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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글) 레닌-스탈린 시기 현실사회주의 (2/3)
1917년 2월 차르 체제가 무너졌다. 10월에는 레닌에 의해 임시정부가 무너졌다. 12월에는 레닌에 의해 민주적 헌법을 만들려던 제헌의회가 해산되었다. 그 결과, 레닌과 소련 공산당이 권력을 장악했다. 곧이어 적백내전이 벌어졌다. 적군과 백군, 지역의 전제 군주들, 일본군, 미국 원정대, 전쟁 포로 출신의 체코 군대 등 온갖 세력이 참전했고, 전쟁은 3년간 지속되었다. 적군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옛 차르 군대의 장교들을 활용해야 했지만, 그들을 신뢰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트로츠키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각 장교에게 정치장교를 배치하였다. 모든 명령은 정치장교의 서명이 필요했고, 정치장교는 군인들에게 사회주의 교육을 실시하였다. 이러한 '이중 행정' 체제는 군대에만 국한되지 않고 여러 영역에 도입되었으며, 이는 소련 행정 체제의 기원이 되었다.레닌 정권이 생각했던 최우선의 과제는 소유주를 경영에서 배제하고 사유 재산을 국유화하여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기업에 소유주가 사라진 상태로 경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까? 자신의 소득과 사회적 지위가 회사의 성패와 직결되기에 회사의 이윤을 증대시키려 들 만한 동기와 권력을 가진 이가 있어야 회사가 굴러가는 게 아닌가? 레닌이 내놓은 답은, 경제를 군대처럼 조직하는 것이었다. 즉, 경제 통제 기관이 소유주 대신 관리자를 임명하고, 이들이 기관에서 하달한 임무를 얼마나 잘 수행했는지에 따라 승진, 해고, 굴라그행이나 처형이 결정되는, 하향식의 위계적인 조직이었다.내전이 한창이던 절박한 상황에서 레닌은 '전시 공산주의'를 도입하여 경제를 군사적으로 동원하는 체제를 구축하려 했다. 레닌은 1차 대전 동안 독일이 보여준 경제 통제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독일이 단일 중앙기관을 통해 6,600만 명의 경제생활을 지휘한 것처럼, 계급의식을 갖춘 노동자들도 경제를 지휘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을 가졌다. 그렇다면 1차 대전 당시 독일의 전시 경제는 어떻게 작동했을까? 발터 라테나우의 원자재부가 운영했던 독일 전시 경제는 국채를 팔고 화폐를 찍어내어 이를 통해 전쟁 물자를 사들이면서 시작되었다. 이에 물가가 오르자, 정부는 지불하는 돈의 상한선을 정해 가격 통제를 시행했다. 이에 정부가 원하던 물자들이 민간 부문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하자, 정부는 배급제를 강제했다. 정부는 상품에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우선순위가 낮은 상품의 생산에 중요 물자가 투입되는 것을 제한했으며, 생산 설비의 용도를 결정하고, 공장 확장과 건설을 지시하는 역할까지 맡았다. 이 과정에서 화폐의 흐름은 단순한 회계 도구가 되었다.이러한 독일의 전시 경제는 소련 전시 공산주의의 영감이 되었다. 전시 공산주의는 산업을 국유화하고, 원자재를 고정된 가격으로 공급하고, 배급제를 도입하고, 우선순위가 낮은 상품의 생산에 중요 물자가 투입되는 것을 제한하였다. 이렇게 중앙계획경제가 출범했다. 공장 관리자들에겐 중앙으로부터의 요구가 날아들었고, 공장 관리자들은 암시장에서 거래하든, 구걸하든, 훔치든, 어떻게든 부족한 자원을 충당하여 요구된 생산량을 최대한 맞추어야 했다. 지극히 비효율적이고 지극히 부패했다.전시 공산주의는 여러 참사를 낳았는데, 그중 가장 큰 참사는 농업이었다. 볼셰비키는, 초기에는 농민들이 알아서 토지를 재분배하도록 하여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도시에 보낼 식량이 필요해졌다. 농민들은 사치품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기에 식량을 거래하려 하지 않았다. 결국 정부는 식량을 징발하였고, 농민들은 곡식을 숨기기 시작했다. 수많은 이들이 굶주렸다. 도시 노동자들은 식량 부족으로 인해 시골의 농장으로 돌아갔고, 그 결과 도시의 공장은 제대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이처럼 전시 공산주의는 비효율적이고 부패했으며 여러 참사를 낳기도 했으나, 전쟁에 필요한 자원 생산과 통제에 성공하였고, 볼셰비키는 내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적백내전의 결과, 약 1,000만 명이 사망했다. 