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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압) 아이즈 와카마츠 성지순례기
아이즈와카마츠역후쿠시마현 아이즈 지방, 그 중에서도 으뜸 도시인 와카마츠.아이즈와카마츠시는 일본 근현대사의 파란을 짐작할 수 있는 도시다.아이즈성에서 내려다본 와카마츠 시내성지순례기니 아주 자세히 다루지는 않지만, 메이지 유신 이후 신정부군과 구막부(에도막부)군의 일대 결전이 이곳에서 일어났다.보신전쟁이라 불리는 일련의 전투 도중, 신정부군는 구막부군의 심장이었던 아이즈번 공략에 성공했고 아이즈와카마츠를 철저히 짓밟았다. 어린아이 노인 할 것 없는 살육이 일어났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척박한 혼슈의 북쪽 끝으로 추방당해 개간 산업에 강제 동원되었다.후쿠시마현립박물관. 당연히, 후쿠시마시가 아닌 와카마츠에 있다.2018년은 메이지 유신(1868) 150주년으로, 일본 각지에서 유신 150주년 기념행사가 성대히 열렸다.아이즈에서는 메이지 유신 150주년을 전혀 기념하지 않고, 보신전쟁 150주년을 추념했다.권력을 잡은 신정부는 다분히 고의적으로 후쿠시마의 중심이었던 아이즈가 아닌 '후쿠시마시'에 현청을 세웠다.유신 이후 근대화와 산업화의 열풍 속에서도, 아이즈는 행정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소외당했다.박물관에는 '사이노카미'를 불태우는 민속 전시가 있다. 사이노카미는 마을의 경계를 지키는 민속신으로, 동방의 핵심적인 개념인 '결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아이러니하게도, 발전이 늦었기 때문에 아이즈는 2차대전 중의 미군 공습을 거의 당하지 않았다고 한다.그렇기 때문에 아이즈의 노인들이 '지난번 전쟁'이라는 이야기를 꺼내면 태평양전쟁이 아닌 보신전쟁을 칭한다는 이야기도 있다.솔직히, 가장 꺼려지는 도도부현은?지금도 후쿠시마현에서 '가장 싫어하는 도도부현'을 조사하면, 혼슈의 서쪽 끝에 있어 거의 접점이 없어보이는 야마구치현을 꼽는다.야마구치현, 쵸슈번의 유신 지사들은 근대화의 일익을 담당하며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 물론 그들은 아이즈의 살육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한국 국내에서는 야마구치가 정치 명문가 출신인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고향으로 유명하지 않을까...현립박물관 내부전시, 불타는 와카마츠왜 갑자기 동방과 별 관련도 없는 역사 얘기를 하나 하면.. 와카마츠에서 가장 유명한 동방 성지가 보신전쟁의 처절한 와카마츠 전투를 상징하는 산에 있기 때문이다.겸사겸사 들르며 가볍게 구경하기 좋다. 그리고 내 개인적인 해석이지만, 잔무의 캐릭터 설정과도 맞닿아 있다.이이모리산(飯盛山)이이모리산은 와카마츠시 동쪽에 있는 야트막한 산이다.입구는 완전히 관광지화되어 있다.산 중턱까지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는데 돈을 받는다, 210엔물론 계단으로도 올라갈 수는 있다아이즈번은 전쟁을 준비하며 체계적인 군대를 편성하였는데, 그 중 소년병으로 이루어진 부대의 이름이 백호대(白虎隊)였다.백호대의 소년들은 막부와 아이즈번에 충성을 다짐하며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밀려나고, 이리저리 흩어졌다.겨우 살아남아 이이모리산으로 도망친 사람이 20명밖에 없었다고 한다.시내를 바라보는 백호대 병사이이모리산 중턱에 올라 시내를 바라보니, 멀리 불타는 와카마츠성과 시내가 보여 슬픔을 이기지 못한 소년들은 집단으로 자결을 결심했다고 한다. 20명중 19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1명이 겨우 살아남아 노파에게 구조되었다.자결한 소년들의 나이는 고작 13세~17세였다.근대화 이후 일본이 군국주의 팽창을 시작하자, 정부는 백호대의 충절에 주목하게 된다. 그들의 잣대로 보자면 백호대는 정부에 대항한 반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무사도 정신의 표본이라 칭송하며 현창 사업을 진행하였다.