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타임스=김우선 기자] “12.12 쿠데타 이야기가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세상 참 좋아졌네.” <서울의 봄> 영화
관람을 하고 나오는 길에 아내의 한 마디다. “세상 좋아졌다니. 이런
영화가 진작에 나왔어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냐?”라고 맞받았지만 한 편으로 씁쓸하다. 그동안 왜 이런 영화가 나오지 못 했던 걸까? 쿠데타 역모의 주인공
전두환이 살아있어서? 그러고보니 전두환이 사망한 지 딱 2년이
지났다. 이 영화가 2022년 2월부터 촬영을 시작했으니 아마도 전두환이 사망하자마자 영화 제작에 들어간 것이 아닐까 싶다.
서울의 봄은 현실의 데자뷰다. 사진=영화사 제공
이 영화의 개봉일은 11월 22일이었다. 개봉 후 열흘만에 300만명을 넘어섰고, 어제(12/3) 기준으로 400만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그런데 왜 개봉일이 쿠데타가 벌어진 12월
12일이 아니고 11월 22일이었을까? 여러 억측이 있지만 11월 22일은
훗날 쿠데타의 핵심세력이었던 하나회를 청산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날에 맞췄다는 설도 있고 그 다음 날인 11월 23일은 전두환의 사망일이라서 잡았다는 설도 있다.
영화 제목 서울의 봄은 원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한 10.26 사태
이후부터 5.17 내란까지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갈망을 의미하지만 이 영화는 12.12 쿠데타 당일 군부의 긴박했던 9시간의 행적만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2시간 20분이라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고 금세 지나간다.
영화의 스토리는 약간의 각색이 들어가긴 했지만 역사적인 사실을 토대로 한 것이라 다들 알 것이라 생각하고
넘어간다. 다만 대대손손 부귀영화를 누리고 사는 친일파 자손들과 달리 3대에 걸쳐 생활고에 시달리는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삶이 이 영화처럼 데자뷰된다.
국민을 지키라고 만든 군대의 지휘관들이 최전방 부대의 병사들까지 투입시켜 역사와 국정을 유린한 자들과 그
후손들은 강남 한복판과 해외에서 떵떵거리며 살고 당시 쿠데타에 맞서 싸운 참군인들은 현장에서 전사하거나 체포되어 고문을 받고 그 가족들마저도 홧병으로
죽거나 자살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목이 메인다.
마지막까지 반란군에 맞섰던 이태신(실제 인물 장태완 장군)은 체포되어 서빙고분실에 끌려가 이듬해 3월까지 갇혀있었고 서울대를
수석으로 입학했던 아들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변사체로 발견됐고 장태완의 부인마저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또
특전사령관을 보좌하다 숨진 김오랑 소령은 전사하자마자 특전사 뒷마당에 암매장 당했다가 훗날 현충원에 묻혔고 부인은 실명 후 실족사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영화를 보고
화가 솟구치는 건 국가를 도적질한 범죄가 어떻게 몇 명의 작당에 의해 일어날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과 함께 종결형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강력한 무기를 가진 군대는 반드시 통제되어야 한다. 군대는 언제
주인을 물지도 모르는 맹견과도 같기 때문이다.
박근혜 탄핵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2017년에도 쿠데타의 시도가 있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당시 기무사는 탄핵 기각 시 전국적인 시위가 벌어질 것에 대비해 비상계엄을 실시하는 문건을 만들어 군 수뇌부와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서울의 봄처럼 서울 인근의 군부대를 어떻게 이동시켜 배치할 것인지에
대한 것도 포함됐다. 어쩌면 영화 속 쿠데타는 2017년에
재현됐을 수도 있다. 그래서 쿠데타는 현재진행형이다.
당시 문건 작성을
지시한 조현천 기무사령관은 미국으로 도피해 여권까지 말소됐지만 5년 동안 잡히지 않았고 올해 자진 귀국했지만
3달만에 보석으로 석방됐다. 조현천 기무사령관이 12.12 당시 쿠데타의 핵심이자 육사의 사조직이던 하나회의 뒤를 이은 알자회 소속인 것도 불편한 영화의 데자뷰다.
영화 막판에 12.12에 가담했던 이들의 그 이후 이력이 나온다. 떡고물을 주겠다고
공헌했던 전두환과 노태우는 쿠데타 멤버들에게 합참의장, 육군 참모총장과 참모차장, 1군, 2군, 3군 사령관,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기무사령관,
수방사령관, 특전사령관 등의 자리에 앉혔고 그것도 모자라 장관과 국회의원 등의 요직을 꿰찼다.
영화에서 마지막 장면으로 하나회 일당의 단체사진이 압권이다. 처음엔 배우들로 찍은 사진이 나오는데 모티브가 된 인물들의 약력이
나열된 후 단체사진은 전두환을 비롯한 실제 하나회 단체사진으로 바뀐다. 언뜻 모르고 지나칠 수 있으나
엔딩 크레딧의 배경음악으로 흐르는 군가 <전선을 간다>와
함께 살펴보기를 바란다. “적막한 산하, 눈 내린 전선을
우리는 간다”는 가사는 쿠데타에 의해 꽃 피지 못하고 저버린 서울의 봄을 반영한 것이라는 평도 있다.
12.12 쿠데타를 다룬 영화가 왜 이제야 나왔을까, 라는 의문에서 우스꽝스럽게도 영화 속 인물이 왜 전두환이 아닌 전두광이고, 노태우가 아닌 노태건이었을까를 생각한다. 죽은 자(死者)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인 사자명예훼손 때문이었을 터. 하지만 나라를 총칼로 찬탈하고 그 이후 광주 5.18에도 공수부대를 보내 수 천명의 시민들을 학살한 이들에게 과연 지켜야 할 명예가 남아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그 사자 중 한 명인 전두환의 유해는 2년이 지난 아직도 땅에 묻지 못 하고 구천을 떠돌고 있다. 자업자득이다.
<ansonny@review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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