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타임스=김우선 기자] 일반인들에겐 드라마 <호텔 델루나>의 촬영지로 더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호텔 델루나의 클래식하고
우아한 건물 외관을 비롯해 장만월과 구찬성이 달빛 아래 기억을 공유하는 낭만적인 장면, 손님들이 로비에
도착하는 장면 등이 이 곳에서 촬영됐다. 바로 목포근대역사관이다.
도로에서 바라본 근대문화역사관
가족 대소사가 있어 목포에 갈 일이 있었다. 어디를 가야 가족들이
기억에 남을까를 고민하다가 결정한 곳이 목포근대역사관이다. 올해 팔순을 맞은 아버지가 가족 중에 유일하게
일제 치하를 조금이라도 경험한 분이기도 해서 이 곳을 코스로 잡았는데 정작 아버지는 별 감흥이 없이 계단 아래 약 200여미터 떨어진 2관도 다리 아프다는 핑계로 가지 않으셨다.
근대문화역사관 1관의 전경
평화의 소녀상
역사관 앞 중앙계단
아무튼, 목포근대역사관을 리뷰해본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5개의 근대역사관이 존재한다. 부산, 인천, 대구, 목포, 군산에 근대역사관이 있다. 전부 일제시대에 지어진 건물들로 대구를
제외하고 전부 항구 도시에 있는 점이 특징이다. 그것은 일제가 항구를 통해 우리나라의 각종 유산들을
수탈해가는 통로의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근대역사관들은 실제로 일제가 영사관 등 주요
본거지로 사용하던 건물들이다. 전북 정읍과 익산에도 근대역사관 건물이 있지만 이 글에서는 제외했다.
목포근대역사관은 유달산 근처에 있다. 구도심에 위치해 있어 주변 상권은
거의 없는 편이다. 하지만 관광지가 된 목포근대역사관 주변으로는 맛집과 카페들이 꽤 보인다. 목포근대역사관은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내에 위치해 있다. 목포가
개항하면서 외국인들이 거주할 수 있도록 만든 지역이다.
주변 해안가를 간척해 근대 시가지를 형성했는데 지금도 당시의 바둑판식 도로 구조와 근대 건축물이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과거 일본인들이 다니던 소학교에서 목포역 방향으로 대표 도로를 만들고 유달산, 목포진, 선창을 연결하는 구조다.
목포근대역사관은 1관과 2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1관이 약간 언덕 중간에 위치해 있어 주차는 근처에다 하고 올라가야 한다.
근대역사문화관의 모형
근대역사문화관의 실제
<호텔 델루나>에
나온 것처럼 근대역사관 1관 건물은 오래돼 보이는 중앙계단을 20여개
올라가야 한다. 계단 아래에는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되어 있다. 붉은
벽돌로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일본의 목포 영사관 건물이었다. 1897년 10월 목포항구가 개항되고 목포진의 일부 건물을 사용하던 일본은 1900년
현재 자리에 영사관 건물을 신축했다. 그러니 저 건물은 124년이나
된 건물이다.
2층 구조로 된 건물은 돌출된 출입구를 중심으로 좌우대칭형으로 되어
있는데, 벽면 창문 위를 보면 흰 벽돌로 일장기 문양을 표현하고 있다.
건물 하나도 허투루 만들지 않는 사람들이다.
호텔 델루나 포토존
당시의 벽난로도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
일본은 이 곳을 거점으로 목포에서의 실권과 경제를 장악해 나갔는데 한국인 노동자와 객주 단체를 탄압하고 일본
상인의 이권을 옹호하는 데 주로 활용됐다. 따라서 이 건물은 일제의 목포 경제 침탈과 식민지 지방통치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또한 식민지 수탈의 아픔을 기억하는 공간이자 두부 노동운동, 소작 쟁의, 의병, 항일운동
등 민족저항의 역사가 함께 숨쉬는 곳이기도 하다.