그렇기 때문에, 이이모리산 중턱에는 생뚱맞게도 이탈리아 파시스트상이 선물한 로마의 비석과철십자 문양이 아로새겨진 독일 나치당 당원의 비석이 서있다.아이러니함도 이쯤되면 재미있다.사유지라 직접 볼 수는 없지만, 집단 자결지 부근에는 백호대 무사도에 감동하여 이 산에 묻힌 독일인 하이세 가족의 묘소도 있다백호대기념관 앞의 동상이때문에, 아이즈 곳곳에는 백호대 동상과 함께 '국가에게 충성을!!'이라 다짐하는듯 하면서도묘하게 반정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장소들이 여럿 있다. 정말 흥미로운 도시다.'백호대 19열사 위령탑', '세계의 명건축 사자에당'그리고 동방 성지인 사자에당은 백호대 위령탑 바로 옆에 있다.아이즈 사자에당 (会津さざえ堂)백호대가 자결한 산 중턱에서 오른편으로 빠지는 작은 길을 따라 걷다보면 사자에당이 나온다.정면 공간이 협소해서 화각에 잘 담기지 않는다 ㅠㅠ국가지정 중요문화재구 정종사 삼잡당(사자에당) 旧正宗寺円通三匝堂(さざえ堂)높이가 약 16.5m인 육각형 건물로, 1층은 직경이 약 6.3m이다.정면으로 들어가면 시계 반대방향으로 나선형의 슬로프로 올라가, 정상의 홍예교(타이코바시)를 건너면 시계방향으로 내려가 뒤편의 출구로 나갈 수 있다.오르내림을 통하여 건물 내를 3번 돌 수 있어 삼잡당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내부에는 시코쿠 오헨로 33 관음상이 모셔져있어, 한 번 들어가면 순례를 끝낼 수 있는 에도시대의 서민들을 위한 순례 장소였다.신편 아이즈 풍토기에는 엔츠 산소도라는 이름으로 불리었으며, 칸세이 8년 (1796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또한, 아이즈 와카마츠의 짓소지(実相寺, 실상사)의 승 이쿠도(郁堂, 욱당)가 건립했다고 한다.불당 건축으로는 유례없는 특이한 형태로여섯 심주 기둥과 여섯 귀기둥(隅柱)을 구사하여 이중 나선 구조를 고안한 이쿠도 선사와 목수들의 창의력과 기술에 커다란 의의가 있다.요컨대, 사자에당은 일본에서도 보기 드문 이중나선 형태의 건물로, 내부에는 시코쿠 오헨로 관음상을 안치하여 지역 주민들이 편하게 순례를 하도록 만든 요배 장소라고 한다.설명문에 보인 삼잡三匝이라는 불교용어는 한국에서도 쓰이는데, 오른쪽으로 세 번 돌면서 경례하는 최상의 예법이라고.입구 정면의 화려한 조각근대 이전의 이중나선구조 건축물은 세계적으로도 그리 흔치 않아, 다빈치가 설계한 프랑스 샹보르성의 설계도가 네덜란드 상인을 통해 일본으로 흘러가 아이즈 지방까지 전해진게 아니냐는 설이 있다고 한다.입구 현판에 달려있는 복취해(福聚海) 현판복덕의 모임이 바다와 같이 넓고 크다는 뜻으로, 관음의 복덕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용어이다.관음도로 들어가는 입구에 걸릴만 하다.다이쇼, 쇼와, 헤이세이 천황이 모두 황태자 시절에 다녀갔다고 한다.내부는 확실히 나선형으로 이루어져 있어, 사람 두 명이 겨우 지나갈 공간밖에 없다.일본 이곳저곳을 여행해봤지만 처음 보는 구조내부에는 정말 무수히 많은 종이가 벽면에 온통 붙어있는데, 이는 센쟈후다(千社札, 천사찰)라 한다.절을 순례한 기념으로 자신의 이름을 적어 붙이는 풍습인데, 먼 옛날부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자에당을 다녀갔는지 짐작케 한다.정상, 꼭대기 부분의 조밀한 센쟈후다와 나무기둥들의 짜임새는 엄청난 장관이다.빛바래지 않고 굳건한 신앙의 흔적같다.나선길 안쪽에 있었다는 온갖 관음상은 메이지 유신의 폐불훼석으로 사라졌고, 그 자리를 황조이십사효皇朝二十四孝가 즉시 대신했다. 이십사효는 중국의 대표적인 효자 24명의 전기를 담은 교훈서다. 황조이십사효는 아이즈번에서 직접 간행한 '일본의 충효 인물' 24명이 적혀있는 막말 당시의 교과서라고 한다.황조이십사효는 아이즈번 번주인 마츠다이라 요시타츠(松平義建, 아들이 막말의 동란을 살아간 10대 번주 카타모리)가 직접 선정했다고 하니 사자에당도 역시 보신전쟁과 무관하지 않다.다행히, 사자에당을 건축했다는 승려 이쿠도 선사의 목상은 그대로 입구에 안치되어 있다.그리고 사자에당이 동방의 성지가 될 수 있는 이유, 잔무의 목상 또한 사자에당 뒤편의 출구에 안치되어 있다.잔무 대선사 목조좌상잔무(残夢 ? ~ 1576)는 임제종의 승려로, 기행을 일삼은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다.아이즈풍토기나 본조고승전에 따르면 관동에서 히타치(*지금의 이바라키), 나스(*지금의 도치기 동부)를 유랑하다 아이즈 지방에 눌러앉아 짓소지에 기거했다.