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군대에 있을때의 이야기이다.

갑작스럽게 통신창고에 있는 통신장비 한세트가 없어진것이였다. 중대원들은 여기저기 찾기 시작했고,
소대장들까지도 여기저기 찾아다니고 난리가 났다. 

내무실장 및 왕고참들은 장비담당 계원에게 얼차려를 주고 있었다.

결국 두려운마음에 중대장님께 보고를 드렸는데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아.. 그거 옆 중대에 빌려줬는데.. 왜?"

중대장이 알고있는데, 중대원중에서 아는사람이 아무도 없었던것이다.

군대의 보고체계 자체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는 철저하게 보고하지만,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는 그다지 보고하지 않는편이다.
하다못해 동기들끼리도 그다지 서로 보고하지 않는편이니, 상황은 더더욱 악화된다. 

그러다보니 정보의 전달이 아래에서 위로는 잘 올라가지만
위에서 아래로 정보가 전달되는것은 그야말로 "옵션" 이다. 해도되고 안해도 된다.

군대를 전역한지 4년이 되었고, 이제 지난날은 군대의 기억일뿐이다. 하지만 나는 새로운 군대에서 싸우고 있다.

짬밥근성이 가득한 "게임회사" 라는 또다른 군대에서 정보전달의 장벽과 싸우고 있다.

            UI 기획서에는 체크박스로 되어 있는데, 아티스트는 라디오박스로 만들고 있고, 프로그래머는 슬라이더로 코딩을 하고 있다.
           기획서가 변경되면서 기획팀장에게는 보고되었지만, 아랫사람에게 제대로 전파가 안되었기 때문이다.

          시나리오 기획자는 겨울배경을 쓰고 있는데, 원화 디자이너는 사막을 배경으로 그리고 있고,
         이펙트 디자이너는 불꽃튀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역시 PM 에게 보고된것들이 아랫사람에게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밸런스 기획자는 통계툴을 기다리고 있고, 서버 프로그래머는 통계툴 요청기획서를 기다리고 있으니 작업이 진행될리 없다.
          역시 PM 에게 보고된것이 아랫사람에게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임회사는 가장 유연하고, 수평적인 조직관계를 가진 회사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보전달 경로는 아직도 예전의 "수직적인" 관습을 버리지 않고 있다.
조직을 수평적으로 바꾼다고 직급제를 폐지하기도 하고, 서로간의 호칭도 바꾸고 있다고 하기는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다는 건지는 모르겠다.

가장 중요한 "정보의 의사소통 경로" 는 그대로 둔채 다른구성만 바꾸고 있으니 변화가 생길리 없다.

원칙적으로 봤을 때 위의 예제에서는 잘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각자 자기 윗사람한테 잘 보고했고 원칙대로 일을 한 것은 맞다.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그 놈의 원칙이다.
 

하지만 군대가 변하기 힘든것처럼, 게임회사도 정말로 변하기 힘들다.

사원들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제일 중요하다는 게임 회사조차도
의사소통 경로는 군대식이니, 다른 회사는 볼 것도 없을 것이다.

그나마 게임회사는 호칭이라도 바꾸고 있으니 다행이긴 한걸까?


일단 이 문제는 모두가 피해자가 된다.
개발자는 따블로 고생하니까 피해를 보게 되고
경영자는 따블로 개발비가 드니까 피해를 보게 되고
투자자는 믿고 투자해줬더니, 아니 뭐 다른 거창한 사유도 아니고 고작 이따위 사유로 내 돈을 날려먹느냐고 분노한다.
(  게임회사가 망하는 이유는 보통 커뮤니케이션같은 기본적인 것이 제대로 안되었기 때문이 가장 많다.
   거창한 이유로 망하는 게임회사는 오히려 드물다..)
어쨌든 전부 피해를 본다.


여기까지
너무 부정적인 말만 했지만

 현재 한국의 게임회사에 남아있는 대다수의 게임개발자들은 커뮤니케이션이란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고 있고
신입개발자도 커뮤니케이션을 못하는 사람은 받지 않으려고 하는 추세이다. 이것은 참 다행이다.

하지만 커뮤니케이션 경로가 군대식이라면
사람들이 아무리 커뮤니케이션 잘해봐야 그다지 의미가 없다.
각자 본인들은 자기 스스로는 \'나는 커뮤니케이션 잘 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정작 개발 프로세스에서 꼭 필요한 정보들은 서로에게 닿지 못한 것이다.

위의 예제에서 2번째 예제같은 경우는 언젠가는 그 이미지들을 쓸 수도 있으니까 뭐 그렇다고 쳐도
1번째 예제는 의욕까지 상실된다. 당해보면 참 거지같고,
게임 회사에서 구인할 때 왜 커뮤니케이션과 센스를 그렇게 강조하는지 느낄 수 있게 된다.


요점만 정리하자면, 군대의 경우에는
자기 돈이랑 관련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안 바뀔 거다. 군대는 바뀔 것 같지 않다.

하지만 게임회사의 경우에는 돈이랑 관련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언젠가는 바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언젠가가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