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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까지 영업 '청소년 클럽'‥영업정지 처분 돌입
https://n.news.naver.com/article/214/0001353750?sid=102 [와글와글] 새벽까지 영업 '청소년 클럽'‥영업정지 처분 돌입번쩍이는 조명 아래 사람들이 음악 소리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데요. 성인이 아닌 청소년을 대상으로 운영하던 경기 김포의 한 클럽입니다. SNS에 만 14세부터 19세까지 출입할 수 있고 새벽 3시에 영업을 마감한다고n.news.naver.comhttps://youtu.be/L1yzipS96Rk?si=i0Rm4l1wtWe47DQs [자막뉴스] "청소년 클럽이래..뭐야 이게" 미친 텐션? 김포시 '발칵' (2024.06.10/MBC뉴스)#청소년클럽 #촉법소년 #김포시 ⓒ MBC & iMBC 무단 전재, 재배포 및 이용(AI학습 포함)금지youtu.be청클 오랜만에 들어보네 ㅋㅋㅋㅋ 나 고등학교때도 있었는데 그때도 인기 많았음
작성자 : 몽쉘통통고정닉
(장문, 스압주의) 1944년의 독일과 2024년 우크라이나의 비교
2024년의 우크라이나와1944년의 독일.전쟁 중이라는 것만 빼면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 두 국가 같지만,이 둘 사이에는 놀랄 정도로 많은 공통점이 존재한다.오늘은 그 중 특기할만한 다섯 가지 공통점을 적어보았다.1) 소수의 "게임 체인저" 무기에 관한 집착1944년 독일 수뇌부는 소위 말하는 "슈퍼 무기", 혹은 "게임 체인저"들에 집착하고 있었다.그들은 이러한 무기가 생산되면 높은 성능을 바탕으로 한 우수한 교환비로연합국을 다시 독일 국경 밖으로 밀어낼 것이라 믿고 있었다.그냥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선전 아냐? 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애초에 이런 무기들의 개발을 지시한 것이 히틀러와 나치 수뇌부들이라는 점만 봐도이것이 단순한 선전이 아니었음은 증명된다.초중전차 마우스, 세계 최초의 로켓전투기 Me 163들이 바로 이러한 생각,아니 망상의 산물이었다.그리고 당연하지만 현실은 이들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나치의 "슈퍼 무기"들은 전황을 바꾸기에는 수가 너무 적거나,겨우 전선에 투입되어도 유지보수가 문제로 장기적인 운용이 불가능했다.위의 예시들을 다시 보자면마우스는 최후의 순간 단 "2대"만이 투입되었고 그마저도 이동 중 고장으로 버려졌다.Me 163은 조종사 고갈과 설계 결함으로 전투에 거의 참여하지조차 못했다.우크라이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전황이 조금만 안 풀려도 그들은 언제나 "게임체인저"라 불리는 새로운 무기를 요구했다.우크라이나는 매번 "게임 체인저만 있다면" 러시아군을 국경 밖으로 몰아낼 수 있을 것이라 주장했고,실제로도 그리 믿었다.그리고 이러한 우크라이나의 마음을 대변하듯하이마스,M777,브래들리,ATACAMS,레오파르트 2,에이브람스에 이르기까지그들 기준으로는 "슈퍼 무기"이자 "게임체인저"인 무기들이 우크라이나에 지원되었다.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결과는 처참했다.2023년 여름, 우크라이나는 위에 나열된 모든 신무기들을 동원해동남부 전선에서 유래 없는 대공세를 펼쳤지만 결과는 대실패였다.