그 기간에 이이모리산의 소조지도 창건해 개조가 되었다.잔무에 관한 동시기의 전설같은 기록은 수없이 많다.본조신사고本朝神社考에는 잔무가 승려면서도 승려처럼 살지 않고, 속인같으면서도 속인이 아닌, 정신상태가 보통 사람과는 다른 인물이라 그려져있다.12세기에 있었던 겐페이 합전을 마치 직접 본 것처럼 묘사해 기이해하며 누구에게 들었는지 물어보면 '잊어버렸다'고 대답하고, 난코보 텐카이南光坊天海와 만났을 때에는 흔히 약용으로만 섭취하는 구기자 밥을 즐겨 먹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텐카이는 잔무가 수백년을 살아간 것이 구기자를 먹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그를 겐페이 합전의 전설적인 고승, 히타치보 카이존이라 여겼다.아이즈 풍토기会津風土記에는 그가 며칠간 식사를 하지 않아도 전혀 배고픈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으며, 옷을 갈아입지 않고 새로 옷을 받아도 일부러 낡은 옷의 옷니를 털어 새옷에 옮긴 뒤에야 입었다고 기록되어 있다.또, 도둑과 관한 전설이 전한다. 금고에 넣어둔 동전을 도둑이 들어 가져가려고 할 때, 잔무는 그 자리에 없었으나 옆에 있던 동자에게 '동전을 도둑에게 주고 오려무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동자가 금고가 있느 방으로 가니 과연 도둑이 있었다. 동자가 도둑에게 '동전을 준다면 금고를 뜯어낼 필요도 없겠구나'라고 말하니, 도둑은 부끄러워하며 자리를 떴다. 자초지종을 들은 잔무는 화를 내며 '왜 돈을 주지 않았느냐'라고 따졌다고 한다.요시츠네 지서기義経知緒記에 따르면, 잔무는 본인이 히타치보 카이존이라고 스스로 말하며 다녔다. 옛일에 밝은 사람이 잔무에게 고사를 물었으나, 대답이 마치 선문답같아 명확하기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의심하며 서로 논쟁했다고 한다. 잔무가 카이존이 아니라는 견해를 밝히면서도, 말하는 바와 모습이 범상치 않으며, 무엇이든 잘 기억하고 말을 잘 하는 사람이라고 기록했다. 옛날 일을 아주 자세히 알고 있으나, 어째서 그 사실을 알고 있냐고 물으면 잊어버렸다고 대답하는 것이 모순적이라고도 지적했다.잔무는 입버릇처럼 '지금, 나와 같은 시점을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내가 하는 말을 진실로 증명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미나모토노 요시츠네는 추남이고, 무사시보 벤케이는 잘생긴 남자였다. 그러므로, 세상이 이야기하는 아름다움과 추함은 서로 상이하다. 세상에는 이러한 예가 무수히 많다. 그러므로, 그 무엇도 단정지을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수백년을 살아온 것처럼 이야기하고, 기이한 행동을 일삼은 승려 잔무.그는 동방수왕원의 등장인물 닛파쿠 잔무(日白残無)의 원소재로 활용되었다.오니가 되어버린 파계승이면서도 도에 밝아 허무를 다루는 모습이 원소재인 잔무와 꽤 일맥상통한다.사자에당에서 백호대의 묘소까지는 불과 3분밖에 걸리지 않는다.동방수왕원의 캐릭터 소개에 따르면, 닛파쿠 잔무는 피비린내나는 전국시대에서 살아남아 세상의 무정함과 끈질김을 깨달았다.기록에 따르면, 아이즈의 고승 잔무는 수백년간 겐페이 합전에서 전국시대로 이어지는 창칼의 역사를 관조한 스님이었다.그런 역사가 서려있는 땅에 또다시 내전이 일어나 사자에당 곁에서는 소년들이 집단으로 자살하는 경악스러운 일까지 있었으니, 신주님은 잔무가 타락해 지옥의 오니가 될 계제가 충분하다고 생각한게 아닐까.백호대 19지사의 영상, 그 앞에서 위령 기도를 올리는 참배객아이즈 관음신앙의 전통적 총본산인 사자에당 옆에는 당연하게도, 백호대를 기리는 사당도 건립되어 있다.건물 내에 붙어있는 '센쟈후다'들이 백호대도 신앙의 대상으로 승격되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대체 무엇을 위한 신앙일까.사자에당 앞에는 공양차供養車라는 조형물이 있다.기둥의 바퀴를 손으로 굴리면 비통한 소리가 나는데, 그 소리가 저승에 닿아 백호대 지사의 영혼을 위로한다고 한다.윤장輪蔵이랑 비슷한듯 하면서도 다른 곳에서 본 적 없는 독특한 물건이다.공양차를 받치고 있는 동물은 꿈을 먹는 맥이다. 