜란드의 무역은 확장되었다.
하지만 네덜란드의 패권은 오래가지 못했다. 왜냐하면 네덜란드의 국가능력의 한계로 인해 네덜란드가 팽창시킬 수 있는 헤게모니는 제한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와 함께 네덜란드 패권에 도전하는 영국과 프랑스가 강력한 중상주의를 펼침으로써 자유무역에 기초한 네덜란드 패권은 도전을 받기 시작한다.
대표적으로 영국의 항해조례 등 네덜란드의 핵심산업인 조선업을 겨냥한 조치들이 이뤄지고 네덜란드의 산업은 쇠퇴한다.
네덜란드의 무역과 산업이 쇠퇴하면서 네덜란드 자본은 유효한 투자처를 잃고 만다. 그래서 네덜란드 자본은 모두 암스테르담 금융시장으로 갔다. 하지만 암스테르담 자본시장의 유효한 투자처는 네덜란드가 아니었다.
네덜란드는 이미 산업적으로 쇠퇴했기 때문에 여기에는 투자할만한 산업이 없었다. 그래서 암스테르담은 영국에 투자를 한다. 그런의미에서 암스테르담은 네덜란드, 나아가 유럽의 유휴자본을 영국으로 퍼올리는 양수기 역할을 한다.
하지만 암스테르담으로 수많은 자본이 몰리면서 자본시장이 형성되었고, 영국에 대한 투자가 성공을 거두면서 네덜란드의 경제는 엄청나게 화려하게 성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금융시장의 호황은 산업에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본이 몰려 들어 발생한 현상이기에 산업적 불황을 의미했다. 모든 헤게모니 국가는 헤게모니 쇠퇴 국면에서 산업의 쇠퇴와 금융의 활황이라는 현상을 겪는다. 이 본질을 모르는 사람 눈에는 금융적 호황이 눈부셔 보이지만 그 실상을 드려다보면 겨울이 오기전 화려한 가을과 같은 것이었다.
헤게모니 국가의 모든 부가 금융으로 몰릴 경우 나타나는 가장 큰 문제점은 부의 불평등성 강화, 실업률 증가, 위 2요인으로 인한 계급갈등의 심화이다.
네덜란드의 금융적 팽창은 불평등의 강화와 실업률의 증가를 동반했다. 네덜란드 산업은 쇠퇴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금융의 팽창은 부익부 빈인빈을 초래했다. 그리고 이는 대대적인 계급갈등을 촉발시켰다.
이와 함께 네덜란드의 군사적 쇠퇴도 함께 진행되었다. 공인회사 형태의 보호비용의 내부화 전략은 아시아지역의 해상전투처럼 소규모 전쟁에서는 꽤나 훌륭했지만 국가대 국가, 특히 근대 이후 국민국가간의 전면전에서는 효율적이라고 할 수 없었다.
특히 네덜란드의 국가 규모는 국민국가를 형성해 나아가는 영국과 프랑스를 상대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 게다가 네덜란드 내부의 계급갈등 심화는 스페인을 상대로 한 독립전쟁에서 뛰어난 애국심과 전투력을 보여줬던 네덜란드의 군사적 전통을 약화시켰다.
네덜란드의 군사적 우위가 사라지자 스페인과 마찬가지로 네덜란드의 패권은 붕괴되기 시작한다. 이미 경제적으로도 암스테르담은 런던에 종속된 상태였다.
그래도 네덜란드의 가장 뛰어난 점, 스페인과 달랐던 점은 패배를 빠르게 인정하고 영국 헤게모니의 기대어 살것을 일찍 결정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네덜란드는 제국의 해체라는 최악의 상황을 겪은 스페인-제노바의 몰락보다는 나았다.
어쨋든 네덜란드 헤게모니가 천천히 붕괴하면서 유럽 헤게모니에는 공백이 생겼다.
이 헤게모니를 두고 경쟁하는 두 국가는 네덜란드의 모순(국가규모, 보호비용의 내부화)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국가
즉 국민국가를 형성할만큼의 국가규모를 갖추었고, 단순히 보호비용 뿐만아니라 산업비용도 내부화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 낼 수있는 국가여야 했다.
18세기에 이런 국가는 유럽에 딱 2개밖에 없었다. 하나는 영국, 다른 하나는 프랑스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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