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키코모리 은한강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어떤 상념이었다. 처음 만난 날에 음식을 대접해주겠다 말하고, 좋아하는 음식을 물으며,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이 상황과 눈앞의 도베르만에 관련된 두근거림.
"제, 제가 좋아하는 음식이요..."
누군가에겐 이것이 업무의 연장선이겠지만.
나에겐 마치 데이트 같았다.
"전... 파, 스타 아니 스테이크..."
"파스타와 스테이크라..."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에서 주인공들은 으리으리한 레스토랑에서 고기를 썰면서 서로에 대해 알아가던데.
"오늘은 좋은 고기를 구워야겠군요."
베르는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옆에서 고기를 몇 개 더 담고, 면은 어떤 면이 좋느냐. 소스는 어떤 것을 선호하느냐 따위의 질문을 던졌다. 설레는 일이었다.
"바질페스토 파스타는 어떻습니까? 제가 꽤 자신 있는 메뉴입니다."
"다, 다좋습, 아요..."
"그렇습니까."
진열대에는 다양한 페스토가 진열되어 있었는데, 아무래도 저렴한 것들이라 도베르만의 마음에 드는 것들이 없는 것 같았다. 베르씨는 저쪽에도 괜찮은 것들이 있었던 것 같다며 한강의 손을 잡아끌었다. 마치 사람과 같이 산책을 나와서 신난 강아지처럼.
도베르만은 너무 친절했다.
정말 말도 안 되게 친절했다. 이렇게까지 친절할 필요가 있는 건가. 아무리 파트너라고 해도, 제가 쓰던 집을 내어주고 요리까지 해준다니. 로맨틱하네...
"제가 만든 바질페스토 파스타를 싫어하는 사람은 못 봤습니다. 누군 식당을 차려보라고 하더군요."
"기대되네요..."
"물론 외교관님께서 지금껏 대접받아온 식사들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요."
씨익 웃은 도베르만이 썩 괜찮은 포장지로 싸인 초록색 병을 장바구니에 담는 모습이 보였다. 지금까지 살면서 봐왔던 소스 중에서 가장 비싼 가격표를 가지고 있었다.
"양고기는 좋아하십니까."
"네. 아니, 양이요? 얼마나 요리를 하시려고..."
"시간이 나면 얼마든지 더 대접해드릴 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제 요리가 마음에 드실 때 이야기입니다만..."
"저는, 좋죠..."
"그럼 담겠습니다."
베르가 담은 양고기는 고급스러운 포장과 대비되는 촌스러운 문구로 자신이 A++이라느니, 뭘 먹어서 지금껏 커왔다느니 한껏 으스대고 있었다.
속 내용물이 정말로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도베르만은 주변을 스윽 둘러보고, 한강의 낯을 살폈다.
"...이 정도면 되겠습니다. 빨리 담는다고 담았는데 시간이 꽤 걸렸군요."
정신을 차려보니 주변 수인들의 시선이 모두 도베르만과 한강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부부로 보이는 늑대의 손을 잡고 있는 작은 늑대가 한강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엄마 엄마, 저거 진짜 인간이야?"
"그런 것 같구나...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인데."
"엄청 귀엽다!"
어린 늑대는 한강을 보고 마치 보물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눈을 빛냈다. 어딜가던 아이들은 귀엽구나. 뽀송한 솜털이 자란 늑대가 괜히 귀여워 한강은 손을 흔들었다.
"...안녕?"
"와! 말했어! 진짜 말하네! 신기하다!"
그럼 사람이 말을 하지, 춤을 출까. 한강은 애매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하하..."
"말은 어디서 배웠어? 어디서 왔어? 우리 집에서 자고 갈래?"
도베르만이 작은 늑대와 눈높이를 맞추며 미소 지었다.
"꼬마 친구, 이 형은 외교관이시랍니다."
"외교관? 그게 뭐예요?"
"인간과 우리와 친구가 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분이야."
