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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사기당한점붕소설10앱에서 작성

OoOo0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12.03 17:5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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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씨와 쇼핑을 하고 돌아오는 밤의 거리는 조용했다. 어쩌면 내가 입을 꾹 다물고 있어서 그런지도 몰랐다.



숙소로 향하는 한산한 외길을 걷는 동안에도 많은 것들이 보였다.



짝을 찾기 위해 날개를 비비는 풀벌레들의 맑은 소리. 아무도 없는 구석진 벤치에 앉아 조용히 손을 잡고 사랑을 속삭이다 우리를 보고 고개를 푹 숙이는 풋풋한 연인들의 부끄러워하는 소리.



이곳도 내가 원래 살던 곳과 다를 바가 없구나.



오래되어 깜빡이는 낡은 가로등 아래를 걷다 걸음을 멈췄다. 올려다본 베르의 표정이 오묘했다. 언뜻 보면 걱정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의문스러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찡그려진 미간 사이에 담긴 감정은 뭘까.



한강은 잠시 생각했지만 이내 생각을 포기했다. 퍼리 이세카이로 왔다고 신나 했던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여기 수인들은, 사람을."

"네."

"아니, 그러니까 인간을... 지금. 애완동물처럼... 대하는 거네요. 맞죠."



베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한 표현입니다."

"그리고 그게 이제 저희가 뛰어넘어야 하는 목표고요."

"이해가 빠르시군요."

"외주를 회사에 맡긴다는 게..."

"사실, 애완동물하고 외교를 한다는 게 웃기지 않습니까. 소수 외에는 아무도 납득하지 못한 거죠... 그래서 저희가 맡고 있는 겁니다."

"그게 무슨..."



추리닝을 입은 베르는 어깨를 으쓱했다. 밤공기는 조금 후덥지근하고 축축했다. 공기를 혀로 한번 핥은 도베르만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서면에 나와 있지 않았습니까."



더 얹을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서면을 읽지 못한 건 나니까. 애초에 쉽게 갈 수 있을 거란 희망 같은걸 품은 게 웃긴 일이었다.



외교의 외자도 모르고, 할 줄 아는 외국어도 그나마 짤막한 영어가 전부인데. 하물며 고위 외교관 흉내를 낼 수 있을 리가.



"......예상은 했지만 정말 이렇게 바로 마주할 줄은 몰랐어서요."



베르에게서 뒤처지지 않도록 걸음을 재촉하는 수밖에.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보폭을 맞췄다.



"마치 저희가 귀여운 개를 키우는 것과 비슷하네요..."

"아... 개라. 저 같은걸 말하시는 거겠죠. 많이 들었습니다. 그쪽에서는 가축같이 소형화된 귀여운 버전의 저희를 키우신다고."



재미있는 비유를 들었다는 듯이 베르씨가 생글생글 웃었다.



"익숙해지시는 게 좋을 겁니다. 사실 저희 기준에서 인간도 꽤나 귀엽거든요."

"...그렇군요."



그렇게 말하고 바라보는 베르씨의 눈은 마치, 그래. 딱 내가 친구 집 뽀삐를 봤을 때의 눈빛을 띠고 있었던 걸까. 괜히 빤한 눈빛에 부담을 느낀 한강은 시선을 피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깜빡깜빡 한다니까요. 하하... 그냥, 오랜만에 인간을 보니까 새삼 놀라워서요. 대부분의 인간들이 이런 시선을 부담스러워한다는 걸 알면서도."

"제 생각에는 누구라도 이런 시선을 받으면 꽤 당황스러워 할 것 같은데요..."

"어... 아닙니다. 해외에 나가 있다 보면, 시선을 마주치지 않은걸 오히려 무례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분도 많습니다."

"해외도 있나요?"

"있죠 그럼. 당연히."



베르는 자신이 여행했던 스위스라던가, 자신의 종족이 근원을 두고 있다는 독일이라던가에 대해 짤막하게 소개했다.



"자신들 종족의 근원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아서요."

"많다고요?"

"해외 교류는 보통 종족 위주로 이루어지는 편이죠. 저 같은 경우는 도베르만이지 않습니까. 뭐, 그쪽 표현으로는 원산지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전, 독일이니까."

"독일..."

"그곳과 꽤 연이 깊은 편이죠. 유학도 거기로 갔다 왔고. 독일에도 인간이 꽤 많습니다. 사실, 꽤 인간 권리 선진국이죠."

"인간 권리 선진국이요..."

"그러니까 많다는 게 정확하게 인간 노예, 아니 애완동물인 게 많다는 게 아니라. 비유적인 표현으로... 아. 존중받는 인간들이 많다고 해야겠군요. 그나마."

"..."

"...사실 아직 서울에서 인간은 애완동물 수준에 지나지 않아서 말입니다. 법이나 체계나, 인식. 그런 게 좀 뒤떨어진 편이죠."



뒤떨어졌는지 아닌지는 내가 잘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덜떨어진 히키코모리로서 이런 취급을 받는 건 익숙했다.



한강은 제가 아닌 베르에게 명함을 주며 웃는 늑대 부부를 보며 잊은 줄 알았던 어떤 낡은 감정을 느꼈다.



"혹시 그 늑대 부부가 두려우셨습니까."

"두려웠냐고요? 하하. 아니요! 하나도 안 무서웠는데요..."

"그런데 왜 표정이..."



두려웠냐. 생각해보면 그것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자신이 다시 아무것도 아닌 들러리가 되어버린 느낌이 들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집에 틀어박힌 이후로는 느껴볼 수 없었던 먼지 쌓인 서러움.



"그럴 리가 없잖아요. 전 외교관인데..."

"일에 대한 자부심이 꽤 크신 것 같습니다."

"그럼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인걸요."



