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타임스=김우선 기자] 조선시대 사극에 보면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종묘사직’이다. “전하, 종묘와 사직을 잘 보존하시옵소서”와 같은 대사 속에 종묘사직이 등장한다. 종묘는 역대 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직은 잘 모른다. 기자 역시 사직의 의미를 잘 몰랐다.
사직단 대문
최근 사무실을 경복궁역 부근으로 옮겼다. 주변 지리를 보기 위해 지도를
보니 엎어지면 코 닿을 지척의 거리에 사직단이 있다. 사직근린공원 안에 자리잡고 있다. 사무실 주소도 사직로에 있고, 조금 더 가면 사직터널이 나오는데, 그 ‘사직’일 터이다.
그래서 사직단을 짬을 내 가보기로 했다. 사무실에서 채 1~2분밖에 되지 않는 거리다. 사직단 주변으로 공사 가림막이 쳐져
있다. 공사 중이란다. 2025년까지 사직단을 복원한다는
계획이다. 사직단 대문 앞에 있는 설명문을 보고 사직단이 뭔지 이해하게 됐다.
사직단은 담장으로 둘러져져 있어 내부 출입이 불가하다.
매년 8월 사직대제 때만 문이 열린다.
종묘는 앞서 말한대로 역대 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데, 사직은
토지의 신(社)과 곡식의 신(稷)을 위해 제를 지내는 곳이다. 토지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국사단은 동쪽에, 곡식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국직단은 서쪽에 배치되어 있고 신좌는
각각 북쪽에 모셨다고 나와 있다. 바로, 사직단을 국사단과
국직단이 있는 제단을 말한다. 종묘처럼 건물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제사를 지내는 단만 있어 조금은
휑하다. 현재 사적 제121호로 지정되어 있고 이곳에 단을
쌓고 제사를 지내서 사직단이라고 불렀다.
사직단의 내부
사직단 내부
가운데 두 개의 단이 위치해 있다.
국사단과 국직단
'농자천하지대본야(農者天下之大本也)'라는 기치를 내운 조선 왕조는 농업에 있어서 땅과 곡식은 조상을 모시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 정도로 아주 중요한 성지이기도 하다. 종묘가 왕의 조상신을 모시는
사당인데 반해, 사직은 왕이 다스리는 땅을 주관하는 신을 모신 사당인 셈이다. 따라서 종묘와 사직 중에서는 사직이 더 우위였으며, 어떠한 사정이
생겨 종묘에서 지낼 제사를 생략하더라도 사직에는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고 한다.
사직단의 내부 배치 모습
1910년대 사직단 대문
대한제국 시절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환구단을 만들기 전까지는, 사직이
조선왕조에서 가장 격이 높은 제사장소였다. 그래서 종묘사직은 나라(조선)의 근본이라는 말이었을 만큼 사직은 국가의 정신적 근간과 정통성을 이어가는 중요한 시설이었다.
국토와 오곡은 국가와 민생의 근본이 되므로 고대에는 국가와 민생의 안정을 기원하고 보호해주는 데 대한 보답의
의미에서 사직을 설치하고 제사를 지냈다. 따라서 사직은 왕실의 조상들을 제사 지내는 종묘와 함께 국가적
차원에서 중요시되어, 국가를 가리키는 뜻으로도 사용되었다.
제례 음식을 마련하던 전사청이 복원되어 있다.
사직 제관의 복식
1922년 일제가 사직단을 공원으로 개조해버렸는데 관련 부속건물들을
철거했을 뿐 아니라 일부는 학교부지로도 분할해버렸다. 1960년대에는 도시계획사업으로 인해 그 부지를
축소하고 1970년대에는 도서관·수영장·동사무소·파출소 등을 건립했다.
사직단 대문 옆의 수령 200년된 황철나무가 세월의 흐름을 짐작케 한다.
현재는 일부 시설을 복원해 문화재 보호시설로 지정했다. 문화재청은 2012년 종로구에서 관리 권한을 인계받아 사직단 복원을 위해 운동장을 포함한 사직공원을 폐쇄하고 종로도서관과
서울시립어린이도서관을 허물어 사직단을 2027년까지 복원한다는 계획이다.
<ansonny@review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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