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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KC인증' 비판하며 공개행보 초읽기..친윤 "탈당하겠다"
- 관련게시물 : [속보] 직구금지 철회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조만간 공개 행보에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단순히 목격담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게 아니라 직접 목소리를 내는 겁니다.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거나 전국 순회 북콘서트를 여는 방안 등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기 위한 본격적인 수순 밟기에 나섰단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정치권 재등판이 초읽기에 들어간 분위기입니다. 이른바 '목격담 정치'에서 한발 더 나아가 한 전 위원장이 직접 목소리를 내는 공개 활동이 임박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한 친한동훈계 인사는 "한 전 위원장 주변에서 정치 재개를 위한 다양한 방식이 거론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유튜브 개설, 지방순회 북콘서트, 법률 봉사 등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한 달간 이어오던 침묵을 깨고 어제 정부에 대해 비판 메시지를 낸 것이 공개 활동의 신호탄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한 전 위원장은 어젯밤 SNS를 통해 "소비자의 선택권을지나치게 제한하므로 재고돼야 한다"며 정부의 국가인증통합마크(KC) 미인증 해외직구 금지 조치를 비판했습니다. 한 전 위원장은 총선 패배 직후 한 차례 자신의 SNS에 입장을 밝힌 뒤 정치 현안에 대해서는 침묵해왔습니다. 친한계 인사는 "한동훈 전 위원장이 앞으로 정치 현안보다는 민생 현안에 대해 입장을 내지 않겠느냐"고 말했습니다. 한 전 위원장이 정책 현안에 대해 다시 입을 열면서 한 전 위원장의 전당대회 출마 가능성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이렇듯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의 전당대회 출마 가능성이 높이지면서 친윤계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한 전 위원장과 사이가 안 좋은 친윤계 인사들은 한동훈 당 대표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탈당 가능성까지 거론했습니다. 하지만 한 전 위원장과 잘 지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의 당 대표 출마를 놓고 친윤계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한 전 위원장에 대해 비판적인 친윤계는 '탈당'까지 언급했습니다. 친윤계 핵심 의원은 "한 전 위원장과 도저히 같이 갈 수 없다"면서 "당 대표가 된다면 국민의힘 탈당까지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도 국민의힘 탈당을 고려할 수 있다고까지 말했습니다. 대통령을 공격하는 사람을 여당 대표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하지만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한 친윤계 의원은 "대통령은 한 전 위원장과 화해하고 싶어한다"며 "둘이 화해하지 않으면 당은 망하는 길로 갈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윤 대통령과 한 전 위원장의 만남을 추진 중인 대통령실은 한 전 위원장의 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또다른 친윤계 의원은 "손내밀 것도, 배척할 필요도 없다"면서 "대통령은 당 대표 선거에 개입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전했습니다. Q1. 앞서 보셨듯, 한동훈 전 위원장 등판이 임박한 거 같죠. 대통령실은 어떻게 보고 있어요? 한동훈 전 위원장이 출마를 하든, 출마를 안 하든, 용산에서 어떤 의견을 낼 일이 없다는 게 정확한 기류 같습니다. 당무에 왈가왈부할 일 없다, 한동훈이든 아니든, 잘하는 사람이 되지 않겠느냐, 라는 게 대통령 의중이란 설명입니다. 