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 결함 가능성이 인정돼 1심 법원에서 무죄 판정을 받은 급발진 사고에 대해 차량 제조사인 현대차가 항소심 재판부에 운전자 과실을 주장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을 근거로 차량 결함을 부인하며, 운전자가 브레이크페달을 착각해 가속페달을 밟았다는 주장을 폈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전지법 3형사부(손현찬 부장판사)는 최근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 혐의 사건에 대한 A(56)씨의 항소심 공판에서 급발진 의심 차량 감정서를 작성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소속 B 연구원을 증인으로 불러 쟁점들을 확인했다.
B씨는 사고 직후 차량 브레이크(등)가 정상적으로 작동했으며, 제동력도 문제가 없었다고 감정했다.
사고 차량은 2010년식 현대차 그랜저 승용차다.
A씨는 2020년 12월 29일 오후 3시 23분께 그랜저 승용차로 서울 성북구 한 대학교 내 광장을 가로질러 운전하다 이 대학 경비원 B(60)씨를 치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차량 결함에 따른 급발진을 주장했다. 비정상적인 주행을 증명하는 블랙박스 영상과 도로교통공단 주행 분석 자료를 근거로 제시했다.
이 사건 최대 쟁점은 사고 당시 차량 브레이크등이 9번 깜빡인 점, 사고 차량 속도가 19초 동안 37.3㎞, 45.5㎞, 54.1㎞, 63.5㎞로 속도가 계속 증가한 점, 사고 당시 운전자는 가속페달을 최대치의 50% 미만 강도로만 꾸준히 밟았다는 분석자료를 토대로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았는지, 차량 결함이 있었는지 등을 증명하는 것이다.
1심 재판부는 차량 결함 가능성을 인정하며 운전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판결에 불복한 검찰의 요청에 현대차 측이 차량에 문제가 없다는 의견서를 제출했고, 항소심 재판부가 의견서 일부를 공개했다.
의견서가 B씨 감정서를 토대로 작성됐기 때문에, 재판부는 B씨에게 주요 쟁점과 관련된 세부 내용을 추가로 물어봤다.
현대차 측은 브레이크페달로 착각해 가속페달을 밟은 운전자 과실 때문에 발생한 사고로, 차량 급발진이 아니라는 주장을 폈다.
가속페달을 밟은 강도가 50% 미만인 이유에 대해 현대차 측은 "운전자는 브레이크페달은 한번 밟았다가 작동하지 않으면 뗐다가 다시 밟기를 반복한다"며 "브레이크로 착각한 가속페달을 이런 형태로 밟게 되면 당연히 힘껏 밟았을 때보다 속도가 느리게 돼 가속페달을 적게 밟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브레이크등이 9차례 깜빡인 것과 관련해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관습적으로 밟다 옆에 있는 브레이크 페달을 미미하게 건드려 짧은 시간 동안 브레이크등이 점등되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의견을 현대차 측이 제시했다"고 재판부가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재판부는 사고 당시 0.09, 0.03초 등 0.1초 미만 간격으로 9번 브레이크등이 깜박인 것을 두고 "사람이 이렇게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냐"고 의문을 나타내며 B씨의 의견을 구했다.
B씨는 "일반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또 급발진 의심 사고에서 브레이크를 착각해 가속페달을 밟았다면, 최대치의 50% 이하 강도로 밟는 것이 가능한지 B씨에게 물었다.
B씨는 "통상적인 급발진 추정 사고 기록을 살펴보면 차량 가속페달을 밟은 강도는 50%를 넘는다"고 설명했다.
피고인 측은 현대차 측이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을 한다며 의견서 한계를 지적했다.
A씨 법률대리인인 천대웅 변호사는 "가속페달을 브레이크페달로 착각한 운전자가 브레이크 대신 가속페달을 강하게 밟은 게 사고 원인이라는 건데, 사고 상황에서 50% 강도가 안 되는 힘으로 꾸준히 가속페달을 밟으며 운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며 "현대차 측이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천 변호사는 그동안 연합뉴스에 "차량 급발진은 전자제어장치 기능이 순간적으로 먹통이 되면서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기능이 회복된 차량의 시동을 다시 켜서 검증하는 현재의 국과수 감정 방식으로는 사고 당시 차량 결함이 있었는지 과학적으로 감정할 수 없다"고 한계를 지적해왔다.
항소심 재판부는 현대차 의견서에 대한 변호인 의견을 들은 후 오는 10월 10일 선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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