머리를 만지면 악몽이 사라진다는 설명이 붙어있다.도레미와 케이네가 여기에도..짓소지(実相寺)이이모리산을 내려가 시내의 주택가를 걸어가다보면, 평범한 주택처럼 보이는 건물이 길끝에 나타난다.저 건물이 잔무가 아이즈에 들어와 죽을 때까지 기거했다는 짓소지, 실상사다.짓소지는 1328년 창건된 임제종의 사찰로, 본존은 관세음보살이었다고 한다.1514년, 간토 지방의 일대 세력이였던 코가 쿠보(古河公方)의 아시카가 마사우지足利政氏가 관동 10대 사찰로 짓소지를 꼽는 등, 위세를 떨친 명찰이었다.하지만 짓소지도 보신전쟁의 화마를 피하지 못해, 신정부군에 의해 건물은 모조리 불태워졌으며 전해오던 보물들도 전부 약탈당했다.이전의 위세는 회복하지 못해 지금은 작은 건물만이 서있다.이이모리산에 있는 사자에당은 짓소지의 말사에 불과한 부속 기관이었다.전국시대의 병화에서도 살아남은 닛파쿠 잔무의 사적은, 이렇듯 전쟁으로 소멸되어 흔적으로밖에 더듬을 수 없게 되었다.허무를 다루는 능력이 주어질만 하다. 오니와타리 신사(鬼渡神社)와카마츠역에서 서쪽으로 빠져나와 10분 정도를 걸어가다보면 주택가 사이에 신사가 하나 서있다.오니와타리 신사는 닭의 신, 니와타리신을 모시는 신사로, 니와타리 신사는 도호쿠 지방 곳곳에 점재한다.아이즈와카마츠의 오니와타리 신사는 역에서 가까워 다른 니와타리 신사들에 비해 접근성이 좋아 뚜벅이 여행객이 참배하기 편하다.https://gall.dcinside.com/touhou/6899871 귀형수 3면보스 니와타리 쿠타카에 대한 고찰닭은 신성함을 나타내는 하얀 새이므로 고대로부터 동양에선 공물로 바쳐지거나 신성시되는 경우가 많았다.예컨대 신라는 닭을 국조로 여겨 김알지 설화에 흰 닭이 등장하고, 국호를 계림이라 부르기도 하였다.일본의 유명 민속학gall.dcinside.com니와타리신과 니와타리 신사에 대한 글은 위 링크를 참조니와타리 신사에는 여러 표기법이 있어, 그 중 하나가 일본어에서 존경을 나타내는 접두사인 '오'가 붙은 오니와타리라는 것인데특이하게도 오니와타리 신사는 대부분이 아이즈 지방에 있다.아이즈 지방에 유달리 '오니와타리 신사'가 많은 이유에 관하여 흥미로운 개인 고찰글이 일본 웹에 있어, 출처를 남기고 발췌해 번역해본다.https://note.com/mochan888/n/nf22287aaeac6 【鬼渡神社と山の民の足跡】|Mo Chan昨年末、会津好きの面々で忘年会をした。場所は都内にある、三島町産会津地鶏専門店。お任せで焼き鳥などを頼んだが、歯ごたえのある上品な味わいだった。 「会津地鶏」の起源は、平家の落人(おちうど)が愛玩用として持ち込んだニワトリだとする説もあるが、食用として供給されるのは現代になってのことだ。 そもそも日本のニワトリは、紀元前2世紀頃に中国大陸から伝来し、鳴き声で朝の到来を告げる「時告げ鳥」として利用されていたという。 天(あまの)岩戸(いわと)神話でも、天(あま)照(てらす)大御神(おおみかみ)がお隠れになると、八百万(やおよろず)の神々が、長鳴(ながなき)鳥(どり)を集めて鳴かせたと伝note.com니와타리 신사와 산 사람들의 발자국 鬼渡神社と山の民の足跡---(전략)신라 김씨의 시조 전설에서는, 숲 속에서 계속 울고 있는 흰 닭 근처에 금색 상자가 있었고, 그 안에서 남자아이가 태어나 왕이 그 아이를 왕자로 삼았다. 금색 상자에서 태어난 데서 성을 김金이라 하고, 숲의 이름과 나라 이름도 계림鶏林, 닭의 숲으로 지었다고 전해진다.닭신 니와타리를 모시는 신사는 도호쿠에 많다. 니와타리(庭渡/荷渡/二渡) 미와타리(水渡), 오니와타리(御渡/鬼渡) 등으로 불리고 표기된다. 특히 신사 이름에 ‘건널 도 渡’ 자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먼 옛날, 무언가가 ‘건너왔다', 즉 외부에서 들어왔다고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아이즈 지방에는 '귀신이 건너다(鬼渡)'는 뜻의 오니와타리 신사가 많다. 전국적으로 단 18곳밖에 없는 희귀한 신사이지만, 그 중 16곳이 아이즈 지역에 위치한다.이들 오니와타리 신사에는 절대다수가 아스하 신(阿須波神)과 하히키 신(波比岐神)을 모신다. 아스하는 가옥을 수호하고 발을 치료하는의 신, 하히키는 경계나 문을 지키는 신으로 여겨지며, 전문가들도 그 정체를 명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실마리가 되는 전승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아스하 신은 아스와(足羽) 지역의 토착신이며, 갈대의 신 혹은 흙의 신이다”라는 전승이다.