내가 좋아하는 건 수인밖에 없었다. 방 안에 틀어박혀 웹사이트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퍼리 야짤을 보며 섹시하다며 시시덕거리는 초라한 인생의 유일한 낙. 베르가 묘한 표정으로 질문을 하나 던졌다.



"어쩌다가 외교관 일을 선택하게 되셨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그건..."



멋있어지고 싶었다. 모두는 어떤 대학에 가고, 어디에 취직을 했고, 결혼을 했고 앞서간다는데. 혼자 방안에서 멈춰있는 자신이 싫었다. 모든 게 내 잘못이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베르씨는 나의 답을 기다렸다. 뻔뻔스럽게도 나는 저 순수한 눈동자에 거짓말을 내뱉어야 했다.



딱, 한 달만이라도.

외교관으로서 살 수 있으려면.

그렇게 해서라도 800만원을 받을 수 있다면...



"보람 있는 일이니까요."



대답 후에는 두 사람의 발걸음 소리만이 주변을 맴돌았다. 정갈하게 걷는 소리와 흙을 차며 걷는 소리. 베르의 걸음이 잠시 멈췄다.



"...그게 끝입니까?"

"네... 네?"



내가 뭔가 잘못했나.



"뭔가 잘못됐나요..."

"아뇨. 아니요... 그런 건 아닙니다만."



베르가 머리통을 벅벅 긁었다.



"무서우셨을 텐데, 그저 보람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런 상황을 견딜 수 있을지 전 잘 모르겠습니다."



도베르만은 조금 놀란 것 같았다.



"아무리 외교관이라고 하더라도 대부분 처음 이런 상황을 마주하면 까무러치거나 달아나거나 하거든요. 짐승들이 인간이 되어 돌아다닌다니~ 이러면서요."

"그, 그런가요. 전 괜히 부드럽고 친근해 보이던데..."

"친근해 보인다고요...?"

"네. 특히 그 늑대 남편분은 굉장히 카리스마 있으시고..."

"...이상하군요. 공포를 느끼시는 건 당연합니다. 그걸 제 앞에서는 굳이 감추려고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 거 아닌데..."



어색하게 대화를 마치고 더 걷다 보면 숙소가 보였다. 현관에 들어와 대충 신발에 묻은 흙을 털고 신발장에 신발을 넣어 정리했다.



베르가 사 온 식재료들을 냉장고에 정리하며 물었다.



"요리를 준비하는 동안 씻으시겠습니까."

"제가! 도와드리지 않아도 괜찮을까요..."

"오. 잘하십니까? 요리?"



그동안 자취를 하며 만들어왔던 요리를 생각해보면 절대로 나는 요리를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만들어줬다가 욕이라도 들어먹지 않으면 다행이지. 베르가 눈을 빛내며 물어왔다.



"주로 어떤 요리를 만들어보셨습니까? 전 항상 요리 친구가 가지고 싶었거든요."

"...숙주나물 스파게티요."

"네?"



순간 머리라도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표정을 지은 베르씨가 고개를 한번 저었다.



"제가 잘못 들은 것 같습니다. 한 번만 다시..."

"숙주나물 스파게티요."



히키코모리 생활을 시작한 후 식비를 아끼기 위해 만들었던 요리였다. 대충 채소는 먹고 싶고, 그렇다고 거창한걸 하기 싫고. 그럼에도 특별한 음식은 먹고 싶어서 만들었던 요리였지.



생각해보면 소스도 설탕이 들어가지 않은 이상하게 조금 시큼한 스파게티 소스를 샀던 것 같다. 오레가노가 들어가서 맛있다는 말에 속아서.



"그건... 그쪽 서울에서 유행하는 요리입니까? 사실 맛이 잘 예상이 되지가 않네요."

"어... 그렇다기보다는 제 창작 요리인데요.."



스파게티면을 삶고 소스를 붓고 숙주나물을 대충 씻어서 같이 볶으면 완성되는 요리. 한입 먹으니 올라오는 풋내에 못 이겨 바로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처박혔었지. 내가 웬만하면 음식을 남기지 않는데. 이 이야기를 들은 베르씨가 마구 웃어넘겼다.



"숙주를 삶지도 않고 넣었다고요? 하하! 아마 포로 고문하는데 유용하게 쓰일 것 같군요..."

"매일매일 제 음식을 먹이면 아마 어떤 비밀이라도 전부 털어놓을걸요..."

"부엌일에는 손도 대지 않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제 안전을 위해서라도요."

"그 정도는 아닌데요..."



베르씨는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세라 나를 재빨리 욕실이 있는 방으로 밀어 넣었다.



"안에 옷은 있을 겁니다. 사이즈를 몰라서 여러 개 준비해두긴 했습니다만, 대부분 조금 클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랍에 있나요?"

"아뇨. 꺼내져 있을 겁니다. 씻고 나오십시오."



그리고 베르는 방문을 닫아버렸다.

걸음을 옮기고 부엌에서 뚝딱거리는 베르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나서야 한강은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후우..."



꼬투리잡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욕실에 들어가 뜨끈한 물을 맞고 나오니 머릿속마저 상쾌해지는 기분이었다. 수건으로 대충 머리를 닦고 나오면 준비되어 있는 옷들이 보인다.



붉은색 팬티 한 장에, 분홍색 물방울무늬 흰색 잠옷 한 벌.

설명하신대로 사이즈별로... 나열되어 있진 않은데.

나한테 좀 크긴 하네.



이런게 이 세계 사람들의 취향인 걸까.

이게 베르씨의 취향인 건 아니겠지.



한강은 왠지 모를 부끄러움을 느끼며 마련된 잠옷을 입고 방 밖으로 나갔다.



딱히 다른 방법이 없었으니까...



__________________


3

베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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