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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의 충고

ㅇㅇ(211.216) 2025.11.23 00:51:31
조회 93 추천 0 댓글 0

중앙시평            2018. 6. 16




기원전부터 역사를 기록하는 유럽의 도시들이 즐비하지만 베를린은 13세기에야 역사책에 등장할 정도로 연륜이 짧다. 그러나 이 젊은 도시는 어떤 곳보다 도시의 흥망성쇠가 압축적으로 전개되었으며, 특히 20세기에는 도시로서 가질 수 있는 모든 사건을 한꺼번에 겪는 듯 숨 가쁜 역사를 기록한다. 제국의 붕괴와 민중의 봉기, 극심한 불황과 나치의 창궐, 그리고 전쟁과 패전으로 이루어진 파괴와 분단 등등….   베를린은 20세기 세계사의 핵심이었고 격변의 현장이었다. 급기야 1989년 11월 9일, 급작스럽게 독일의 통일이 발표되면서 이 도시는 여태껏 변화한 것보다 더 큰 변신을 앞두게 된다. 통독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었지만 놀랍게도 바로 그날 저녁 다임러 벤츠와 소니의 합작법인은 베를린 장벽이 관통한 유서 깊은 포츠담광장 지역의 재개발을 발표하였다. 이 거대 자본은 통독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이미 알았던 것일까? 그들은 신속하게 통일 독일의 새로운 수도 중심부 개발을 진행하였고 후지산을 닮았다는 지붕을 씌운 거대 상업건축을 21세기가 되기 전에 만들어 내고 만다. 투기자본의 냄새가 짙었다. 이 대형 개발사업을 두고 영국의 한 건축잡지는 ‘자본이 붕괴시킨 역사 도시의 참극’이라 했고, 더러는 ‘건축 지성의 학살’이라며 맹비난하였다.



이 일은 통일된 베를린의 도시 건축을 총괄할 한스 스팀만이라는 건축가가 등장하기 전에 시작된 것이다. 1991년에 베를린 총괄건축가로 임명된 그는 ‘비판적 재건’이라는 개념으로 베를린의 도시를 재구성하기 시작한다. 뉴욕이나 시카고 같은 초고층의 도시는 그가 가진 구상의 반대편이었다. 역사에 바탕을 둔 베를린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 그가 정한 원칙이었다. 건축의 밀도와 높이, 형태와 재료까지 규제하며 상업자본과 개발업자의 욕망을 철저히 배제하였다. 빌바오미술관 건축가로 유명한 프랑크 게리의 기발한 작품도 한 건물의 내부에 갇혔고, 서울의 DDP(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를 만든 자하 하디드의 우주선 같은 건축의 흔적을 이 도시에서는 찾을 수 없다.



대신에 베를린 장벽이 지나갔던 자리는 그대로 보존되거나 기념광장과 기념공원으로 남았으며, 잘 조직되었지만 낙후된 동베를린의 공공영역들은 조심스레 재생되었다. 도시의 공공성을 우선 강조하고, 곳곳에 산재해 있는 기억들을 공유하며,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실현하게 된 베를린은 드디어 ‘교환과 명상의 메트로폴리스’라는 명예를 얻으며 21세기 최고의 건축 도시로 각광받게 된다.



기민당 시장 시절에 발탁되었으나 2001년 사회당의 보베라이트 시장이 취임한 이후 더욱 도시의 공공적 가치를 드높이는 일에 몰두한 이 총괄건축가는, 엄격한 제한을 받아야 했던 수많은 개발업자와 영웅적 건축을 만들고 싶은 건축가 모두의 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막대한 공공투자로 베를린 시 재정이 어렵게 되자 그를 향한 공격이 더욱 드세져 결국 사임하고 만다. 15년간 베를린을 위해 헌신했던 그의 사임이 불러온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그가 물러난 직후 착공된 신공항 사업이 온갖 부실과 부정, 사기, 배임 등 총체적 문제를 나타내며 좌초한 것이다. 결국 보베라이트 시장도 물러나면서 각종 개발사업은 봇물 풀린 듯 쏟아져 나왔다.



지난 1월 베를린을 방문했을 때, 내 건축전시회를 개최했던 에데스갤러리의  한스위르겐 관장의 안내를 받아 최근에 지어진 건축물들을 둘러보게 되었다. 터질 듯한 용적, 꽉 막힌 통로, 주변에 군림하는 형태, 투기자본의 전형들이 동베를린 지역의 비어진 땅들을 채우고 있었다. 포츠담광장 개발은 그나마 큰 광장과 여러 공공영역을 두고 있었건만, 이 새로운 투기자본이 만든 건축은 공공성을 처절히 배반한 모습이었다. 한스위르겐은 분노에 찬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언젠가 너희도 통일되면 개발세력들이 북쪽의 땅들을 유린할 게 뻔하니 대비해야 한다고.



드디어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 역사적 순간은 역시 도둑처럼 왔다. 엊그제 지방선거에서도 정부의 평화정책은 압도적 지지로 나타났으니, 이제 남북관계는 빠른 속도로 빈번한 교류와 다각적 경협의 단계로 들어갈 것이다.



그런데 나는 걱정이다. 최근 들어 비무장지대 부근의 땅값이 엄청나게 올랐다는 소식도 들렸다. 아니나 다를까, 일부 대형 설계사무소와 개발회사들이 특별팀을 꾸려 북한 개발사업에 참여하기 위한 전략을 짜고 있다고 했다. 북한은 수십 년간 통제사회였으므로 그들의 도시 공간 구조도 통독 전의 동베를린만큼, 어쩌면 보다 더 잘 조직되어 있을 게다. 이 순전한 땅을, 악다구니 같은 우리의 도시풍경을 만든 투기자본이 또 환칠할까  걱정인 것이다. 기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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