저러한 신무기들은 그 숫자도 많지 않았을 뿐더러해외로부터 지원받는다는 특성상, 제때 수리부속을 공급받기도 어려워 장기간 운용할 수 없었다.소수의 신병기가 비록 질적으로는 우월해도충분한 유지보수와 숫자가 확보되지 않으면 활약할 수 없음은 이미 1944년의 독일이 증명한 바 있었다.그럼에도 우크라이나는 이를 망각한 것이다.아, 그리고 지금도 반성은커녕F-16이 투입되면 전세가 역전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할 노릇이다.2) 교환비에 대한 집착1과 어느정도 이어지는 내용이다.독일 국방군을 숭상하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하는 이야기가 바로 교환비 관련 이야기이다.그들은 티거가 한 대가 격파될 때마다 적 전차가 몇 대 터졌니,어느 전투에서 독일군이 패배했지만 교환비는 우수했다니 등높은 교환비로 그들의 전과를 숭상한다.물론 높은 교환비가 나쁜 건 아니다.하지만 수뇌부가 여기에 집착하면 전쟁을 망치게 된다.전쟁은 교환비간의 단순한 비교가 아니라전투에서 입은 손실을 누가 더 빨리, 그리고 잘 보충하느냐의 싸움이기 때문이다.독일은 그렇게 전쟁을 망쳤다.동부전선에서 벌어진 대규모 전투 중 소련군이 독일군보다 높은 교환비를기록한 것은 단 5번밖에 없었다.소련군에겐 전설적인 승전인 스탈린그라드, 쿠르스크, 바그라티온 모두독일군의 교환비가 소련보다 우수했다.그러나 동부전선의 최종 승자는 소련이었다.독일보다 소련이 전선에서 입은 피해를 더 빠르게 회복해나갔기 때문이었다.독일이 전쟁 초기 소련군 사단 20개를 섬멸하면 다음 날 20개 사단이 몰려오는, 그런 식이었다.반면 독일은 산업 규모의 한계상 소련만큼 빠르게 피해를 복구해낼 수 없었고,결국 멸망의 길을 걸었다.우크라이나도 비슷하다.우크라이나군의 선전을 보면 열에 아홉은 교환비 관련 이야기이다.매번 "어느 마을에서 아군이 더 높은 교환비로 러시아군을 방어했다" 따위 이야기다.이것이 거짓 선전이라며 얼굴을 붉힐 필요는 없다.주요 전투들에서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보다 우수한 교환비를 내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우크라이나군의 낮은 손실 보충 능력은이러한 교환비 우세를 무의미하게 만든다.우크라이나군의 손실 보충 능력이 낮은 것은 이들이 근본적으로 무기를 만드는 게 아니라 받고 있기 때문이다.만일 무기를 지원하는 동맹국이 건실하면 괜찮겠지만,문제는 이를 대주는 나라들의 상태가 하나같이 영 아니라는 것이다.우크라이나군의 주요 물주는 서유럽인데이들은 20년이 넘는 군축 기간동안 손 놓고 있다가 자체적인 무기 생산 능력을 거의 다 잃어버렸다.그렇기에 지금 우크라이나군의 손실 보충 능력은 매우 낮다고 평가된다.그리고 우크라이나에게는 불행하게도,이런 상황에서는 교환비가 큰 의미가 없다.아무리 러시아군을 많이 격파해도 러시아는 착실하게 그 피해를 복구해내는 상황인데 반해,우크라이나군은 적은 피해를 입어도 그 적은 손실마저도 회복하기 어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3) 의미없는 선전/보복성 공격에 집중1943년, 영국 공군은 함부르크 등 독일의 서부 주요 도시들에 대규모 야간 공습을 가했다.(고모라 작전)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습을 맞은 독일이었기에실로 피해는 막대했고, 내부 여론은 끓어올랐다.만일 독일군이 이성적으로 판단했다면, 즉시 공습 대비를 더욱 철저히하여 이러한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했을 것이다.그러나 1944년 1월, 독일군은 공습 대비는커녕영국 남동부에 염소자리 작전이라 불리는 대규모 보복 공습을 실시했다.