외교관으로서 이 정도는 감수해줘야지, 생각하면서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 히키코모리에게는 이런 주변에서 쏟아지는 시선이 피곤했다.
"그 인간은 형이 키우는 거예요?"
"아니, 아니..."
"엄마! 나도 인간 키우고 싶어!"
작은 늑대가 뱉은 말은 다소 뜬금없는 말이었다.
"인간! 인간! 인간! 인간!"
무슨 인간을 키운다고... 떼를 쓰는...
"인간은 너무 비싸서 안돼. 귀엽지만 관리하기도 힘들고..."
"자기, 요즘에는 그렇게 비싸진 않았던 것 같아. 도베르만 씨, 혹시 그 인간은 분양하는데 얼마나 들었나요? 참 귀엽네."
뭐?
"우린 저번에 하나 들이려다가 포기했거든요. 쓰다듬어도 되죠?"
곤란한 표정을 지은 도베르만이 제지할 새도 없이 엄마 늑대가 다가와 발톱과 육구가 달린 손으로 한강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아, 아니 저기..."
스윽, 스윽. 마치 잘 깎인 조각상이나 인형의 머릿결을 쓰다듬듯이. 아니면 애완동물인가. 늑대의 손에 달린 발톱과 입가에 튀어나온 송곳니가 날카로웠다. 몸이 얼어붙은 건 그래서였다.
그리고 곧, 도베르만이 엄마 늑대의 팔을 낚아챘다.
"그런 게 아닙니다. 이 분은 외교관이십니다."
"외교관이요?"
엄마 늑대는 꽤 놀란 얼굴이었다.
"그런 컨셉? 귀여워라."
"아아아! 엄마 나도 인간 키우고 싶어! 인간!"
매장 바닥에 드러누워 떼를 쓰는 작은 늑대가 보였다. 주변의 지나가는 수인들은 그런 아이를 보며 웃었다. 우리 애도 저런 때가 있었지, 인간이 정말 귀엽긴 하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부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마치 강아지를 사달라고 조르는 어린 아이 같았다. 수인들은 애완동물을 보는 것과 같은 시선으로 한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늑대 부부는 도베르만에게 사과했다.
"어머, 소란 피워서 죄송해요. 애가 인간을 되게 좋아해서..."
"가끔 데리고 놀러 와주실 수 있나요? 식사 한번 대접해드리고 싶네요."
늑대 남편은 베르에게 명함을 건넸다. 나도 아니고 베르에게.
"선생님, 초대 감사합니다만..."
"엄마! 인간 놀러 와?"
"내 정신 좀 봐. 너무 폐를 끼친 것 같네요..."
"자기, 아까 크루아상 사야 한다고 그랬잖아..."
대화는 맥없이 흘러갔다. 베르도 별수 없이 명함을 받아들고 인사했다.
"기회가 된다면 한번 연락드리겠습니다. 아이가 참 귀엽네요."
"기대하고 있을게요. 즐거운 쇼핑 되세요!"
늑대 가족이 멀어지고 베르씨가 주변을 날카롭게 째려보자 시선은 흩어졌다. 늑대 가족이 멀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즐거운 듯 떠들고, 아이 늑대는 엄마와 아빠의 양손을 잡고 점프하며 팔 그네를 탔다. 그들의 걸음 하나하나에 행복이란 단어가 새겨져 있는 것 같았다.
"괜찮습니까?"
반면 걱정스러운 듯 눈높이를 맞춘 도베르만의 얼굴이 보였다.
붉은 눈동자, 살짝 찡그린 눈매, 검갈색 털...
붓으로 찍어놓은 듯한 동그란 눈썹.
그때도 한강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어떤 상념이었다.
이세계에서 인간 이하로 대접받았다는 불쾌감과.
"괜찮아요..."
지금까지 한심하게 살아온 나에게 딱 어울리는 벌을 받고 있다는.
그런 마음에 품은 여러 가지 생각들.
"익숙해요."
한강은 도베르만이 내민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껏 주저앉아 있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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