사실 대통령실이 한 전 위원장의 재등판 여부에 상당히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게 총선 직후 제가 취재한 기류였거든요. 그런데 그때와 지금은 분위기가 좀 다릅니다. 일단 총선에 참패한 뒤 구성되는 첫 지도부인 데다, 윤 대통령은 "총선패배가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라며 변화를 예고했죠. 이런 마당에 또다시 당내 권력관계에 용산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겁니다. Q2. 사실 윤 대통령과 한 전 위원장, 두 사람이 멀어질 대로 멀어졌다는 평가가 많잖아요. 실제로는 어떻습니까? 두 사람, 총선 과정에서도 수차례 갈등을 빚어왔죠. 화재 현장에서 만나고, 대통령이 용산 점심 식사에 초대하며 갈등이 봉합되는 것 같았는데 갈등설은 여전히 계속됐습니다. 총선 이후에는 대통령이 먼저 오찬을 제안했지만 한 전 위원장, 거절했죠. 대통령은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도 한 전 위원장을 기다리겠다, 언제든 만나겠다는 뜻을 또 밝혔습니다. 저희가 취재한 바로는 최근에도 관계 회복을 위해 대통령 쪽에서 한 전 위원장 측에 연락을 시도했던 걸로 파악됩니다. 다만 그에 대한 대답이 아직 오진 않은 것 같고요. 대통령실 안팎에선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Q3. 지금까지 얘기대로라면 한 전 위원장 등판에 반발이 없을 것 같은데. 친윤계 일부에서 대통령 탈당 얘기까지 나왔어요. 어떻게 봐야 합니까? 일단 친윤계 안에서도 온도 차를 보이고 있는데요. 대통령 '탈당' 얘기는 그 중 '강성 친윤' 쪽에서 나온 겁니다. 일단 대통령실 내에서는 "무슨 탈당 같은 소리냐"며 굉장히 황당하다는 반응입니다. 탈당이라는 말 자체에 대한 거부감에다 "지금 이 시점에 그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한 말이냐"며 격앙된 반응도 내놨습니다. 일단 이번 주, 채 상병 특검에 대한 거부권 행사가 유력한 상황이죠. 이후 국회에서 재의결을 하게 되면 여당 의원들의 이탈표 방어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인데, 당내 정치적 논란이나 분쟁을 조장할 만한 발언에 왜 굳이 대통령을 끌어들이냔 겁니다. Q4. 한동훈 등판에는 별 입장 없다, 관계는 회복되면 좋겠다. 대통령실 쪽 기류는 알겠습니다. 결국 키는 한 전 위원장이 쥔 겁니까? 대통령이나 대통령실에 대한 감정의 골이 여전히 깊다는 게 한 전 위원장 측 설명입니다. 등판이 점쳐지는 시점에 낸 첫 메시지가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이었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하죠. 용산과의 관계개선이나 회복 보다는 정부·대통령과 차별화를 하며 존재감을 부각하는 쪽에 방점이 찍혀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극적인 관계 변화의 기류 같은 건 한 전 위원장 쪽에서도 예상하긴 어려워 보입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449/0000275350https://n.news.naver.com/article/449/0000275351 https://n.news.naver.com/article/449/0000275353 - 운석열 탈당.....실시간 국힘 당게 축제 분위기- '한동훈 대표 되면 尹 탈당' 발언에 與 발칵https://naver.me/5K5PomhK
작성자 : 정치마갤용계정고정닉
2차 세계대전 독일을 패배로 몰아넣은 히틀러의 실수...jpg
독일의 지도자였던 아돌프 히틀러 왜 그가 독일의 패배에 가장 결정적 역할을 했는지 지금부터 알아보자. 1. 그는 독일 장군들의 말을 경청하지 않았다 히틀러는 다른 최측근 장군들의 말을 경청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만의 전략만 내새웠다 또한 히틀러는 군사 전략가가 아니었기때문에, 아마츄어 적인 그의 전략은 전쟁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그렇게 장군들의 말을 무시깐 결과는 비참했음 자신을 자살로 몰고갔으니.. 2. 괴링에게 독일 공군 지휘권을 줘버렸다 히틀러는 자신의 오른팔 괴링에게 공군 지휘권을 줬다 그가 비록 1차 세계대전 공군 에이스로 이름을 날렸지만, 지휘에는 소질이 없었을 뿐더러, 약물 중독자였던 그가 올바른 지휘로 공군을 이끌어 나갈지 의문이었음 괴링은 결국 무능한 지휘관으로 낙인 찍히며, 영국 항공전에서 실질적 패배를 맛보게된다 괴링의 신뢰도는 급격하게 떨어졌지만, 히틀러는 괴링의 공군 지휘권을 박탈시키지 않았음 결국 괴링은 독일 공군을 말아 먹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됬다 3. 