공습 직전까지 수많은 장성들이 뜯어말렸음에도 불구하고 괴링과히틀러 등 나치 인사들이 이를 밀어붙였다.영국에 보복 공습을 가하면 내부 여론과 선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하에서였다.그리고 당연하겠지만 결과는 무척이나 처참했다.독일군은 무려 329기의 항공기를 손실했지만,민가 일부를 파괴하는 것 외에는 영국에 어떠한 유의미한 피해조차 입히지 못했다.무리한 선전성 공격이 빚은 참사였다.그럼 2024년의 우크라이나는 어떨까?정말 1944년의 독일과 놀라우리만큼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전략적으로 큰 가치가 없는 벨고르드에 자유 러시아 군단을 침투시키다부대가 통째로 몰살당하는가 하면,도네츠크 강 동안이라는 점만 빼면 그냥 빈땅인 크린키에 최정예 부대인해병대를 축차투입하다 날려먹고 있는 중이며,이미 폐허가 되어 산업적으로 의미가 없는 도시인 도네츠크 일대에다연장로켓을 동원해 포격, 민간인 사상자를 발생시켰다.크림 대교에 대한 과도한 집착도 특기할 만하다.올해 초 자포리자를 경유하는 철도선이 완성되어 이미 크림 대교는더 이상 그리 중요한 보급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우크라이나는 계속해서 크림 대교를 폭파시키기 위해 필요 이상의 노력을 쏟고 있다.이러한 일련의 공격을 수행하는 이유는 전부 단 하나,"선전" 때문이다.러시아가 본토 도시들을 공습하면 할수록 우리도 그에 맞서 무언가 해야 한다는 여론이 너무나 강하기 때문이다.이렇게 선전상으로만 유용하고전략적으로는 아무 의미 없는 행위를 수행하기 위해우크라이나는 매일 상당한 규모의 자원을 날려먹고 있다.병력부족을 겪고 있는 최전선으로 가야 할 해병대와 자유 러시아 군단은 벨고르드와 크린키에서 무의미하게 희생되고 있고흑해함대를 공격하기 위해 필요한 수중드론은 전부 크림 대교에 낭비되고 있으니 말이다.정말이지 1944년의 독일이 연상되지 않는가.4) 무너지는 본토 기반시설독일이 1944년을 기점으로 무너진 이유에는노르망디 상륙 작전, 바그라티온 작전 등 여러가지 요소가 있다.그러나 그 중 제일 큰 요소를 하나 꼽는다면 단연코 연합국의 전략폭격일 것이다.1943년부터 시작된 연합국의 독일 본토 폭격은 1944년에 절정에 달했다.처음에는 군수 물자를 생산하는 공장들이 공격당했고,그 다음에는 일반 공장이,그 뒤에는 철도, 교각, 도로 등 기반시설이 날아갔다.이러한 일련의 대공습 끝에, 독일은 전쟁 수행 역량을 완전히 잃어버렸다.공장이 모두 부서져 기초적인 무기 생산에서부터 어려움이 생긴 데다가,설령 어찌어찌 뭘 만든다 쳐도 기반시설이 사라져 전선으로 아무것도 옮길 수 없었다.현재 우크라이나의 상황도 비슷하다.2023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기반시설 공습은점점 더 절정에 달해가고 있다.여기서 흥미로운 만한 점이라면 러시아는 연합국처럼 공장들에 공격하기보단 에너지 시설에 집중하고 있다.이유는 간단한데대부분의 무기를 지원받는 우크라이나의 특성상 공장을 공격하는건 큰 이점이 없다.반면, 발전소를 위시한 에너지 시설을 타격하면 우크라이나 본토의 경제활동을 사실상 마비시킬 수 있다.아무리 후방에서 뭘 하려고 해도 전기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이러한 러시아군의 공습은 실제로도 효과가 있어서,우크라이나는 현재 자체적으로 전력을 거의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정전이 일상이 된 대도시들은 덤이다.그렇게, 오늘도 우크라이나의 전쟁 수행 역량은 점점 떨어지는 중이다.5) 대책없는 인력부족1944년 독일은 심각한 인력 부족에 시달리게 있었다.