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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폐인이었다가 이젠 뭐하고 사는지 모르겠다..

ㅇㅇ(125.130) 2023.05.25 09:14:26
조회 634 추천 5 댓글 0

대학 졸업하고 대학원 진학. 나름 고등학교 조기졸업하고 군대도 시기 잘맞춰 나와서 딱 이때까지만 해도 꿈이 20대 박사에 20대 교수였음.

근데 석사 6개월 전에 같은 랩실 박사랑 대판 싸우고 조까라고 튀어나옴.

학교 다닐떄 과외도 하고 또 연구실에서 나름 페이 받고 일했던 터라 그때 계획으론 대략 2년 정도 공부할 여유자금 있었고, 그렇게 일단 명색은 기술고시 공부한다고 방얻어 나옴.


그런데 그제서야 보니 살면서 이렇게 아무것도 안하고 여유로운건 첨이더라.

그리고 나서 정신차려보니 낼모레면 서른중반.


이무렵 살면서 첨으로 아버지가 내방에 방문해서 내 사는 꼬라지 보고선...

그날 바로 용달차 불러서 내방에 있던 책이건 컴퓨터건 싹 다 폐기물업체로 넘겨버림.

그리고 딱 두달치 고시원비 내주고 여기서 시작하라며... 버리고 가더라.


그렇게 고시원 안에서 멍때리고 며칠을 있었음.. 며칠 있다 어머니 오셔서 한참을 우시다가

나름 본인도 답답했는지 서른 중반에 무경력 아들이 뭔 일을 할 수 있는지 이래저래 알아보신듯,

내가 그나마 운전을 좋아하니 마을버스 기사라도 해보라면서 이게 마지막으로 집에서 지원해주는거라고

대형면허 학원 다니라고 100만원 주고 가시더라.


그렇게 대형면허 따고.. 그 다음날 버스자격증 따서 마을버스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드라마 미생에서 주인공이 처음에 과장 만나서 열심히 하겠다고 했었지..? 근데 열심히 하는게 쉽지가 않더라.

나름 난 단단한 놈이라고.. 한창 공부할때 하루에 18시간 공부하고 그래서 난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버스 운전석에서 하루에 12시간.. 주야교대.. 거기에 꺾기까지 겹치니 사람이 녹아가는구나 생각밖에 안들더라.


그래도 첫 월급 탈땐 나름 기분 좋았지. 처음부터 월급이 240이었던가? 나중에야 알았지만.. 이건 한마디로 목숨줄 깎아가며 번 돈이었어.


그런데 두달 뒤인가.. 사고가 났어. 시내버스야 그게 버스공제 어쩌고 해결되지만 마을버스 수습에겐 그런게 없지. 그때까지 번 돈 싹 다 수리비니 합의금이니 토해내고 울면서 그만뒀다. 그때 지독히 무능력한 날 보며.. 시바.. 고시원 화장실 머리위에 있는 파이프가 딱 줄 걸기 좋구나.. 이정도 길이면 되나? 여기에 내 목을 대면 되나? 재어보고 그랬지. 그러다가 그게 너무 없어보여서 아무 장비 없이 대충 차려입고 겨울산에 올라갔다가 그대로 오도가도 못하고 해가 져버렸는데 그때 하늘을 보니 별은 무진장 떠 있고 여기서 날 보니 문득 이렇게 하찮은 내가 살아있는거 자체가 기적이다 싶어서.. 시바 조까 한번 인생 내맘대로 살란다 하고 진짜 기어기어서 내려왔음.


하지만 꿈은 꿈... 현실은 현실..

아무튼 일단 교통사고가 났고.. 합의금 어쩌고 말이 나와도 내가 능력이 있나.. 그러다 보니 검찰에서도 날 부르고 경찰에서도 날 부르고... 뭐 결국 회사에서 보험처리 하면서 종결되긴 했는데 그걸 알게 되신 부모님은 또 마음 고생... 그러다가 아버지께서 전화가 와서 전화번호 하나를 주시더니 여기 전화해서 면접 보라 하더라.


그렇게 간 곳은.. 사장이 사업병에 걸린 회사? 딱 그런데였지.

처음엔 9 to 5에 나름 잘 차려입고 일하니 괜찮아 보였는데.. 대체 이 회사가 무슨 회사인지 감을 못잡겠어.

한 서너달 지나면서 회사 구성원들이랑 말 트고 일하다 보니 뭔가 분위기가 이상해. 자기 명의로 월급을 받는 사람이 없는거야. 그리고 200따리 월급 받는데 뭐 독신이 술담배 안하면 돈나갈 곳이 있나? 그걸 알게 된 주위 사람들이 10만원만 20만원만 빌려달라 뭐 그런 말을 하기 시작함.