히틀러는 영국을 마무리 짓지 못한 상황에서 소련을 공격해버렸다 영국을 목표로 뒀던 히틀러는 이제 눈을 돌려 소련을 공격하기로 결정했다 그의 장군들은 무모한 짓이라며, 히틀러를 설득하려했지만, 히틀러는 오직 자신만의 생각대로 계획을 실행에 옮겨나갔다 1941년 6월 22일 그렇게 소련을 기습 침공하여, 초반은 순조롭게 소련 영토의 대부분을 점령하는데 성공했지만, 히틀러가 장군들의 말을 경청치 않아, 전략상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고, 또한 전쟁이 지속화 되면서, 독일군들은 혹독한 소련의 겨울 추위를 맛보게 된다 이로인해 독일군들이 얼어 죽고, 장비의 고장도 잦아지게되었음. 또한 독일에서 소련까지 보급품을 보내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을뿐더러, 소련의 포위 전술로 인해 보급선 마저 끊기게 되었다 결국 스탈린그라드에서 독일 제 6군이 포위되어 항복하는 바람에, 독일은 후에도 여러 작전에서 소련에게 지속적으로 패배하게됨 4. 히틀러는 무모하게 영국과 소련을 남겨두고, 미국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말았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 있었던 직후 독일은 일본과 맺은 조약에 따라 미국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이것은 영국과 소련을 마무리짓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것은 정말 미친짓이었음 하지만 진주만 공습이 있었던 직후가 1941년 12월 즈음이라, 독일에게 있어서는 동부전선 소련 영토의 대부분을 차지했겠다, 자신감이 붙었는지 선전포고를 하게된거다 그리고 얼마 안있다가, 동부전선에서 소련에게 참패를 겪게됨. 또, 후에 미국이 직접 유럽에 상륙하여 서쪽을 공략하게됨. 이로인해 영국과 미국의 서부전선, 북아프리카 전선 , 소련의 동부전선으로 전선이 다양화 되기 시작하고, 결국 독일은 양쪽에서 몰려오는 세 군대를 상대 해야했다 5. 히틀러는 후퇴를 허락치 않았다 히틀러는 어떠한 악 조건속에서도 절대 후퇴는 없다를 외쳤다. 덕분에 후퇴 후 반격할수있는 작전에도 절대 후퇴는 없다를 외치며, 작전을 무산시키는데 일조, 결국 스탈린그라드에서 육군 원수 파울루스와, 독일 제 6군을 한꺼번에 잃는 참패까지 겪게됨 또한 그는 패망 직전인 1945년에는 측근들의 연합군과의 협상 제안에도 절대 협상, 항복은 없다를 외칠 정도로 그는 적에게 굴복하는것을 아주 싫어했다 6. 히틀러는 세계 최초의 돌격소총을 채택하지 않았다 현대 소총의 주력인 돌격소총 시초는 바로 독일이다 전쟁 말 독일이 세계 최초의 돌격소총인 STG-44를 개발하는데 성공하지만, 히틀러는 이 돌격소총의 생산을 폐기시켰고, 지휘관들은 STG-44를 MP-43이라 재명명하여, 히틀러 모르게 계속 생산을 해나갔다 나중엔 히틀러가 그것을 알게되자, 격분하여 또 다시 폐기 시켜버렸다 하지만 뒤늦게 히틀러는 STG-44의 효용성을 듣고 재검토를 명령하지만 이미 STG-44로 전세를 바꾸기엔 너무 늦어버리게 됨 7. 히틀러는 세계 최초의 제트기 Me-262를 오용했다 1943년 전쟁 말 독일은 세계 최초의 제트기를 개발하는데 성공함 그 제트기의 이름은 바로 Me-262로 명명되었고, 처음부터 요격기로 설계되었음 하지만 히틀러는 이 Me-262를 보고는 잘못된 결정을 내리게 된다 "이 비행기에 폭탄을 달수 있나?" "물론 달수는 있습니다만?" 히틀러는 이 Me-262를 요격기로 생산하지 않고, 전투 폭격기로 생산하라는 명령을 내려버림 그렇게되면, 엔진 부품과 다른 기계적인 부품들을 전혀 다른 방면으로 다시 개조해야되는데 결국 1944년 말이 되서야 전투 폭격기로 생산이 뒤늦게 이루어지게된다 하지만 결과는 비참했다 전투 폭격기로써의 활약은 딱히 없었다 뒤늦게 히틀러가 요격기로 생산을 명하지만, 이미 제공권을 되찾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결국 1945년 4월 20일 그의 생일날 자신의 관저 앞으로 소련군의 포탄이 떨어지게 되면서, 최고의 생일을 보내게 되는가 하면 베를린에는 이미 소련국기가 휘날리고있었다 결국 1945년 4월 30일 히틀러가 자살하면서, 사실상 전쟁은 끝나게된다 남은 독일 무장친위대와 저항군들이 끝까지 결사항전하긴 했으나, 5월 7일 완전히 항복이 선언되면서, 무장해체와 함께 2차 세계대전은 독일의 패망으로 끝을 장식하게됨 전쟁 기간동안 약 5000만명의 민간인 또는 군인이 사망했고,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쟁으로 기록되었다
작성자 : 설윤아기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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