그중 약 100만 명은 적군, 200만 명은 백군이었으며, 나머지 700만 명은 민간인이었다. 러시아의 경제 규모는 3분의 1로 축소되었고, 산업 생산량은 5분의 1로 감소했으며, 기대수명은 20세로 하락했다. 수많은 제정 러시아의 장군과 관료, 자유민주주의자,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러시아의 대부분은 소련으로 재편되었고, 권력은 레닌의 손아귀에 들어왔다.20세기 초 러시아는 그 누구도 사회주의가 처음 등장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한 지역이었다. 하루 4달러가 일반적인 생활 수준이었고, 기대수명은 30세에 불과했다. 부유하고 교육받은 계층의 대부분은 귀족이었으며, 인구의 대다수는 영주제와 봉신제의 봉건적 지배 아래 있었다. 사유 재산, 프롤레타리아나 부르주아의 통치 같은 개념은 그야말로 먼 나라 이야기였다. 무엇보다 러시아는 서유럽의 산업혁명을 거의 공유하지 못했다. 사회주의가 작동하기 위한 산업 발전 단계까지 러시아는 아직 너무 멀리 있었다.이러한 상황에서, 레닌과 그의 추종자들은 원조에 대한 기대를 품었는데, 그 기대의 근거는 신앙이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에 따르면, 곧 서유럽의 산업 국가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발생할 것이 분명했다. 이 국가들이 공산주의 국가가 되어 가난한 농업국인 러시아에 원조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마르크스가 말한 사회주의가 작동하는 산업 발전의 단계로 러시아를 이끌겠다는 계획이었다. 레닌은 특히 독일에 기대를 품었다.실제로는 어땠을까? 공산주의 정권은 헝가리에서 잠시 정권을 잡았고, 독일 남부 바이에른에서도 잠깐 등장하긴 했다. 그러나 1차 대전이 끝난 시점에서 현실사회주의 국가는 레닌이 이끄는 러시아 하나뿐이었다.원조는 없었다. 결국 전시 공산주의에서 신경제정책(NEP)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가격이 변동하고, 물건을 사고팔며 부자가 될 수 있으며, 공장 경영자들은 이윤을 창출하고, 상인과 중개인 계급이 성장할 수 있는 경제. 자본주의이지만 국가 통제 아래에 있고, 이윤 기반으로 운영되지만 사회화된 국가 기업들. 그것은 편의적 조치이자 편법이었다. 이러한 편법이 가능했던 이유는 소련 정부의 장악력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1930년대 중반 기준으로도 소련의 계획 당국이 자재 잔고를 추적할 수 있었던 품목은 100개 정도에 불과했다.물론 이러한 상품들의 유통은 계획 당국에 따라 이루어졌다. 계획 당국은 공장 관리자들에게 목표를 할당하고, 달성치 못하면 처벌을 내렸다. 계획을 초과해 만들어진 상품들은 블라트(blat), 즉 권력을 가진 거물과의 연줄에 따라 거래되었다. 그렇기에 인맥이 중요했다. 기업들이 중앙정부, 블라트로도 필요한 원자재를 구하지 못할 때에는 톨카치(tolkachi)라는 비공식 물물교환 중개업자들에게 의존했다. 톨카치는 원재자를 누가 보유하고 있는지, 그 가치는 얼마인지,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는지 등의 정보를 갖고 있었다. 사실 대부분의 자본주의 기업 내부 조직은 소련 계획 당국의 자재 잔고 관리 방식과 매우 비슷하게 작동한다. 기업은 직원들에게 목표를 할당하고, 달성 여부에 따라 승진부터 해고까지가 결정된다. 직원들은 호의를 주고받으며, 업무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인맥을 활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는, 자본주의 기업은 훨씬 더 큰 시장경제에 있으므로 '만들 것인가, 살 것인가'의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어떤 자원을 기업 내에서 인맥을 통해 확보할 것인가, 아니면 예산 부서에 요청하여 외부에서 구입할 것인가를 효율성에 따라 결정할 수 있다. 이는 자본주의 기업 주위를 수많은 중개상들이 감싸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결정권의 존재는 기업들을 효율적으로 유지하는 강력한 요인이다. 하지만 소련의 개별 공장들 주위에는 폭넓은 자본주의 시장도, 수많은 중개상들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비공식적이고 제한적인 톨카치만이 존재했다. 그 결과 소련의 경제는 매우 비효율적이었다.자재 잔고 통제는 비효율적이지만, 전시 상황에서는 대부분의 사회가 이를 채택한다. 전시와 같은 총동원의 시간에는 아마도 그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우리가 과연 언제나 총동원의 시간 속에서 살길 바랄까?-「20세기 경제사: 우리는 유토피아로 가고 있는가」(브래드퍼드 들롱)를 읽고 작성함.