이 건물의 명칭은 한일 관계의 변화에 따라 달라졌다고 한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 후 1906년부터는 목포 이사청으로 불렸고,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이후에는 행정지명 변화로 목포부청으로 바뀌었다. 해방 이후에는 목포시청, 1974년부터는 목포시립도서관, 1990년부터 목포문화원으로 사용하다가 2014년부터 목포근대역사관 1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당시 사용했던 인력거
일제 거리를 재현해놓은 미니어처
관람료는 성인 기준 2천원인데, 매주
월요일에 휴관한다. 티켓을 끊으면 1관과 2관을 함께 관람할 수 있다. 1관에서는 주로 목포진의 설치를 중심으로
목포의 역사를 담고 있는데 1층에 당시 일본 근대문화공간 거리의 모습이 미니어처로 잘 만들어져 있다. 1층 한 공간에는 호텔 델루나의 포토존도 마련되어 있다.
삐그덕거리는 나무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만세운동 및 일제시대
수탈의 역사와 관련된 것들이 전시되어 있다. 또 당시 사용했던 냉장고,
가스히터, 손금고, 재봉틀 등도 전시되어 있다.
역사관 뒷편의 방공호
방공호 출입구
우리 한국인들을 강제 동원해 방공호를 만들었다.
밖으로 나가서 건물 뒷편으로 가면 산을 뚫어서 만든 벙커가 보인다. 일제
말기에 조성한 방공호라고 한다. 조선총독부가 1941년 태평양전쟁을
시작하면서 공중 폭격에 대비해 1944년에서 1945년 사이에
대피 장소로 만든 방공호이다. 전체 길이는 85미터이며, 중앙 출입구에 좌우로 별도의 출입구가 연결되어 있다.
이 방공호를 조성하는 데는 한국인들이 강제 동원됐다. 군인으로 징병한
사람들을 노동자로 투입해 착취했는데 방공호 내부에 착취하는 모습을 모형으로 만들어 두었다. 이 방공호는
태평양전쟁 시기에 유달산에 주둔하던 일본군 150사단의 사령부가 유사시에 사용하기 위해 일제가 만든
유적이자 강제 동원을 증명하는 역사적 현장이다.
근대역사관 1관에서 계단 방향으로 내려가 200여미터 걸어가면 근대역사관 2관이 나온다. 이 건물은 과거 일제시대에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으로 쓰이던 곳이다.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일본이 당시 대한제국 경제를 침탈하기 위해 1908년에 설립한 특수회사다. 일본인의 이주 지원에서부터 식민지 지주 육성, 농장 관리, 금융 등이 주요 임무였다.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이었던 역사관 2관
역사관 2관 1층 내부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서울에 본점을 두고 전국 주요 도시 9곳에 지점을
두었다. 이 곳 구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은 본래 나주에 있던 출장소를 1920년에 목포로 옮긴 것으로, 건물은 1921년에 신축했다.
당시 실제로 사용했던 대형 금고
금고 안에서는 건물을 폭파하는 게임을 할 수 있다.
당시 제작해 사용했던 저울
2층 올라가는 나무 계단
해방 이후 이 건물은 대한민국의 해군기지로 사용했다. 1946년부터
74년까지 해군 목포경비부로, 1974년부터 89년까지는 해군 제3해역 사령부 헌병대 건물로 사용했다. 이후 헌병대가 영암군으로 이전하면서 1999년까지 약 10년간 빈 건물로 방치되어 철거 위기를 맞기도 했는데 식민지 수탈의 역사를 증명하는 근대 문화유산으로 보존해
달라는 시민사회와 하계의 요구에 따라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 내부 보수를 거쳐 2006년부터 근대역사관 2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근대역사관 2관은 목포에 남아 있는 대표적인 일제 강점기 건축물로
식민지 수탈의 상징 공간이라는 의미가 있다. 내부에는 당시에 사용된 대형 금고가 아직도 남아 있다. 가슴 아픈 수탈의 현장이다.
<ansonny@review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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