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OO년 OO월 OO일. 날씨 : 비.

OOOO년 OO월 OO일. 날씨 : 비.앱에서 작성

이다흘

2024.09.24 02:42:44

조회 70 추천 0 댓글 1

옆동네 며칠째 폭우가 쏟아져 물난리란 소식에

여긴 안 와서 다행이다 싶었다

그러다가 해질녘에 잠깐 눈을 붙인 사이에

출처 모를 비구름이 사방을 뒤덮고 있었다

옆동네에나 신나게 퍼붓다 사라지지

왜 여기까지 와서 지랄이래?

아니지, 옆동네에서 보낸 거 아니야?

개같은 새끼들

개만도 못한 새끼들

꿍시렁꿍시렁거리고 있다가

빗방울이 톡 톡 내리더니

앞을 보기 힘들 정도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가긴 글렀네

티비나 봐야지

침대에 누워 멍하니 티비를 보다가

창문밖이 순간 번쩍 하며 하얘지다가

우르르 쾅쾅!

아우 지진이라도 난 줄 알았네 씨이팔

...어? 동물들! 동물농장 동물들!

우산도 없이 장화도 없이 튀어나갔다

아 맞다 싶었을 때는

이미 옷은 물을 먹을 대로 먹은 후였다

씨이팔...

차에 타려고 보니 차키를 두고 왔다

에이 씨발

이미 다 젖은 거, 그냥 자전거나 타고 가자

평소에는 가깝게만 느껴지던 동물농장이

오늘따라 드으럽게 멀게만 느껴졌다

동시에 머릿속에선 쌍욕이 터져나왔다

씨이발 좆같은 일기예보

차키는 씨발 어따 두고 나온 거야?

이 비를 뚫고 목숨 살리겠다고 가는 주인이라니

하여튼 새끼들 주인 잘 만난 줄 알아라!

...갔는데 몇 마리 죽어있는 거 아니야?

하... 씨발... 돼지새끼 밥으로나 던져줘야지

흠뻑 젖어서는 낑낑거리며 자전거 타고

드디어 동물농장에 도착했는데

...내 농장이 실내 농장이었나?

주인인 내가 다 아리송할 정도로

농장에는 물기 하나 없었다

밥 줄 때만 쳐다보던 동물들이

갑자기 하던 것들을 멈추고 내쪽을 쳐다봤다

...뭐야 씨발... 왜 꼴아봐...

나 니들 살리려고 온 거잖아!

고마운 줄도 모르고 뭘 꼴아봐!

다 잡아 족치려고 농장 열쇠를 집으러

바지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어?

흠뻑 젖었던 옷이 다 말라있었다

분명 젖어있었는데?

분명 비가 쏟아지고 있었는데?

분명 비구름이 사방에...사방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떠있는 건 반 조금 덜 찬 달 하나

다시 고개를 떨궈 앞을 보니

빛나는 건 나를 보는 동물들의 야광 눈동자

...내가 더위를 먹었나...

집에나 가야지...

다시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반팔이 덮지 못한 팔에 털이 다 섰다

이미 다 마른 옷인데

...어쩌면 젖지도 않았을 옷인데

젖은 옷을 입고 타는 것처럼 추워서

온 몸에 닭살이 돋았다

...그렇게 처 덥더니만

여름 다 갔나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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