아스와 지역, 즉 후쿠이시 아스와福井市足羽에는 아스와 신사가 있다. 케이타이 천황(継体天皇, 5~6세기)이 황태자였던 시절, 후쿠이 평야 치수 사업의 성공을 기원한 장소로, 그때 우물의 신과 함께 모셔진 신이 아스하 신과 하히키 신이다.그 당시 후쿠이 평야는 거친 강으로 유명한 쿠즈류가와九頭竜川의 범람원으로 광대한 습지대였다. 오호도 왕 (ヲホド王, 케이타이 천황의 황자 시절 이름)은 이곳에서 대규모 공사를 벌여, 지역을 벼농사에 적합한 토양으로 바꾸었다.이 중대한 프로젝트에는 신라인을 중심으로 한 도래인들이 많이 참여했으며, 특히 중요한 철기 생산을 지휘한 인물이 오호도 왕이었다고 한다. '오호도ヲホド'의 ‘호도(火床)’는 아마도 제련이나 대장간에 쓰이는 용광로 또는 화로를 의미할 것이다.습지대에는 갈대(葦, 일본어로 아시)가 번성한다. 철분이 많은 땅에서는 그 뿌리가 철 이온을 흡수하여 갈철광褐鉄鉱을 형성하며, 이를 태워 철을 만들 수 있다.후쿠이 평야에는 하쿠산白山에서 이어지는 화산들에서 발원하는 쿠즈류가와, 아스와가와, 히노가와가 흐르고 있으며, 지금도 사철이 많이 채취되며 타타라(*일본 전통 제철로)의 흔적도 많다고 한다. 습지대였던 과거에 갈철광이 풍부하게 채취되었음은 틀림없다.즉, ‘아스하 신=갈대의 신(葦葉神)’이라는 해석은 갈철광을 이용한 제철과 연결된다. 나중에는 제철의 주재료가 사철로 바뀌지만, 아스하 신은 고대 제철의 신으로 여겨진다. 사철 채취에는 많은 흙과 모래가 사용되므로 흙의 신으로 모셔진 것이다.당시 철은 매우 귀중한 자원이었고, 산에서는 사철 외에도 다양한 광물이 채취되었기 때문에, 아스하 신은 광범위하게는 산의 광물 채취에 관련된 신이라 할 수 있다.한편, 하히키 신은 경계나 문을 지키는 신이었다. 그 역할은 귀중한 자원이 있는 곳에 문을 세우고 결계를 형성하여 외부인의 침입을 막는 것이었다. 즉, 이 두 신은 제철을 하던 산의 민족, '산 사람들'이 모시던 신이었을 가능성이 크다.사철을 원료로 사용하는 타타라 제철은 연료로서 대량의 목재를 필요로 한다. 결국 산이 민둥산으로 바뀌며 제철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자원을 찾아 떠돌게 되는데, 풍요로운 너도밤나무 숲과 함께 수많은 광물 자원이 잠들어 있는 아이즈는 그들이 지향하는 낙원이었다.고대사 연구가 사와 후미오沢史生 씨는 “제철업과 진사辰砂 채굴은 동일한 민족의 생업이었다”고 저술했다. 진사는 붉은 안료나 수은의 원료가 되는 광물이다. 고대 아이즈는 진사 채굴이 융성했던 토지였다. (필자는 이전에 『다카테라야마 전설·황금과 주사』에서 고대 아이즈와 진사의 관계를 고찰한 바 있다).제철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산 사람들)은 제철뿐만 아니라 광물 채집도 하기 때문에 매우 고된 노동을 했다. 열악한 생활환경 속에서 필사적으로 일하는 그들의 모습은, 아이즈의 마을 사람들 눈에 어떻게 비쳤을까?용광로의 새빨간 불과 싸우는 그들을 보고, 마을 사람들은 붉은 오니赤鬼라고 불렀을지도 모른다.오니라는 단어는 무섭게 느껴지지만, 텐구와 마찬가지로 오니는 신앙적으로는 산의 정령이며, 마을 사람들이 오니에게 술과 음식 등을 대접한 답례로 장작이나 가죽 등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일본 각지에 흔하다.제철민 중에는 채집한 광물이나 약초로 약을 조제하는 집단도 있었을 것이다. 그 약으로 마을 사람의 병이 나았다면, 그것은 마치 신의 기술처럼 ‘오니의 짓(*믿기지 않는 요술과 같은 일)’으로 여겨졌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일본인과는 다른 외모를 한 도래계 민족도 있었을 것이고, 더 나아가 광물의 신에게 기도를 올리고 주문을 외우는 집단까지 있었다면, 그곳은 바로 신비로운 오니의 마을로 여겨졌을 것이다.산 사람들은 자원이 고갈되면 다음 산으로 옮겨가기 때문에, 오니의 마을로 여겨졌던 그 집단도 결국 지역에서 자취를 감춘다.그러나 산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마을 사람들에게 전해진 것들도 있다. 예를 들어, 철의 기술을 통해 개간용 철기나 목공구, 낚시 도구 등이 개량되었고, 생약 제조법 등도 전해졌을 것이다. 일부 산 사람들은 그 땅에 남아 야마부시처럼 그 지역의 신앙을 떠받치는 존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산 사람들의 흔적은 어느 샌가 오니 전승으로 바뀌고, 그들이 모셨던 아스하 신이나 하히키의 신도 후세에 이르기까지 모셔지며, 마침내는 인간의 마을로도 전해진다. 