작성자 : 땅콩쓰고정닉
[일반] 아사히카와 원정기(24.12.22 ~ 24.12.28)_2(完)
1편 링크https://gall.dcinside.com/m/ski/55808 아사히카와 원정기(24.12.22 ~ 24.12.28)_1 - 스키 마이너 갤러리솔로인 스붕이는 크리스마스 주간에 남은 연차를 다 털어서 6박 7일동안 아사히카와로 원정을 갔다24.12.22 ~ 24.12.28 동안 다녀왔고 비행기를 타는 22일, 28일을 제외하고 월 ~ 금 전부 스키를 탔음23gall.dcinside.com25일 크리스마스에도 당연히 스키타러 왔다.오늘의 날씨시야가 영 좋지 않다고 한다.근데 정상에 올라와보니 아사히산 정상이 보일듯 말듯 하고 바람이 세게 부는 것이 블루버드 데이의 조짐을 보임중간에 내려와서 사진 한 방 눈이 많이 쌓여있는데다가 완전 건설이라서 처박아도 하나도 아프지가 않다ㅋㅋㅋㅋ이때만 해도 재밌었는데 사실 트리웰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은 구멍이긴 했지만 밀리면서 거꾸로 처박혔고 눈이 엄청 두껍게 쌓여있는데 스키 테일부분이 나무에 걸려서 완전히 고정되어버림영상 보면 중간에 살짝 잘리는 부분이 있는데 그 전에 다리를 움직이려고 계속 트라이 하다가 탈진해서 뒤질 것 같은 느낌이 나서 같이 간 형들한테 무전으로 헬프부터 쳤다더 힘이 빠지기 전에 다리를 짓누르고 있는 눈부터 걷어낸 다음 고정된 스키의 바인딩을 폴대로 풀어서 탈출에 성공했다이때 진짜 라이딩 버디 없었으면 꼼짝없이 뒤졌겠다 라는 생각이 들더라...불편해도 꼭 여러명이서 다녀라2번 타고 3번째 올라가니 완전히 화창한 하늘인 블루버드가 우리를 반겼다산 정상이 깨끗하게 보이고 구름 한 점 없는... 1년에 몇 번 없는 블루버드 데이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아서 너무 좋았음ㅋㅋㅋ즉시 프사 하나 건져주고파노라마 샷 한 방 등반도 하고 막차 전까지 내려오려면 시간이 빠듯했기에 바로 스킨 장착하고 등반용량때문에 4배속 했으니 영상으로 풍경 보고싶은 게이들은 0.5배속으로 보면 됨정상은 아니고 중간에 쉘터까지만 올라가서 찍은 뷰바람이 강하게 불면서 구름을 다 밀어줬다 쉘터에서 한 바퀴바닥에서 나오는 저 연기는 유황 연기임쉘터까지 가니까 냄새가 진동을 했다시간만 더 있었어도 한 번 더 올라와서 여기도 먹었어야 했는데 너무 아쉬웠음이미 양키 형들이 아침부터 올라가서 조금 파먹은 현장대설산국립공원 뭐시기라고 적혀있음원래 뭐가 적혀있는지도 안보일 정도로 눈으로 뒤덮힌 무언가ㅋㅋㅋㅋ 얘도 용량 문제로 2배속 맛도리는 뒤로도 한 번 더 봐라 생각보다 쉘터부터 아래까지 경사가 너무 완만하고 신설이 없어서 인스타에서 보던 눈발이 휘날리는 그런건 안되더라 중간에 슬로프로 합류 후 영상보드+"짱"이 합쳐진 놈들이 많다보니 좁디 좁은 슬로프 중간에 널부러져 있는 놈들이 많으니 조심해야 한다숙소로 돌아가는 버스 타기 전 다른 나라 애들이(어디인지는 모름) 눈오리 만들듯이 찍어내고 있더라ㅋㅋㅋㅋ저녁 먹으러 가는길에 분위기가 좋아서 한 컷이번 원정의 저녁 밥 중에서 유일하게 두 번을 간 곳(味明洞享 // 〒070-0032 Hokkaido, Asahikawa, 2 Jodori, 5 Chome, 左10)한국 식 갈비집이라고 하던데 그건 잘 모르겠음숯불 위에 불판을 얹어서 구워먹는게 한국 식 