사장이 어디 사업설명회 한다고 가보면 뭐 다 다단계 행사들이고.. 이런걸 아버지께 말씀드리면서 도저히 아닌것 같다 하니, 세상물정 모르는 니가 뭘 알겠냐며 그렇게만 말함.


그러다가 회사 사정을 보다 보니 이건 무조건 조만간 끝난다 싶어서.. 일단 사장이 투자해놓은 한 곳 보며 거기에 파견이라는 명목으로 옮겨탐. 처음엔 월급은 기존 회사에서 받기로 했는데, 이미 난 그때 이 회사에선 더이상 월급 제대로 안나온다 싶어서 새로 옮겨갈 회사로 소속 옮겨버림. 근데 그 과정에서 월급이 다시 리셋되더라... 흠.. 자기는 작은 회사라 그만큼 못준다던가? 그나마 출신 학교가 좋아서? 인재 대우한다고 한 20 더 주겠다곤 하더라..


새로 옮겨간 회사에서 할 업무는 따로 받았었는데... 일단 회사일을 알아야 한다며 바로 현장업무 투입됨.

말이 좋아 현장업무지.. 한마디로 1톤 트럭 몰고 다니면서 물건 납품하는 일이야.

그리고 난 거기서 1톤 트럭에 짐이 3톤도 더 실리는구나 알게 되었음.

그런데 거기도 오래 있을 곳은 못 되더라.. 일이 힘들고 말고가 문제가 아니라... 애시당초 거기 간게 전 회사 사장이 투자해서 사업을 키운다고 해서 간건데, 투자하기로 한 사장이 돈 나올 곳이 없거든.. 그러니 여기도 돈이 없어. 그러다 보니 트럭 몰고 물건 받으러 가면 결제가 안되니 창고에서 돈들어올때까지 움직이질 못해. 그나마 저녁까지 일이 끝나려면 늦어도 10시에 일이 시작되어야 하는데, 이건 뭐 물건 받는데서 1시까지 묶여있으니? 일 끝나면 9시 10시는 다반사고.. 심지어 기름 넣고 밥먹으라고 카드 받았는데 이게 잔액 부족으로 사용을 못하는 상황..

시발 이런 상황에서 사장도 투자금 들어왔다고 무슨 본인이 벤처기업 사장인줄? 현장 업무 대신 영업이 중요하다고 능력 이상으로 일을 받아옴.

부장도 자기는 관리직이라며 현장 업무 안하고 사무실에서 지내기 시작함.

이런데다 당시 추석을 앞두고 추석에도 출근하래. 근데 그것도 좆같은데 명절 수당은 없다더라... 그날로 그만두겠다고 나옴.


진짜 이제 갈데가 없더라.

마침 취업박람회가 있어서 거기 가서 이력서 냈음.

그러다가 한군데랑 면접을 보는데 거기서 이렇게 말하더라...

"저기요.. 이제 마흔인데 이력서에 뭘 복잡하게 쓰시긴 했는데, 이건 그냥 아무것도 안한거에요. 여기 있는 회사들에 들어갈 자리는 아마 없을거고요.. 그냥 면접 봤다 하면 만원 지원금 주니 면접 확인서 하나 써드릴게요.. 선생님은 여기 이런데가 아니라.. 아, 저기 택배회사 있죠? 그런데 가시면 돼요"

뭐.. 틀린 말은 아니지. 근데 방금까지 트럭으로 일하다 와서 거기 또 가긴 좀 그렇더라.



그러다가 한달전 쯤... 처음 일하던 회사에서 사장이 투자한 회사의 대표가 안부 묻는다고 전화온게 생각나더라. 자기 회사가 집 근처니 한번 놀러오라고 말이지.

그렇게 거기서 지금까지 일하고 있음.

처음 갈때 다시 세전 200으로 리셋되고.. 회사 자체가 거의 여자들 위주로 돌아가는 곳이라 나이도 어린 것들에게 뭐 별의별 소리 다 들어가며 버텼는데,

회사일이란게 그렇더라.. 책상 위에서 말하는 사람이 힘이 센거 같은데 결국 필드에서 직접 움직이고 한시간이라도 일 더 하는 사람 말빨이 최고임.


그러다 보니 그만둘래요 하니 월급 올려주는... 시츄에이션도 겪네..


근데 이것도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 딱 봐도 경기침체가 보여서.. 그나마 지금 일하는 회사 사장은 일단 돈버는데 충실해서 지난번 회사들처럼 회사가 망할까봐 ㄷㄷ 떠는 꼬라지는 안봐서 좋은데.. 업종 자체가 평생직장은 아니란 말이지..


큰회사 다니는 친구들은 이제 슬슬 퇴직했거나 압박 받는다며 내가 일하는게 부럽다고 하지만 퇴직금 몇억 챙기고 나오는 놈들이 할 말은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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