오니와타리 신사에는 그러한 역사가 숨어 있는 듯하다.사와 후미오 씨에 따르면 "고대의 제철민은 결국 중앙 정권에게 철을 빼앗기고 쇠퇴의 운명을 맞이했다"고 한다. 처음부터 그들은 중앙의 지배를 피해 살아온 사람들이기에, 역사서에서 사라질 운명이었다.오곡풍양을 기원하는 기도도, 본디 국토 개척을 뒷받침한 철의 신의 공적 위에 성립된 것이다. 하지만 그 신들을 모셨던 사람들이 잊혀진 것처럼, 신 자체의 본래 성격도 점점 희미해지고, 결국에는 치료나 가택 안전과 같이 현세의 복을 비는 신앙으로 바뀌어 간 것이 아닐까?병의 치유를 기원하며 닭을 섬기는 신앙을 지닌 신사들도, 본래는 산을 옮겨 다니던 제철민들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도래인과 도호쿠 특유의 닭 신앙, 고대 타타라 제철을 엮어 아이즈의 옛모습을 추측한 재미있는 글이지만,고대사와 신앙이 그렇듯 추측의 영역에 머무르는 것이 아쉽다.그러니 더욱 '로망'을 갖게 되지만...귀여운 쿠닭카는 지옥 '관문'의 신이다.이는 어쩌면 '닭 지옥' 뿐만 아니라 오니와타리 신사에서 모시는 하히키신波比岐神과도 관련이 있는 걸까? 더 찾아보고 싶다.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신사에 한참을 앉아있었다.작은 신사지만 구석구석 깨끗하게 청소되어있어, 지금도 마을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는 것이 살갗으로 느껴졌다.
작성자 : 초핫고정닉
안쓴거 생각나서 쓰는 6th 후쿠오카 양일 후기
현생이 바빠서 후기도 못쓰고 있다가 오늘 시간이 비어서 후기 후다닥 씀사실 3번째 식스공연이라 (도쿄,아이치에 이어서) 내용적으로 크게 뭐가 있을까 싶긴해도 하나하나 다 기록이라 남겨놓으려고 적어봄일단 양일내용이다 보니 좀 많이 길어짐일본 골든위크 + 한국 연휴의 여파로 도저히 비행기로는 감당이 안되다보니 배타고 갔다옴근데 배도 후쿠오카 들어가는건 싹다 매진이라 시모노세키로 들어갔다 하카타로 나오는배로 사서 27만원 컷3년전에 타고 오랜만에타는배라 좀 기대되었는데 부관훼리가 확실히 뉴카멜리아보다는 배가 별로더라...그래도 배에서 씻고 밥먹고 한숨때리니키타큐슈보이면서 세토내해쪽으로 가는중시모노세키항은 존나 작아서 빨리빨리 줄 안서면 입국심사에 한세월이라 빠르게 줄서서 입국심사 받고 시모노세키역에서 고쿠라로고쿠라 도착해서는 일단 콜라보 츠케상 먹어주고예전에 산책삼에 걷던곳 걷고, 아루아루좀 들렸다 카라오케가서 1시간 조지니 벌써 가야할 시간이여서 신칸센타고 하카타로외국인 1,600엔 신칸센 티켓샀는데 특급이 1시간 1500엔이라는데 진짜 안탈 이유가 없음근데 신칸센에서 티켓 분실해서 개찰구앞에서 그걸 알아채버려가지고 '어쩌지;;;' 하고 유인개찰구쪽에가서 '저기 티켓 교환해서 왔는데...' 라고 하니까 그냥 사람 많아서 그런지 내보내주더라호텔은 비싸고 나쁘지않은 캡슐 찾아서 체크인하고 바로 마린멧세로이날 A관에서도 라이브가 있어서 하카타에서 마린멧세가는 버스줄 진짜 길었는데 그래도 3분마다 버스 와서 앉아올수있었음도착하니 일기예보대로 딱 비올거같더라이날은 진짜 완전 정 중앙이였음 이런자리는 처음인데 보통 무대 연출이나 안무 전체적으로 보는것도 정말 좋아하다보니 이자리도 만족도 매우 높았음아쉬운점이라면 토롯코랑도 거리가 너무 멀고 그렇다고 센스테랑 가깝냐고 물으면 그것도 아닌 진짜 애매모호한 자리였는게 한없이 아쉬운 정도?라이브 셋리 자체는 지금까지와 완전히 동일해서 인상깊었던 부분들로만 말하자면일단 이날 청춘호퍼... 2개월간 무슨일이 있었던건지 콜이 완벽해짐... 게다가 엄청 우렁차고도쿄 1만명보다 후쿠오카 5000명이 더 압도적으로 느껴지더라... 그리고 이건 2일차 마지막까지도 쭉 이어짐목이아파서 목소리를 못내는 스즈하라 노조미 (CV:오오쿠마 와카나)솔직히 별 위화감 없을정도로 엄청 잘함... 아! 성우였지?그리고 MC중 사쿠 회심의 다쟈레인'마린멧세 토마린멧세'드립과 매우 기뻐하는 유이나 ㅋㅋㅋㅋMC타임 이후 시작된 라이브 이번 식스를 통해 정말 좋아하게된 노래가 피스사인인데 딱 정중앙이라 사유가 달려오는걸 바로 정면에서 보는데 확실히 박력있고 표정연기가 정말 압도적이라그런지 노래 안부르고있어도 계속 빨려들어가는듯한 그런 기분이였음버블라이즈는... 이날 유이나 목상태가 안좋은지 갈라지는것도 두번나고 이날따라 많이 불안정하더라... 