이라고 하는 것 같음이곳의 장점은 미친 고기 퀄리티도 있지만 최근에 개업하는 고기집 중에 불판 옆으로 연기를 빨아들이는 방식을 채택해서 옷에 냄새가 거의 배이지 않고 쾌적하다는 것임거기에 가격도 착함가격표야키니쿠 집에 왔는데 빼먹을 수가 없는 특 우설일반 우설보다 지방이 더 많아서 부드럽다가격이 일반 우설에 비해 2배라 개인적으로는 딱 한 번만 먹어볼만한 맛요건 비교용으로 먹어본 일반 우설위 특 우설에 비해 지방이 훨씬 적어서 쫄깃한 맛양념갈비... 이 집의 최강 메뉴라고 봄양념이 과하게 있어서 양념 맛만 나는 갈비랑 차원이 다르다거슬리지 않는 딱 적당한 단맛만 살짝 툭 쳐주는 정도의 적절한 간과 마블링 지리는 고기의 합작이 진짜 미쳤다아 그리고 이 집에서 고기를 먹을 땐 꼭 공기밥(대)을 시켜서 같이 먹자양념갈비와 흰 쌀밥의 조합이 미쳐 돌아버림영상 한번 조져주고설로인보는 것 만으로도 혈관이 막힐 것 같은 마블링얘는 좀 과했음...맛이 없는건 아닌데 지방이 투머치라고 느껴짐생맥도 2잔 먹고 특우설에 설로인에 갈비 6인분 먹었는데도 인당 6000 ~ 7000엔 정도 나옴우리나라에서 먹었으면 15 ~ 20만원 나왔을듯ㅋㅋㅋㅋ다 먹고 온천가서 피로 풀어주고 25일도 끝26일은 바람이 세게 분다는 예보가 있어서 아사히다케 로프웨이가 운영하지 않을거라 생각해서 다시 카무이로 왔다.정상에 올라와서 즉시 스킨 장착하고 뒤쪽의 게이트로 나가서 사이드 컨트리로 이동ㄱㄱ 1번 루트 올라가는 길통신 탑처럼 보이는 곳에서 조금 더 가서 다운힐 시작 사이드 컨트리 1 사이드 컨트리 2 슬로프로 다시 합류한 다음 내려가는데 스키 벗겨져서 고생하고 있길래 도와줌용평 골드 중단정도 경사라 즐기면서 타기 딱 좋았음 중간에 한 번 더 사이드로 빠져봄ㅋㅋㅋ 위에 슬로프 맵에 2번 루트처음 왔을 땐 몰랐는데 아사히카와 시로 돌아가는 버스 정류장이 저렇게 생겼더라ㅋㅋㅋ숙소 복귀 후 다음 날 다른 지인들이 후라노 스키장에 온다고 해서 하루 같이 타려고 즉시 이동아사히카와 역에서 출발하고 아사히카와 공항을 경유하여 신 후라노 호텔까지 가는 버스가 있음공항을 경유하고 후라노 시내를 들렀다가 스키장 쪽으로 가기 때문에 거의 3시간을 버스에서 보내야 한다오래 걸리기도 하고 돌아오는 버스 시간대가 영 애매해서 얼마 못타기 때문에 왔다갔다 하는건 비추하지만 숙소를 키타노미네조에 잡거나 신 후라노 호텔에 숙소를 잡고 후라노 스키장에 계속 있을 계획인 경우(차량 렌탈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치토세 공항 노선보다 아사히카와 노선이 국적기 기준 거의 반값이기 때문에 상당히 메리트가 있다치토세 공항에서 후라노조로 이동하는 시간도 꽤나 걸려서 버스에서 버리는 시간도 비슷함Pension Young House 라는 숙소씻는 곳이 지하에 공용 샤워장 1개로 매우 빈약하지만 트윈 베드룸 성수기 1박 7만원정도로 매우 저렴했음키타노미네조 리프트 바로 앞에 있기 때문에 스키장 오고 가는게 매우 편한것도 장점후라노는 그냥 사람 만나러 간 곳이라 다른 사람 영상만 많이 찍어주고 옴댓글로 질문 달아주면 시간 날 때 아는 선에서 최대한 답변해보겠음
작성자 : 스키위스키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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