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번 서울의 외교관은 이런걸 쉽게 읽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도베르만이 말했다.
외교관은 이런걸 읽을 수 있다고?
작은 종이에 큰 글씨를 얼마나 겹쳐서 썼는지 거의 먹지로 보일 지경이었다.
읽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볼펜으로 아무렇게나 찍찍 그어놓은 낙서장 같은 노트와 다를 바가 없었다.
침착하게 페이지를 펼치고 겹친 문자를 해석하려 노력했다.
전혀 읽히지 않았다.
이게 뭐야?
인수인계 문서라고?
"가장 궁금한 건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문자입니다. 읽어주시겠습니까?"
등줄기가 저릿할 정도로 시렸다.
"어, 음. 그러니까... 별 내용 아니에요."
"그렇습니까. 전임자의 말로는 여기 저와 관련된 이야기를 적어놨다고 했었는데..."
도베르만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왜 이렇게까지 가까이 몸을 붙이는 건지, 제 심장은 뛰는 소리가 이 사람에게 들리지는 않을까 걱정해야 할 만큼 크게 날뛰는 건지.
"정말... 모릅니까?"
도베르만이 고개를 내밀고 다시 한번 물었다. 개는 사람보다 체온이 높다고 하던가. 품 근처로 훅 들어오는 개의 열기가 현실감을 되새기며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게... 그... 너무 가까이...!"
"모를 리가 없지 않습니까. 선배는 분명 읽을 수 있다고 그랬습니다."
"아니... 이런 걸... 누가 읽을 수 있다ㅡ"
"외교관이, 아니신가요?"
"그쪽 눈에는... 이게..."
손에 쥐어진 먹지와 도베르만을 번갈아 바라봤다.
"읽을 수 있을 것 같이..."
점점 개미처럼 작아지는 목소리는 덤이었다. 자신이 없었다.
"생겼나요..."
"못 읽는다고...?"
쾅!
도베르만이 책상을 내리친 건 그때였다.
"읽을 수 있어야지! 외교관이라며!"
앞에있는 커다란 개가 숨을 시근거리며 은한강을 노려봤다. 사냥감을 쫓는 듯한 눈이었다. 점점 얇아지는 짐승의 눈동자에 인간은 절로 몸이 얼어붙었다. 벌린 입에서는 흥분한 뜨거운 숨이 새어 나왔다.
"히, 히끅!"
은한강이 애처로워 보일 정도로 손에 쥔 인수인계 노트가 덜덜 떨렸다. 도베르만은 그제야 제 행동의 의미를 깨닫고 시선을 거뒀다.
"아... 죄, 죄송합니다. 제가 답지 않게 흥분을... 무언가 문제가 있었던 걸지도 모릅니다. 전임자가 그렇게 건실한 인간은 아니었거든요. 공과 사를 구별 못하고 장난을 쳐놓았을지도..."
떨고 있는 인간에게 한 걸음 다가서려다 뒷걸음질 치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개는 발을 멈췄다.
"제가 평소에는 이러지 않는데. 정말 큰 결례를ㅡ"
"아니요."
시커멓게 칠해진 노트의 마지막 페이지를 보고 무언가 중얼거리던 인간은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시선은 물론 개를 향하지 않았다.
"잠시만 화장실 좀 보내주세요..."
도베르만은 들리지 않게 깊은 숨을 내뱉었다.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신입사원에게 밑도 끝도 없이 윽박질러놨으니, 아무리 돌발상황에 익숙한 경력직 외교관이라도 겁을 먹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화장실은 왼쪽 복도 끝에 있습니다. 데려다 드릴까요?"
"아니요. 혼자 갈게요."
본인에게 질려버리기라도 한 건지 인간은 엉거주춤한 걸음걸이로 사무실 문을 열고 나섰다. 도베르만이 이 상황에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사과해야 한다. 이대로 떠나게 둬서는 안됐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말없이 사무실을 떠났다.
* * *
정신없이 복도를 걷다가 화장실을 찾아 들어가고, 비어있는 변기칸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 들릴세라 은한강은 숨을 죽였다. 가슴팍에 손을 올리면 터질 듯이 날뛰는 심장이 그대로 느껴졌다.
"씨발..."
도베르만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와서 강압적으로 위협하고, 윽박지르고. 아직도 그 상황에 처해있는 것처럼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완전히 위협당했다.
하지만.
"존나 섹시해..."
이 상황에서도 개꼴린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수인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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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웅추석끝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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