논짱 목도 그렇고 슬슬 투어의 피로도가 나타나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스컬은 딱 센스테인데 안무가 너무 좋아서 진짜 넋놓고 계속 바라만 봤다 특히이런 정 중앙에서만 봐야 제대로 느낄수 있는 안무도 볼수있었을뿐만이 아니라쿠마랑 야무 백스탭 밟는 이장면을 스껄에서 가장 좋아하는데 앞에서 정면으로 보니 너무 좋았음절대적러버는 후쿠오카에서 콜이 제대로 굳혀진 느낌이더라 미야기땐 있긴한데 별로 크진 않았지만 후쿠오카는 진짜 우렁차고그리고 이번에 첨으로 절대적러버 콜 했는데 너무 신남 ㅋㅋㅋㅋ 딱 취저인 콜이더라이번 식스 최고의 고트곡인 맛까... 근데 이건 하나미치에서 춤추는게 진짜 진국이라 정면에선 그 박력을 느낄수 없는게 아쉽다면 아쉽고하이라이트라고 할수있는 다즐링 게임 정중앙이라 오른손엔 빨강 왼손엔 파랑들고했는데 이게 색 순서가 다르니 보라색으로 일순에 바꾸는게 몇배는 어렵더라 ㅋㅋㅋ윗인드림은 슈팅보이스처럼 노래에비해 안무가 꽤 빡센곡인데 사비직전 저 군무가 진짜 너무 아름다웠음... 진짜 은하수를 표현한 그런 기분이 든다고 해야하나... 너무 좋아하는 안무중 하나임 그리고 리에라 최애곡인 슈퍼스타... 이번 식스 전통을 노렸던 이유가 이노래일 정도로 몇번을 봐도 감동적이고 몇번을 봐도 새로운 노래인데정면에서 보니 의상이 맴버색이여서 진짜 이쁘더라... 안무랑 연출도 그렇지만 저 의상이 너무 이뻐서 멀리서 한눈에 보면 춤추는 무지개를 보는듯한 기분이 들었음슈퍼스타!! 이후 MC중 그전 MC떄 토마카노테가 라이브전 저렇게 껴앉고 있었다고 하니까 우리도 하자면서 다같이 껴앉은건데사유가이때부터 감정이 올라왔는지 뒤돌아서 살짝 울던데 슈퍼스타!! 라는 곡이 3학년들의 마지막 대회곡이고 이 노래가 끝난이후 맴버들이 다같이 앉으면서 유대감을 느끼는부분에서 페이가 울것같다고 했는데 사유도 아마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었음그리고 무스부멜로디에서처음에 전광판에 딱 저모습 나오는데 사유가 노래하면서 우는것같은데 너무 멀어서 긴가민가 하면서 보는중에다음장면 볼때 진짜 울면서 노래부르길래 나도 모르게 울게되더라...사실 슈퍼스타 애니로 보면 아직도 우는데 라이브 보면서는 울컥은 했어도 운적은 없고 무스부랑 키미소라에서 그랬는데 이번에 사유 보면서 나도모르게 감정이 요동침...그리고 무스부 멜로디 끝까지 울면서 부르는데 중간에 호흡도 흐트리지고... 진짜 블레이드 흔드는것도 잊고 그냥 멍하니 바라만 봤음우는거야 많이 봤지만 이렇게 노래를 부르면서 우는건 처음보다보니 나도 감정이 많이 복받쳐오르게되더라이후 바로 센스테 와서는 눈물닦고 시작한 키미소라여태 늘 뒤에 저 '민나 다이스키'전광판을 캐스트와 함께 본적이 없었는거같은데 애니에서 진짜 저장면보고 펑펑 울었던거 생각나면서 아까 사유울어서 감정 올라와있는데 또 울컥함...그리고 1절 사비이후의 저 '러브라이브 슈퍼스타!!' 진짜 저 장면은 중앙에서 봐야된다는걸 느꼈음... 캐스트들이 하늘을 보고 그 위로 저게 떠오르는데 진짜 망치로 대가리 맞은듯이 충격이였음 '내가 지금껏 본 마지막 저 연출은 제대로 본게 아니구나' 라고 느껴질 정도로 정면에서 봤을때의 충격은 가히 상상이상이였다...계속해서 딱 정중앙이라 좋았다는 이야기만 하는것같은데 그만큼 너무 좋았었음 ㅋㅋ 진짜 여태 다닌 공연들이랑 완전 다른공연이라고 느껼질만큼 자리의 힘이 대단했는데역시나 풀파워에서도 단체군무가 많은만큼 자리의 힘이 십분 발휘되었음 게다가 단차가 있게 맴버들이 서서 하는 안무다 보니 더더욱 중앙이 빛을 발함마지막 MC는 후쿠오카라 그런지 웃기는것도 꽤 있었는데 생각나는거 몇개만 적으면쿠마가 꿈에서 시즈오카차가 놓여있었는데 깨서 나코한테 '후쿠오카인데 왜 시즈오카차가 놓여져 있었을까?' 하니까 나꼬가 '같은 오카니까 상관없잖아'라고 츳코미걸었다고 폭로한거랑 쿠마 머리자르고 싶다고 에모한테 허락받는데 에모가 허락 못해주겠다고 회장에 물어보는거그리고 나기의 폭로가 있었는데아이코토바때 토롯코 돌고 내려와서 '아이타이~'하는 부분에서 갑자기 유이나가 나기 백허그 하는데 나기가 놀라서 '억' 히고다음장면에 바로 '잠깐 유이나 노래 못불렀잔아~'하면서 앙탈부리는 장면 있었는데이장면 이야기하면서 앵콜이니까 할수있는거라고 오히려 더 신났다고 유이나한테 고맙다고 하는거도 웃겼고에모가 당연한거지만 최근에야 너무 자기가 끌어앉지말고 주변에 이런 멋진 동료들이 있는데 동료들에게 좀 더 기대도 되는게 아닐까? 