오랜 전쟁으로 많은 수의 남성이 사망했던 탓이었다.급한대로 예비군 나이대에 해당하는 남성들을 전부 끌고 가 국민척탄병을 창설하고청소년들이 주축인 히틀러 유겐트를 전선에 투입시켰음에도 불구하고육군 사단은 대부분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고 있었으며,조종사가 없어 비행기들이 비행장에서 썩고 있었다.급기야 1945년 말에 이르러서는어린이와 노인들이 주축이 된 국민돌격대가 탄생하기에 이르렀다.그리고 당연하지만, 이렇게 해서는 전쟁 수행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본래 후방에서 일하던 인원들을 빼가니 공장들의 생산력은 더더욱 낮아졌고,그러면 그럴수록 전선에서는 물자 부족이 심화, 더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해되려 인력 부족이 심화되는 끔찍한 악순환이 반복되었다.이제 우크라이나를 보자.현재 우크라이나 역시 심각한 인력부족에 시달리는 중이다.수많은 우크라이나 남성들이 전쟁에서 전사했고후방에서 일해야 할 여성들은 대다수가 전쟁 초 해외로 탈출해 돌아오지 않고 있다.결국 현재 우크라이나는 최전방과 후방 모두 심각한 인력부족에 시달리고 있다.최근에는 급한 대로 징집 연령 하한선을 27세에서 25세로 낮추어 더 많은 인원들을 징집 중이지만아직도 그 빈자리는 그나마 머릿수가 많은 중년층과 노년층이 어찌어찌 채우고 있는 형편이다.게다가 나라부터가 원채 인구가 적은데 이어전쟁은 소모전으로 흐르고 있으니, 얼마 남지 않은 이들마저 몇년 있으면 바닥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이제 1년만 더 있으면 어린이들까지 총동원되는 우크라이나판 국민돌격대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결론본인은 역사가 반복된다고 믿는다.세세한 차이만 있을 뿐이지, 역사는 큰 틀 안에서 늘 스스로를 반복하여 왔다.2024년 현재의 우크라이나는 1944년의 독일과 매우 많은 면에서 유사하다.우크라이나가 변화를 꾀하지 않고 역사가 반복된다고 가정할 시,우크라이나의 디음 1년은 제법 험난할 것이다.세줄요약:우크리이나와 1944년의 독일은 상당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신무기 집착, 인력부족, 선전위주 작전, 교환비 집착, 기반시설 공습 등이 그 예이다.그러한 모습을 보이다 결국 멸망한 독일의 사례에서 미루어보건데, 우크리아나의 미래가 밝아보이진 않는다.재밌게 읽었으면 개추+실베추 한번만 눌러줘라.아, 그리고 반박은 언제든지 환영임.
작성자 : 포르쉐티거고정닉
일본일본 재명촌 - 1
[피해자 후루타 준코]1988년 11월 25일, 사이마타현 미사토시에서 미야노 히로시(18)는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귀가하는 후루타 준코(17)를 발견하였음. 그리고 히로시는 미나토 신지(15)에게 준코의 자전거를 찰 것을 명령함. 신지는 곧바로 준코의 자전거를 차고 도망감.[범인 미야노 히로시]신지의 공격으로 준코가 넘어지자 히로시는 곧바로 준코의 곁에 나타나서는 “저 녀석은 유명한 변태다. 나도 저 녀석에서 칼로 협박당했다”라 하고선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함. 그리고나서 히로시는 준코와 대화를 하며 천천히 준코의 집쪽으로 걸어갔음.[범인 미나토 신지]히로시는 준코의 집에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어두운 창고 앞에서 갑자기 태도를 바꾸고선 본인이 야쿠자의 간부라며 준코에게 살해협박을 시작함. 그러자 겁에 질린 준코를 데리고선 키타아야세역에서 가까운 러브 호텔로 향한 후 준코를 성폭행하였음.[범인 오구라 유즈루]히로시는 준코를 호텔에 감금하고선 인근에서 행인을 상대로 퍽치기를 하던 오구라 유즈루(17)와 와타나베 야스시(16)에게 전화를 걸어 “계집애 하나 잡아두고 있는데 같이 먹어버리자”라 소식을 전함. 소식을 들은 유즈루와 야스시는 호텔에 도착함.[범인 와타나베 야스시]유즈루와 야스시는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히로시 - 유즈루 - 야스시 순으로 4~5차례 돌아가며 준코를 성폭행하였고 이후 준코를 이끌고선 밤거리를 돌아다녔음. 그리고 평소 모범생이었던 준코는 낯선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처음으로 술을 마시게 되었다함.차를 타고 밤거리를 돌아다니던 중, 히로시가 준코에게 “신지가 너를 좋아한다”며 대신 고백을 해주었지만 당시 남자친구가 있던 준코는 남자친구에게 불똥이 튈까 학업을 사유로 거절함. 그러자 히로시는 준코에게 “굴욕을 교육시켜주겠다”라 했다고함.[실제 미나토 신지의 집]아무튼 히로시와 유즈루는 술을 더 마시겠다며 일행을 떠났고 남은 일행은 신지의 집 근처에 있는 공원에서 대기하던 중, 추위를 피해 신지의 집에 준코를 데려갔음. 그리하여 이렇게 도착한 신지의 집에서 준코는 일본 역사에 남을 흉악범죄의 피해자가 됨.길에서 행인을 폭행하던 히로시는 함께 어울리던 나카무라 데쓰오(16)와 이하라 고이치(15)에게 좋은 것을 보여주겠다며 준코가 있는 신지의 집으로 데려감. 그리고선 준코에게 겁을 주려고 감기약이 마치 마약인 것처럼 복용하고 취한 것 같이 행동함.같이 있던 신지의 형은 준코의 얼굴을 쿠션으로 눌렀음. 그러자 준코는 저항하며 소리를 질렀고 이 소리를 듣고 신지의 부모가 2차례 신지의 방으로 찾아옴. 하지만 히로시 일행이 방문을 끝까지 열어주지 않았기에 방안의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였음.결국 신지의 부모는 어쩔 수 없이 히로시 일행에게 주의만 주고선 떠났고 이에 화가 난 히로시 일행은 2시간 동안 준코의 허벅지와 다리를 집중적으로 폭행을 한 것도 모자라 준코의 음부에 불을 붙인 뒤 비명을 지르지 못하게 입을 막고선 집단 성폭행을 함.납치 후 5일이 지난 11월 30일, 히로시는 준코의 부모가 경찰에 신고할 것을 걱정하였음. 그리하여 히로시 일행은 준코를 협박하여 집으로 ‘친구 집에 있으니 실종신고를 하였다면 취소하라’는 전화를 하게함. 그렇게 준코는 5일에 걸쳐 3번을 전화를 함.마지막으로 준코가 집으로 전화한 날, 신지의 부모는 준코와 인사를 하게 되었고 신지의 부모는 준코에게 “늦었으니 집에 돌아가렴”이라 말함. 하지만 준코는 히로시 일행에게 꼼짝 못하고 잡혀있었기에 히로시 일행을 따라 신지의 방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감.그로부터 5일 뒤인 12월 5일, 신지의 어머니는 신지의 방을 청소하던 중 쓰레기통에서 생리대를 발견함. 그리고 2층에 야스시와 함께있던 준코에게 “왜 집에 돌아가지 않았니 ?”라 물었지만 야스시에게 감시를 당하고 있던 준코는 물음에 대답하지 못하였음.신지의 어머니는 준코에게 이것저것 캐물었지만 준코는 야스시의 감시로 인해 엉뚱한 대답만을 함. 결국 신지의 어머니가 “부모님이 걱정하실테니 어서 돌아가렴”이라하자 야스시도 “그래, 돌아가는게 좋겠다”라며 준코를 집으로 돌려보내는 분위기가 됨.하지만 식사를 시킨 뒤 준코를 돌려보내기로함. 그리고 식사 도중 신지의 아버지가 귀가하였고, 신지의 아버지는 준코를 보고선 “신지의 여자친구야 ? 나에게도 소개해주렴”이라 말을 걸었음. 하지만 신지에 의해 묵살당하였고 준코는 또 다시 2층에 감금됨.