라고 느끼게 되었다고 했었는데이번 MC가 그냥 개꿀잼 그 자체였는거 같았음 ㅋㅋㅋ그리고 1일차 마지막은 유이사쿠의 '스이토요'로 마무리2일차는 1일차와는 다르게 날이 너무 좋았음 하카타 돈타쿠 마츠리도 좀 보고 후쿠오카에 있는 스쿨아이돌씨어터에서 오시타올도 사고 꽤 알차게 시간 보내고 바로 회장으로이날은... 마침내 6번째 공연만에 센스테보다 앞자리를 가봄... 진짜 '드디어'라는 말이 맞을정도로 이렇게 리에라 공연에서 최전블록은 거의 3년만이라 오랜만에 심장이 두근두근 하더라후쿠오카 2일차 하이라이트는 역시... 만두 사죄 기자회견이 아닐까 ㅋㅋㅋㅋ5팩중 3팩을 먹어서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1기생들... 근데 페이는 안먹고 나머지 4명이 다 먹었는데 연대책임으로 왜 사과하는지도 모르고 같이 사과함 ㅋㅋㅋㅋ여튼 그렇게 혼파망의 MC를 지나서 전날과 같은 셋리로 하는데 유이나 목이 확실히 안나았는지 이날 버블라이즈에선 결국 삑사리도 한번 나버리더라아까 위에서도 말한 맛까는 하나미치가 좋다고 한 이유가 이 안무가 너무 멋져서임 이번 자리가 유이나가 이 안무하는걸 바로 볼수있는자리다 보니 이렇게 또 성불,,,맨날 센스테보다 뒤에만 있었다보니 잘 몰랐는데 이번엔 센스테에서 키미소라 부르면 어차피 뒷모습만 보이니 2,3기생들을 그냥 봤는데..,그냥 뇌피셜이지만 6명 다 그냥 서있는게 아니라 진짜 표정이나 눈에서 1기생들을 존경하고, 동경하고, 달려왔던 그 길을, 업적을 자신들또한 긍지로 여기고 따라가고싶어하는그런 마음이 캐릭터를 넘어서 캐스트들한테서도 보이는데 1절을 소리내어 따라 부르지는 않아도 계속해서 소리 안내서 따라부르며는 그 장면들이 솔직히 정말 충격이였음...1기생들을 바라보는 2,3기생들의 마음을 이렇게 안무도 없이, 노래도 없이 단순히 표정과 눈동자 만으로도 표현되고그게 나에게 전해지는데 어떤 감정인지 내가 다 알수는 없어서 그 표정을 바라보면서 '1기생들을 진짜 존경하는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더라그리고 시발 앵콜 섀키라에서 박수치다 또 뿌사먹고(포쓰때 1일차때 부셔먹어서 2일차때 새로산 녀석인데...)마지막 감상타임땐 나코나기주도로 우치와 다들 배에 꼽고 하는데 역시나 이번에도 다시금 교자사죄 ㅋㅋㅋㅋ 이때 나기의 '교자가 맛있는게 잘못이다'라는 명언도 탄생그리고 페이가 쿠마를 울렸는데저번 핍스때 후쿠오카에서 논픽션을 처음으로 부른후 MC때 쿠마가 '(논픽션에서)센터인 스미레를 보고 나도 센터에 서보고싶다'라고 해준게 너무 인상깊었고이번 후쿠오카에서 스페컬러에서 시키의 등을 보면서 울컥했다고 하는데 쿠마도 감동받았는지 뒤돌아서 울던데 리유 MC중간부분 까지 계속해서 울더라 ㅠㅠ이번 후쿠오카 양일을 통해서 느낀건우리야 후쿠오카도 투어를 하네? 이런 느낌이지만 캐스트들한테 후쿠오카는 정말 남다른 의미가 있다는걸 느낄수가 있었음확실히 도쿄에서도 멀고 긴키권에서도 가깝다고는 할수가 없는만큼 라이브로 오기 힘든곳이고 오려고 해도 어느정도 수요가 있어야 올수있는곳이니후쿠오카에 온다는건 앞으로도 올수있게 더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지는 곳이되는것 같다고 누가 MC때 말해줬는데그런 기분이 든걸 확실하게 공연에서 전달받았음솔직히 이걸 말로는 표현 못할거같음 노래에서 느껴지거나 안무에서 느껴지는것도 아니지만그냥 나마들이 후쿠오카에 올수 있었다는게 너무너무 기쁘다는게 보고만 있어도 나에게 전해졌음 덩달아 나도 행복했고나마들이 기뻐하다 보니 평소공연들 보다도 더 오라? 분위기? 같은게 있었는데 이 분위기는 아마 오사카 막막공연에서도 못느끼지 않을까 싶을정도로으음... 뭐라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여튼 여운이 남고 나마들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알게된거같은 그런 공간이 되었던 공연이였음참 이걸 말로 설명할수 있음 좋은데 너무 어렵다...아직 오사카가 남았지만 도쿄,아이치,후쿠오카 중에선 후쿠오카가 최고였다... 이런 분위기와 감정의 공연을 다시 볼수 있을까 싶을정도로큰맘먹고 오길 너무나도 잘했던 후쿠오카공연이였음비록 오사카 금요일은 못가게되었지만 그래도 후쿠오카 덕분에 오사카가 더더욱 기대되게 됨후쿠오카공연 오시생일 이틀뒤라 집에있는 카논 굿즈란 굿즈는 싹다 무장하고 갔는데 그래서 그런지 재미있었다
작성자 : 탕탕볼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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