신지의 가족들은 집에 준코가 드나든다는 것을 보고선 신경이 곤두섰고 다음날 준코를 찾아와서 집에 돌아가라고 얘기함. 하지만 겁에 잔뜩 질려있던 준코는 미동조차 하지않았고 결국 신지의 어머니가 준코의 가방에서 나온 집 전화번호로 연락을 하게됨.신지의 부모는 가방에서 나온 전화번호로 전화를 하였고 준코의 어머니가 전화를 받음. 그리고선 준코란 이름의 딸이 있냐 묻자 준코의 어머니가 맞다고함과 동시에 누구냐 물음. 하지만 신지의 어머니는 주저하다가 가짜 이름을 대고선 전화를 끊어버림.한편 신지의 아버지는 준코를 귀가시킬 준비를 하고 있었고, 집 밖에서는 유즈루와 신지의 형이 대기하고 있었음. 하지만 유즈루는 준코를 집에 보낼 생각이 없었고 결국 신지의 형의 설득에도 유즈루는 준코를 귀가시키는 척 하다가 다시 준코를 감금하였음.이후 신지는 어머니가 준코의 집에 전화를 하였다는 소식을 듣자 어머니를 무지막지하게 폭행함. 이때를 기점으로 히로시 일행은 준코가 가지고 있던 3,000엔(약 3만원)으로 옷을 사서 갈아입히거나 음식을 먹이고 생필품을 해주는 배려아닌 배려를 해줌.12월 7일, 준코는 히로시 일행이 자고있는 동안 1층에 내려와서는 경찰서에 신고를 하였음. 하지만 인기척을 느낀 히로시에게 발각이 되었고 전화는 강제로 끊겼음. 경찰 측에서는 전화가 갑자기 끊기자 이상함을 느끼고선 역추적으로 다시 전화를 걸음.그러자 히로시는 ‘여동생이 장난전화를 걸었다’라며 무마시킨 후 전화를 끊었음. 히로시는 고함을 지르며 자고있던 일행들에게 호통을 쳤고 준코는 ‘한번만 용서해달라’라며 빌었지만 소용 없었음. 이후 준코는 죽기 전까지 방밖으로 나가지 못하였음.이 때를 기점으로 준코는 단순 폭행 수준을 넘어선 입에 담기도 힘든 고문을 받게됨. 특히 준코를 내심 짝사랑했던 유즈루는 이때부터 가장 집요하게 준코를 괴롭혔다고함. 그리고 이런 유즈루의 만행은 신지의 집에 있는 비디오 테이프에 녹화되어있었음.약 한달이 지난 1989년 1월 4일, 히로시는 전날 마작에서 크게 실패하여 10만엔(약 100만원)의 빚을 지고선 야스시의 집에서 일행과 합류함. 그리고선 마작에 실패한 이유가 준코 때문이라며 오랜만에 준코를 괴롭히러가자며 일행과 신지의 집으로 향함.사실 준코는 계속되는 고문수준의 폭행으로 인해 지난 20일부터 상태가 점점 안좋아졌으며 하루에 고작 우유 1잔만을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하였다함. 그리고 이런 준코를 히로시 일행은 애물단지로 생각하고선 신지의 집에 방치하고 있었음.하지만 히로시 일행은 빈사상태의 준코를 무지막지하게 폭행함. 폭행 이후, 준코는 자력으로 일어서려 시도하다가 넘어져 카세트 플레이어에 머리를 부딪히고선 경련을 일으킴. 그럼에도 히로시는 준코가 폭행을 피하려 꾀병을 부린다며 폭행의 강도를 높힘.유즈루는 1.74kg의 아령을 준코의 복부에 던짐. 하지만 준코가 아무런 반응도 없자 일행은 준코를 억지로 깨우기 위하여 준코의 피부를 불로 지짐. 준코는 처음에는 움찔하였지만 이내 반응이 없어졌고 소년들은 준코의 발목을 묶어놓고선 사우나로 향함.다음날인 1월 5일, 사우나에서 외박을 한 히로시 일행은 집에 있던 신지의 형에게서 준코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연락을 받음. 히로시 일행은 곧장 신지의 집으로 향함. 그리고선 준코의 사망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자 히로시 일행은 미친듯이 웃어댐. [시리즈] 일본일본 사건촌 · 일본일본 시작촌
작성자 : 기시다_후미오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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